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20화 문제가 발생했다. 카미바레즈를 온몸으로 막아 세운 건 좋지만, 간신히 진정시켰던 그녀의 상태가 다시금 악화되고 있었다. 색색 숨소리가 거칠고, 얼굴도 피가 몰렸는지 벌게졌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무엇보다 아까 변할 때처럼 눈에 초점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카미, 진정해." 시몬이 애써 침착한 표정을 꾸며내며 말했다. "내 목소리 들려? 우르슬라의 피가 다시 도나 봐! 머릿속을 비우고 천천히 심호흡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그녀는 시몬에게서 벗어나려는 듯 몸을 부비부비 흔들었다. 하지만 시몬은 절대로 놔주지 않았다. 이대로 이성을 잃고 다른 누군가에게 달려들기라도 하면 대참사였다. "......놓, 놓-"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놓아달라는 건가? 하지만 얼굴이 창백하고, 목소리 톤도 이상했다. "네가 다시 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안 돼! 봉인을 닫고 우르슬라의 피를 가라앉혀!" '이 바보!' 한편 카미바레즈는 시야가 팽글팽글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이건 그냥 시몬 때문이라구요!' 가깝다. 가까워도 너무너무 가까웠다. 우르슬라의 피는 진작에 가라앉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신을 차리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녀는 시몬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것도 이렇게 경기장 한복판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그-" 카미바레즈는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의식하기 싫어도 시몬의 체취가 코에 맴돌았고, 피부가 맞닿으며 온도도 느껴진다. 그의 긴박한 숨결이 어깨에 닿을 때마다 목덜미가 새빨갛게 물든다. 입이 덜덜 떨려서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빠져나오려고 낑낑대며 몸부림쳤지만, 역효과였다. 시몬은 식겁하며 끌어안은 힘에 더더욱 힘을 줬다. 완력으로 시몬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시몬이 놀라서 강하게 밀착할수록 그녀의 이성은 증발되며 얼굴은 더 뻘게졌다.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 입에서 더운 숨결이 흘러나오며 송곳니가 두드러지듯 빛에 반사되어 번뜩였다. "진정해! 피를 빨면 더 걷잡을 수 없어져!" 그 모습을 본 시몬의 오해만 깊어졌다. "저, 저, 저는 괜찮...... 아요! 이, 이거, 풀어주......!" 막 뱀파이어 상태가 풀린 뒤로 너무 강한 자극이었다. 그리고 시몬의 체취를 맡으니 정말로 우르슬라의 피가 다시 들끓으려는 것 같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때 냉기처럼 차가운 음성과 함께 제인이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툭. 하고 시몬의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제인 교수님! 카미의 상태가......!" "물러나세요. 학생회장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영문을 모르겠지만 제인의 명령이었기에, 시몬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카미바레즈를 안고 있던 팔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자, 얼굴이 더 할 수 없을 만큼 시뻘게진 그녀가 옅은 신음을 흘리며 풀썩 주저앉았다. "괜찮습니까? 카미바레즈 서기." "......." 잠시 멍- 하니 넋을 놓고 있던 그녀가 제인을 보았다. 금세 눈가에 이슬이 잔뜩 매달리더니, 울먹이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품에 와락 뛰어들었다. '다행이다.' 괜찮아진 것 같다. 시몬이 비로소 안도하며 숨을 쓸어내렸다. 카미바레즈는 제인의 품에서 부끄러움 반, 원망 반의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카미바레즈 서기.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네, 네! 이제 괜찮아요." 제인은 몇 가지 질문을 더 해보고는 혹시 모르니 의료진의 체크를 받아보라고 제안했다. 카미바레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미, 진짜로 괜찮아?" 시몬이 다가오자, 그녀는 샥 하고 제인의 뒤로 숨어버렸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빼앵 소리 질렀다. "시몬 바보!" "?!" 카미바레즈는 그 말만 남기고 쪼르르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시몬이 역력히 당황한 얼굴로 제인을 보았다. "제,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제인은 관여하기 싫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십시오." 그때 카미바레즈가 다시 시몬 쪽으로 돌아왔다. 벌게진 얼굴로 숨을 몇 번 헐떡이더니 이내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소리쳤다. "그, 그래도 구해줘서 고마워요! 시몬!" "......아, 응." 바보라고 했다가, 이젠 고맙다고 했다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지만, 시몬은 옆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카미이! 괜찮아?!" 시몬과 마찬가지로 경기장에 난입하려다 경비들에게 붙잡힌 메이린이 코맹맹이가 된 목소리로 외쳤다. 카미바레즈도 환하게 웃으며 메이린 쪽으로 다가갔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 그리고 관중석. 자리에 앉아 있는 벤즈는 심정이 복잡한 듯 카미바레즈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뒷자리의 시에라 편입생 제츠가 그의 머리를 툭 쳤다. "글쎄, 꿈 깨라니까." "......." 벤즈가 눈을 감고 한숨을 푹 쉬었다. "뭐라도 말해야 하는데, 말려야 하는데, 안타까워서 팔이 덜덜 떨리는데도 입이 안 떨어지더라. 그런데-" 벤즈의 시선이 시몬 쪽으로 향했다. "시몬은 망설임 없이 뛰쳐나갔어." -......고마워요! 시몬에게 안겨 있던 카미바레즈의 편안한 얼굴을 떠올린 벤즈가 쩝. 하고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는 팔로 뒷머리를 받쳤다. "......그래, 진짜 남자라면 포기하는 법도 알아야겠지." "하하! 애초에 상대가 키젠의 학생회장이잖아. 니가 시몬을 상대로 뭐 되냐?" "근데 아까부터 시에라 따위가 왜 자꾸 시비야! 두 사람이 다시 왁왁 싸우기 시작하자, 주위의 편입생들이 웃으며 뜯어말렸다. * * * "그럼 두 번째 매치를 시작하겠습니다." 모이란의 총장이 구슬이 든 상자에 손을 넣고 뒤적거렸다. 선수 대기장소에서 서 있던 시몬은 반대편의 모이란 측 대표들을 보았다. '찜찜해. 내가 저 녀석이랑 싸우고 싶은데.' 새하얀 머리카락의 소년. 그는 아직도 초점이 사라진 멍한 눈으로 허공에 손짓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힘을 가졌는지 알 턱이 없다. 그냥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는 데 집착하고 있을 뿐이다. 묘하게 신경이 쓰인다. 누군가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저 녀석은 정체가 뭘까? "다음 대전이 결정되었습니다." 심판이 총장이 뽑은 구슬을 받아들고는 한 명씩 읽었다. "모이란의 스베라 마티우스 학생. 그리고." 시몬이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키젠의 시몬 폴렌티아 학생, 경기장 앞으로!" 드디어 등장하는 키젠 학생회장의 이름에 관중들이 손뼉을 쳤다. 시몬은 고개를 돌려 모이란의 선수 대기석을 보았다. 하얀 머리 소년이 아닌, 다른 여학생이 걸어오고 있었다. '아깝네. 저 녀석이 아니구나.' "드디어 네 차례야! 본때를 보여줘! 시몬!" 메이린이 시몬의 팔뚝을 철썩 때리며 파이팅을 외쳤다. 시몬이 팔을 매만지며 하하 웃었다. "메이린." "응?" "......아니. 아무것도 아냐. 잘하고 올게." "뭐야? 싱겁게. 암튼, 실력을 보여주고 와!" 이내 이번 매치의 학생 두 사람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이름이 스베라라고 했지?' 짙은 갈색을 띠는 머리카락이 내려왔다가 끝에서 구불구불 말려 올라왔다. 다크서클이 짙고, 입에서는 흐흐 묘한 웃음을 흘리고 있다. 네크로맨서답다고 해야 하나. 어쩐지 무서운 인상이었다. 잠시 후 심판의 악수 지시가 떨어졌고, 두 사람이 다가와 손을 맞잡았다. "이렇게 맞붙게 되어 영광이야. 키젠의 학생회장." "응. 잘 부탁해." "미안하지만 내 쇼맨십의 제물이 되어줘야겠어. 편입생들은 너랑 싸울 때의 평가로 키젠에서의 대우도 달라지거든." 그녀의 혓바닥이 움직였다. "혹시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 있니?" "......?"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등을 돌렸다. 네크로맨서 특유의 괴이한 기질이 뿜어져 나오는 여학생이었다. 악수를 마친 두 사람이 거리를 벌렸고 배리어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제인과, 모이란 측 교수가 학생들에게 다가왔다. "이번 상대는 '사령학과' 학생이더군요. 스피릿 감응력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사령학과." 시몬이 중얼거렸고, 제인은 팔짱을 꼈다. "학생회장이 사령학과 학생과 싸워본 경험이 적다는 점이 우려스럽지만,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네, 물론이죠!" "그리고." 제인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팀전에서의 1패는 허용한다고 했지만, 키젠 학생회장의 패배만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팀의 승패와는 상관없이, 당신이 지면 전부 끝이라고 생각하세요." 시몬이 쓰게 웃었다. "......유독 저한테만 너무 무섭게 말씀하시는 거 아닌가요?" "학생회장은 압박을 받고, 위기와 고난이 닥칠수록 더 잘하는 타입이니까요."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이내 제인과 모이란의 교수가 떠났고, 두 학생만이 남겨졌다. "그럼, 지금부터 모이란 편입평가전. 모이란의 스베라 마티우스 학생과, 시몬 폴렌티아 학생의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시몬과 스베라가 자세를 잡았다. 심판이 팔을 내렸다. "경기 시작!" 키이잉! 시몬은 즉시 마법진을 준비했다. 딱 기본적인 밑바탕만 만든 다음, 그 즉시 상대에게 돌진했다. 사령학과는 상성상 우위라고 할 수 없다. 마투로 압박하면서 경기를 풀어나갈 생각이었다. 스베라는 '스피릿'을 주위로 퍼뜨리며 흑마법을 발동할 준비를 했다. 시몬이 돌진하는 타이밍에 맞춰 흑마법을 빠르게 재단하는 모습이다 "혹시 들어는 봤어?" 그녀가 스피릿으로 만든 사령수를 공중으로 띄우며 말했다. "물에 빠져 죽은 영혼들. 익사자(Drowner)." 쏴아아아아아! 수로의 물들이 넘실거리며 흘러넘치더니 사령수를 중심으로 뭉치며 형태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중에 든 사람의 상반신처럼 만들어졌다. '역시.' 시몬이 즉시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보았다. '사령마법과 물의 조합으로 나오는구나.' "가라!" 콰콰콰-! 익사자가 물로 만들어진 몸을 이끌고 달려왔다. 시몬을 끌어안으려는 것처럼 두 팔을 벌렸는데, 마치 바다에 빠트리려는 물귀신 같은 느낌이라 섬찟했다. '침착하자. 사령수는 물리공격으로 타격할 수 없지만.' 시몬이 주먹을 불끈 쥐었고, 칠흑이 빠르게 휘감겼다. '물은 때릴 수 있어!' <홍펭 오리지널 - 취타> 퍼어어어어엉! 칠흑이 휘감긴 시몬의 주먹이 '익사자'를 강타했다. 순식간에 물이 퍼져 나갔지만, 익사자의 본체는 멀쩡했다. 쏴아아아! 그리고 수로에 흐르든 물들이 다시 익사자를 휘감으며 본래의 형태를 되찾았다. '음.' 오른 주먹을 가볍게 턴 시몬이 이번에는 아공간을 열었다. 튀어나온 스켈레톤이 그림처럼 시몬의 오른팔을 뒤덮으며 '핸드건 모드'로 변했다. 퉁! 퉁! 정밀조준해서 뼈 탄환을 날려 보냈지만 '익사자'는 물리력을 부여하지 않은 상태인 듯 그냥 공격을 통과하고 지나갔다. "키젠의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내 상대는 확정이었으니까 정말 디테일하게 분석했어." 그녀의 옆으로 두 번째 '익사자'가 생성되어 공중으로 떠올랐다. "스피릿을 느끼지 못해서 1학기 이후, 사령학 수업을 들은 적 없다지?" 두 기의 익사자들이 시몬에게 덤벼들었다. 시몬은 뒤로 물러서며 연신 탄환을 날려댔지만 익사자들은 그냥 슝슝 통과해 버릴 뿐이었다. "그렇담 아쉽게 됐네! 사령마법을 쓰지 못하는 네크로맨서는 절대로 날 이길 수 없거든! 너랑 나는 상성이 극도로 나빠!" 일반적으로 사령수는, 적에게 공격을 가하는 순간에만 물리적 형태가 생긴다. 사령 상태에는 자신이 공격을 받지 않는 만큼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물질화했을 때를 노리는 게 사령수를 공략하는 방법이었지만, 저 익사자라는 것들은 물질화하지 않고 사령화 상태에서도 물을 끌어모아 형태를 갖출 수 있었다. 제대로 붙잡히면, 그대로 물감옥에 갇혀서 익사다. "호호호호!" 그녀가 세 번째, 네 번째 익사자까지 만들었다. 시몬은 도망치기만 했고, 승기는 스베라가 잡았다. "나름 맞춘 전략을 준비해 온 것 같은데." 일방적으로 도망치던 시몬이 차아악! 바닥을 미끄러뜨리며 멈춰 섰다. "전투는 언제나 네가 상정한 대로 흘러가 주지 않아." "뭐?" 파직! 파직! 시몬의 주위가 자줏빛으로 물들며, 허리춤에서 스파크가 연신 튀어 올랐다. 시몬은 그것을 붙잡고는 힘껏 앞으로 던졌다. 콰르르르르르릉! 스베라는 털이 쭈뼛하는 감각과 함께 뒤를 돌아보았다. 난데없이 날아온 자줏빛의 창이 익사자의 본체를 꿰뚫고 지나간 것이다. "소용없다고 했......!" 그러나. 몰아치는 후폭풍이 일어난 뒤, 익사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익사자를 파괴했어?' 그렇다면 저 기술은 분명 사령마법이었다. 그리고 창의 형태의 사령마법이라면....... "어, 어떻게 스피릿을 느끼지 못하는 네가 소울 스피어를!" "그거 아냐." 시몬이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 마치 검집에 뽑히는 검처럼, 세 자루의 자줏빛 창이 파직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시몬 오리지널 - 카오스 스피어> 파직! 파직! 시몬이 빙긋 웃으며 자줏빛의 창을 앞으로 고쳐 쥐었다. "이런 걸 쓰는 건 네 계획에 없었나 봐?" 대기석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메이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대륙의 누구라도 그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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