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77화 -하지만, 네 동료들은 버틸 수 있을까? 그 말을 가만히 곱씹던 시몬이 눈을 치켜뜨고 코르비니스를 바라보았다.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지?” [고뇌의 향기가 느껴지는구나.] 그 말을 들은 코르비니스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우- 들이 마신 숨을 느릿하고 길게 내쉰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내가 직접 네 앞에 나타났으니 다른 동료들은 안전하다. 혹시 그렇게 생각했나?] “…….” [우리 일족은 너희가 정한 순찰 경로를 이미 파악하고 있다. 아마 지금쯤-] 부웅! 코르비니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피투성이가 된 무언가가 시몬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그것을 본 시몬의 눈이 부릅떠졌다. “……바, 반장!?” 제이미 빅토리아가 복부에 피를 흘린 채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뒤이어 공간계열 마법진이 사방에서 나타났고, 피로 시뻘겋게 물든 3학년 학생들이 튀어나와 털썩털썩 바닥에 나뒹굴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어지럽게 늘어져 있고, 사람의 신체가 불가능한 방향으로 꺾여 있다. 시몬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식은땀이 떨어져 내렸다. 털썩. 그때 시몬의 발 앞으로 떨어진 여학생을 보는 순간 그 간헐적인 움직임마저 멈췄다. 연보라색 머리카락과 등 뒤에 나 있는 박쥐 날개. 카미바레즈였다. [우리 일족의 힘은 너희가 여태껏 상대한 것들과는 결이 다르다.] 코르비니스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과 장소가 명확한 이상,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지. 네가 너희 일족의 이동 경로를 지정해 주는 바람에, 죽을 장소를 정해준 격이 됐구나.] 시몬의 눈은 한동안 멍하니 피투성이가 된 카미바레즈에게 멈춰 있었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드는 순간. 후콰아아아아아아악! 산불처럼 넘실거리는 거대한 칠흑이 뿜어지듯 일어나왔다. 찌를 듯한 살기와 분노가 검게 휘몰아치며 주위의 경관마저 일그러뜨렸다. 이를 상대하는 코르비니스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와라.] 검푸른 산불을 휘장처럼 끌며, 시몬이 코르비니스에게 돌진했다. 이에 코르비니스는 묵묵히 손끝을 내뻗었다. 적은 감정에 지배당했고, 타이밍은 완벽하다. 그의 손끝이 살짝 올라간 순간.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몬의 경로를 가로막듯, 12방향에서 주황색 선이 번뜩이며 나타났다. 코르비니스의 일족들이 주위에도 대기하고 있던 것. 아무리 감각의 변화에 잘 적응하더라도, 한 번에 12개의 선이 들어오면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척! 코르비니스에게 달려들려던 시몬의 몸이 투명하게 변한 채 그 주황색 선을 통과해 물러났다. 덫을 피해낸 그의 몸이 다시 물리력을 되찾아 발을 디뎠다. <혼령화> 비교적 초창기에 배우면서도, 사령학을 대표하는 흑마법인 혼령화. 잠시 영체가 되어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나는 기술이었다. 시몬이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3학년 마지막에서야 한 번 성공했네.” 코르비니스가 눈썹을 들썩였다. ‘반응하고 피한 건 아니다.’ 동료들의 죽음으로 평정을 깨뜨린 뒤에 이루어진 기습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것을 간파했다. 자신의 숨겨둔 한 수를 끌어내기 위해 감정에 휩싸인 척 돌진한 것이다. [다시 봤다. 시몬 폴렌티아.] 코르비니스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네 일족과 주변 사람들을 끔찍하게 아낀다고 들었는데. 너 또한 승리에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냉소적인 인간이었나.] “그럴 리가.” 시몬이 등을 꼿꼿이 펴고 코르비니스를 응시했다. “내가 냉소적인 게 아니라, 네가 내 주변 사람들을 해치지 못했기 때문이야.” [뭐?] 스스스- 스스스스스스- 어느새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던 학생들의 모습이 일렁이더니, 축 늘어진 허수아비들로 변했다. 상처도 전부 볏짚이 찢어져 있을 뿐이었다. ‘가짜? 이 모든 게?’ 코르비니스는 믿을 수 없었다. 일족들이 틀림없이 몇 번이고 확인했을 터. 학생의 외견, 흘리는 붉은 피, 고통스러운 비명과 잦아드는 숨소리, 심지어 내부를 파서 내장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우리 쪽 ‘스테이시 세잔’ 교수님의 특기가 바로 인식의 왜곡이야.” 시몬이 천천히 옆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교수님의 망령 허수아비는 상대방이 인식하고자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더미’일 뿐이지.” 인식은 믿음에 기반한다. 저기 키젠 학생이 온다. 이 시간에 이 장소로 오는 걸 보니 키젠 학생이 확실하다. 기습이 성공했다. 우리가 키젠 학생을 죽였다. 믿고 싶은 마음이 강할수록, 허수아비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으로 인지된다. 결국 시각이나 촉각 또한 몸으로 전달되는 뇌의 반응에 불과했고, 그것을 이용하는 게 스테이시 세잔의 망령 허수아비였다. 코르비니스가 입술을 짓씹었다. ‘……처음부터 놀아난 건가.’ 저런 기술을 사용하려면 사전에 ‘설계할 시간’이 필요하다. 일족의 계획을 모두 알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 그렇다면 누가 이 정보를 흘렸나. 누가 이 정보를 과신하게 했나. 한 얼굴이 코르비니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중 스파이!’ 바로 신임 교수 아보 벨스만이었다. * * * 보석 일족 아지트. 아보 벨스만 교수는 의자에 축 늘어진 채 앉아 있었다. 그의 몸에는 다섯 겹의 주황색 선이 깊게 지나가고 있었고, 그런 그를 감시하고 있는 건, 피부 곳곳이 광물화된 종족. 바로 코르비니스의 ‘보석 일족’들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족장님.” 한쪽 귀가 보석처럼 변한 일족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보가 우릴 배신했다.” 그 말을 들은 일족 모두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그중에 한 남자가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 일족이 포로로 잡혀 있는데 이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하다니!” 아보에게 다가가며, 보석으로 뒤덮인 그의 오른팔이 날카로운 검처럼 변했다. “대륙민들은 역겹구나! 네 일족들에게 죽음으로 사죄해라!” 그가 아보의 가슴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까앙-! 그런데 푹이나, 퍽, 같은 살이나 내장이 꿰뚫리는 소리가 아니라, 마치 유리창을 두들기는 듯한 청아한 소리가 났다. 보석 일족이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아보의 피부가 살짝 베일 뿐, 내부를 관통하거나 가르지 못했다. 스륵- 그때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앉아 있던 아보 벨스만이 갑자기 흐느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연체동물처럼, 허리를 먼저 솟구쳐 세우고, 머리와 다리가 뒤이어 올라오는 느낌. 저벅 저벅. 아보 벨스만이 무언가에 조종당하듯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움직였다. 검을 휘두르던 보석 일족이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놀랍게도 그의 몸 곳곳에 베인 상처는 나 있었지만, 붉은 피가 흘러야 할 자리에 인위적인 파란색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검이 살갗은 뚫었으나, 푸른색 피로 이루어진 방어선을 뚫지 못한 것이었다. “흠.” 이내 보석 일족의 ‘덫’을 벗어난 아보 벨스만이 눈을 깜빡이다가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잘 빠져나왔네.” 보석 일족들이 일제히 경계하며 몸 곳곳을 날카롭게 바꾸었다. “방금 무슨 짓을 했나!” “대단한 일은 아니야.” 아보가 태연히 대꾸했다. “내 몸에 위해가 가해졌을 때, 체내의 ‘피’로 하여금 그 상황에서 안전한 위치로 이동하도록 설계해 뒀거든.” “……뭐, 뭐라고?” “뭘 그렇게 놀라? 피부의 일부가 보석처럼 빛나는 여러분이 나는 더 신기하게 보여. 혹시 잘라내도 계속 반짝이나?” 그가 뒷목을 가볍게 문지르며 미소 지었다. “그 피부를 시장에 팔면 비싸게 팔릴 텐데.” 그 말에 보석 일족 전원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더니 동시에 공격을 강행했다. 각자의 몸의 일부를 보석으로 변신시킨 뒤, 그것을 발사하듯 날려 보냈다. 터어어엉! 쿠우우우우우웅! 쏟아진 보석 폭격이 아보 교수를 덮치며 주위를 흙먼지로 가득 채웠다. “여러분의 눈물겨운 사연은 잘 들었어.” 하지만 흙먼지 속에서도 아보의 목소리는 흔들림 하나 없었다. 잠시 후 그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의 전신은 파란 피가 유리처럼 덮인 상태로 빛나고 있었다. “그쪽 세계에서는 그 반짝이는 몸 때문에 사냥의 대상이 됐다지? 그렇게 사냥당하며 가슴 졸이던 여러분이, 결국 결사의 우두머리와 손을 잡고 힘을 얻어서 역으로 그 세계의 모든 생명을 전멸시켰다고 들었어.” 아보 교수가 안경에 묻은 흙먼지를 닦아내며, 눈가를 손등으로 훔치는 시늉을 했다. “자기가 사는 세계를 무너뜨리면서까지 복수를 행하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감히 네놈이 입에 올릴 이야기가 아니다!” 일족 한 명이 보석으로 변한 손을 창끝처럼 내세워 달려들었다. 이에 아보 교수가 제 가슴을 검지로 톡 하고 두드리자. 째애애애애앵! 몸을 둘러싸고 있던 푸른 피가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져 주위로 퍼져 나갔다. 퍼어억! 쩍! 으적! 피부 일부가 광물처럼 단단한 일족이었지만, 피로 이루어진 청색 조각은 정확히 보석이 보호하지 않은 살갗 쪽으로 날아갔다. 조각들은 목을 찢고, 가슴을 꿰뚫었으며, 허리를 자르며 지나갔다. 일족들이 괴로워하며 자리에 쓰러졌다. “깊은 아픔과 역사를 가진 여러분이, 떠돌이 전투 용병이 되어 결사의 사냥개로 전락한 건 참 유감스러운 일이야.” 그가 안경알에 튄 일족의 피를 손가락으로 문질러 닦고는, 혀를 내밀어 피를 맛보았다. “하지만 우리 세계에 발을 들여 사람들을 해치려고 한 이상, 용서할 수 없지.” “네놈……!” 보석에 복부를 꿰뚫린 사내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네 일족은 어찌 돼도 좋단 말이냐!” “일족? 아, 포로로 잡힌 내 가족을 말하는 거야?” 아보 벨스만이 눈을 감았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사실 내 ‘가족’은 모두 내 손으로 만든 거야.” “……뭐?” “내 몸으로 이것저것 혈류 실험을 많이 하다 보니 애석하게도, 내 피를 견딜 수 없는 모체도, 아이도 없게 됐거든. 그래서 내 유전자와 피를 직접 투입해 호문쿨루스를 배양했지.” 덜컥! 덜컥! 사방의 문과 창문이 열리며 아보 벨스만을 쏙 빼닮은 무수한 아이들과 여자들이 걸어 나왔다. “이제 내게는 10명의 부인과 40명의 자식들이 있어.” “미, 미친놈!” 당황한 일족이 다가오는 아이에게 보석 검을 휘둘렀으나, 아이의 이마 부분의 살이 살짝 찢어질 뿐. 아보처럼 푸른색 피가 보이며 그 이상 깊게 베이지 않았다. 일족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부탁해. 내 가족들아.” 꾸욱. 꾹. 아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족들이 흩어져 보석 일족들을 붙잡았다. 어찌 된 일인지 완력도 압도적이라 빠져나갈 수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7세 아이 정도의 완력을 이겨낼 수 없었다. 스르르르륵- 그사이 주위에 흩어졌던 푸른 조각들이, 마치 하나의 퍼즐로 되돌아가듯 아보 벨스만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의 전신이 빛나는 푸른색 옷처럼 코팅되었다. “다음 공격으로 너희 모두의 숨통을 확실히 끊을게.” “그, 그만둬!”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아우성과 발버둥 소리가 겹쳤지만, 아보 벨스만은 태연히 웃음을 지었다. “남의 일족을 상처 입혔으면, 여러분의 일족도 상처 입는 게 당연한 이치지 않을까?” 그가 가슴을 다시 한번 가볍게 두드리자. 째애애애애애앵! 푸른 코팅이 유리 조각처럼 깨지며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비명과 함께 피보라가 솟구치며 일족들이 쓰러지고, 피와 파편이 뒤섞이며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주위는 이제, 완연한 침묵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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