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65화 -저 리어스 볼드윈은 왕위에 오르겠습니다. 이왕자 리어스가 왕위에 오를 것을 천명하자, 왕국 전역에서 뜨거운 호응이 터져 나왔다. 왜소한 리어스라며 비웃음을 사던 이전과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물론 삼왕자 헨릭이 자충수를 두며 스스로 무너진 면이 컸다. 많은 볼드윈 국민들이 노바렌에서 벌어진 사건에 격분했으며, 헨릭에게서 등을 돌렸다. -삼왕자는 끔찍한 인간이오! 왕위에 오르기 위해 뭐든 할 자요! -1군단이 왕국을 차지하려 온갖 더러운 술수를 썼다더군. 볼드윈 왕국에 반(反) 제국, 반(反) 헨릭 왕자 정서가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러는 사이 노바렌에서 탈출한 삼왕자 헨릭은 자신을 지지하는 잔당 세력과 함께 볼드윈의 남부 지역 일부를 장악한 뒤, 자신 또한 이왕자에 이어서 왕위를 천명했다. 뻔뻔하게도 그는 이번 노바렌 사태가 암흑연합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어둠의 흑마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이왕자 리어스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하지만 여론은 차가웠다. -사가루인은 왕을 섬기는 도시요. 당신은 왕이 아니오. 왕도 사가루인의 사령관은 도망쳐 온 헨릭 삼왕자의 입성을 거절했고, 결국 헨릭은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왕에 가장 가까운 남자였던 그는, 영토의 20% 남짓한 남부 지역 일대를 장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반면 리어스 이왕자는 여러 귀족들을 만나 지지를 얻고, 왕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의 주역들, 랭거스틴 아지트에 돌아온 시몬 일행도 휴식을 취하며 왕국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야, 분위기가 한번에 바뀌었네! 미쳤다, 미쳤어!” 딕이 오늘 자 신문을 흔들며 외쳤다. “민심이 다 리어스 왕자님 편이잖아! 시간 끌 필요 없이 그냥 바로 왕위에 오르면 되는 거 아냐?” 그 말을 들은 로레인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왕위 승계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딕.” 당장 왕위를 가진 국왕이 죽었고, 왕비도 현재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 왕위를 공식적으로 승계시킬 사람이 없으니, 리어스나 헨릭이나 서로 자신의 왕위 정당성을 주장하는 게 최대였고, 결국 둘 중 하나가 왕위를 포기해야 이 문제가 마무리될 수 있었다. “슬픈 이야기지만, 역사적으로 상대방의 왕위 계승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수단은 늘 전쟁이었어.” 한 나라에 두 명의 왕은 있을 수 없는 법. 북부와 중부를 차지한 이왕자 리어스, 그리고 남부의 제한된 지역만을 차지한 삼왕자 헨릭이 서로의 병력과 지지 기반을 갖추고 대립하게 되었다. 볼드윈 왕국 내전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내전은 피할 수 없다는 로레인의 설명에 주변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이때 세르네는 훗 하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래봐야 남부 일대나 간신히 장악한 헨릭 왕자가, 국토의 80% 이상을 차지한 리어스 왕자의 상대는 되지 않을 거예요. 전쟁이 시작되더라도 이른 시일 내에 끝나겠죠.” “정정당당하게 왕자들끼리 싸운다는 가정하에서는 그렇겠지.” 이번엔 카쟌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삼왕자 헨릭 뒤에는 1군단이 있다. 이왕자님도 섣불리 공격할 수 없을 거다.” “복잡하다, 복잡해.” 설명을 들은 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뒷머리를 받쳤다. “그럼 그냥 손 놓고 기다려야 하나? 정치는 역시 내 스타일이 아니라니까. 돈처럼 깔끔한 게 최고지.” 이번엔 시몬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괜찮아 딕, 내 생각엔 이번 사건으로 전력을 잃은 1군단이 가만히 있진 않을 거야. 곧 뭔가 행동을 취할 테고, 우리가 조금 더 움직이기 쉬워질 타이밍이 올 거라 생각해.” “그런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역으로 우리 쪽에서 위험한 부분이 하나 있다.” 카쟌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저번에 사가루인에서 벌어진 학살의 사망자 명단에 크리모스 상단주의 아들이 있다더군.” 그 말을 들은 딕이 벌떡 일어났다. “크, 크리모스요? 그 미친 상단주가 또 무슨 짓을 하고 있대요?” * * * 암흑연합에는 ‘4왕국’과 함께 ‘17세력’이 존재한다. 그 17세력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영향력 가진 삼세력이 있는데, 바로 마법 분야의 상아탑, 연구 분야의 펜타모니엄, 그리고 상업 분야의 크리모스 조합이었다. 수천 개의 휘하 상단을 거느린 크리모스 조합은 대륙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가장 많은 자금을 굴리는 조직이었다. 특히 비공정 사업은 95% 이상 그들이 독점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크리모스 조합을 이끄는 자는 일명 ‘미친 상단주’로 악명 높은 에벌스 크리모스. 특히 그에 대한 악명은 대부분 지독한 자식 사랑으로부터 나왔다. “……확실한가?” 그리고 현재 이 남자, 의자에 앉은 에벌스 크리모스가 턱을 괜 채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아래 보고를 올리던 비서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답했다. “예, 상단주. 볼드윈 이왕자로부터 발표된 사가루인 사태 사망자 명단에 아드님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터업. 에벌스가 조용히 두 눈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시체는?” “저, 정보에 따르면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1군단 측이 모두 소각장에 불태웠을 거라고…….” 그 말을 들은 순간, 에벌스의 어깨가 격렬히 흔들렸다. 비서가 움찔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내 욕심 때문이다.” 에벌스 크리모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돈은 넘쳐날 만큼 많았지만 늘 신분에 한이 서렸지. 그래서 아들놈을 귀족가에 들여보내 정치를 시킨 거였어. 내 욕심 때문에 아들놈이 볼드윈에서……!” “사, 상단주의 탓이 아닙니다!” 에벌스가 얼굴을 가린 두 손을 떼어냈다. “당연히 내 탓이 아니지!” “……예?” “헤일! 헤일! 헤이이이일!” 쾅쾅! 두 주먹으로 의자 팔걸이를 후려친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형적인 상인의 이미지와는 다른, 근육질의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삼왕자 헨릭 같은 허수아비를 죽여선 분이 풀리지 않아! 배후는 헤일이야! 내 아들을 죽인 그놈을 붙잡아서 생살을 잘근잘근 씹어 먹어야겠다!” 그렇게 외친 그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바다와 구름이 내려다보이고 있었다. 현재 그가 있는 곳은 비공정 내부. 그리고 그가 탄 비공정 주위로는 무려 500척에 달하는 대규모 비공정 함대가 남부 해안을 따라 1군단의 영역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죽여 버리겠다 헤일!” 미친 상단주, 에벌스 크리모스. 과거, 막내딸이 부부싸움을 하고 돌아오자 눈이 돌아가서 사위의 영지를 파산시켜 버리고, 중재하러 온 왕의 멱살까지 붙잡고 흔든 일이 있는 괴한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부부 싸움 따위가 아닌 장남의 죽음이다. 에벌스는 눈이 뒤집혀 가용한 비공정 함대를 이끌고 출정한 것이다. -여기는 키젠입니다. 그때, 비공정 어딘가에서 통신 수정구 음성이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에벌스가 표정을 와락 구겼다. “뭐? 키젠?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통신은 전부 차단하라고 했잖아!” 비서가 식은땀을 흘리며 답했다. “통신은 전부 꺼두었습니다만, 키젠 측이 무언가 손을 쓴 것 같습니다.” “이 자식들이!” -에벌스 크리모스. 당신의 돌발 행동은 위법할뿐더러, 대륙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통신 수정구에서 들리는 음성이 냉정히 말했다. -당신은 1군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속히 돌아오십시오. “이길 수 없다고? 내가?” 그의 눈이 번들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저벅 저벅 마나 스크린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 그가, 이내 주먹을 높이 들고 그대로 내려쳤다. 꽈드드드드득! 마나 스크린이 쩍쩍 갈라지며 산산조각 났다. “나는 에벌스 크리모스다! 너희 키젠이 벌레처럼 숨어서 암약하던 기사의 시대에도, 지금처럼 흑마법이 양지로 나와 활개치는 이 시대에도, 돈과 크리모스만큼은 건재했다!” 그가 버럭 소리 질렀다. “재력은 강함이다! 쓰레기들!” -진심으로 당신을 걱정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마나 스크린이 꺼져도 키젠 측에서의 음성은 들리고 있었다. -지금 바로 뱃머리를 돌리십시오. 아직 키젠 외엔 어떤 세력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비밀은 보장하겠습니다. “이봐, 목소리를 들으니 아직 젊은 친구인 것 같은데. 내 말 이해하겠어?” 한 차례 입꼬리를 파르르 떤 그가, 입술에서 집씻듯 한 단어 한 단어 뽑아냈다. “내! 아들이! 죽었다고!” -……. “헤일이 죽든 내가 죽든 끝장을 내겠다! 이봐! 당장 저 빌어먹을 목소리를 찾아 들리지 않게 해!” “예!” 에벌스 크리모스는 공격을 강행했고, 비공정 함대 500척이 마침내 1군단의 핵심 영토인 레벤폴 반도 해안에 가까워졌다. “상단주! 저기 1군단의 영역인 레벤폴이 보입니다!” “그래.” 앞에 다시 새로운 마나 스크린을 띄워두고 레벤폴 반도를 내려다보고 있는 에벌스가 섬뜩하게 미소 지었다. “뭐? 제국의 부활? 되살아난 기사들? 문명이 발전한 시대에 칼잡이들이 다시 살아나 봤자지!” 그는 자신의 공중 함대에 자신이 있었다. 애초에 비공정은 본래 군사용 공중전함으로 설계된 무기였다. 다만 암흑연합의 제재 이후, 크리모스 조합은 비공정의 무기를 제거한 채 사람과 화물 수송, 귀족들의 사치를 위한 고급 비행 수단으로 이미지를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공정은 여전히 ‘발포 기관’을 비상 출력 장치라는 명목으로 탑재하고 있었고, 여기에 무기만 장착하면 언제든 전쟁병기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금, 500척에 달하는 비공정들이 이제 레벤폴 반도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포격 준비.” 에벌스의 명령에 따라, 모든 비공정들이 하부에서 일제히 내장된 포대를 펼치며 1군단의 영역을 조준했다. “내 아들을 죽인 주제에 아주 호화롭게 지내고 있었군!” 에벌스가 보고 있는 화면에는 레벤폴 반도 곳곳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삼각형으로 우뚝 솟은 건축물. 붉은 깃발. 제국의 황도를 모방한 듯한 도시 구성까지. 그 모든 게 에벌스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선전포고 내용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옆의 부하의 물음에, 에벌스가 코웃음 쳤다. “내 아들을 죽인 놈들에게 복수하는데 포고는 무슨 포고.” 그가 팔을 뻗었다. “닥치고 쏴.” 500척의 비공정 화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굉음과 함께 날아간 포탄들이 레벤폴 반도의 위로 날아들었고, 도시에 떨어지기 직전 허공에 번쩍이는 무언가와 함께 포탄이 막히며 폭발했다. 쿠구구구궁! 반도 상공이 뿌연 연기로 뒤덮였다. 포탄이 도시에 직격하지 않은 모습을 본 에벌스 크리모스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이놈들도 꼴에 결계는 있다 이거지?” “결계 손상 확인! 제4차 포격 시 결계를 파괴하고 도시 내부에 직접 타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좋아, 다음 포격 준비해!” 다시금 500척의 화포가 불을 뿜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그때. -상단주! 레벤폴 반도에서 발사된 투사체 하나가 아군 함대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뭐? 한 발쯤이야 그냥 무시해 버려.” -투사체가 작습니다! 사람의 형상…… 아니, 사람입니……! 후우우우우웅-! 갑자기 500척에 달하는 비공정 진형 전체가 진동했다. 에벌스가 의자에게 굴러떨어지듯 쓰러졌고, 급히 고개를 들었다. “화면 띄워!” 팟! 마나 스크린이 아군 진형을 비쳤다. 이내 두 발로 비공정을 딛고, 화려한 긴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차가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뭐냐, 너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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