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76화 스켈레톤 나이트는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특히 신경 쓸 부분이 많았다. 일반 스켈레톤처럼 퍼즐 맞추듯 뼈를 쭉쭉 연결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갑옷'까지 고려해야 했다. 조립 후에 갑옷을 입히는 파츠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뼈와 갑옷이 붙어서 하나의 파츠처럼 나온 것도 있다. 순서를 혼동하는 순간 대참사가 일어난다. '끙, 확실히 쉽지 않네.' 갑옷의 구조와 연결 순서까지 이해하고 뼈를 조립해야 한다. 시몬이 주위를 둘러보니 적지 않은 학생들이 손을 들고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소환학과 조교들은 오늘도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아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갑옷도 결국은 하나의 파츠에 지나지 않아. 부분에 매몰되지 말고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서 차근차근 맞춰 나가도록." 시몬은 우선 빠르게 두 다리부터 완성해 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완성품을 바라보니, 저절로 뿌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괜찮은데. 이게 나이트의 매력이구나!' 네크로맨서들의 입장에서 스켈레톤은 툭 치면 와르르 무너지는, 연약하고 손이 많이 가는 언데드라는 관념이 있다. 그런데 그 취약한 뼈관절을 금속으로 덮으니 이렇게 튼튼해 보일 수가 없었다. 슬슬 손이 풀리기 시작하자, 시몬은 바로 몸통부터 작성하고 흉부 갑옷도 장착했다. 한번 감이 오니 쉬지 않고 순서대로 착착 맞춰 나갈 수 있었다. '여기는 홈에 끼워 붙이고, 여기는 칠흑실로 연결하고.' 빠르게 형태를 갖춰나가는 시몬의 스켈레톤 나이트를 보며, 토토가 부러운 소리를 냈다. "대단해! 벌써 그만큼 만들었어?" "손이 풀린 뒤로는 할 만하네." 처음엔 갑옷과 금속제련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헤맸지만 막혔던 부분이 한번 뻥 뚫리니 그 이후로는 술술 풀려서 수월했다. 이제 시몬의 실습 테이블에는 하반신과 상반신으로 나누어진 스켈레톤 나이트가 있었다. 갑옷의 구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했다. '마지막!' 시몬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이 상반신을 하반신을 연결하고 갑옷으로 덮으면......!' 그극! 갑옷 무게 때문에 꽤 무거웠다. 시몬이 낑낑거리며 갑옷을 들어 올리자, 반대편에서 텁. 하고 잡아주는 하얀 손이 있었다. "도와줄게." "고마워! 로레인." 두 사람은 안정적으로 양쪽에서 상반신을 잡은 다음, 하나둘셋에서 셋을 세는 신호에 천천히 상반신을 하반신에 붙였다. 달칵. 제대로 연결되는 소리가 들린다. 두 척추의 칠흑이 만나서 연결되며 하나의 뼈대로 아물어간다. "좋아, 됐다!" 완성과 동시에 시몬이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삐-걱! 엄청나게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 이후 스켈레톤 나이트가 휘청휘청하더니, 난데없이 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허리가 확 굽혀지며 시몬 쪽으로 크게 숙여진 모습이 되었다. "??" 시몬과 로레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 * * 시몬은 바로 아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허리가 굽어진 스켈레톤 나이트를 세심하게 살펴보던 아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조립엔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 같군." "그, 그러면요?" "불량이다." 쿵! 시몬의 가슴이 철렁했다. "공장제도 불량이 있는데 이런 언데드 제품이야 희귀한 일도 아니지. 상반신과 하반신의 접합은 제대로 이루어졌지만, 그 위쪽의 뼈가 처음부터 손상된 것 같다. 결국 갑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진 거겠지." "아......." 시몬이 아쉬운 한숨을 쉬었다. '크윽, 역시 바닐라 브랜드로 샀었어야 했는데!' 랭거스틴에서 신입생 인솔 전에 잠시 네크로맨서 상점에 들렀는데, 스켈레톤 나이트의 바닐라 브랜드 제품 재고가 다 떨어진 참이었다. 점원은 그보다 격이 한 단계 떨어지는 '파스텔' 브랜드 제품을 추천했고, 시몬은 그냥 로체스트에서 비싸게 제품을 살지, 아니면 그냥 여기서 살지 고민하다가 결국 파스텔 제품을 구매한 것이다. "너무 실망하진 마라. 소환술사라면 흔히 겪는 일이니." 아론이 그렇게 말하며 다른 학생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품을 산 곳에 연락해서 환불절차를 밟도록." "......네." 시몬은 허리가 축 늘어진 스켈레톤 나이트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회~장! 접착제 빌려준 거 잘 썼어!" 그때 마침, 뼈 접착제를 빌려 갔던 그 주황 머리 여학생이 발랄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응?" 그러고는 좌절감에 고개가 축 처져 있는 시몬과, 허리가 축 늘어진 스켈레톤 나이트를 바라보았다. "꺄하하하하!" 그녀는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자 주위의 학생들이 인상을 쓰며 돌아보았다. "뭐야 이게! 으흫! 하하하하! 이게 무슨 노인 스켈레톤이니 뭐니?" "불량이래." 시몬이 화끈거리는 얼굴로 접착제를 돌려받았다. "꺄핳! 크흫흐! 아, 미안! 으흐흐!" 한바탕 크게 웃어댄 그녀가 몸에 힘이 빠진 듯 휘청거리다가 토토의 몸에 등을 툭 기댔다. 토토가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지며 얼굴이 시뻘게졌다. "아까 네 포즈랑, 스켈레톤 포즈랑 똑같아서. 으흐흐흫! 그 주인의 그 소환수라니. 키키킥!" "그만 웃어!" 그리고 조금 떨어진 자리. 웃음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석차 5위, 아세라즈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제품 불량? 가장 까다로운 녀석이었는데 첫 수업은 운이 좋네.' 가장 뒷자리의 헥토르도 그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건가.' 다시 홀로 남겨진 시몬은 낑낑거리며 허리가 축 굽어진 스켈레톤 나이트를 세워보았다. 하지만 다시 훌렁~ 하고 반대편으로 허리가 꺾였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 아직 수업 시간도 많이 남았고.' 물론 아론이 불량인 걸 감안해 제작 점수는 만점을 주겠다고는 했지만, 완성도가 떨어졌기에 전체적인 점수가 하락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키젠은 평가에 융통성이 없었고, 오로지 결과만이 중요했다. '할 수 있는 거 없는 거 다 해본다!' 결과가 중요하다면야, 임시방편이든 뭐든 어떻게든 허리를 바짝 세워서 오늘 이 시간 동안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면 된다. 시몬은 가방에서 소환학에 쓰이는 테이핑을 꺼내 촤아악 뜯었다. 그러고는 허리 부분을 마구마구 휙휙 휘감았다. '칠흑이 흐르는 루트는 옆으로 빼내는 거야.' 시몬이 불량인 뼈 위에 작은 마법진을 그려놓고, 그 위에도 마법진을 그렸다. 임시 회로를 구축해서 뼈를 통하지 않고도 마법진끼리 칠흑이 통하게 했다. '좋아, 이런 느낌?' 시몬이 뒤로 물러나 팔짱을 꼈다. "움직여 봐! 나이트!" 철컥 철컥. 시몬이 사념으로 명령을 내리자, 스켈레톤 나이트가 주춤거리며 한 발 한 발 내딛기 시작했다. 엉성하지만 나름 걸을 수는 있게 됐다. '뛰는 건 힘들겠지만 이 정도가 어디야.' 한숨을 쉰 시몬이 아공간에서 검을 꺼내 스켈레톤 나이트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러고는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검을 향하게 했다. "휘둘러!" 부우우웅! 제법 경쾌한 소리가 난다. 시몬의 눈에 희망이 살아났다. 학생들도 웅성거리며 시몬 쪽을 보았다. "이번엔 횡으로!" 부아아앙! 스켈레톤 나이트가 허리를 돌리며 큰 스윙을 선보였으나. 뽀각! 바로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스켈레톤 나이트의 허리 다시 굽어지며 스프링처럼 댕- 댕- 흔들렸다. 시몬이 이마를 덮었고, 주위에서 시끌시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시몬." 로레인이 다가와 물었다. 시몬이 애써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아직 포기 안 해." "응, 힘내." 일부로 격려하러 와준 건가? 시몬은 정말로 몸에 힘이 붙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방금 길은 보였어.' 시몬이 가진 장비들을 모조리 테이블에 꺼내놓았다. 절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 * * 시간이 흘렀다. 학생들이 하나둘씩 스켈레톤 나이트를 완성하고는 검사를 받으러 줄을 선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2학년 소환학과에서 제일 먼저 나이트를 완성한 건 '아세라즈 미켈'이었다. 부웅- 부웅- 그녀의 나이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곳곳에서 감탄성이 들리고 있었다. 힘이 실린 채 곧게 내려오는 일격. 일반 스켈레톤의 난잡한 검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잘했다. 아세라즈." 평가서를 들고 있던 아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점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교수님." 아세라즈가 사념으로 지시하자, 스켈레톤 나이트가 왼손에 들고 있던 방패를 내려놓았다. 그 대신 검을 한 자루 더 쥐었다. '트윈 블레이드?' 이내 아세라즈가 지시를 내리는 순간. 스릉! 스릉! 두 개의 검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교차했다. 학생들은 환호하다 못해 입을 딱 벌렸다. 아론도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이군. 어떻게 했나." "제 스켈레톤 나이트의 재료는 위험도 3급 몬스터, 갈바렌입니다." 그녀가 얼른 설명을 시작했다. "변칙적인 전투방식을 구사하는 몬스터죠. 저는 스켈레톤 나이트의 사념에 강하게 연결한 뒤, 생전에 구사했던 가장 적절한 기술을 찾기 위해 몰두했습니다. 두 개의 검을 쥐여주니 그 효과가 배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특징에 맞추기 위해 손목과 팔의 골격에 변화를 줘봤습니다." "......소환수 제작은 기본이고, 벌써 개성까지 부여한 건가." 아론이 미소 지었다. "A+보다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게 아쉽군. 수고했다." 짝짝짝짝! 학생들의 박수를 받으며 아세라즈가 연단에서 내려왔다. "다음!" 헥토르는 자신처럼 덩치가 큰, 보통 스켈레톤 나이트의 1.5배나 되는 크기의 나이트를 조립해서 A+를 받았다. 스켈레톤은 크면 클수록 더 만들기 어렵다는 건 소환학의 상식이었다. 피츠제럴드는 장비에 인챈트 마법진을 새긴 다음, 전투가 시작하면 스켈레톤 스스로 검과 갑주에 칠흑을 불어넣어 강화하는 개성 있는 언데드를 만들어내서 학생들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아론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디어는 좋다만, 나이트의 칠흑 소모량과 가용시간을 고려하지 않았군. 이대로는 통제가 필요하지 않은 강함은커녕, 5분 이상 움직이기도 힘들어." 예상치 못한 혹평에 피츠제럴드는 당황했지만, 이내 안경을 고쳐 쓰며 답했다. "그 단점을 상쇄하는, 단기결전에 특화된 스켈레톤 나이트 모델을 만드는 게 제 목적이었습니다." "임기응변치고는 나쁘지 않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아론은 피츠제럴드의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정말로 단기결전에 특화된 모델을 만들려고 했다면, 갑옷에는 인챈트 마법진을 부여하지 않았겠지." "......." "그리고 갑옷도 조금 더 가벼운 경갑옷을 썼다면, 나는 그 말에 넘어가 줬을 거다. B+다. 피츠제럴드." 어지간한 수작으로는 키젠 교수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피츠제럴드는 깔끔하게 인정하고는 자리로 돌아가 토토에게 조용히 말했다. "한번 해볼 만한 시도였다고 생각." "......하하하." 그리고 이어서. "시몬 폴렌티아." 시몬이 평가를 받으러 올라왔다. 그 옆에는 어기적거리는 걸음의 스켈레톤 나이트가 있었다. 곳곳에서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애썼군." 아론이 안타까운 듯 말했다. 온갖 재료를 다 쏟아부어 불량인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는 데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많은 부분을 희생한 듯한 스켈레톤 나이트였다. 갑옷도 무게를 줄이기 위해 절단해서 경갑옷처럼 만든 상태였다. "아까 말했듯, 네 제작에는 결점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소환학 교수로서 결과물을 보고 평가해야 한다." "알고 있습니다." "시몬, 네게 줄 점수는......." "잠깐만요 교수님." 아론이 고개를 돌렸다. 시몬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이며 팔을 펼쳤다. "저는 이 나이트로 그 어떤 나이트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주위의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대놓고 비웃는 학생들도 있었다. "블러핑?" "아까 피츠제럴드가 당한 거 보고도 저래." "아론 교수님한테는 안 된다니까." 그 말을 들은 아론의 입가에 깊은 미소가 걸렸다. "그 말, 책임질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아론의 고개가 돌아갔다. 제일 먼저 보이는 사람은 헥토르. 솔직히, A반에서 시몬과 헥토르의 동반성장을 봐온 입장에서는 두 사람의 싸움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수업 중에 교수로서 사심은 버려야 했다. 이번 수업에서 가장 잘 만든 스켈레톤 나이트를 보유한 학생. "아세라즈 미켈. 나와라." 드르륵!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세라즈가 일어나 두 개의 검을 든 스켈레톤 나이트를 데리고 왔다. 헥토르는 엉덩이를 반쯤 떼고 있다가, 아세라즈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이를 빠득 갈았다. "시몬 폴렌티아." 아론이 고개를 돌렸다. "아세라즈의 스켈레톤 나이트를 이긴다면, 네 말에 속아주겠다." 시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보여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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