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94화 드디어 문제의 그 날. 소환 재료학 수행평가가 시작됐다. 수행평가 장소는 키젠 캠퍼스 내부의 '식물관'이라는 곳이었다. "모두 준비됐나?" 상체의 근육을 드러내고 선글라스를 낀 남자. 교수 그레리온이 큰 소리로 말했다. 학생들이 힘차게 '네!'하고 대답했다. "지금부터 타이머를 켜겠다. 시작해라!"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키젠의 '식물관'은 철근과 비닐로 지어진 거대한 공간이었는데, 대륙 전역의 식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레리온의 허가로, 학생들은 이곳에서 식물 두 종을 채취하고 결합해 자신만의 키메라를 만들 수 있었다. 얼마나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하는 키메라를 만들어내는지가 이번 수행평가의 핵심이었다. "여기 안은 엄청나게 덥네." 토토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시몬은 진작에 교복 재킷을 벗어서 허리에 두른 채 식물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토토, 뭘 접합할지 정했어?" "응! 이런 수행평가일 거라 예상하고 리스트를 몇 개 뽑아오긴 했거든!" 토토가 수첩을 팔랑거리고 있는데, 시몬이 귀를 틀어막았다. "토토, 귀 막아." "응?" "누가 만드라고라를 뽑았어." 께에에에에에에에에엑! 뽑히면 비명을 지르는 식물. 만드라고라는 워낙 유명했다. 비명을 들은 학생들이 급히 귀를 틀어막는 모습이 보였다. 만드라고라를 채취한 학생이 얼른 검은 비닐에 그것을 넣고, 흙을 몸이 잠기도록 퍼넣은 뒤에야 만드라고라는 잠잠해졌다. 토토가 귀를 막은 손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분명 만드라고라를 키메라로 개조해서, 비명을 노랫소리로 만드는 사람이 A+를 딸 거야." "오, 그거 진짜 좋은 아이디언데." 토토는 바로 원하는 식물들을 발견해서 식물원을 나왔고, 시몬은 조금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극도로 위험.] [잡아먹힐 위험 있음.] 어느새 벌레잡이 식물과, 이와 관련된 식물형 몬스터들이 있는 곳까지 왔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몬스터를 통으로 씹어먹는 괴팍한 것들도 있다는데, 그레리온의 권한으로도 그곳까지 갈 수는 없었다.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진 않다. 시몬은 서둘러 식물원의 벌레잡이 식물을 둘러보았다. "찾았다!" 입에서 독극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벌레잡이 식물. 색깔과 생김새 모두 도감에 나온 그대로였다. 시몬은 그것을 뿌리째로 뽑아 조심스럽게 수집가방에 넣었다. 혹시 모르니 몇 가지 다른 식물도 더 챙겼다. '좋아, 다음.' 다음으로 향한 곳은, 식물관에서도 추운 지방에 사는 식물들을 키우는 지점이었다. 천장의 마법진에서 냉기가 술술 나오고 있었는데, 멀리 갈수록 눈도 보이고 심지어 얼음 위에 뿌리를 내린 괴이한 개체도 있었다. 입김이 나왔다. 시몬은 허리에 묶었던 재킷을 풀어서 몸에 걸치고 단추를 잠갔다. '좋아. 힘내서 찾아보자!' * * * 그렇게 한 시간 뒤, 시몬은 어렵지 않게 수확물을 모두 확보해서 식물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식물관 밖의 야외에는 작업용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키메라 접합이 이루어지는데, 먼저 온 학생들이 지금까지 수업에서 배운 지식을 총동원해 식물 키메라를 만드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도 빈자리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로레인이다.' 로레인의 테이블에는 어쩐지 그녀의 개인적인 취향인 아기자기한 식물들이 가득했다. 시몬이 지나가는 모습을 본 그녀가 더듬더듬 향수의 재료가 되는 키메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시몬은 조용히 '화이팅'을 외쳐주었다. 그리고 그 옆의 헥토르는 난리도 아니었다. 그는 웬 넝쿨처럼 생긴 식물형 몬스터를 채취해 왔는데, 테이블의 재료와 혈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넝쿨 괴물이 헥토르를 넝쿨로 마구 휘감았고 헥토르는 괴력으로 붙잡아 찢고 있었다. 시몬은 못 본 척 조용히 옆으로 빠져나갔다. '빈자리 하나 찾았다!' 마침내 테이블에 자리 잡은 시몬은 식물관에서 채취한 재료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내려놓았다. 손을 깨끗하게 씻고 도구를 세팅하고 마력 테이프를 뜯었다. 식물도감을 달달 외운 덕분인지, 그레리온의 수행평가 과제를 듣자마자 바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일단 딱 두 종류만 만들어보자.' * * * "수행평가 종료다." 손에 든 타이머를 정지시킨 그레리온이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모두 손 머리 위로. 테이블에 조금이라도 손을 대는 학생들은 그대로 F다." "학생 여러분! 테이블에서 세 발짝만 물러서겠습니다." 학생들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물러났다. 시간이 지나서도 미련이 남았는지 칠흑을 흘려보내다가, 조교들에게 제지당한 학생도 있었다. "그럼 이번 키메라 평가에 쓸 특별한 아티팩트를 소개하겠다." 그레리온이 말했다. 뒤에서 조교 네 명이 낑낑거리며 커다란 화분을 들고 오고 있었다. "네프티스 님께 허락을 받아 가져온 '로이나의 화분'이다. 다들 알다시피 방금 접합한 식물 키메라로는 100% 제 성능을 발휘해 내기는 힘들다. 식물이기에 시간이 걸리지. 하지만 이 화분에 식물을 심으면, 그 식물의 6개월 뒤 모습을 미리 환상으로 볼 수 있다." 새로운 평가방식에 학생들이 웅성댔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평가방식을 보여주겠다. 앞줄부터 한 명씩 나와라." 앞줄의 학생들은 화분에 담긴 키메라 식물들을 소중하게 들고 줄을 섰다. "보고." 제일 먼저 나온 남학생이 입을 열었다. "맷 코머입니다! 제가 합친 건 당도 높고 맛있는 과실이 나는 린셋과, 식물형 몬스터 후리스입니다." "왜 둘을 합쳤나?" "린셋은 달고 향이 좋은 과실이지만, 한 번에 하나만 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후리스는 다수의 나무열매를 주렁주렁 자라게 하는 식물형 몬스터입니다! 둘을 합쳐서 값비싼 린셋 과실을 많이 자라게 하고 싶었습니다." 남학생은 이미 비슷한 식물형 몬스터과 식물의 개량에 성공한 사례를 줄줄 늘어놓으며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였다. "키메라로 인한 품종개량인가. 결과를 보면 알겠지. 로이나의 화분에 심어라." "네!" 그 남학생이 키메라 식물을 들어 '로이나의 화분'에 심자, 잠시 후 옆에 똑같은 식물의 환상이 똑같이 생겨났다. "......아." 그러나. 그 환상의 식물 키메라는 축 늘어진 채 새까맣게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서로 맞지 않는 식물을 결합하면 이렇게 된다. 괜히 잘살고 있는 녀석들만 죽여버렸군. 평가점수는 'F'다." 가차 없이 F를 때려 버리는 그레리온을 보며, 학생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음!" 사실 저번 주에 그레리온이 수행평가를 선언했을 때, 학생들 사이에서 식물 키메라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 작은 논쟁이 있었다. 몬스터나 언데드도 아니고, 방금 만든 식물형 키메라가 제대로 기능하기 힘든 건 당연했다. 화분째로 몇 달간 보관한 뒤에 반응을 본다는 의견이 있었고, 아이디어 싸움이니 다소 현실성이 없어도 그럴듯한 조합으로 높은 성적을 받아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렇게 키메라의 안정성보다, 발표의 임팩트와 파격을 선택한 학생들은 모조리 죽은 식물의 형상이 드러나게 되며 F를 받게 됐다. "살아는 있군. C다." 6개월 뒤에 살아만 있어도 최소가 'C' 평가. 그레리온은 키메라의 생존을 높게 평가했다. 자연에서 몇 달을 생존한다는 건 그만큼 키메라의 이해도와 완성도가 높다는 방증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문제의 헥토르 차례가 다가왔다. "포에티 바인은 촉각으로만 사냥감을 감지하기에 공격성이 떨어지지만, 촉각 외에 온도를 감지할 수 있는 식물을 추가해 더 공격적인 몬스터로 만들었습니다." 다만 너무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다. 사방으로 넝쿨을 날리다가 운 나쁘게 걸린 토토의 다릴 휘감아 질질 끌고 가기도 했다. 발표자 헥토르는 넝쿨이 자신을 휘감건 말건 자포자기했는지, 용의 비늘로 몸을 감싼 채 가만히 서 있었다. "현장에서도 충분히 써먹을 만한 키메라로군." 헥토르가 그것을 로이나의 화분에 담았을 때, 6개월 후에는 더 커진 키메라의 환상을 보며 그레리온은 만족했다. "A+다. 헥토르 무어." "감사합니다!" 그레리온 또한 현장파 네크로맨서. 6개월 뒤에 죽지 않는 안정성 조건을 충족한다면, 조금 더 파격적이고 전투적인 키메라를 선택한 학생들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잠시 뒤, 드디어 시몬의 차례가 왔다. 다른 학생들이 선택한 크고 파격적인 식물형 몬스터들과는 달리, 시몬의 경우 다소 작고 왜소한 벌레잡이 식물이었다. 그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포베아'라는 식물형 몬스터와 덩이줄기를 가진 적색연근을 조합했습니다." 시몬은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식물도감에서 본 바에 따르면, 포베아는 '벌의 섬'에서 자라는데, 그곳에 무수한 곤충형 몬스터 '킬러비'들을 잡아먹도록 진화했다. 킬러비는 석차 6위, '여왕벌 메르디아나'가 주력으로 쓰기도 할 정도로 메이저한 말벌 몬스터다. 다양하고 강력한 독성을 가지고 있는데, 포베아는 그것을 한입에 삼킨 다음 자신의 몸에서 나는 성분과 독을 조합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성분으로 바꾸어 뿌리로 방출한다. "해독제가 목표로군." 그레리온이 턱을 짚었다. "하지만 포베아를 해독제 재료로 사용하는 맹독술사는 본 적이 없다." "예, 기껏 해독한 성분을 줄기를 통해 땅으로 버려 버리니까요. 그래서 이 뿌리를 덩이줄기 식물로 교체해 주위의 땅에 해독성분을 내보내지 않고 줄기에 쌓이도록 했습니다. 줄기를 잘라서 먹으면 해독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보면 알겠지." 그레리온은 바로 로이나의 화분에 시몬의 포베아를 심었다. 잠시 후, 시몬의 포베아는 환상으로 제대로 자라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줄기 덩이도 튼실하게 있었다. 정말로 이 덩이줄기에 해독효과가 있는지 환상으로는 알 방도가 없었지만, 시몬의 의도대로 이루어졌고 무엇보다 생존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었다. "잘했군. 평가점수는 A다. 시몬 폴렌티아." "감사합니다!" 해독효과를 증명 못 하니 걱정했는데, 시몬은 크게 만족했다. 이내 그레리온이 다음 학생을 불렀고 시몬은 자리로 돌아왔다. "수고했어." 마찬가지로 헥토르와 유일하게 A+를 받은 피츠제럴드가 말했다. 그는 1학년 때부터 키메라 전문 네크로맨서였으니 이 과목에 가장 강점을 가진 학생이었다. "고마워, 피츠제럴드." "개인적인 의견을 하나 말해보자면." 피츠제럴드가 시몬의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커다란 벌레잡이 식물을 가리켰다. "포베아보다 저렇게 임팩트 있는 걸 썼으면 A+를 노릴 수 있을지도 몰랐을 텐데." "내 선택이니 후회는 없어." 시몬이 빙긋 웃었다. "키메라로 접합할 때, 포베아 쪽 감각이 훨씬 더 좋았거든." "그래?" "응, 일말의 저항감도 없이 깔끔하게 붙어서." 아무튼, 평가가 끝난 학생들은 자유였다. 다른 학생들의 키메라를 구경하러 '로이나의 화분' 근처에 가 있거나, 자리에 앉아 쉬면서 수다를 떨었다. 어떤 학생들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재미 삼아 또 다른 키메라를 만들기도 했다. 시몬은 어질러진 테이블을 치우고 있었다. "소환학과 수업은 재밌어 보이는군." 시몬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외부 실습장에 나타난, 붕대를 두른 회색 머리의 남학생이 걸어오고 있었다. "카쟌!" 카쟌이 피곤한 듯 웃으며 눈의 상처를 긁적였다. "마투학과는 하루 종일 저주팔찌를 차고 로크섬 전역을 뛰어다녔다. 수행평가는 사막횡단이라고 하더군." "......아하하. 홍펭 교수님은 체력을 가장 중요시하니까요." 카쟌이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옆을 가리켰다. 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그를 따라나섰다. 인적없는 건물 뒤편 벤치. 카쟌은 가져갔던 의뢰서를 꺼내 보였다. 등록의뢰 : 시체분리 의뢰등급 : F 의뢰보상 : 5골드 의뢰위치 : 드레스덴 왕국, 타라도스 영지 세부내용 : 몬스터 시체 분리 및 용역 제공 특이사항 : 1168798164 "문제는 여기 있는 특이사항이었지. 예상대로 암호였다." 카쟌의 입이 열렸다. "타라도스에서는 지금은 대륙어에 밀려 사라진 '루키어'라는 언어를 썼다. 타라도스 원주민들의 토착 언어라는 모양이더군." 카쟌은 루키어 낱말표를 꺼내 들었다. "여기 이 숫자와, 루키어의 낱말표에 나오는 숫자의 첫 단어를 조합했다." "제가 한번 해볼게요." 시몬이 의뢰서와 루키어 낱말표를 번갈아 보면서 확인했다. "숫자 두 개에 한 낱말이죠?" "그래." "세. 려. 주. 요. 살. 이게 무슨 말인......." 순간 시몬은 전신에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살려주세요." "그래." 카쟌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타라도스에서 어떤 정신 나간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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