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67화 시몬과 이스라필은 크로스 가문 소유의 황도의 신전에 들어왔다. 정갈한 흰 의복으로 갈아입은 뒤 두 사람은 신전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뚫린 천장에서 햇빛이 쏟아지는 이곳은 엄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바닥에는 여러 돌들이 놓여 있었고, 그것이 자리할 구멍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시몬과 이스라필은 그곳에 서로 나란히 마주 보고 꿇어앉았다. “설명만 듣고 바로 실전에 들어가도 괜찮겠어요 조카?” 이스라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자 시몬이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규칙은 전부 이해했으니까요.” 크로스 가문처럼 오래된 연방 가문에서는 특별한 신성 기법들이 전통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지금 할 것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는 신성 의식 중 하나였다. 이미 시몬과 이스라필은 이런저런 접촉도 많았지만 그녀의 정수가 시몬에게 옮겨가지 못했다. 고민 끝에 이스라필은 더더욱 강한 정신적 접촉을 위한 의식을 준비해 둔 것이다. “그럼 테스트를 한번 해볼까요? 만약 제가 이 돌을 여기로 옮기면?” 이스라필이 곁에 있던 돌 중 하나를 집어 다른 자리로 옮겼다. 그러자 시몬도 자신의 옆에 있는 돌을 주워서 반대 방향에 놓았다. “이렇게 합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이스라필이 동시에 양손으로 두 개의 돌을 집어 위아래에 두었다. 시몬은 망설임 없이 두 개의 돌을 집어서 한쪽 돌을 먼저 옮긴 뒤, 잠시 고민하다가 나머지 돌의 자리도 결정했다. “이쪽입니다.” 시몬이 돌을 내려놓고 힐긋 이스라필의 눈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살짝 멍해졌다. “틀렸나요?” “아, 아니에요. 정답이랍니다.” 이스라필이 손뼉을 짝 쳤다. “안나 언니는 이렇게 총명한 아이를 가르치는 재미를 독차지하고 있었군요. 흐으음-?”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방금 교수들이나 빈트로드 탐정과 같은 반응을 보인 이스라필 때문에 살짝 무서워진 시몬이었다. “그럼 바로 시작해 볼까요?” “네!” 두 사람이 양 손바닥을 모으며 신성을 일으켰다. ‘개등!’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두 사람의 신성이 등불처럼 화사하게 피어올랐다. 신전을 가득 채운 신성이 벽면 곳곳에 깃들어 눈부신 빛을 발했고, 돌들도 생동감이 살아나는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시몬이 호기심에 귀를 쫑긋 세웠다. ‘신성이 돌에 빨려 들어가고 있어. 어떤 원리지?’ “우리 조카.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인 건 알겠지만 지금부터는 집중해야 한답니다?” 그 말에 시몬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돌 하나를 들어 올린 이스라필은, 늘 온화하게 감고 있던 눈이 슬며시 떠져 있었다. “시작해 볼까요.” 타악! 탁. 이스라필이 자신의 신성을 부여한 채 시몬의 옆으로 돌을 내려놓았고, 시몬도 자신 주위의 돌을 집어서 신성을 부여한 뒤 그녀의 주위에 내려놓았다. 타악! 탁! 두 사람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팔이 서로 엉키며 교차하기도 했다. 이스라필이 속도를 조금 더 내고 시몬도 그것을 따라잡느라 최대한 집중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파밧! 팟! 돌을 잡고 옮기는 과정에서 서로의 신성이 돌에 맞닿는다. 서로 다른 신성이지만 충돌하거나 반발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었다. 그때마다 신전의 빛은 더더욱 강렬해졌고, 광채는 더 선명하게 번져 나갔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신전이 하얗게 물들어갔다. “크윽!” “조금만 더 집중해요!” 파밧! 파바바밧! 두 사람의 손이 현란하면서도 정교하게 오가고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모습. 그러자 신전에 변화가 생긴다. 뽀각! 투둑! 올려둔 돌들이 뽀각 소리와 함께 깨지며 그 파편이 신성의 부유 성질로 공중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 또한 그냥 떠오른 게 아니라 공중에서도 규칙성이 있었다. 이스라필이 손을 뻗어 하늘의 돌의 위치까지 재배치하기 시작했고, 시몬도 같은 동작을 이어나갔다. 두 사람의 신성이 얼기설기 엮이며 빛의 원을 이루고, 서로 반사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이게 바로!’ 신성의 연동. 서로의 신성을 입힌 돌들이 허공에 자리 잡으며, 그 자체로 거대한 신성 마법진이 펼쳐진다. 반사된 빛들이 마법진의 내부에 선을 이으며 신성 회로를 대신한다. 이런 종류의 마법은 난생처음이었다. 고대 마법을 재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머리가 뻥 뚫리는 기분이야.’ 두뇌가 가속하고, 온몸이 가열된다. 이제는 무아지경. 팔이 스스로 움직이고, 머리가 알아서 다음 돌을 놓아야 할 장소를 계산한다. 이 모든 동작이 마법진을 완성하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 마침내 이스라필이 동작을 멈추고, 마법진의 중앙에 백마법의 핵을 세기는 순간. 화아아아아아아악! 신전 전체가 마법진의 일부가 되며 거대한 빛의 마법을 이루었다. 시몬은 허억 헉 숨을 몰아쉬며 그 웅장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이스라필은 지치지도 않았는지 숨 한번 헐떡이지 않고 꿇어앉은 자세 그대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대견하다는 듯 시몬을 바라보던 그녀가 마침내 마법진 앞에 두 손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를 받은 시몬도 두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의 손이 마법진을 중심으로 만나는 순간. “!!” 시몬은 눈 깜짝할 사이에 새하얀 세상에 도착해 있었다. “아.” 신성의 극적 각성 상태에서만 볼 수 있는, 혹은 성녀의 정수와 접촉했을 때 볼 수 있던 여섯 개의 하얀 왕좌가 예전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곳곳에 개성 넘치는 자세로 앉아 있는 정수의 잔재들이 시몬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시몬도 여유 있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좋아, 이걸로 마지막.’ 시몬의 시선이 가장 오른쪽 끝으로 향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정수의 잔재도 차지했다!’ 그러나. 성녀 안나 크로스가 가졌던 기적의 정수이자, 지금은 이스라필에게 전해져 세간에는 신해의 정수라고 더 많이 불리게 된 이 정수의 잔재와 왕좌는- ‘어째서……?’ 나타나지 않았다. 시몬은 당황했다. 이스라필이 준비해 준 이 의식은 완벽했고, 이 이상으로 그녀의 정수에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도 기적의 정수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보였다. [아직도 모르겠어?] 여섯 정수 중 시몬에게 가장 친절했던 정수. 첫 번째로 얻은 말괄량이 같은 정화의 정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펼쳤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 “?” 그 말에 시몬이 왕좌에서 눈을 떼고 주변의 새하얀 공간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넓디넓은 공간으로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이 공간은 완벽히 평탄하지 않았다. 왕좌가 있는 바닥은 다른 곳보다 살짝 높게 올라와 있었다. 단차가 있었다. [만약 여기서 일곱 번째 왕좌가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그 말을 들은 시몬은 여섯 번째 왕좌의 위치가 무대의 가장 ‘오른쪽 끝’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만약 그 옆에 마지막 일곱 번째 왕좌가 나타난다면, 다른 왕좌들보다 한 칸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왕좌 간의 상하 관계가 있는 건 아닐 테니, 다소 부자연스럽네.’ 그렇게 생각한 시몬의 시선이 오른쪽 끝에서 한 칸씩 왼쪽으로 옮겨갔다. 천풍의 정수. 영원의 정수. 성체의 정수. 갑철의 정수. 수확의 정수. 정화의 정수. 그리고 깨달았다. ‘설마!’ 처음으로 손에 넣은 정화의 정수의 왕좌는 왼쪽 끝에 있는 게 아니었다. 한 칸 띄어진 채 위치해 있었다. 마치 그 자리에 뭔가가 있어서 공간을 비워둔 것처럼 보였다. 샤아아아아아아-! 이내 하얀 공간이 사라지며 다시 현실의 신전으로 돌아왔다. 이제 이곳은 신성이 모두 다하고 이전의 평범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앞에서는 긴장한 표정의 이스라필이 보인다. “어땠나요? 제 정수가 무사히 전달됐을까요?” 시몬이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 * * 한편 남겨진 레테와 하미엘은 화원 근처의 별장에 들어와 기다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그림 같은 정원이 바로 보이는 이 별장은 향긋한 꽃내음으로 가득한 곳이었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 레테는 턱을 괴고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리며 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치를 보던 하미엘이 조심스레 운을 뗐다. “호, 혹시 불편한 부분이라도…….” “없슴다!” “아, 넵!” 하미엘이 진땀을 흘리며 애써 웃었다. 탁탁. 입으로는 불편하지 않다고 했지만, 테이블을 두들기는 그녀의 행동이나 표정은 정반대였다. 하미엘은 그녀를 달래보려다 결국 못 이겨 말을 꺼냈다. “신전에서는 별일 없을 겁니다! 그냥 의식일 뿐이니까요!” “그런데 왜 이스라필 님은 그렇게 막 옷도 예쁜 거 입으시고 꽃단장까지 하신 건데요? 그냥 의식이라면서요!” 툴툴툴. 레테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하미엘은 직장 상사와, 룬 리그 동료 사이에 낀 채 말라비틀어지는 중이었다. “그래도…… 이모랑 조카 관계인데…….” “피 한 방울 안 섞였으면서! 애초에 안나 선생님 일이라면 눈이 돌아가는 사람인데! 안나 선생님의 피가 섞인 아들이라면 얼마나 예뻐하시겠슴까?” “나이 차이…….” “아록에서 아스페리아 그 여자가 시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다 들었거든요! 목욕 시중? 하 참!” 하미엘이 웃는 얼굴로 덜덜 떨었다.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닌데. 아무래도 저 아스페리아 이야기가 결정적이었던 모양이었다. ‘걱정하시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크로스 가문의 의식에는 여러 단계가 있었다. 돌을 옮기고 황도의 신전을 작동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약간의 신체 접촉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의식도 있었다. 아마 레테는 그것을 염려하는 것이리라. “꽥꽥꽥꽥 시끄럽다, 불신자들아. 너희들은 늘 마음가짐이 문제야.” 굳이 말벌집을 푹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한마디. 레테의 살벌한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에는 신의 손 모제가 소파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채 추욱 늘어져 있었다. 아스페리아 성녀 재판식에 불려가 증인으로서 발언하고, 일을 끝내자마자 바로 시몬을 보기 위해 여기로 온 것이다. “성자는 신의 아들. 신을 신앙으로써 경외하고 따라야지. 어떻게 그런 하찮고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우냔 말이다.” 그렇게 말한 그가 갑자기 두 손을 모으고 아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 모제, 성자님을 알현하고 싶은 충심을 참지 못하고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누가 하찮다는 검까.” 레테는 베개라도 집어 던질 기세였지만, 결국 귀찮다는 표정으로 테이블에 엎드렸다. 바로 그때. 똑똑똑! 노크 소리가 한 차례 들린 뒤 문이 열렸다. 시몬이 웃는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고, 그 뒤에는 이스라필도 있었다. “다들 잘 있었어?” “시몬!” “성자님!” “형제님!” 각자의 생각을 품은 세 사람이 우르르 시몬 앞으로 달려왔다. 모제는 곧바로 무릎부터 꿇고 시몬의 손등을 붙잡았다. “이 모제, 성자님을 알현하기 위해 하늘섬에서 급히 도착…….” 터업! 레테가 시몬의 손등에 키스하려는 모제를 붙잡아 뒤로 내팽개치고는 물었다. “별일 없으셨슴까?” “응, 없었어.” “혹시 당신……!” “형제님! 성녀의 정수는 손에 넣으셨나욧! 성자가 되신 건가요옷!” 레테의 말을 끊으며 하미엘이 다급히 끼어들어 외쳤다. 시몬이 고개를 저었다. “이스라필 이모의 정수는 내 몸에 깃들이지 못했어. 아니, 더 정확히는 깃들일 필요가 없다는 게 맞겠지.” “?” 탁. 그때 이스라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한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설명해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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