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47화 '특례 1번, 사샤 앤드라실.' 내재된 재능을 다 가늠할 수 없는 완전히 미지수의 존재. 내신과 이론에는 취약한 전형적인 초보 네크로맨서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실전에서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뛰어났다. 결투평가에서도 상위 스쿼드 학생들도 시종일관 압도하고 있다. 마치 작년의 특례 1번, 시몬 폴렌티아가 연상된다고 평가하는 원로들도 적지 않았다. "......." 사샤는 무심한 얼굴로 쓰러진 몰리를 바라보다가 손을 슥 내밀며 말했다. "괜찮아?" 코가 찡했지만, 다행히 피는 나지 않았다. 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바닥을 지면에 붙였다. "내 힘으로 일어날 수 있...... 꺄아악?" 갑자기 등이 커다란 힘으로 떠밀리더니, 반강제로 몰리의 몸이 일으켜졌다. 그녀의 손이 엉겁결에 내밀어진 사샤의 손에 닿았다. "그럼 다행이고." 툭 내뱉듯 말한 사샤가 몰리의 손을 놔버리고는 시선을 돌렸다. 몰리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식물?' 바닥에 넝쿨 같은 게 뻗어 나와 그녀를 밀어낸 것이다. 식물이 사람을 일으켜 세울 정도로 강력한 흑마법. 아앙- 다시 고개를 되돌려 보니, 사샤가 커다란 3단 케이크를 향해 입을 벌리는 모습이 보였다. 순둥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입이 커다랗게 벌어지더니 냠냠냠 하면서 케이크를 무지막지하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어, 어.' 몰리는 넋을 놓고 사샤의 케이크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커다란 3단 케이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입 주변에 잔뜩 케이크 크림을 묻힌 사샤가 팔을 뻗어 접시에 담긴 닭다리를 들었다. 으적- 으적- 마치 굶주린 산적처럼 먹을 것을 없애 나가는 모습에는 일말의 품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뭘 봐?" 사샤가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우며 말했다. 특례 1번이라는 네임드에 살짝 굳어 있던 몰리는 고개를 돌렸다. '여, 여긴 뭐 하는 동아리지?' <미식 동아리> 미식 동아리의 부스에서는 길거리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샤 외에 다른 학생들도 의자에 앉아 웃고 떠들며 뭔가를 먹고 있었다. "먹을래?" 척! 닭다리 하나가 칼끝처럼 몰리의 목 앞에 멈춰 섰다. 몰리는 흔들리는 동공을 붙잡으며 그것을 보았다. "아까 친 사과의 의미. 내가 살게." "......." 본능적으로 몰리의 눈썹이 모아졌다. 닭다리를 저렇게 맨손으로 잡은 채 남에게 내밀다니. 평민들과는 최대한 편견 없이 어울리려고 노력하지만, 이런 건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예의가 어긋난 게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평생 왕궁에서 궁중요리만 먹어온 몰리에게, 길거리 음식은 퍽 끌리지 않았다. 저 노란색 소스에 빨간색 소스. 그리고 이상한 가루. 엄청나게 맵고 짜고 자극적으로 보인다. 뭣보다 위생이 최악이다. "난...... 입맛이 없어." "아, 그래?" 사샤가 닭다리를 순식간에 자기 입으로 되돌리더니 거칠게 한 입 뜯어먹고는 말했다. "귀티 흐르는 얼굴값 하네." "......!" 몰리의 이마가 살포시 찌푸려졌다. "너 지금 시비 거는 거니?" "입맛이 없다고 안 먹는 걸, 나는 이해 못 하겠어." 그녀가 닭다리를 쥐고 물어뜯으며 말했다. "난 생존을 위해 전부 먹어치웠어. 쓰레기통을 뒤지고, 신발 가죽을 씹어 먹고, 지붕에 고인 물을 마시면서." 큼지막하고 살이 도톰한 닭다리 요리가, 그녀의 입에서 빠져나오자 순식간에 하얀 뼈를 드러냈다. "썩은 빵 쪼가리가 바닥에 뒹굴고 있을 때 하늘에 감사하며 울었지. 이걸로 이틀은 더 살 수 있겠구나 하고. 그 이후로 음식은 사양하지 않고 있어. 무엇이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뿐이야." "......." 몰리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사샤가 다음 닭다리를 잡으려는 그 순간. 터업! 몰리가 꽁한 표정으로 닭다리를 빼앗아 쥐더니 눈을 질끈 감고 살점을 입에 물었다. 두툼한 고기의 식감과 함께 맵고 짠 향신료가 입안을 가득 자극하는 게 느껴졌다. '역시 맛없서어!' 몰리가 속으로 울먹였다. 사샤가 그 모습을 보며 키득거렸다. "굳이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었는데." "백성들의 기아와 굶주림은 왕실의 책임." 몰리가 지근지근 뼈까지 씹으며 말했다. "고작 이런 걸로 네 아픔을 위로해 주진 못하겠지만, 우리 왕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나 중립지대 출신인데?" 그 말에 몰리가 입을 떠억 벌렸다. 뒤늦게 코가 벌게졌다. "뭐, 뭐야 너! 드레스덴의 평민이라서 왕족인 날 일부러 시험한 거 아니었어?" "그런 짓을 왜 해." 사샤가 픽 웃었다. "아, 그 귀티 흐르는 얼굴. 이제 기억났어. 몰리 드레스덴. 특례 10번 막차러." 몰리의 얼굴 전체가 시뻘게졌다. "누, 누누, 누가 막차러야!" "특례 10번을 그렇게 부른다던데, 아냐?" "무엄하다!" "우와, 키젠에서 왕족 말투 뭔데. 혹시 적응력 부족?" "너어! 역시 나 놀리려고 했던 거지?" 몰리가 씩씩거리며 사샤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키젠 간에는 계급과 신분을 떠나 평등하다고는 하지만, 몰리는 무려 한 나라의 왕족이다. 간땡이가 부어서 대놓고 몰리에게 '막차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직접 면전에서 그 소릴 들으니 충격은 엄청났다. "잘 먹었습니다." 사샤가 그렇게 말하며 높은 의자에 폴짝 내려왔다. "도전 미식왕 풀세트. 전부 다 먹었으니 무료로 주시는 거죠?" "와우, 진짜 이 양을 다 먹어치운 거냐!" 음식을 조리하고 있던 2학년 동아리 부장이 후다닥 다가왔다. "넌 최고의 인재야! 우리 동아리에 와주지 않을래? 네가 2학년이 되면 부장직도 약속할 수 있......!" "죄송해요. 선배님." 사샤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미 들어가고 싶은 동아리가 있어서요." "아, 하하! 그렇구나. 그것참 아쉽네." 미식 동아리 부장은 못내 아쉬운 듯 입맛을 쩝쩝 다시며 돌아갔다. 사샤가 주머니에서 동아리 부스배치도를 펼쳐 드는 그때. "사과해!" 몰리가 씩씩거리며 항의했다. "뭘?" "날 막차러라고 모욕한 거!" "그거 가지고 뭘 그래. 쪼잔하게." "쪼, 쪼자안? 그것도 같이 사과해!" "다들 뒤에선 그렇게 부르던데. 막차 공주님. 하고." "꺄아아아아악!" 동경하던 키젠에 특례입학하고, 네크로맨서가 된 몰리의 유일한 역린. 바로 가장 낮은 숫자인 10번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처음엔 키젠에 입학했다는 행복감 때문에 별생각 없었지만, 점점 이 숫자가 신경 쓰이고 있었다. 이러면 마치. 키젠에서 왕실을 슬쩍 배려한 인사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존경하는 네프티스 님! 어째서 저는 10번이고, 저런 애가 1번이죠?' 네프티스에게 항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몰리는 코어개방을 상당히 늦게 한 편이었으나, 그녀가 가장 존경하는 학생회장 시몬도, 그리고 여기 있는 특례 1번 사샤도 코어개방이 늦은 걸로 알려져 있다. "빨리 사과하라고!" "응. 사과." "또, 똑바로! 진심을 담아서 해!" "사과를 명령하면서 진심을 담으라는 건 뭔데?" 크으으으! 한계치까지 얼굴이 붉어진 몰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 굴욕, 절대로 잊지 않겠어!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란 말 알아? 2학년이 됐을 때 수석을 따는 건 나야!" 사샤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Top10이나 유지하면 다행이지."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의 눈에 파지직 하고 전류가 흘렀다. 이내 흥 하고 고개를 돌려버린 두 사람이 부스 안내서를 펼쳐 들었다. 저벅 저벅. 두 사람이 부스배치도를 보며 동시에 걸음을 옮겼다. 걷는 방향, 그리고 골목을 지나서도 두 사람은 똑같이 걷고 있었다. "따라오지 마." 사샤가 말했다. "네가 날 따라오고 있잖아!" 몰리가 말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두 사람이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재미있는 소환수들, 개성 있는 소환수들! - 돌연변이 동아리> 몰리의 얼굴에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와, 사람 많네?' 소환학 동아리라서 한적할 줄 알았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학생회장 선배니임!" 민망한 웃음을 흘리며 손수 전단지를 건네고 있는 시몬의 존재가 압도적이었다. "아하하, 전부 나눠줄 테니까 싸우지 말고 받아." "저는 두 장 주세요!" "전단지에 사인해서 주세요!" 여긴 동아리 홍보 부스인가, 시몬 폴렌티아 팬클럽인가. 남녀 할 것 없이 신입생 구출 전설을 쓴 시몬의 인기는 상당했다. "......이게 이렇게 쉽게 된다고? 내가 그동안 노력해 온 것들은......." 동아리 입부서가 쌓이고 있었지만, 안경 쓴 동아리 부장은 기뻐하긴커녕 짙은 좌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 안녕! 1학년들!" 두 사람이 멀뚱거리고 있는 그때, 토토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이, 이거 한 장씩 가져...... 갈래? 물론 강요하는 게 아니라 너희만 괜찮다면!" "감사합니다." 몰리가 예쁘게 웃으며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사샤도 고개를 꾸벅이며 전단지를 받고는 훑어보았다. <특수 언데드 연구회 '돌연변이'> -언데드 연구회지만 개성적인 소환수라면 무엇이든 환영. -시몬 폴렌티아 보유. 전단지를 다 훑어본 사샤가 고개를 들었다. "언니, 여기 소환학 지망만 들어갈 수 있어요?" "어, 어어어어, 언니이?!" 토토가 충격받은 얼굴로 후다닥 물러나더니, 제 몸을 다소곳하게 가렸다. "난 남자야!" "아. 죄송해요." 남자든 여자든 별 관심 없다는 듯 툭 내뱉은 사샤가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몰리. 너도 여기 입부할 거야?" 몰리는 여전히 꽁한 얼굴로 대꾸했다. "너랑 무슨 상관인데?" "별 상관은 없지만." 사샤도 차갑게 말하고는 걸어갔다. 몰리도 재빨리 뒤따르려는 그때. "?" 아까 왔던 여장 선배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무, 무례에 사과드립니다! 공주 폐하? 아님 저하? 암튼 제가 못 알아봐서......!" "괜찮아요! 키젠에서 이러지 말아주세요. 선배님." 몰리가 식겁하며 토토를 일으키고 있는 그때, 사샤는 당돌하게 걸어가서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안녕? 시몬 오빠." "!" 시끌벅적하던 주위가 순식간에 싸-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시몬을 둘러싸고 있던 1학년들이 식겁하며 '애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사샤를 본 시몬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샤! 어서 와!" 이걸 받아준다고? 사샤는 멍해 있는 1학년들 사이를 불쑥 들어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나도 시몬 오빠 동아리에 가입하고 싶어." "아, 그럴래? 나야 네가 들어와 주면 든든하긴 한데." "여기 입부서에 이름 쓰면 돼?" "잠깐 잠깐 잠까안!" 얼굴이 시뻘게진 몰리가 사샤를 옆으로 휙 밀어냈다. "이게 무슨 결례야! 감히 학생회장 선배님께 오, 오오오, 오빠? 무슨 일곱 여덟 살 먹은 꼬맹이도 아니고!" 사샤가 훗 하고 웃으며 말했다. "너랑 무슨 상관인데? 난 옛날부터 쭉 그렇게 불렀거든." 아까 말을 그대로 돌려준 사샤가 시몬을 보며 그치? 하고 말했다. 시몬도 고개를 끄덕이며 친한 여동생 다루듯 머리를 쓸었다. "사샤 너, 사춘기가 세게 왔다는 말이 사실이었네." "카미 언니가 그래?" "노코멘트 할게." 사샤가 헤헤 웃었다. 아까는 보인 적 없는 평범한 또래 여자애 같은 웃음이었다. '아.' 이 둘. 엄청나게 친해 보였다. "몰리 공주님도 오셨네요." 사샤가 입부서에 사인하고 있는 사이, 시몬이 몰리에게 다가왔다. "타라도스 사태 때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공주님! 부스 구경하러 오셨어요?" "학생회장 선배님."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자,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네, 말씀하세요. 공주님." "여, 여긴 키젠이니까......." 어느새 얼굴이 새빨개진 그녀가, 수줍게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앞으로는 그냥 몰리라고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