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14화 알란드를 떠나며, 새로운 동료들이 합류했다. "시몬! 아까는 내가 너무 방심했어!" 녹색 교복 벤즈가 시몬의 어깨를 두들기며 웃었다. "소환학과 학생이 환각저주를 쓸 줄은 생각도 못 했다니까! 아, 그것만 안 속았어도 경기 어떻게 될지 몰랐는데!" 같이 걷던 알란드 여학생이 택도 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웃기지 마. 키젠 회장이 소환수로 식물줄기 다 부수고 빠져나오는 거 봤잖아. 그걸 보고도 또 통한다고 믿어? 네크로맨서라면 당연히 의심부터 해야지." "안 당해본 사람은 몰라! 진짜 실감 나는 환상이었다니까!" 벤즈가 그렇게 말하며 시몬을 보았다. "안 그래, 시몬? 소환술사 간의 대결에서 허를 찔렀을 뿐! 다음엔 꼭 내가 이길 거야!" "그럼, 도전은 언제든지 환영이야." 시몬이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같이 키젠에서 공부하게 돼서 기뻐, 벤즈. 열심히 해서 다 함께 올라가 보자." "좋지!" 벤즈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고, 알란드 여학생은 한숨을 푹 쉬었다. "......실력으로도, 인성으로도 완패네." "자꾸 뒤에서 시끄럽다!" 시몬과 제인, 그리고 알란드의 편입생들은 교정으로 들어오는 오솔길을 빠져나왔다. 숲이 스르르 움직여 다시 길을 가렸다. "잘 있어라! 알란드!" 벤즈가 두 팔을 번쩍 들며 모교를 향해 소리쳤다. 다른 두 학생도 마음을 정리하는지, 여러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그리고 오솔길 밖에는 키젠에서 보낸 하수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제인 교수님. 시에라로 가는 마법진이 준비됐습니다." "수고했어요. 타죠." 그녀가 무표정한 눈으로 손짓하자, 학생들이 쪼르르 텔레포트 마법진 위로 올라갔다. * * * 칼로스 왕국, 멜버그 협곡. 후덥지근한 공기, 쿰쿰한 바위 냄새, 그리고 주위는 높다란 암석 산맥이 가득한 지형이었다. 좁고 깊은 골짜기와 가파른 곡벽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는데, 잘못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수백 미터 아래의 낭떠러지까지 굴러떨어질 만큼 위험천만했다. '이런 곳에 학교가 있다고?' 시몬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주변을 살폈다. 앞서가던 제인이 협곡을 빠져나와 걸으며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학생들도 얼른 그녀의 옆으로 뛰어왔다. 그들의 눈이 하나같이 휘둥그레졌다. "와아......!" 마치 신이 붉은 물감을 칠한 듯,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크고 새빨간 암석산이 보였다. 풀이나 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고 매끈하기만 한 산맥 꼭대기에, 건물들이 삐쭉삐쭉 솟아 있었다. 시몬의 눈이 반짝였다. '저기가 다음 네크로맨서 학교, 시에라구나!' "서, 설마." 벤즈의 입꼬리가 꿈틀꿈틀했다. "저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오라는 건 아니겠죠? 시에라 이 새끼들! 미리 시몬의 힘을 빼두려고 수작을......!" "마나 승강기가 있을 겁니다." 제인의 말대로였다. 암벽 근처로 다가가니, 시에라의 직원들이 승강기를 세운 채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 명 정도는 너끈하게 함께 탈 수 있는 크기였다. 제인과 학생들이 마법진이 그려진 승강기 위에 올라타자, 직원들이 친절하게 문을 닫아주었다. 시몬이 벽을 만져보니 마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올라가시겠습니다. 위험하오니, 기내에서는 뛰지 말아 주십시오." 덜컹!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이내 승강기가 펌프처럼 쭉쭉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 우와아! 빨라!" "밑에 못 보겠어!" 알란드 학생들도 시에라 방문은 처음인지 잔뜩 쪼그려 앉았다. 제인이 시몬을 보며 말했다. "학생회장. 몸 상태는 어떤가요? 한 명 더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교수님!" 시몬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오늘 알란드와 시에라 대표를 상대하는 일정이란 건 알고 있었다. 벤즈와의 경기를 저주 위주로 풀어간 것도, 힘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이번 전투에서는 친위대나 혼돈. 둘 중 하나는 써야겠지.' 쿠쿵- 마침내 정상에 다다르자 승강기가 멈췄다. 해발 수천 미터의 암벽산을 몇 분 만에 올라온 것이다. 승강기의 문이 열리고 제인과 학생들이 밖으로 나왔다. "윽, 뭐야." "숨쉬기 불편해." 갑자기 고지대로 올라왔더니 산소가 희박해졌다는 게 확 체감됐다. 귀가 먹먹하고 약간의 어지러움도 느꼈다. 정면에는 시에라의 교정이 보인다. 붉은 암벽과 깔맞춤을 하듯, 교내의 건물도 빨간 벽돌과 흙으로 지어졌다. 지붕이 둥글둥글한 다소 특이한 건축양식에, 고즈넉한 돌 동상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알란드와 마찬가지로, 교정의 입구에는 시에라의 총장과 교직원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웨르캄. 카라무트!" 시에라의 총장이 토착어로 인사말을 건넸다. 빨간 정장을 입고, 이마가 훤히 드러나는 가르마 머리에 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그가 두 팔을 벌리며 제인과 학생들을 반겨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제인 부총장님과 학생 여러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시에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인과 시에라의 총장이 악수하며 미소 지었다. "자, 자, 안으로 드시지요. 제가 직접 학교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시에라의 총장은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한 성격이었다. 건물 하나하나, 시설 하나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은 우리 학생들이 가상전투를 체험할 수 있는 특수 훈련 시설입니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지만, 학생들의 좋아하는 얼굴을 보니 또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네요." "아, 제인 부총장님! 작년엔 키젠에서 준전시 커리큘럼을 진행하는 바람에 교류전이 취소됐지만, 올해는 기대할 수 있겠지요?" "예, 제가 직접 네프티스 님께 건의 드려보겠습니다." 어른들이 비즈니스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알란드의 학생들은 라이벌 의식을 바짝 세운 채 자기들끼리 숨죽인 목소리로 수군수군 흠집 잡기에 나섰다. "체육관이 좀 좁은 거 같지 않니? 우리 학교가 세 배는 큰 듯." "와, 애플파이가 100실버래. 물가도 너무 비싸." 시몬은 눈을 반짝이며 관광객이 된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언제 또 시에라에 와볼 기회가 있겠는가. 건물 양식부터 수업환경까지 모든 게 달랐다. 가끔 건물 창가에서 빨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시몬을 향해 손을 흔들기도 했다. 시몬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음-" 그런 시몬의 모습을 조용히 보고 있던 시에라의 총장이 고개를 돌렸다. "저 친구가 키젠의 새로운 학생회장이군요." "예."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2학년 학생회장이라! 신선합니다! 키젠은 역시 모든 면에서 한 발짝 진보해 있군요! 2학년이라고 하기에, 저는 당연히 로레인 아크볼드 학생이나 세르네 아인다르크 학생이 올 줄 알았지 뭡니까! 하하!" "......." 그 말에 제인의 눈썹이 꿈틀했다. "2학년 전체에서 수석을 차지한 우수한 학생입니다. 그가 학생회장이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렇군요! 다만, 원래 편입평가전은 키젠의 상급생이 우리 시에라 학생들을 가르쳐 주고 평가하는 그런 이벤트였지 않습니까? 그래서 조금 걱정이 되는 게." 총장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혹시나 우리 학생이 이기기라도 하면, 키젠의 체면이 조금...... 하하!" "그런 걱정은 조금도 하실 필요가 없으니-" 제인의 무표정한 얼굴이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꿈 깨시는 게 좋을 겁니다." 물론 목소리만큼은 극도로 섬뜩했다. "하하하! 역시 제인 부총장님이십니다." 그렇게 말한 시에라의 총장이 으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내기라도 한번 하는 건 어떻습니까? 저희 학생이 이기면, 1년간 제인 교수님께서 시에라의 칠흑역학 수업을 맡아주시는 건?" '말도 안 돼!' 두 사람의 대화를 훔쳐 듣고 있던 시몬이 입을 딱 벌렸다. 제인의 수업은 키젠 학생들도 듣고 싶어도 못 듣는다. 거기에 이미 키젠 부총장으로서 격무에 시달리는 제인을, 시에라에서도 초청교수로 부려 먹겠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좋습니다." '제인 교수님?!' "대신 우리 학생이 이기면, 1년간 총장님께서 키젠 본관 건물의 화장실 청소를 맡아주시길 바랍니다." 제인은 한 술이 아니라 다섯 술은 더 떴다. "하하하! 그거 재밌겠군요! 좋습니다!" 두 어른이 펼치는 신경전을 바라보며 중간에 낀 시몬만 입안이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뒤통수에서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그, 그냥 농담으로 하는 소리...... 겠지?' * * * "자, 교내 구경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경기장으로 가시죠." 시에라 총장의 안내에 따라, 일행들은 광장에 설치된 텔레포트 마법진을 밟고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시몬이 공간이동을 마치고 눈을 뜨는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관중석에서 열띤 환호성이 쏟아졌다. 경기장 전체에 붉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마치 산 정상에 마그마가 들끓는 것처럼 보인다. 퍼어어엉! 퍼어엉! 곳곳에서 마나 폭죽이 터져 나오고, 불길이 화르륵 올라왔다. 어깨가 들썩이는 신나는 음악도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시에라의 교가인 것 같았다. 학생들은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부르고 어깨동무를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중간에는 유니폼을 맞춰 입은 여학생들이 응원 도구를 흔들며 치어리딩도 하고 있었다. '미친.' 하지만 시몬이 놀란 이유는 인파나 폭죽 때문이 아니었다. 경기장 때문이었다. 해발 수천 미터에 지어진 이 경기장은, 기둥처럼 솟아오른 좁다란 암벽언덕 수십 개가 일정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었다. 고개를 내려 보니 구름이 껴 있고, 그 아래는 까마득했다.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두말할 것 없이 시체도 찾지 못할 것이다. "환영한다! 키젠!" "시에라의 하늘 경기장은 처음이지?" "와하하하하!" 관중석에서 시에라의 학생들이 한마디씩 쏟아냈다. 시몬은 난감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홈 어드밴티지도 정도가 있지.' 앞서 알란드에서 했던 건 어린아이 장난 수준이었다. 비행기술이 없으면, 이 시에라의 하늘 경기장에서 제대로 싸우는 게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시몬의 경우에도 비행에만 특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물론, 시에라에서는 가장 비행에 능한 네크로맨서가 대표로 나올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오래에에- 기다리셨씁니다!] 관중석에서 붉은 교복을 입은 한 남학생이 확성 수정구를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저는 이번 경기의 해설을 맡은 3학년 머호벤이라고 합니다! 바로 선수들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오른쪽! 머나먼 키젠의 로크섬에서 온 2학년의 젊은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학생입니다! 다들 박수우~] 순수한 환영의 박수와, 기를 꺾기 위한 야유가 반반씩 섞여 나왔다. 해설자가 시몬의 소개는 대충 끝내고 팔을 돌렸다. [그리고 왼쪽의 홍코너! 홍코너를 주목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들의 영웅! 우리들의 스타! 우리들의 에이스!] 시몬이 서 있는 경기장 반대편에 빨간색 조명이 번쩍였다. [제츠 시메라트가 등장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환호성과 함께 폭죽이 터져 나왔다. 마법진이 번뜩이더니 시에라의 붉은 교복을 입고 도마뱀 비늘 목도리를 두른 소년이 튀어나왔다. 그는 흑마법으로 만든 날개를 펼치고 상공을 자유자재로 비행했다. 제츠! 제츠! 제츠! 제츠! 제츠! 제츠 시메라트가 고속비행하며 관중석을 지날 때마다 학생들은 파도타기 응원으로 호응했다. 경기장의 열기를 후끈 끌어올린 제츠가 공중에서 덤블링을 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시몬 폴렌티아. 네 활약상은 대륙의 반대편인 이곳에서도 익히 들었다!" 척. 제츠 시메라트가 손을 뻗어 시몬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곳은 시에라고! 우리들의 둥지다! 이곳에서 우리는 무적이야!" 와아아아아아아! 제츠! 제츠! 제츠! 제츠! 제츠! "무적이라." 시몬은 태연하게 웃으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검은 코트 자락이 바람결에 휘날렸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지금부터 시험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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