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79화 한편, 시몬이 습격당했던 부두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코르비니스의 첫 기습이 실패한 직후, 이번엔 주위에 잠복하고 있던 키젠 학생들이 나타나 역습을 가한 것이다. 이에 보석 일족들 또한 코르비니스를 지키기 위해 보석수들을 동원해 맞섰고, 부두는 난전이 벌어졌다. -크르르르르! 네 발로 달리는 거대한 보석수 늑대가 시몬을 향해 거칠게 돌진했다. 여전히 부두 중앙에 태연히 서 있는 시몬은 이를 보며 손끝을 내리그었다. <본 프리즌> 꾸우웅! 즉각 에메랄드빛이 일렁이는 뼈 네 개가 하늘에서 떨어져 보석수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보석수가 주르륵 바닥을 긁으며 미끄러지더니 고통스럽게 발버둥 쳤다. 촤르르르르르! 촤르르르르! 시몬의 등 뒤로 ‘친위대’ 효과가 깃든 에메랄드빛 뼈들이 날개를 펼치듯 좌우로 벌어졌다. 시몬이 지휘자처럼 손끝을 움직이자, 자유롭게 날아가며 보석수들을 차례차례 바닥에 처박았다. 몇몇 뼈들은 직접 두 보석수에 연결되더니, 서로 머리를 부딪히게 만들어 기절시키기도 했다. 콰아아아아앙! 퍼어어어엉! 시체폭발의 폭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본 아머가 날아다니는 파공음이 대기를 울렸다. 이런 난전 속에서 시몬의 전투는 정밀하게 짜여진 오케스트라를 연상케 했다. 좀비, 구울, 스켈레톤 메이지, 스켈레톤 나이트, 스켈레톤 아처, 스컬윙, 골렘, 자이언트 스켈레톤까지. 컨트롤 낭비 없이 다양한 언데드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있었다. “……저자가 바로 그 제7군단장인가.” 이를 지켜보던 보석 일족이 긴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 군단장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일족과 보석수들이 쓰러지고 있다. “저놈부터 잡아야 한다!” 조용히 지켜보던 일족 하나가 기습적으로 주황색 선을 시몬에게 적중시켰다. 순간적으로 시몬의 움직임이 멈췄고, 달려든 일족의 보석검이 시몬의 목을 향해 다가왔으나. <본 쉴드> 터엉! 커다란 뼈 방패가 날아와 칼끝을 막아냈다. 시몬은 순식간에 이성을 회복한 뒤, 방패를 손끝으로 가볍게 터치했다. 촤르르르르르! 뼈 방패가 분리되어 시몬의 팔을 부드럽게 감쌌고, <본 건틀릿>을 착용한 시몬이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쩌엉! 거친 굉음과 함께 일족이 멀리 날아가 건물 벽에 처박혔다. 뒤이어 지붕에서 내려온 좀비들이 그에게 철썩철썩 들러붙었다. “저, 저리 가!” 이내 좀비의 몸이 칠흑으로 번쩍였고, 시몬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시체폭발> 다시 한번 거대한 폭발이 터져 나오며 보석 일족을 침묵시켰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지금 이런 속박과 폭발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늘은 스컬윙들이 지배한 채로 좀비를 계속해서 떨어뜨리고 있었고, 시몬이 주먹을 쥐는 곳마다 보석수들과 보석 일족들이 나가떨어졌다. ‘……진짜 쟤는 미친놈인가.’ 근처에서 보석수와 전투 중이던 소환학과 출신의 한 남학생이 진땀을 흘렸다. ‘군단장이면서 기본기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탄탄해? 자괴감 느껴지게.’ 그의 듀라한이 보석수 하나를 상대하느라 시간을 한참 잡아먹는 사이, 시몬은 간단한 좀비와 본 아머 조합만으로도 전장을 압도하고 있었다. 강한 기술에만 집착하다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네크로맨서들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힘과 강함을 숭상하는 네크로맨서에게는 어쩔 수 없는 고질적 단점. 그런데 시몬은 그 뿌리부터 단단히 땅에 박혀 있었다. 소환수가 없어도 나뭇가지 하나만 쥐여주면 결국에는 어떻게든 승리할 것만 같은 인물. 그것이 키젠 3학년 2학기에 이른 시몬의 현재였다. “시몬!” 거기에 든든하게도, 멀지 않은 곳에서는 카미바레즈도 함께 싸우고 있었다. 그녀가 팔에 두른 ‘피의 휘장’은 마치 생명력을 가진 생물처럼 움직이며 무한히 뻗어나가고 있었다. 보석 일족이나 보석수들은 바로 이 휘장에 붙잡힌 채 힘을 잃어갔다. “끄윽!” “빠져나갈 수 없어!” 휘장은 한번 달라붙으면 떨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늘어났으며, 붉은 섬유에서 뻗어 나온 실의 가닥이 상대의 피를 빨아들여 체력을 고갈시키고 있었다. “이제 끝이에요!” 이제는 마무리 단계. 카미바레즈가 휘장 끝을 쥐고 하늘로 높이 들어 올렸다. <블러드 블룸(Blood Bloom)> 휘장에 붙들려 있던 모든 보석수와 일족들이 중앙에 모이더니, 피폭발이 수선화처럼 피어났다. 적들이 모두 후두둑 쓰러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녀가 다시 팔을 잡아당겨 피의 휘장을 회수했다. 오른손에 모인 휘장이 이내 그녀의 목에 빨간색 머플러처럼 자리 잡았다. “시몬! 다친 곳은 없으세요?” “난 괜찮아 카미.” 쏟아지는 적을 상대하며 두 사람이 척 하고 등을 맞댔다. 시몬이 마투기로 다가오는 보석수를 걷어차며 말했다. “그보다 움직임이 룬 리그 때보다 더 좋아졌네!” “에헤헤! 아빠가 특훈을 시켜주셨어요!” 타닷! 두 사람이 등을 맞댄 채로 함께 싸웠다. 시몬이 오른팔에 뼈를 휘감아 보석수를 때려눕히고, 카미바레즈가 혈류탄을 쏘아 보내며 동기들에게 들러붙는 보석수들을 떼어놓는 사이. 키잉! 카미바레즈의 몸을 주황색 선이 관통했다. 그녀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멈췄고, 뒤이어 날카로운 보석 덩어리가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위험해!” 바람처럼 다가온 시몬이 그녀를 안고 주황색 선 밖으로 빠져나갔다. 시몬의 품속에서 정신을 차린 그녀가 깜짝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위험했어요. 죄송해요!” “아니야. 무사해서 다행이야.” 시몬이 보석 일족들을 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 녀석들, 확실히 한 방이 있네.’ Top10급인 카미바레즈마저 다칠 뻔했다. 저 주황색 선에 닿으면 어떤 저주 저항이나 정신 방벽을 가진 네크로맨서도 쉽게 저항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렇게 수적으로도 많으면서 강력한 보석수들까지. 괜히 결사가 전투 용병으로 활용하는 일족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피해를 줄이려면 구원자로 보이는 대장부터 처치해야 해.’ 시몬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코르비니스, 어디로 갔지?’ 처음에 덤벼들었던 코르비니스를 찾아내 쓰러뜨리고 이 격전을 끝내야 했다. * * * 타앗! 탓 일족들이 싸우고 있는 사이, 전장에서 빠져나간 코르비니스는 지붕을 딛고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가 손에 든 통신 장치를 들고 말했다. “여기는 코르비니스. 상황이 좋지 않다. 지원을 요청한다.” 치직- 이내 통신음이 울려 퍼졌다. -코르비니스 님, 무슨 일입니까? “내통자의 배신으로 모든 기습이 실패했다. 이대로는 개죽음이다.” -알겠습니다. 본가에 보고하겠습니다. 좌표를 말씀해 주시면……. 치지지지지직! 그때 통신음이 일그러지며 거친 잡음이 들리더니,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이이, 혼란 좀 일으키라고 보냈더니,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해? 실망이네, 실망이야. 코르비니스가 표정을 굳혔다. “……타락의 구원자. 네가 와준다면 당장이라도 전황을 뒤집을 수 있다.” -뭐? 깔깔깔깔! 귀에 긁히는 듯한 여성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왜? 일족의 위기를 앞두고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을 뻔한 코르비니스였지만, 이내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무리하게 키젠을 노리라고 한 건 네 지시다. 지원이 없다면 포탈을 열어라. 남은 일족들이라도 대피시키겠다.” -안―돼. 그녀의 음성이 싸늘해졌다. -랭거스틴은 키젠의 앞마당이야. 그 간악한 놈들은 우리가 포탈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겠지. 너흰 거기서 전멸하거나, 상대를 전멸시키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만 남았어. “타락!” -이제 와서 왜 그렇게 감성적으로 변하셨을까? 코르비니스. 그녀가 차갑게 비웃었다. -자기 일족 건사하겠다고, 본인들이 사는 세계를 파괴하고 넘어온 이기주의자들이 바로 너희잖아. 일족을 지키기 위해 몇 개의 세계든 멸망시키겠다고 맹세한 거 아니었어? 그 힘은 왜 쓰지 않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코르비니스의 얼굴에 강렬한 분노가 스쳤다. “우리는……!” 그가 말을 멈췄다. 하늘에서 태양광이 번쩍이더니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이 내려왔다. 코르비니스가 다급히 두 팔을 보석화해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쩌어어어어어어엉! 강대한 일격에 부딪힌 그의 몸이 날아가 지면으로 처박혔다. 처억. 시몬이 지면에 착지하며 코르비니스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몸은 친위대의 에메랄드빛 뼈로 둘러싸여 있었고, 손에는 친위대의 검을 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통신이……!’ 코르비니스가 급히 손을 펼쳤으나, 그 손안에 통신 수정구는 없었다. “이걸 찾아?” 어느새 시몬의 다른 한 손에 그의 통신 수정구가 들려 있었다. 시몬이 수정구를 입 앞에 대고는 말했다. “딱 기다리고 있어. 너는 반드시 내가 잡는다.” 쩌엉! 그러고는 바닥에 던져 깨뜨려 버린 뒤 저벅 저벅 코르비니스에게 다가왔다. “포기해.” 시몬이 싸늘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상대한 구원자들은 이렇게 허술한 계획을 구사하진 않았어.” 시몬의 머릿속에, 잔인할 정도로 강력했던 구원자 킬로바니안과 아락무라드, 라우라가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넌 ‘버림말’이야. 너희 일족을 지키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투항 명령을 내리는 게 최선이야.” 코르비니스가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선?” 꾸드드드드드득! 그의 몸이 빠르게 보석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인간처럼 보였던 육체는 사라지고, 거의 보석만으로 이루어진 괴물이 눈앞에 서 있었다. 시몬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공기가 바뀌었어.’ [나는 세계를 무너뜨린 구원자다!] 터엉! 그가 바닥을 주저앉히며 돌진했다. 시몬이 급히 손에 든 친위대 검을 세우며 방어 자세를 취했으나. 쩌어어어어어엉! 전과는 비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 시몬의 몸이 충격을 받고 크게 밀려났다. 코르비니스의 팔에 부딪힌 친위대의 검이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피해를 공유하고 있던 시몬도 몸에 깊은 상처가 났다. ‘미친!’ 촤아아아악! 시몬이 뒤로 물러나는 사이, 그의 측면으로 우회해 온 코르비니스가 보석검을 휘둘렀다. 시몬이 다급히 주먹에 칠흑을 모으고 검면을 후려쳤으나. 터어어어어어엉! 너무 강한 힘과 속도 때문에 검의 방향이 틀어지지 않았다. 결국 시몬이 어깨를 베이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완력의 차이가 지나치게 심해!’ 코르비니스의 공격이 시몬을 압도하고 있었다. 시몬의 몸 곳곳에 핏물이 치솟는다. 보석화된 두 팔을 맹렬히 휘두르던 코르비니스가 시몬의 복부를 걷어찼다. 시몬의 몸이 벽돌벽을 무너뜨리고 두 번째 건물 벽면에 부딪힌 뒤, 털썩 주저앉았다.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르며 주위를 뒤덮었다. [끝이다.] 일말의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코르비니스가 득달같이 돌진하며 보석으로 이루어진 검을 휘둘렀다. 서걱! 결국 시몬의 목이 베여,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드디어……!] 자신의 속도를 줄이며 멈춰 선 코르비니스가 허억! 헉! 하고 거친 숨을 내뱉었다. [드디어 내가 제7군단장을 죽이고 일족의 자유를……!] 그러나. 짜악! 갑자기 손뼉 소리와 함께 환경이 바뀌었다. 목을 떨어뜨린 시몬은 온데간데없고, 그 뒤로 시몬이 멀쩡한 모습으로 손뼉을 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좋은 꿈이라도 꿨나 보네.” <판타서스 오리지널 – 슬립> 코르비니스가 휘청이며 제 머리를 짚었다. 갑자기 졸음이 밀려들고 있었다. ‘꿈이었다니! 완전히 방심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센서리 널(Sensory Lull)> <슬로우(Slow)> <슬러지(Sludge)> 시몬이 미리 뿌려둔 저주 기물들이 연달아 작동하며 코르비니스를 약화시켰다. 저주에 빠진 그가 비틀거리며 괴로워했다. [이깟 잔재주 따위!] 코르비니스가 저주의 효과를 무시하려는 듯, 더 강한 힘으로 바닥을 박차고 시몬을 향해 보석검을 휘둘렀다. 이에 시몬도 앞으로 뛰어들며 동시에 주먹을 휘둘렀다. 보통 컨디션이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주먹. 분명히 ‘눈’으로는 보였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코르비니스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주먹이 다가오는 모습을 그냥 손 놓고 지켜봐야만 했다. ‘이건 마치……!’ 마치 일족의 ‘덫’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닌가. 보고도 피할 수 없었던 시몬의 주먹이 코르비니스의 안면에 성대하게 꽂혔다. <창파(滄波)> 터어어어어어어엉! 제대로 마투기를 맞은 그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으나, 보석 일족 특유의 터프함으로 쓰러지지 않고 버텨냈다. 그가 함성을 지르며 광전사처럼 돌진해 보석검을 휘둘렀다. 채앵! 그러나 이번엔 힘으로 밀어붙이는 공격마저도 막혔다. 주위의 흙먼지가 걷히며, 시몬의 앞에 새하얀 대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컥! 달칵! 시몬의 오른팔에도 어느새 새로운 본 아머가 덮여 있었다. 이때 코르비니스는 느꼈다. 압도적인 힘의 파장을. “딱 맞춰 왔어요 피어.” 시몬이 그대로 보석검을 쳐내며, 발차기 자세를 취했다. 즉각적으로 피어의 뼈들이 다리에 들러붙으며 힘을 강화했다. 쿠쿠쿠쿠쿠쿠쿵! 강화된 각력에 걷어차인 코르비니스의 몸이 역으로 여섯 개의 집을 무너뜨리며 날아갔다. 달칵! 달칵! 시몬의 몸에 빠르게 피어의 뼈로 뒤덮였다. 이내 무형의 망토가 휘날리며, 피어의 투구까지 시몬의 얼굴에 자리 잡혔다. 이것이 진짜 군단장의 모습이었다. ‘크하하하!’ 웃는 피어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른 대장들은요?” [크흐흐! 내가 왔는데 다른 대장을 찾는군 소년! 나 하나로 충분하지 않나!] “그렇긴 하죠.”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들어 올리며 구원자를 바라보았다. “자, 이제 어떻게 할래? 구원자. 고뇌할 시간은 충분히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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