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40화 남은 시간 20분. 시몬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1조 제단에서 피에르 버클러를 물리치고 빨간색 유물을 차지한 다음, 주변에서 느긋하게 유물을 수색하다가 시험 종료 20분을 남긴 때에 시작지점으로 복귀했다. 정면으로 들어가면 위험할 수 있기에, 옆으로 빙 돌아 언덕 위에서 제단을 내려다보았다. 시몬의 입가에 곤란한 미소가 걸렸다. "역시나." 본진의 제단도 털리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을 헥토르가 취한 전술은 하나. 시몬 조의 제단을 틀어막고 버티는 거였다. 이번 시험의 점수는, 시험이 끝나는 순간 각자의 제단 위에 놓여 있는 유물을 계산해서 매겨진다. 아무리 많은 유물을 갖고 있어도 마지막 순간에 제단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즉, 헥토르는 시몬을 끌어내려 하고 있다. "......아무래도 헥토르는 진심인 것 같아." 뒤를 돌아보니 토토가 숨을 헐떡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토토!" "혹시 빈틈이 있을까 봐 쭉 지켜보고 있는데, 제단 근처에서 거의 움직이질 않아." 속된 말로 너 죽고 나 죽자 전술. 이대로는 1조와 10조 다 같이 사이좋게 0점이었다. "안녕! 회장~ 데스나이트 소년도!" 에슈도 뒤따라 합류했다. 토토의 얼굴이 금방 화끈 달아올랐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아하핳! 미안 미안! 근데 헥토르 애들은 아직도 우리 제단에 있네! 이럼 싸우는 수밖에 없겠지 회장?" "그래야지. 유물은?" 에슈가 슬쩍 웃으며 자신의 구울을 불러들였다. 13조의 빨간색 유물을 포함한 여러 유물들을 바닥에 뱉어내게 했다. "잘했어! 13조의 빨간색 유물도 가져왔구나." "당연당연! 아, 근데 로레인 님은?" "후방에서 대기 중이야. 지금쯤 피에르 버클러랑 싸우고 있을 것 같으니까, 우리끼리 들어가자." "오케이!" 시몬이 기지개를 쭉 켰다. "그럼, 시작해 볼......." "시몬 폴렌티아!!" 쩌렁쩌렁한 외침에 모두가 깜짝 놀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네놈이 그러고도 1위냐! 쓰잘데기 없는 잔머리 굴리지 말고 덤벼라! 날 힘으로 꺾고 제단을 가져가 봐라!" "......오우야." 에슈가 땀을 삐질 흘렸다. "독기 제대로 품었네." "거, 걸리면 죽을 거야." 토토가 입술을 덜덜 떨었다. 시몬은 태연하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가자." "가, 같이 가! 시몬!" 시몬이 언덕에서 내려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헥토르의 눈동자가 일그러졌다. "......네놈." "안녕, 헥토르." 시몬의 등장에, 다른 두 명의 1조 조원들도 바짝 긴장하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네 구울은 어디 있나? 피차 시간이 없다는 걸 알 텐데." 헥토르가 고압적인 목소리로 말했고, 시몬은 빙긋 웃는 것으로 맞수 했다. 츠팟! 한순간이었다. 장송이 걸린 시몬의 구울이 후방에서 안개를 뚫고 나타났다. 뒤늦게 그 모습을 본 1조 조원이 외쳤다. "헥토르! 뒤......!" 쩌어어어어억! 헥토르의 고릴라 같은 구울이 튀어나가, 시몬의 구울을 못처럼 바닥에 내리꽂았다. 일격에 머리가 뭉개지는 모습을 본 에슈와 토토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장송을 건 구울을......!' '한 방에?' "두 번 말 안 하마. 시몬 폴렌티아." 쿠구구구-! 헥토르가 전신에서 섬뜩한 칠흑을 폭발시켰다. 다른 세 기의 구울도 주인과 마찬가지로 칠흑을 뿜어내고 있었다. "제대로 덤벼라." "......." 시몬이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원한다면." * * * "젠장! 젠장! 젠장!" 피에르 버클러가 허겁지겁 헥토르가 교전 중인 10조의 제단 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안 돼! 헥토르! 놈들의 본진에서 싸우면 안 돼! 제기라알!" 빨리 가서 알려야 했다. 시몬의 구울은 상상도 못 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는 종류의 기술이고, 제대로 휘말리면 걷잡을 수 없다. "어서 알려야...... 아!" 슈콰악! 그 순간, 나무에서 구울 하나가 떨어지며 발톱을 휘둘렀다. 피에르의 구울이 앞발을 들어 간신히 받아냈다. 주르륵 밀려나는 구울을 보며 피에르가 소리쳤다. "누구냐!" 스륵. 나무 뒤에서 검은 머리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에르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로레인 아크볼드! 하필 이럴 때!' "미안해." 그녀가 붉은 눈으로 냉정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길 지나가게 둘 순 없어." "비켜어어어어!" 피에르가 사념을 일으켰고, 로레인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사람의 구울들이 동시에 돌진하며 연신 불똥을 튀기며 발톱을 휘둘러댔다. * * * 척. 시몬이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헥토르는 긴장한 기색으로 자세를 낮췄고, 다른 1조의 두 명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구울 안 꺼내? 구울 없이 시험자 혼자 1분간 있으면 룰 위반......." 그때. 시몬의 손바닥이 서서히 움켜쥐듯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 지켜보던 헥토르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더니, 이내 다급하게 외쳤다. "망할! 피해라!!" "......시체(Corpse)―" 쿠르르! 찰나의 순간, 제단 주위로 세 기의 구울이 지면에서 머리를 불쑥 들이밀었다. 동시에 시몬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맹독폭발(Poison Explosion)." 콰아아아아아아앙―! 구울의 몸이 일제히 터져 나가며 마치 대규모 생화학 테러를 연상케 하는 녹색의 연기가 제단을 자욱하게 뒤덮었다. "윽, 뭐야!" "구울이 폭발했어?!" 구울에 과부하와 장송을 걸고, 부패가스와 함께 폭발시켜 체내의 독성물질을 모조리 사방으로 내뿜게 하는 시몬의 새로운 비기. 헥토르가 급히 입을 틀어막았고, 다른 두 명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시체폭발을?' 시몬이 사용한 건 틀림없는 흑마법이었지만, 이것은 구울 평가다. 장송처럼 구울에게 적용되는 기술일 경우에는 허용된다. 상당한 범위에 녹색 연기가 들어찼지만 다행히 살상력은 없어 보인다. 조원들도 무사했고, 구울들도. '구울들이?' 그 자리에 멈췄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사념은 제대로 연결되어 있고, 소환마법진도 무사하지만, 칠흑이 제대로 뻗어 나가지 않고 있다. "소환수의 천적, 카바라의 독이야." 시몬이 말했다. "카바라의 독은 칠흑 민감도를 극도로 떨어뜨려. 원래는 액체에 가깝지만 기체 느낌으로 리메이크했어." "크윽!" 헥토르가 독 연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구울을 움직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네놈!!" 파밧! 그리고 이 혼란을 틈타, 토토가 조종하는 구울이 돌진했다. 물론 시몬이 직접 손봐서 독에 면역을 갖춰놓은 구울이었다. 토토의 구울은 독 연기를 통과해 지금까지 모은 모든 유물들을 제단에 떨어뜨렸다. 그중에서는 헥토르 측의 빨간색 유물도 있었다. "시몬 폴렌티아!!!" 헥토르가 격노하며 금방이라도 시몬에게 달려들 듯 눈을 부라렸다. 1조의 조원 한 명이 독 연기서 빠져나가 새로운 구울을 꺼냈다. "유물을 가져와!" 그의 구울이 독 연기 속으로 돌진했으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제단 앞에 멈췄다. 그리고 멈춰 선 구울을 토토의 구울이 목을 물어뜯어 파괴했다. "크윽!" 사념이 끊긴 그가 비틀거렸다. 옆의 조원이 혀를 내둘렀다. "......하, 진짜냐. 바로 눈앞에 있는데 가져갈 수 없다니." "어떻게 된 건데? 구울이 무슨 시체폭발이야!" 비로소 승기를 잡은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단념해 헥토르." "......." "이제 남은 시간은 15분 남짓이야." 헥토르가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이 독 연기는 20분 정도 허공에서 머무르고, 난 아직 세 기의 포이즌 구울들을 보유했어. 계속할 거야?" "헥토르! 속을 필요 없어!"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기다려 볼......." "......됐다." 헥토르가 눈을 질끈 감았다. 부르르 떨리는 주먹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물러난다." 이미 승부는 났다. * * * 시몬의 전략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시몬은 별야 교수와 벤야의 협력으로 '시체 맹독폭발'이라는 신기술을 손에 넣었고, 이 기술을 100% 활용하기 위한 계획을 짰다. 헥토르가 무조건 공격해 올 거란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에 4조에 빨간색 유물을 내어주면, 헥토르는 빈손으로 돌아가는 대신 이쪽 제단에 틀어박혀 있으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그리고 이번 시험의 세부룰은 다음과 같다. -시험자는 최대 3기의 구울까지 동시에 컨트롤할 수 있다. 한번 꺼낸 구울은 아공간으로 돌려보내지 못한다. 한 번의 3기 컨트롤 제약. 즉, 사념으로 연결만 하지 않는다면 다른 구울들을 미리 꺼내놓는 것도 가능하다. 토토가 이 룰이 제대로 먹히는지 시험해 봤고, 시몬은 제단 근처에 구울 세 기를 땅속에 심어두었다. 뒤이어 헥토르가 10조의 제단을 접수했다. 시몬은 20분이 남은 시점에 심어둔 구울로 시체폭발. 제단을 독 연기로 뒤덮었다. 다행히 바람도 크게 불지 않았고, 폭발 가능한 구울의 잔량도 충분했다. 가히 잘 들어맞은 승리 공식. 헥토르는 패배를 인정하고 제단에서 물러났다. 그답게 빠른 판단이었다. 만약 계속해서 시몬 조의 유물에 미련을 가졌다면 상황이 더욱 꼬였으리라. 헥토르는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유물의 확보에 몰두해서 본인의 제단으로 복귀했다. 그사이 4조와 13조는 여전히 박 터지게 싸우고 있었고, 결과는 4조가 유물을 지켜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물론 싸우느라 다른 유물을 많이 확보하지는 못했다. 마침내 시간이 종료했다. 1위 - 10조 (40점) 2위 - 4조 (32점) 3위 - 1조 (9점) 4위 - 13조 (5점) 10조의 완전한 승리였다. "우리가 이겼다아아아아!" 에슈가 방방 뛰며 두 팔을 마구 흔들었다. 토토와 로레인도 기뻐했고 시몬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모두가 전략대로 움직여서 얻어낸 승리였다. 경기장에서 빠져나오자 스크린으로 구경하던 다른 학생들도 박수를 보냈다. "수고했다." 아론이 방금 시험을 마친 학생들을 세워놓고 브리핑했다. "10조는 한 명 한 명 모두가 제 역할을 해낸 게 주효했군." 시몬의 신기술과 전략. 로레인의 교란과 방어. 토토의 몬스터 옮기기와 유물 확보. 에슈의 기만과 빈집털이까지. "구울을 이용한 시체 맹독폭발이라......." 아론은 또 해괴한 걸 만들었다는 듯 시몬을 보았다. 시몬도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이번 기술은 학술적 가치도 상당하다. 펜타모니엄에 등록하면 엄청나게 팔리겠군.' 일반적인 시체폭발은, 폭탄이 되는 좀비의 발이 극도로 느리다는 심각한 단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시몬의 신기술은 그 리스크를 구울을 사용하는 것으로 극복했다. 장송을 발동한 구울의 초고속 이동 이후, 가스폭발을 일으키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비기. 그 외에도 독에 변화를 주는 것도 가능하고, 땅굴 잠복 후에 폭발까지. 응용도 자유자재였다. "두말할 것 없겠지. A+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네 사람이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10조만큼은 아니더라도, 4조의 분위기도 무척이나 좋았다. 1등은 못했지만 라이벌인 13조를 격퇴했으며, 헥토르의 1조를 뛰어넘어 2위에 올랐다는 사실에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고맙다. 우리를 이용한 거라고 해도, 이번 도움은 잊지 않을게!" 4조 조장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헥토르가 피드백을 받을 차례였다. "헥토르 무어. 네가 개발한 구울은 시몬의 폭발하는 구울에 비해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범용성은 더 뛰어났지." 아론이 팔짱을 꼈다. "하지만 왜 그에게 패배했는지는,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 본다." "......예." 헥토르가 이를 악물며 고개를 숙였다. 헥토르가 10조의 제단이 텅 빈 걸 보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고, 냉정하게 이 유물을 가져간 다른 조를 추적해서 박살 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브리핑이 끝나가는 사이, 이미 다른 두 경기가 동시에 시작되어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누군가 활약할 때마다 화면을 보는 학생들 사이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시몬도 호기심에 그쪽으로 걸어갔다. "어." 이번 시험 최강의 조. 아세라즈와 화이트의 8조가 마침 화면에 잡히고 있었다. "뭐야, 저게?" 뒤따라온 로레인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면으로 보이는 세상 전체가 온통 새하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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