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04화 냉혹한 룰이었다. 자신이 부른 몬스터를 15분 이내에 다 잡지 못하면 가차 없이 '0점'이다. 물론 그나마 안전장치 정도는 있었는데, 이번 시험에는 '팀 점수'가 존재했다. 2개 조가 합쳐진 8명이 한 팀. 각 팀원들의 점수를 합계해서 팀 순위를 매기고, 그 순위에 따라 팀 점수가 차등적으로 주어진다. 몬스터를 놓쳐서 개인 점수가 0점이라도, 팀 점수가 높은 팀에 속해 있다면 조금은 회생의 여지가 있는 셈. 물론 회생의 여지만 있을 뿐이지, 사실상 개인점수를 잘 받는 게 가장 중요했다. "에슈 아르젤입니다!" 팀 점수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에슈가 손을 번쩍 들었다. "2조가 한 팀이라고 하셨는데, 우리 학과는 13개 조인데요?" "그렇지 않아도 설명하려고 했다." 아론이 태연히 말했다. 그의 옆으로 조교들이 다가와 상자 하나를 내려놓고는, 그 안에 번호가 적힌 구슬들을 쏟아붓는 모습이 보였다. "조의 수가 홀수이므로, 여기서 무작위로 뽑힌 단 하나의 조는 4명이서만 게임을 치른다. 대신 팀 점수 배율은 두 배다." 그렇게 말한 아론이 상자에 손을 넣었고, 학생들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4명 팀, 좋은 건가?" "......글쎄,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메리트랑 리스크가 모두 두 배가 되는 거니까." "전력이 좋은 팀이면 유리하겠지." "더럽게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달칵! 아론이 상자 안에서 구슬 하나를 뽑았다. 그러곤 표면의 숫자를 확인했다. "4명이서 시험을 치를 조는 '8조'다." 아아아-! 곳곳에서 탄식이 들려왔다. 하필이면 8조는 현재 A반 최강으로 손꼽히는 조. 아세라즈 미켈과, 화이트라는 강력한 투톱이 버티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조장인 아세라즈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화이트는 늘 그렇듯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다른 두 조원들은 애써 기쁨의 웃음을 참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 되냐." "1위는 무조건 8조네." 그 뒤로, 아론은 나머지 팀들도 지정했다. "내가 뽑을 거야!" "나도 뽑을 거야!" 재밌어 보였는지 린, 룬 쌍둥이 교수들이 자기가 하겠다고 졸랐다. 린이 한 조를 뽑고, 룬이 다른 한 조를 뽑아서, 한 팀을 이루었다. 1팀 : 1조, 9조. 2팀 : 3조, 12조. 3팀 : 5조, 7조. 4팀 : 6조. 13조 5팀 : 8조. 6팀 : 4조, 10조. 7팀 : 2조. 11조. 시몬은 6팀. 즉 여섯 번째 차례였다. '그나마 후반부 순서라서 다행이네.' 시몬은 당연히 나중 순서가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앞선 학생들이 따놓은 점수 때문에 심리적 압박감은 크겠지만, 앞선 순서를 보고 판단을 더 용이하게 내릴 수 있게 된다. "오, 학생회장!" 요즘 자주 보는 것 같은 4조 조장이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저번 구울 수행평가에서, 시몬의 전략에 가담해 헥토르 조를 꺾고 2위를 손에 넣은 게 이들이었다. "10조랑은 이렇게 또 엮이네? 잘 부탁한다!" 4조 조장이 손을 내밀었고, 시몬도 그 손을 맞잡으며 미소 지었다. "응. 잘 부탁해." 4조 정도라면 나쁘지 않다. 물론 헥토르의 1조나, 세르네와 피츠제럴드의 11조와 힘을 합쳐 아세라즈의 8조를 견제하는 게 이상적이겠지만 그건 너무 욕심이었다. 뒤따라 다가온 다른 4조 조원들도 로레인과 토토, 에슈와 악수하며 전의를 다졌다. "에슈!" "반가워!" 특히 에슈는 밥도 같이 먹는 절친이 4조에 있어서 무척 좋아하는 눈치였다. 두 사람은 손바닥을 맞잡고 콩콩 뛰어다녔다. "실례하겠습니다." 조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소환학 조교가 다가와 유인물을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지하던전에 나오는 몬스터들의 리스트입니다. 몬스터들의 특징도 있으니 전략을 세우는 데 참고하세요." "감사합니다!" 10조와 4조는 빙 둘러앉아 바로 전략을 수립했다. "몬스터는 총 다섯 종류네." 로레인이 말했다. <그린오크, 해머놀, 제질리, 광산코볼트, 스톤하피.> "어려운 몬스터는 없어. 하늘을 날 수 있는 스톤하피는 좀 까다롭고." "이 다섯 종류 중에 무작위로 섞여 나온단 거지?" "맞아." 아버지가 사냥꾼이라고 밝힌 4조의 남학생이 설명을 맡았다. 그는 몬스터의 디테일한 특징까지 다 알고 있었다. "제질리가 변수라고 생각해." 눈꼬리 쳐진 졸린 눈의 남학생이 몬스터의 사진을 손끝으로 짚었다. "이 녀석의 별명은 '겁쟁이 제질리'야. 전투가 불리해진다거나 싶으면 도망치거든." "땅굴을 파거나 하늘을 날거나 해서 도망치는 건 아니지?" "그렇겐 못 해." "그나마 다행이다." "추격에 필요한 칠흑은 남겨둬야겠네." 학생들은 빠르게 중요지침을 공유했다. 확실한 건 듀라한을 파괴할 정도로 강한 몬스터들은 아니니, 15분 동안 힘을 아끼지 않고 최대한 밀어붙여서 머릿수를 줄이는 데 집중할 것. 전세가 불리하면 도망치는 제질리는 가급적 전투 초반에 최우선으로 처치할 것. 그다음으로 스톤하피도 하늘을 날 수 있으니 2순위로 처치할 것. 그렇게 정보를 공유한 뒤에는 출전순서를 정했다. "첫 번째 차례는 누구로 할래?" "선봉이 진짜 중요하다고 봐. 기세 싸움이니까." 조원들은 순서가 엄청나게 중요한 것처럼 열을 올렸지만, 뒤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던 시몬의 생각은 달랐다. '팀 점수가 있지만, 팀플레이나 팀워크가 필요한 시험은 아냐.' 그렇게 생각한 시몬이 몸을 뒤로 기울였다. '이건 철저한 개인전. 내 차례가 오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정확히 몬스터를 잡는 게 팀을 위하는 일이야.' 그때 그레리온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시작하겠다. 첫 번째 팀 나와라!" * * * 1팀인 헥토르의 1조와, 6조가 시험장으로 이동했고. 나머지 학생들은 휴게실 겸 관전실로 이동했다. "와, 이 소파 개편해!" 큰 시험을 앞두고 다들 딱딱하게 긴장하고 있었지만, 에슈는 세상 태연하게 웃으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확실히.' 지내기에 괜찮은 곳이었다. 난로도 있고, 입이 심심할 때 먹을 주전부리도 있다. 화장실도 꽤 가까운 편이다. 그리고 휴게실 앞에는 마나 출력기로 작동하는 스크린이 보였는데, 학생들은 벌써부터 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제 시작한다!" 마나 스크린이 작동했다. 시험장 앞에 출전순서대로 1조와 6조 학생들이 일렬로 쭉 서서 대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장 강한 헥토르가 마지막 차례였다. 그리고 검은 로브 차림의 던전지기가 다가왔다. 그는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장년의 남자였는데, 로브 너머로 보이는 팔에는 온갖 할퀸 흉터들이 가득했다. "이름." "코, 코이터 피즌입니다." 코이터는 학과 첫 차례라서 그런지 엄청나게 긴장하는 눈치였다. 입술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몬스터 수는?" 코이터는 크읍 하고 길게 숨을 내쉬다가 입을 열었다. "20마리로 부탁드립니다." 대기실에서 지켜보고 있던 시몬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20마리? 너무 적은 거 아닌가? 거기에 코이터 피즌이라면 아론의 질문에 제일 먼저 'A급'을 외쳤던 학생이었다. "확인했다." 던전지기가 물러서고 코이터 피즌은 시험장으로 도착했다. 널찍한 크기의 지하공간에는 아직 몬스터가 나오지 않아서 휑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코이트 피즌은 그 장소의 끝. 결계로 막힌 곳에 섰다. -코이터 피즌 학생. 언데드를 꺼내주십시오. 방송음이 들렸다. 코이터 피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공간에서 자신이 만든 듀라한을 꺼냈다. 주재료는 아바돈인 모양이었다. 갑주로 전신을 감싸고 있었으며, 무기는 대검을 선택했다. -준비가 다 되면 시작하겠습니다. 다행히 준비시간은 무제한이었다. 코이터는 준비해 둔 마법진에 차근차근 수식을 쌓아 올렸고, 마무리 작업이 끝나기 무섭게 듀라한의 등에 마법진을 부착했다. 우우우웅! 마법진이 전원장치처럼 작동하며, 듀라한을 깨우기 시작했다. 제자리에 멈춰 있던 듀라한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본인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키이잉-! 머리의 두 동공에 불꽃이 일렁였다. "시, 시작해 주세요!" 코이터 피즌이 급하게 외쳤다. -코이터 피즌 학생. 시험 시작입니다. 철컹! 철컹! 지하던전의 입구가 열리며 스무 마리의 몬스터가 쏟아져나왔다. 코이터가 힘차게 기합을 내지르며 팔을 뻗었다. "가보자아아! 듀라한!" * * * 그 결과는 싱거웠다. "?!" 코이터 피즌의 듀라한은 강했다. 20마리의 몬스터가 쓰러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4분. 남은 시간은 무려 11분이나 됐다. "어. 어......?" 하지만 몬스터를 잡아도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무조건 제한시간 15분이 지나야 시험이 끝난다. 코이터는 머리카락을 붙잡은 채 울상을 지었다. "시, 실수였어! 실수야! 지금보다 몇 배는 많아도 이길 수 있었는데!" 그는 남은 시간 동안 괴롭게 자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 마리도 놓치면 '0점'이 된다는 리스크를 너무 의식한 탓이었다. 결국. -시간 종료. 힘이 아무리 남아 있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1분 동안 무력하게 듀라한과 함께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남은 11분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코이터 피즌 학생, 제한시간 내 20마리의 몬스터 처치 완료. -코이터 피즌 학생과 1조는 20점 획득했습니다. 쾅! 대기실로 나온 코이터는 곧바로 헥토르에게 붙들려 벽에 밀어 붙여졌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격분한 헥토르가 으르릉거렸다. 코이터가 눈물을 글썽이며 팔을 휘저었다. "이, 이럴 줄 몰랐어! 이럴 줄 몰랐다고!" "그딴 자존감으로 교수님 앞에서 A급이니 뭐니 지껄였단 거냐!" 코이터 피즌이 억울하다는 듯 다른 학생들을 보았다. "다, 다들 말했잖아! 다소 점수가 적다고 해도 0점은 받지 말자고! 안정적으로 가자고! 0점만 안 받으면 우리가 이긴다고! 그런 전략이었잖아!" 코이터의 시선을 받은 학생들은 다들 슬쩍슬쩍 눈을 피했다. "참 나. 진정해, 헥토르." 누군가 헥토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헥토르가 분노한 눈으로 돌아보자, 얼굴이 길쭉한 남학생이 실실 웃고 있었다. "첫 차례로 교훈을 얻었으면 된 거잖아. 내가 화끈하게 점수 따내고 올게." -다음 차례, 들어와 주십시오. "예이~ 예이." 방송을 들은 그가 손을 휙휙 흔들며 시험장으로 향했다. "다들 딱 보고 있으라고." 그 남학생이 지하던전의 결계 앞에 섰다. "쿠르트 트랑블레입니다!" 던전지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의 수는?" 쿠르트가 히죽 웃었다. "20기가 뭐냐? 남자답게 4배! 80기로 부탁드립니다." * * * 15분 뒤. -시간 종료. 쿠르트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져 있었다. -쿠르트 트랑블레 학생, 제한시간 내 80마리의 몬스터 중, 76기 몬스터 처치 완료. -잔여 몬스터 4마리. -쿠르트 트랑블레 학생과 1조는 0점 획득했습니다. 크아아아아아아! 벽 너머의 시험 대기장소에서 분노한 헥토르가 외침이 들리고 있었다. 살기 섞인 드래곤 피어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어, 어, 어쩌다 이렇게......." 쿠르트가 허망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이 시험.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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