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81화 쿠구구구구구구구구! 도시와 바다의 경계 한쪽이 푸른 불꽃으로 뒤덮였다. 미르미즈는 브레스를 내뿜은 뒤 아공간으로 돌아갔고, 시몬은 초토화된 전면을 응시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바닥 타일 너머, 코르비니스가 상처투성이의 몸을 부여잡고 일어나려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빗맞았나.’ 시몬의 시선이 브레스의 궤적을 따라 움직였다. 아까 미르미즈에게 주황색 ‘덫’이 닿았던 게 문제였던 것 같았다. 덫이 풀리면서 미르미즈는 원래 쏘려던 방향대로 브레스를 발사했고, 그 바람에 방향이 살짝 어긋난 것이다. [하지만 전부 피하진 못한 것 같군. 소년!] “그 말대로네요.” 코르비니스의 등 한쪽이 벌겋게 타오르다 못해 변색된 상태였다. 거기에 이미 데스나이트의 검에 어깨째로 절단된 상황. 코르비니스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이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지 바다로 몸을 던졌다. 첨벙! 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크게 일어났다. “추격하죠! 피어!” 시몬이 드래고니안 슈트를 벗어 던지고 뛰어갔다. 3군단과 함께 바다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수상전도 이제는 자신이 있었다. “일단 데이모스부터……!” 우웅! 웅! 그때 통신 수정구에서 진동이 울렸다. 멈칫한 시몬이 품에서 그것을 꺼내 작동시키자마자 메이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 큰일 났어! 왕궁이……! 메이린으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들은 시몬의 얼굴이 황망함으로 물들었다. ‘……왕궁이 테러당했다고?’ 처음 예상했던 대로 ‘양동’이 맞았다. 코르비니스와 보석 일족은 버림말에 불과했다. 시몬이 급히 몸을 돌려 도시 방향을 바라보자, 하늘 한쪽이 시뻘겋게 물든 채 불길이 치솟는 풍경이 보였다. “시몬!” 터엉! 그때 지붕에서 한 남자가 뛰어내려 다가왔다. 한 무리의 무장 집단과 함께 나타난 그는 회색 머리에 눈매에 상처가 있었다. 그를 본 시몬이 반갑게 외쳤다. “카쟌!” “왕궁 테러 소식은 들었겠지? 구원자는 우리가 쫓겠다.” 카쟌이 턱짓했다. “너는 왕궁으로 가다오.” “네! 부탁드립니다!” 시몬이 피어로 갈아입은 뒤, 압도적인 각력으로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 * * 역사와 번화를 상징하는 드레스덴 왕궁은 비명과 신음이 가득한 아비규환이 펼쳐져 있었다. 불길이 번져 나가며 정원과 건물을 불태웠고, 사람들은 혼란 속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왕궁을 지키던 결계가 해제됐습니다! 내부자의 소행으로 보입니다! -놈들이 정원까지 들어왔소! 통신 수정구로 보고를 듣던 왕궁 경비대장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대체 누가 감히 왕궁을 공격했단 말이냐!” -제1군단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경비대장의 심장이 철렁했다. ‘……1군단, 이라고? 그들이 왜?’ 꺄아아아악! 궁전에서 일하던 시종들과 집사들, 정원사들이 비명을 질러대며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뒤쫓는 건 중무장한 병사들이었다. -ⴇⲜⴆ·!!! -ⴇⲜⴆ·!!! 그들이 입은 갑주는 마치 한 덩이 ‘통금속’으로 단조된 듯 보였다. 목에서 발끝까지 이어진 금속 표면은 이음새 하나 없이 매끄럽게 융합되어, 마치 갑옷에 갇힌 사람의 형상을 떠올리게 했다. 투구의 얼굴 부분도 철저히 가려졌고, 투명한 눈구멍 사이로는 벌건 안광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투구 위로는 은색 갈기가 나 있었고 등에는 망토를 둘렀으나, 그것만으로 가릴 수 없는 기괴한 분위기가 드러났다. -ⴇⲜⴆ·! 정체불명의 언어를 내뱉으며 드레스덴 왕국의 왕궁에 침입한 이들은 겉보기엔 인간이었지만, 숨길 수 없는 부패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1군단이 자랑하는 갑옷 입은 좀비, ‘철갑송장’이었다. 왕궁 경비병들이 다가와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중무장 상태인 저들은 무장의 수준부터가 달랐다. “여기서 막아라! 내부로 들이면 피해가 커진다!” 그렇게 외친 선임 경비병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으나. 까앙! 철갑송장이 든 검과 부딪히자, 경비병의 검이 역으로 두 동강 나버렸다. 당황한 경비병이 물러서려 하기도 전에, 철갑송장의 검이 그의 목을 날렸다. “쏴라!” 뒤이어 몰려든 왕궁 경비병들이 화살을 쏴댔지만, 마나가 실린 화살조차 저들의 갑주를 뚫지 못했다. “맞든 말든 계속 쏴! 움직임을 지체시켜라!” -ⴇⲜⴆ·!!! 화살 공세가 거세지자 선두에 서 있던 철갑송장들이 일제히 왼손에 연결되어 있는 무언가를 작동시켰다. 촤르르르! 달빛을 응축한 듯한 은색 방패가 펼쳐지며 형태를 갖췄다. 투명하면서도 머리에서 다리까지 가리는 이 대형 방패를 앞세운 채, 철갑송장들이 열을 맞추어 척척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가 된 것 같은 움직임, 화살을 날리던 경비병들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저 갑옷 안에 든 게 좀비라고? 아무리 봐도 사람이잖아!” “정보가 잘못된 거겠지!” 그때 방패를 든 철갑송장들 뒤로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치렁치렁한 긴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거대한 지팡이를 치켜든 그들에서는 불길하기 그지없는 칠흑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는 암흑연합의 병사들에게도 생소하지 않은 존재, 아니, 모르는 사람이 없는 존재였다. “리……!” 겁에 질린 경비병 중 하나가 쥐어짜듯 외쳤다. “리치다!” 리치들이 흑마법을 사용했고, 공성화기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칠흑화염이 하늘에서 내려와 주위를 일거에 불살라 버렸다. 한 차례 화력 공세가 이어진 뒤, 리치들이 불길에 휘말려 무력화된 병사들을 향해 손짓했다. “이봐, 릭! 정신 차려!” 경비병 하나가 쓰러진 동료를 흔들며 외쳤다. 그때 쓰러져 있던 동료의 몸이 갑자기 빵 반죽처럼 급격히 부풀기 시작했다. “서, 설마……!” <시체폭발> 퍼어어어어어어엉! 네크로맨서들의 일반적인 ‘시체폭발’의 발동 조건 자체를 무시하는, 또 다른 형태의 시체폭발. 2차 폭발의 여파에 무수한 경비병들이 휘말려 폭사하고, 방패를 내린 철갑송장들이 뛰어들어 그들을 일방적으로 도륙했다. * * * “보고하시오!” 펄럭! 랭거스틴 본궁, 긴 옷자락을 휘날리며 랭거스틴의 군무대신이 지휘부에 도착했다. 퀭한 얼굴의 관료들이 숨조차 쉬지 못하고 대답했다. “도시의 혼란을 틈타 1군단이 왕궁을 급습했습니다! 내부자에 의해 왕궁 결계가 해제되는 바람에 피해가 큽니다! 3개 경비대가 전멸했고, 급히 가용 병력을 본궁으로 집결시키고 있습니다!” 군무대신이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적의 흔적조차 보지 못했소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모든 공세는 본궁이 아닌 ‘별궁’ 윈터 팰리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본궁의 피해는 전무합니다!” 그 말에 군무대신이 턱을 짚었다. “별궁을?” 별궁 윈터 팰리스는 과거 제국의 궁전이자, 드레스덴 왕족 일가가 겨울철에 머무르던 계절궁이었다. 지금은 마법의 발전으로 사계절 내내 본궁에 머무르고 있고, 별궁은 전 시대의 기록과 역사가 남은 일종의 박물관이자 왕실 정원으로 쓰이는 곳이었다. 그런데 왜 1군단은 별궁을 노렸단 말인가. “……그들이 별궁을 노린 이유가 틀림없이 있을 터, 무엇 하나 1군단의 뜻대로 되게 해서는 안 되오! 왕궁 근위대는 뭘 하고 있는 거요!” 관료들이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아, 알고 계시다시피 왕비 전하의 병환이 깊으셔서 폐하와 수행원들이 비밀리에 지방 영지로 내려가셨습니다. 근위대 전력도 대부분 그쪽에…….” “왕궁의 일정을 훤히 꿰차고 있다는 소리군.” 군무대신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왕실 네크로맨서들은 어디에 있소?” “대부분 결사의 공격을 막기 위해 전장에 나가 있습니다. 왕궁에 남아 있던 네크로맨서들 역시 랭거스틴의 테러 진압에 차출된 상황이라 급히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들이 이렇게까지 겹칠 수 있단 말인가? 수상해, 아주 수상해.” 군무대신이 고개를 젖힌 채 중얼거렸다. 결사는 지금까지 중앙군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덜 미치는 지방 영지 위주로 혼란을 일으켜 왔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각 왕국은 결국 중앙군을 지방 영지에 투입시켰으나, 결사는 이제 비어 있는 중앙의 약점을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무엇을 지킬지 선택하라고. “정말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군.” 군무대신은 메모리얼 수정구를 통해 별궁의 상황을 확인했다. 엄연히 한 왕국의 왕궁인 이곳에, ‘제국의 망령’들이 나타났다. 중세 기사를 연상케 하는 옷을 입은 자들이 왕국의 터를 짓밟고 있는 모습은 속이 메슥거릴 정도로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광경이었다. “남은 전력은 또 누가 있소?” “흑기사단이 있습니다! 현재는 몰리 공주님의 명령으로 별궁의 지하를 지키고 있습니다!” 군무대신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하를?” “예. 결사가 한번 왕궁의 지하를 노린 적이 있었으니, 만약 결사가 또다시 왕궁을 침범한다면 지하를 겨냥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지혜로운 몰리 공주가 이상한 명령을 내릴 리가 없다. 그 명령을 가만히 곱씹고 있던 군무대신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설마!’ * * * 랭거스틴 별궁, 윈터 팰리스의 지하. “커흑……!” 지하의 어둠 아래로, 왕실이 자랑하는 정예 네크로맨서 멤버들로 이루어진 흑기사단이 피를 흘린 채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지하의 벽면이 온통 피범벅이 된 이곳에, 아직 살아 있는 유일한 흑기사단원이 비틀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야에 비치는 건 두 언데드였다.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어깨와 그것을 덮은 구형 케이프, 그리고 얼굴 대신 가슴에 가면이 달려 있는 언데드였다. 그 가면의 눈알이 굴러가며 주위를 훑어보고 있었다. 전설이라 불리는 1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 ‘레큘라’. 그리고 공중에 둥둥 떠서 붉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 안광만이 번뜩이고 있는 리치, 전 7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이자 리치 부대의 대장이었던 뮤르였다. ‘저 관을 찾으러 온 건가.’ 그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방의 커다란 관을 향해 손끝을 세웠다. ‘놈들에게 넘겨줄 수는……!’ 퍼억! 그러나 하늘에서 은빛 창이 날아와 쓰러져 있는 그의 등을 꿰뚫었다. 몸을 떨던 흑기사단원이 결국 축 늘어졌다. [포기를 모르는군요.] 레큘라가 그렇게 말하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죽은 흑기사단들의 시체를 1군단의 병사들이 옮기기 시작했다. [그대가 저지른 잘못은 그대의 육신이 대신 참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들의 육신은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거룩한 황제를 섬겨야 하겠죠.] 시체가 치워지고, 레큘라와 뮤르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지하 중앙에는 거대한 관이 있었다. 인간이 들어가 있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관. 후드 속에서 뮤르의 혼탁한 안광이 번뜩였다. [이걸 손에 넣으려고 그렇게 난리를 피운 건가?] [그렇습니다, 뮤르.] 레큘라가 스르륵 장식들을 바닥에 끌며 걸어가 관의 뚜껑을 열었다. [아아-] 레큘라는 관 안에 든 것에 감격하며 자세를 낮추고 고개를 조아렸다. [황제께서 그대를 애타게 찾으셨습니다. 이제 함께하시지요.] 뮤르가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레큘라는 관을 다시 덮고 흑마법으로 봉인한 뒤 자신이 든 노트를 펼쳤다. 노트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며 관을 빨아들였다. 노트 중심에 관의 형태가 그림처럼 그려졌고, 레큘라는 그것을 닫은 뒤 왼손에 들었다.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얻었습니다. 뮤르, 텔레포트 마법진은 준비됐습니까?] [왕궁 놈들이 지하 전역에 좌표 제어 마법을 뿌려놨다. 지하 내부에서는 텔레포트가 불가능해.] 뮤르가 시큰둥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밖에 리치들을 시켜 텔레포트 마법진을 준비했으니 그쪽을 이용하지.] [……과연 7군단 출신답게 유능하군요. 존엄하신 황제의 은총을 받아, 그대도 우리의 형제가 되면 좋았을 텐데요.] [황제의 지시에는 따르겠다만, 다시는 망자의 계약으로 누군가에게 얽매일 생각은 없다.] 뮤르는 경멸 섞인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특히 ‘그놈’에게 많이 시달렸으니.]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지하 곳곳에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가운데, 레큘라와 뮤르가 지상으로 향하고 1군단의 병사들이 뒤따랐다. 지하에 들어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오니 정원 한쪽에 텔레포트 마법진이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리치 둘이 그것을 지키고 있었다. 뮤르가 텔레포트 작동을 명하려는 그때. 후우웅! 강렬한 광풍이 몰아쳤다. 하늘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검은 불꽃이 쏟아졌다. <드래곤 브레스> 화아아아아악! 시커먼 불꽃이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향했다. 리치들이 급히 방어 마법진을 펼쳤으나 브레스는 그것마저 녹여내며 바닥에 닿았고, 순식간에 텔레포트 마법진의 요소가 손상을 입었다. 쿠구궁! 검은 용이 거칠게 지상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동시에 무릎을 굽힌 한 남자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오랜만이군.” 조금은 빛바랜 금발 머리에 곳곳에 보이는 새치, 탄탄한 근육질 몸과 한결 초연해진 듯한 눈동자.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제6군단의 군단장. “너희 1군단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했다.” 헥토르 무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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