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16화 로크섬 서부. 우드빌 경기장. "이번 경기의 사회자 올렌도 스레이입니다! 여기는 우드빌 경기장! 오후 2학년 경기를 중계해 드리고 있습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이 우렁찬 환호성으로 응답했다. 암흑제의 열기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그럼 이번 경기의 초특급 해설을 모셨습니다! 무려 키젠 교수님이 직접 나오...... 어이쿠, 애들아. 여기 올라오면 안 돼." 경기장의 학생들보다 더 어려 보이는 멜빵바지의 소녀들이 낑낑대며 연단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사회자가 말리러 다가갔지만, 그녀들은 당당하게 소리쳤다. "내 옆의 린은 키젠 교수야!" "맞아! 덧붙여 내 옆의 룬도 키젠 교수야!" 사회자가 맥없이 웃었다. "하하! 장난 그만 치고 돌아가렴. 보호자 분! 보호자 분 계십니까?" 그 말에 한 남자가 손을 들었다. 키젠 본부 직원이었다. 갑작스러운 고용주의 등장에 사회자는 깍듯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본부 직원이 다급한 손짓, 발짓으로 소녀들을 가리켰다. 물음표를 띄운 채 기다리던 사회자의 표정이 점점 창백하게 질려갔다. "아...... 아아아! 이거 정말 실례했습니다!" 사회자가 미친 듯이 허리를 굽신거리며 사과했다. 이런 꼬마들이 키젠 교수라니. 키젠에 가면 상식 외의 일들만 벌어진다고 해서 바짝 긴장하고 왔는데, 정작 눈앞에서 그런 게 벌어지니 속수무책이었다. 쌍둥이 교수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사회자의 양옆에 앉았다. "흠흠! 잠시 사고가 있었지만 중계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설명해 주시죠 교수님들! 이번 종목은 어떤 종목입니까?" "종목은 팀 레이드! 학과별로 최대 여섯 명이 한 팀이고!" "힘을 합쳐서 강력한 몬스터를 먼저 잡는 학과가 승리해!" 우드빌 경기장은 암흑제의 모든 경기장 중에서 가장 넓고 방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그리고 이 경기장 안에는 일곱 개의 작은 간이 경기장이 있었는데, 모두 튼튼한 결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거 흥미롭군요!" 사회자가 눈을 빛냈다. 어린 시절부터 암흑제를 보고 자란 그는 네크로맨서 세계에 빠삭했다. "본래 키젠의 '팀 레이드'는 일곱 과목의 전공생들이 뒤섞여 한 팀이 되는 게 일반적이지요! 하지만 오늘은 암흑제고 학과 대항전입니다! 포지션이 겹치는 똑같은 학과생 여섯 명이 팀을 이뤄야 한다니 이것 또한 재미있겠네요!" 어느새 학생들보다 더 흥분한 것 같은 사회자가 확성 수정구를 입에 바짝 댔다. "저주학과는 어떤 몬스터든 단번에 무력화시킬 수 있겠지만 결정타가 부족할 겁니다! 혈류학과는 몬스터에 상처를 내서 피를 흘리게만 하면 진도가 확 나가겠지만, 그 이전 작업이 벅차겠군요! 등장하는 몬스터의 종류가 무엇인지가 상당히 중요하리라 봅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쌍둥이 교수들을 보았다. "교수님들은 어떤 학과의 승리를 점치시는......!" 그 말이 무섭게 린과 룬이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소환학과 아가들 화이팅! 1등 못하면 린의 친구로 만들어 버린다!" "룬의 친구로도 만들어 버린다!" 1등을 못 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네크로맨서 세계의 고전 농담이었지만, 그런 것까지는 알지 못한 사회자는 그저 웃으며 확성 수정구를 들었다. "그럼 이제 선수들을 불러오겠습니다! 학생들은 경기에 나설 수 있는 회수가 제한되어 있는 만큼, 어떤 종목에 어떤 학생이 출전할지 보는 것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시작하시죠!" 우웅! 웅! 일곱 개의 결계 안으로 학과생들이 하나둘씩 텔레포트 되기 시작했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흥분한 관중들이 떠들썩하게 외쳤다. "올해도 믿는다! 저주학과!" "제발 이겨주라 제발! 집사람 몰래 집문서까지 걸었다!" "맹독학과 화이팅! 우승 한 번 할 때 됐다! 할 수 있다!" 암흑연합 전체가 주목하는 초대형 축제인 만큼, 올해는 어떤 학과가 우승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베팅업체와 도박계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걸려 있었다. 우승 후보로는 전통의 강자인 저주학과와 칠흑역학과가 팽팽하게 맞섰지만, 올해 암흑제에서는 2학년을 담당하는 교수가 그 유명한 '바힐 아마가르'라는 사실 때문에 저주학과가 조금 더 유력하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학생들이 한 명 한 명 등장할 때마다 관중들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특히 세간에 알려진 네임드급 학생이 등장하면 그 소리는 한 층 더 커졌다. 그런데. "아, 아직 한 학과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자가 당황하며 말했다. "저기가 어디죠? 아, 소환학과! 소환학과입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관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도착한 학생들도 소환학과 쪽을 응시했다. 뒤늦게 빛줄기가 번쩍이며 한발 늦게 텔레포트가 시작됐다. "뭔가...... 빛이 작은데?" "그러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빛 안에서 한 소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입니다!" 사회자가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다른 학과 모두 여섯 명을 내보낸 가운데, 소환학과는 단 한 명만을 내보냈습니다!" 다른 학과생들의 시선도 집중됐다. "쟤들 뭐 하잔 거야?" "이번 게임은 포기하나 본데." 이내 빛무리가 가시며 한 명뿐인 참가자 모습이 드러났다. 휘황찬란한 검정 코트를 펄럭이며 당당하게 서 있는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 "아, 이럴 수가! 그 한 명은 바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사회자가 큰소리로 외쳤다. "키젠의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마지막에 등장한 시몬을 향해 열화와 같은 탄성이 쏟아졌다. 여섯 명이 힘을 합쳐야 하는 팀 레이드에 단독출전. 가히 파격적인 인원배치였다. "......아니, 진짜로?" "학생회장 되더니 관심종자 다 됐네, 저거." 다른 학과 학생들이 시시덕거렸다. "잘해라! 아가!" "화이팅! 아가!" 쌍둥이 교수들이 테이블 위에서 목청을 높였다. "이거 놀랍습니다. 하하." 사회자는 여전히 충격의 여운이 남아 있는 듯 멍하니 웃고 있었다. 그때 쌍둥이 교수들이 양옆으로 내려와 자리에 앉았다. "수염 아가는!" "어떻게 생각해?" '수염 아가.......' 사회자가 씁쓸하게 웃으며 손에 든 확성 수정구를 내렸다. "제가 감히 추측하기로는, 제아무리 학생회장이라고 해도 뛰어난 키젠 학생 중 하나일 뿐입니다. 같은 키젠 학생 여섯 명을 이기는 건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관중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6인 팀 게임에 단독으로 참여한 시몬의 결단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무리수에 가까웠다. 하지만 쌍둥이 교수들은 의자에 앉은 채로 빙글빙글 돌면서 웃었다. "과연 그럴까? 과연 그럴까?" "시몬이 그냥저냥 뛰어난 한 명이라면 그렇겠지!" "?" 이내 일곱 결계의 학생들이 모든 준비를 마쳤다. 위원회 측은 혹시나 부정 행위자가 있는지 마지막으로 점검한 다음, 결계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강력한 '레이드 몬스터'가 일곱 개의 시험장 안으로 텔레포트 되겠습니다!" 파아아앗! 학생들이 등장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빛무리가 터져 나왔다. "오늘의 몬스터는! 자이로다일입니다!" 쿠웅! 그것은 두 발로 지면을 단단히 딛고 서 있는 악어과의 몬스터. 육중한 덩치에 키는 3m가 넘었고, 몸길이는 상상을 초월했다. 전신을 단단한 비늘로 무장했고, 꼬리는 가시가 삐쭉삐쭉 솟아 있다. 벌어진 아래턱으로 보이는 긴 이빨은 태양광을 반사해 소름 끼치게 번뜩이고 있었다. 가히 '악어거인'이라고도 불리는 공포의 대상다웠다. "그럼!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몬스터에 걸려 있는 저주가 풀리고, 텅 빈 동공에 눈동자가 드러났다. 가로로 쭉 찢어진 눈동자가 좌우로 휙휙 움직이더니 학생들을 보며 이를 드러냈다. "가자!" "계획대로만 해!" 결계 안의 학생들이 일제히 흩어지며 흑마법을 준비했다. 학과마다 대형도, 전략도, 준비하는 흑마법의 종류도 달랐기에 관람객들은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혼자 참가한 시몬이 마지막으로 움직였다. 그는 아공간에서 스켈레톤들을 닥치는 대로 꺼낸 다음, 자이로다일의 주위로 퍼뜨려 놓았다. 저주가 풀린 몬스터가 무기를 든 스켈레톤을 보며 달려들었다. 까닥. 시몬의 손짓에 따라 스켈레톤들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자이로다일의 시선을 끌어주었다. '소환학은 이런 게 좋단 말이야.' 머릿수가 적어도, 소환수를 쓰면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었다. 스켈레톤들을 충분히 내보낸 시몬은, 이제 비장의 소환수를 꺼냈다. 쿵! 등장하자마자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멈춰 있는 커다란 덩치의 언데드. 흑기사를 연상케 하는 검은 갑주로 전신을 무장하고 있었다. "저게 뭐야?" "목이 없네." 학생회장이 꺼낸 소환수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관중들의 의문을 해소해 줄 의무가 있는 사회자가 쌍둥이 교수들을 보았다. "교수님들! 저건 무슨 소환수입니까?" "듀라한이야!" "조금 특별한 듀라한이지!" 이제 시몬이 팔을 뻗는 모습이 보였다. 우우웅! 그의 손바닥 앞으로 자색의 빛이 일어나 도식을 그려 나갔다. 작은 생태계를 감싸는 울타리의 양 끝단이 만나 겹쳐지고, 그 안에 문자와 기호, 각종 다변체들이 차례차례 새겨진다. 숫자와 기호가 수식을 구성하고, 회로를 따라 자색의 빛이 힘차게 흐른다. 정교한 기계처럼 맞물린 마법적 요소들이 천천히 회전하며 스파크를 튀겼다. -......! 자이로다일도 위험한 힘을 감지했는지 자신을 상대하는 스켈레톤들을 뿌리치고 시몬 쪽으로 다가오려 했다. 스륵. 슥. 이에 시몬이 반대쪽 손끝을 살살 움직였다. 스켈레톤들이 '본 아머'로 바뀌어 자이로다일의 다리에 달라붙어 움직임을 방해했고, 아공간에서 꺼낸 좀비들 몸에 본 아머를 입혔다. 붕! 부웅! 본 아머가 수송선처럼 공중으로 떠올라 자이로다일의 등 뒤에 좀비들을 떨어뜨렸다. 시몬이 연결 동작처럼 주먹을 움켜쥐었다. '시체폭발!' 꽈아아아아앙! 꽈아아앙! 갑자기 등 뒤에서 폭발이 터져 나왔고, 자이로다일의 거체가 휘청하며 쓰러졌다. 놀라서 뒤를 돌아본 자이로다일이 분노하며 팔과 꼬리를 휘둘러 다시 스켈레톤을 공격했다. '좋아, 시선을 분산시켰어.' 그러는 사이 시몬의 혼돈마법은 완성되어 가고 있다. 와아아아아아! 관중들의 반응을 보며, 시몬은 다른 학과 쪽 상황을 살폈다. '생각보다 빠르네.' 거의 다 마무리 단계였다. 저주학과는 자이로다일에 약화 저주를 걸어 쓰러트렸고, 칠흑역학과는 완성된 원소마법을 동시에 퍼붓고 있었다. 혈류학과는 비늘을 벗겨내고 거기에 출혈마법을 거는 데 성공했고, 마투학과는 한 학생이 자이로다일의 목에 창날을 쑤셔 박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시몬은 마침내 완성된 혼돈 마법진을 움직여, 듀라한의 등 뒤에 부여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꺼낸 건. 우우우우우우우-! 불길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마누스의 두개골이었다. 그것을 듀라한에 올려놓은 다음 스위치를 켰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시몬 학생회장도 움직였습니다! 듀라한에 뭔가를 올렸는데요. 저게 뭐죠? ......스켈레톤의 두개골?" 마누스의 두 동공에 안광이 번뜩였다. 그의 칠흑이 듀라한의 체내에 준비된 마법진과 만나 혼돈을 일으키고, 등 뒤에 펼쳐진 마법진과 연동한다. '많이도 필요 없어.' 주저앉아 있던 듀라한의 몸뚱이가 서서히 일어났다. <시몬 폴렌티아 오리지널 - 카오스 듀라한> '단 일검만 빌려오면 충분해.' 시몬은 마누스와 사념이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수행평가 이후, 마누스는 시몬에게 사념의 통로를 거부하지 않고 있었다. 처억. 시몬이 검을 뽑았다 그와 동시에, 시몬을 지키듯 그 위에 웅장하게 서 있던 마누스 또한 검을 뽑았다. 자세를 낮추고 허리에 검을 놓는 동작 또한 완벽하게 일치했다. '회천이야 마누스.' 웅웅-! 너나 똑바로 하라는 듯, 마누스의 안광이 점멸했다. 시몬은 씩 웃었다. '간다!' 샤아아아아악-! 주위의 모든 풍경이 회색빛으로 물든다. 들려오는 소리가 물 먹은 듯 늘어지고, 사고는 끝없이 가속된다. 심장이 북처럼 쿵쿵 뛴다. 집중력이 최고조에 이르고, 사념의 일체화가 완벽해진 순간. 시몬은 마누스의 동작을, 자세를, 그리고 무와 업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몬이 찢어져라 입꼬리를 올렸다. '찰나의 순간, 나는 소드마스터가 된다.' 시몬과 마누스의 발이 동시에 앞으로 나갔다. 발끝에서 시작한 회전이 허리를 타고 팔 끝으로 향했다. 팔에 흐르는 격류와도 같은 흐름을,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내보낸다. <제국검술 - 회천(回天)>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늘이 반으로 갈라진다. 경기장이 반으로 갈라진다. 무엇도 거스를 수 없는 직선을 뽑아낸 시몬과 마누스가, 거대 몬스터를 등지고 검을 내렸다. 관중들이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벌렸다. "뭔가 일어났나?" "저기 봐! 소환학과 쪽에......!" 스릉! 자이로다일의 목에, 깨끗한 단면이 그어지고 있었다. "......!!" 경기장 전체가 소리 없는 경악으로 물들었다. 시몬과 듀라한이 정확히 일체화된 동작으로 검을 움직여 검집에 댔다. 카가가가각- 검이 마찰음을 내며 검집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긴장감으로 타들어 갔다. 찰칵! 마침내 검이 완전히 들어가는 순간. 쩌어어억! 거대한 목이 깨끗한 단면을 드러내며, 일곱 개의 전장 중 가장 먼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괴물의 머리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쿠웅-! 관중석의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