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73화 "특례 1번, 사샤 앤드라실! 연단으로 올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주위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천 명의 신입생들은 물론, 위층의 외부인들까지 '사샤'라는 이름에 놀라고 있었다. "사샤가 누구? 혹시 알아?" "처음 듣는 이름인데." "용병왕이 1번 아니었어?" 웅성거리는 동급생들의 이야기는 한 귀로 흘리며, 사샤는 연단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 눈동자는 총명하게 빛났고, 비쩍 마른 몸에 살이 붙고 키도 컸으며 단발인 갈색 머리카락에는 생기가 넘쳤다. 거기에 키젠 교복까지 입으니 중립지대 고아 시절의 그 꼬질꼬질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치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된 것 같은 모습. 시몬도 놀란 얼굴로 그녀가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락- 두 사람이 서로 교차했다.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고 사샤도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좀 이따 봐. 시몬 오빠." "응." 시몬이 빙긋 웃었다. "특례 1번, 축하해." 그녀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내 사샤가 연단으로 올라가 섰다. 먼저 올라와 있던 아서가 그녀를 보았고, 그녀도 아서의 옆자리에 서며 툭 내뱉듯 말했다. "뭘 봐?" "아, 아니. 혹시 너도 학생회장 선배님과 아는 사이인가 해서." "너랑은 상관없잖아."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아서는 오늘 저 녀석 기분이 별로 안 좋구나 싶어서 고개를 되돌렸다. 이내 하수인의 설명이 이어진 후 선서 내용이 담긴 종이를 그들 앞에 놓았다. "내 속도에 맞춰줘." "싫은데? 네가 내 신호에 맞춰." 옥신각신하던 두 사람이 손을 펼쳐 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쳤다. "선서!" "선서!" 두 사람의 선서와 동시에, 다른 신입생들도 똑같이 손바닥을 펼치고 복창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 학생회장 임명식을 위해 연단으로 올라온 시몬은, 이 광경을 흡족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이 특례 1번, 2번이라니.' 안정적으로 선서를 이어나가던 사샤의 눈동자가 시몬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가볍게 눈을 윙크한 다음 혼자 빠르게 대사를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템포변화에 당황한 아서가 연신 삑사리를 냈고 신입생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시몬 요원!" 한참 신입생 선서 중에, 사회자 세이위르가 슬쩍 시몬에게 다가왔다. "아, 오랜만이에요. 세이위르." 두 사람이 반갑게 악수했다. "사람의 인연이란 게 참 놀랍습니다." 세이위르가 사샤를 보며 말했다. "중립지대의 고아가 이렇게 성장해서 키젠의 특례 1번이 되고, 말단 요원이었던 저는 키젠에서 사회를 보고 있고, 시몬 요원은 학생회장으로서 여기 있네요." "네." 시몬이 여러 감정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신기하네요." 마침 1학년들의 선서가 끝났다. 세이위르는 앞으로 나서서 관중들의 박수를 유도했고, 사샤와 아서는 벌써 사이가 안 좋아진 건지 사나운 눈빛을 교환하며 연단에서 내려갔다. 그때 연단 뒤편의 커튼이 걷히며, 방송 하수인 한 명이 손짓했다. "학생회장님! 이쪽으로!" "네, 갑니다." 커튼을 걷고 대강당 뒤편으로 들어온 시몬은 깜짝 놀랐다. 하수인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다음 차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배가 툭 튀어나온 중년 남자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고 있다가, 세이위르에게 이름이 불리자 후다닥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뒤이어 학생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학생회장님 차례는 바로 이다음입니다." 하수인이 서류를 팔랑팔랑 넘기며 빠른 어조로 이야기했다. "어떻게 하는지 다 아시죠? 총장 대리님 앞에서 해골지팡이를 내려놓고 한쪽 무릎을 꿇으면, 총장 대리님이 학생회장 외투를 덮어주는 것으로 엔딩. 간단하죠? 네크로맨서 서약이랑 비슷해요. 그리고 이어서 연설. 그냥 회장이 된 소감 같은 거 슥슥 말하심 되구요." 시몬이 당황하며 말했다. "지팡이요? 무슨 지팡이인데요?" "저기 오네요." 두 명의 하수인이 끙끙거리며 해골이 달린 커다란 의장용 지팡이를 가져오고 있었다. 딱 봐도 무거워 보였다. "아! 그리고 이거 한 손으로 드셔야 해요." "......." 시몬은 의장용 지팡이를 한 번에 들어 올리려다가 포기했다. 이번엔 두 팔에 칠흑을 실어서 들어 올리자 간신히 들렸다. 그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한 손으로 들려면 체내 칠흑 분화 쓰고 해야겠다.' 커튼 밖의 상황을 체크한 하수인이 시몬을 보고 말했다. "회장님! 슬슬 준비하세요!" "네. 그러고 보니 총장 대리님은 누구......?" "제인 부총장님이시겠죠. 원래는 총장님이 오셔야 하지만 아시다시피 워낙 바쁘신 분이니." 그때 웅얼웅얼 이야기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끊기고, 세이위르의 마무리 멘트가 들렸다.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자, 이제 회장님 차례네요!" * * * 키젠 대강당의 3층 VIP석. 그곳에서는 암흑연합에서 내로라하는 원로들과 노인들이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 입학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올해 입학식은 영 볼거리가 없구만." "사회자는 퇴출된 네크로맨서고, 특례 1번은 평민이고 특례 2번은 용병이라더군." "용병은 그렇다 쳐도, 사샤 앤드라실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소." "근본 없는 중립지대 출신이라고 하네. 네프티스 님도 이제 나이가 드신 게지." "작년의 신입생들이 너무 우수했던 게야." 3층에서 등에 몸을 기댄 채 VIP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딕이 씩 웃었다. '네, 네. 그런 불평불만이나 하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저 재미없는 남자의 연설이 끝나면 이제는 시몬의 임명식 차례. 연설도 이제 다 끝나간다. '바로 지금이 타이밍이야!' 딱! 딕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것을 신호로 드르륵- 소리와 함께 바퀴 달린 카트가 VIP들의 앞에서 멈춰 섰다. "뭐, 뭔가?" 노인들이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달칵! 학생회 직속 하수인들이 정중하게 위스키를 개방하고는 고급스러운 잔 위에 쪼르륵 술을 따랐다. 그러고는 노인들의 의자 팔걸이에 식탁보를 내려놓고 물을 적신 뒤 위스키 잔을 내려놓았다. "학생들이 어르신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호오- 불평을 쏟아놓던 노인들의 얼굴이 거짓말처럼 환하게 펴졌다. "우리 학생들이 이걸?" "예." 안 그래도 술 한잔 고팠던 노인들은 망설임 없이 위스키로 목을 축였다. 곳곳에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맛이 좋아! 음!" "블로디 20년산인가?" "학생들이 준비했다니 기특한지고." "다들 이거 보게! 팔걸이에 식탁보를 올려둔 걸 보니 올드체어야." "젊은 친구들이 올드체어를 알다니, 예의가 뭔지 아는구만!" 순식간에 화사해지는 VIP들의 분위기를 보며 딕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물론 권력자들은 이런 접대야 질리도록 받아봤겠지만, 그들도 인간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성의는 감동을 낳는다. 그리고. '이제 나온다!' -올해 키젠의 새로운 학생회장, 2학년 시몬 폴렌티아 학생! 앞으로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에이젤이 아닌, 2학년이 학생회장이 된다는 소식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즉, '2학년 학생회장'이라는 말에 장내가 술렁이고 당황해야 할 바로 그 시점에. 와아아아아아아아! 1학년들의 해일과도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뭐야 쟤들?!" 이 환호의 주인공은 시몬이 데리고 온 랭거스틴의 신입생들. 그것도 시몬의 활약을 눈앞에서 본 소년 소녀들이었다. 시몬! 시몬! 아서를 필두로 1학년들이 시몬의 이름을 연호했고, 같은 1학년들도 떠들썩한 분위기에 금방 휩쓸려 박수를 치고 웃었다. "2학년이 학생회장인 겐가?" "허허! 2학년이면 뭐 어떤가! 후배들한테 저리 인기가 많은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 암." 막 첫 잔을 마시고 한참 기분이 좋을 때인 VIP들은 시몬의 등장을 나쁘게 보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2층에서 지켜보고 있던 몇몇 3학년들의 표정은 굳어갔다. "1학년들한테 인기 많네." "......이러면 상황이 미묘해지는데." 1학년들의 학생수는 1,000명으로 키젠에서 가장 많다. 시몬이 1학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면, 3학년들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저벅. 저벅. 그리고 연단 뒤편에서 등장한 시몬은 '체내 칠흑 분화'로 신체 능력을 끌어올린 채, 한 손으로 무거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이때다 싶었던 세이위르가 신나게 호응을 유도했다. "모두 새로운 학생회장에 큰 박수를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만족스럽게 들으며, 세이위르가 고개를 돌렸다. "그럼 총장 대리님! 앞으로 나와주시...... 허억!" 제인이 아니었다. 총총총 걸음을 옮기며 나타난 건 은빛 머리카락의 작은 소녀. 죽음의 마녀이자 키젠의 지배자. "네프티스 님이 직접 오셨어!" "세상에!" 위층의 어른들은 물론, 1층의 1학년들도 수군거렸다. "키 엄청 크다!" "아니, 키는 작은데?" "무, 무섭게 생겼어!" "아름다우셔! 저 눈매를 봐!" "눈이 세 개나 달렸어!" 인식 증강 마법. 그녀를 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죽음의 마녀에 대해 기대하고 투영한 이미지 그대로 네프티스를 보고 있었다. 물론. '옷이 너무 크신 거 아냐?' 시몬을 포함한, 네프티스를 평소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온전히 작은 소녀의 모습으로 보고 있었다. "의외네." "네프티스 님이 직접 와주시다니." 다들 놀라고 있었다. 부총장에게 시키지 않고 총장 본인이 직접 학생회장 임명식에 등장한 건 십수 년 만의 일이다. 네프티스는 총총걸음으로 다가와 시몬의 앞에 섰다. 시몬이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직접 오실 줄은 몰랐어요." "이 정돈 해줘야지!" 네프티스가 팔짱을 끼며 훗 하고 웃었다. "우리 계약도 있으니까." "......아." 네프티스는 시몬에게, 배신의 군단이라는 제7 군단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차후에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단순히 네프티스가 2학년 학생회장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이것도 미래 군단장 작업의 일환이었다. 이내 세이위르의 안내에 따라, 시몬이 무거운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얍!" 네프티스가 허공에 빨래 터는 것처럼 손짓하자, 황금빛이 번쩍이며 그녀의 손안에 긴 코트 한 벌이 등장했다. 일반 학생들이 겉에 걸치는 일반 교복 재킷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그 유명한 학생회장 코트. 네프티스는 총총 다가와 권력의 상징인 그것을 시몬의 어깨에 올려주었다.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성을 받으며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프티스에게 먼저 고개를 숙인 다음, 3층을 향해, 2층을 향해, 마지막으로 1층 신입생들에게도 인사했다. 세이위르가 시몬에게 확성 수정구를 가져다주었다.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시몬이 입을 열었다. "과분한 은혜를 받아 이 자리에 올랐습니다. 한번 이 일을 맡은 이상, 저를 도와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허무하게 책임을 놓을 일은 없을 겁니다." 시몬의 시선이 잠시 2층으로 향했다가 돌아왔다. "저희 학생회는 학생을 대표하고, 학생의 권리를 위해 존재합니다. 한쪽의 의견과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언제나 현명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겠습니다. 대화하고, 토론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겠습니다.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지켜봐 주십시오." 거대한 환호성과 함께, 시몬은 확성 수정구를 건네주며 연단을 내려왔다. 앞자리에 앉은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일어나서 손뼉을 치고 있었고, 그 뒤의 사샤, 아서, 몰리 등의 1학년들도 환호했다. 그리고 VIP석에서도 기분이 좋아진 노인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젊은 친구가 싹싹하고 말도 잘하는구만." "2학년이라고 못 할 건 없지. 암!" 그런 이야기를 들은 딕이 빙긋 웃으며 남은 술을 유리잔에 따랐다. 그러고는 앞으로 걸어나와 시몬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보았다. "그래, 그렇게 계속 앞에서 빛나면 돼, 시몬." 그가 잔을 들어 올렸다. "더러운 일은 내가 맡을 테니까." 그러고는 잔을 살짝 꺾어 '치어스'를 흉내 낸 다음, 한 모금 마셨다. "훗." 뒤에서 들린 웃음소리에, 딕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직속 학생회 하수인 리더인 '모조'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결국 총무님도 어쩔 수 없는 18살이네요." 벌게진 얼굴의 딕이 크흠 헛기침을 했다. "애, 애들한텐 비밀로 해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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