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62화 기계 성녀가 살벌한 속도로 원류의 첨탑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모든 공격을 무력화했다. 특히 크리쳐들은 네옴으로 만들어졌기에, 네옴의 화신과도 같은 기계 성녀를 상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기계 성녀가 지나가는 것으로 발생한 소닉 붐에 크리쳐들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그대로 지상에 낙하하며 박살 났다. “이런!” “기계 성녀가 첨탑으로 간다!” 이제는 기계 성녀가 시몬과 신수 피루가 있는 원류의 첨탑 바로 앞까지 날아왔다. 그녀의 목표는 첨탑을 확보한 뒤, 힘의 원료가 되는 네옴을 보충하는 것. “그렇게 둘 순 없지.” 시몬이 두 신수 차크람을 붙잡고는 뛰어올랐다. 이내 첨탑을 향해 차크람을 휘둘러 표면을 가격했지만 신성 불똥이 한 차례 크게 튀었을 뿐, 첨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너무 단단해!’ -시온 탐정! 잠시 물러서게! 이번엔 통신구에서 빈트로드의 외침이 들리더니, 서쪽에서 발사된 무수한 네옴 포탄이 첨탑으로 날아들었다. “문명의 근간에 무슨 짓이냐! 이 정신 나간 놈들이!” 기계 성녀에 올라탄 라이카 로버트가 버럭 소리 질렀다. “성녀님! 첨탑을 지키셔야 합니다!” 기계 성녀의 몸에서 무수한 네옴 줄기 다발이 쏟아져 나가 날아오던 포탄을 공중에서 격추시켰다. 그중 몇몇 포탄만이 무사히 날아가 첨탑에 부딪혀 폭발했지만. “!” 그 공격에도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시몬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러면 어쩔 수 없이 싸워야겠네.’ 시몬이 첨탑의 중간 부분으로 뛰어올라 두 차크람을 교차하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기계 성녀가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피루! 너도 도와……! 응?” 그 순간, 시몬은 등 뒤에 찰싹 붙어 있던 피루가 사라진 사실을 깨달았다. 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피루피루! 어느새 피루는 네옴이 흐르는 첨탑 내부로 뛰어들고 있었다. “피루!” 첨벙! 폭포처럼 쏟아지는 녹황색 네옴에 다이빙한 피루가 행복한 듯 ‘피루루!’거리는 울음소리를 냈다. 곧이어 입을 벌리고 네옴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옴뇸뇸뇸뇸뇸! 폭식이 시작됐다. 아까 결계를 통째로 집어삼킨 것으로도 모자라, 이번엔 첨탑 꼭대기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네옴을 먹어치우기 시작한 것이다. ‘잠깐만, 이거.’ 피루를 바라보던 시몬의 눈이 반짝였다. ‘나쁘지 않은데?’ [원류의 첨탑 내부의 네옴 대규모 증발. 도시 내부에 상정 불가능한 치명적 오류 출현.] 기계 성녀의 입 부분이 덜컥 열리며 네옴 섬광을 발사했다. [당장 행동을 중지하십시오. 괴생명체.] 콰콰콰콰! 강렬한 녹황색 섬광이 피루를 향해 쏟아졌지만, 정신없이 네옴을 빨아들이던 피루가 그 모습을 보고는 입을 아- 벌렸다. 마치 메인 메뉴를 먹다가 디저트를 잠시 즐기는 듯한 느낌으로 네옴 섬광을 먹어치운 피루가 다시 네옴 폭포를 빨아들였다. 이에 네옴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학습한 기계 성녀가 주변 구조물들 들어 올려 피루를 향해 던지려고 했지만. <시몬 오리지널 - 로타리오(rotátǐo)> 공중에서 살벌하게 회전하는 두 개의 차크람이 날아왔다. 구조물을 일으키는 걸 중단한 기계 성녀는 급히 방어 마법진을 펼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렌 님과 싸우느라 힘을 많이 소진했나 봐.” 차크람을 시간차로 던져 기계 성녀를 방해하고, 도약해서 그녀의 측면까지 도달한 시몬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의 주먹에는 맹렬한 신성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지?” 터어어어어어어엉! 시몬의 주먹이 기계 성녀의 몸체를 크게 강타했다. 그 충격으로 기계 성녀가 크게 흔들렸고, 그 위에 있던 라이카 로버트도 ‘큭!’ 소리를 내며 매달려 간신히 떨어지는 걸 면했다. 시몬은 돌아오는 두 차크람을 붙잡고 다시 첨탑에 무사히 착지했다. 또옥. 똑. 그사이, 네옴이 흐르는 첨탑의 물길은 이미 말라붙어 바닥을 훤히 드러냈다. 꼭대기에서만 네옴이 살살 흘러나오고 있었고, 아래에는 한 방울의 네옴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떡하니 누워 있는 피루. 아무것도 모른 채 잘 먹었다는 표정으로 만족스럽게 누워 있었다. 짧고 앙증맞은 손으로 유독 부풀어 오른 배를 토닥토닥 두들기는 모습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삐빅. 삐비비빅. [이해 불능.] 불가사의한 현상을 목격한 기계 성녀의 네옴 엔진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계획 초기화. 새로운 계획 준비.] “뭘 준비하는진 모르겠지만, 지금부터는 우리 차례야.” 그렇게 말한 시몬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피루를 내려다보았다. “피루! 지금까지 먹은 신성으로 뭔가를 보여줘!” 척! 시몬이 팔을 뻗으며 공격을 명령하자, 피루가 동그란 눈을 깜빡거렸다. -피이? 가만히 기다리던 시몬의 얼굴에 뒤늦게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호, 혹시 권능이나 특수기술 같은 거 없어? 뭐든 좋아!” 그러나 피루는 입안에서 트림 비슷한 소리를 낼 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누워 있을 뿐이었다. 촤아아아아아! 그사이 기계 성녀가 네옴을 이용해 바위나 구조물 따위를 뜯어내 하늘로 띄우고 있었다. 상황 파악을 마친 시몬이 식겁하며 달려와 피루를 안고 달리기 시작했고, 온갖 파편들이 시몬을 향해 쏟아졌다. 쿠쿠쿠쿠쿵! 콰콰콰쾅! “저기……! 그렇게 많이 먹은 신성으로 뭔가 못 하는 거야?” -피루루! 시몬은 여전히 느긋한 피루를 품에 안고 정신없이 첨탑 아래로 내달렸다. 그리고 기계 성녀는 이제 말라붙은 원류의 첨탑을 향해 다가왔다. [새로운 계획 정립 완료.] 기계 성녀가 손을 뻗자, 네옴을 일으키는 거대 성물인 원류의 첨탑의 몸체가 초콜릿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깨에 매달려 그 모습을 보던 라이카 로버트가 경악했다. “가, 갑자기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성녀님!” [원류의 첨탑의 기능 악화. 네옴을 빼앗는 생물체 발견. 도시를 위한 원류의 첨탑 재배열 재구축 개시.] 성물 전체가 녹아내리면서 형태가 바뀌기 시작한다. 놀란 라이카 로버트가 제 머리카락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이건 너무 무모합니다! 강제로 형태를 바꿨다간 성물의 작동이 멈출지도 모른다구요! 사람이 몇천 명이 죽든 상관없지만 원류의 첨탑은 무사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기존 ‘뉴 오더’ 계획 해제. 새로운 계획 ‘뉴 월드’ 수립.] 그 말을 들은 라이카 로버트의 눈이 부릅떠졌다. “감히 누구 맘대로 그런 결정을……!” 터엉! 총성과 함께 그의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기계 성녀의 몸에서 형성된 총구가 네옴 탄환을 발사한 것이다. 라이카 로버트가 말을 채 잇지 못한 채 피를 뿌리며 지상으로 낙하했다. [1급 관리자 라이카 로버트. 비합리적 결정 남발.] 지상으로 떨어지며 기계 성녀를 올려다보는 라이카의 허망한 눈과, 차가운 기계 성녀의 눈동자의 시선이 맞닿았다. [그를 도시의 오류로 판단. 오류 제거.] 기어코 본인을 만든 창조자까지 제거한 기계 성녀가 다시 첨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원류의 첨탑 전체가 점점 빠르게 녹아내렸다. “기계가 라이카 로버트를 죽였어! 시스템이 폭주한다!” “무슨 짓을 하는진 몰라도 막아!” 콰콰콰! 원류의 첨탑에 손을 대는 걸 보고, 엑스머스와 빈트로드가 이끄는 이렌 측 군중들은 물론, 라이카 로버트를 따르는 시청 병력까지 기계 성녀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네옴 무기의 화력은 기계 성녀에게 닿기 전에 방향이 틀어지고, 그나마 닿은 공격은 그녀가 펼친 방어막에 허무하게 튕겨 나갈 뿐이었다. [도시 전체 중대한 오류. 복구 불능 상태 판단.]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첨탑 주위로 지진이 일어나며 지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강물이 철썩이며 물보라가 쳤다. [뉴 오더 계획은 실패. 도시를 리셋하고 오류 없는 새로운 도시의 건립을 시작합니다.] 갈라진 지면 아래에서부터 네옴 연기가 끊임없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지하세계에서 흘러나온 최악의 오염 기체를 지상으로 끌고 온 것이다. “제기랄! 피해!” 오염된 네옴의 회오리가 기계 성녀를 중심으로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회오리에 닿은 건물은 금이 가며 무너져 내렸고, 금속마저도 찢어졌다. 사람들은 등을 돌려 풍력의 중심으로부터 급히 도망쳤다. 회오리가 지나간 자리엔 황무지와도 같은 흔적만이 남았다. 비로소 주위가 조용해지자 기계 성녀가 다시금 작업에 집중했다. 어느새 원류의 첨탑은 큼지막한 구슬의 형태로 변해 있었다. 기계 성녀가 힘을 사용해 이 구슬의 크기를 더더욱 압축해 나갔다. [형태 변환 성공적.] 주륵- 구슬의 끝에서 네옴이 방울처럼 똑똑 떨어져 나왔다. [기능 구현 성공적. 네옴 증식 효과 30% 재현.] 덜컹! 기계 성녀의 몸체가 열렸다. [충분. 더 월드 계획의 동력으로 사용.] 서서히 구슬이 움직여 기계 성녀의 내부로 빨려 들어가려는 찰나. 후콰아아아아악! 휘몰아치는 오염된 네옴의 회오리를 뚫고, 성령들에 올라탄 하미엘이 이렌과 함께 들이닥쳤다. “절대!” 이렌이 충혈된 눈으로 팔을 쭉 뻗었다. “그렇게는 못 한다!” 이렌의 손바닥이 기계 성녀의 몸체를 붙잡았고, 네옴으로 이루어진 기계 성녀의 몸이 절반 가까이 무너져 내리며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드러난 내부에는 빼앗겼던 ‘성녀의 정수’가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렌이 그 정수를 향해 힘껏 팔을 뻗었다. “필요 없다고 해서 미안해!” 그녀가 외쳤다. “나는 네가 필요하다! 사람들을 지킬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퍼어어어어억! 그러나 그녀의 손이 닿기 직전, 기계 성녀의 금속 팔이 이렌의 머리를 강타했다. 핏물이 거세게 튀어 오르고, 이렌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성녀님!” 하미엘이 손을 쓰려고 했지만 그녀도 네옴 탄환에 허리를 꿰뚫렸다. 두 사람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지상으로 추락해 갔다. [회복 작업 시작.] 일순 몸체에서 드러나 버린 성녀의 정수 또한, 빠르게 네옴이 복구되어 덮여 나갔다. 그 모습을 흐릿해진 시야로 올려다보던 하미엘이 힘겹게 말했다. “……뒤를 부탁합니다.” 콰르르르르릉! 하얀 번개가 하늘을 갈랐다. 신체 복구에 집중하고 있던 기계 성녀의 후방으로 시몬의 신수 전차가 들이닥쳤고, 정확한 타이밍에 전차에서 뛰어내린 시몬이 손을 뻗었다. ‘닿아라!’ 예상할 수 없는 타이밍의 접근. 기계 성녀도 이번만큼은 대처하지 못했다. 마침내 시몬의 손끝이 성녀의 정수를 건드렸고. “!” 완벽한 새하얀 공간이 펼쳐지는 것을 시몬은 자각했다. 다섯 개의 하얀 왕좌. 그리고 가장 끝에. 샤아아아아아- 파도 같은 유체의 흐름이 조각된 여섯 번째 왕좌가 탄생하는 것을 확실히 보았다. 탓! 이내 정수에 닿았던 시몬의 몸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리 없는 기계 성녀는, 시몬이 덤벼들지 않자 자신의 신체 복구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아칼리온! 이쪽이야!” 멀리 앞으로 나아갔던 아칼리온의 전차가 다시 방향을 선회해 시몬 쪽으로 다가왔다. 자유낙하하던 시몬이 훌쩍 오른손으로 전차를 붙잡았고, 전차가 속도를 늦추며 아래로 내려가 하미엘과 이렌까지 태웠다. 그렇게 황량한 황무지가 된 벌판에 전차가 안착했다. “치료부터 하겠습니다!” 하미엘이 기절한 이렌을 바닥에 눕히고 치유마법을 걸면서 자신의 상처도 치유했다.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이렌 성녀님은?” “살아 계십니다! 시온 형제님은 괜찮으세요?” 스으.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계 성녀를 바라보았다. “응, 물론이야.” 철컥! 자신의 몸을 복구한 기계 성녀가 자신의 앞쪽으로 무수히 많은 포대를 만들어냈다. [최중대 오류 제거.]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늘에서 쏟아진 네옴의 섬광이 모든 것을 불태우고 황폐화시킬 기세로 내려왔다. 주위의 하늘을 강렬한 녹황색으로 만드는 위력에 하미엘이 몸을 움츠렸으나, 시몬은 태연히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슥. 단지 손짓 한 번. 그것으로. “!” 그 거대한 공격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자리를 뒤덮은 것은 고요한 황금빛 공기뿐이었다. 휘이이이이이잉! 흔들리는 시몬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탈색되어 찬란한 빛을 발했다. 황금빛으로 변한 눈동자는 헤아릴 수 없는 진리가 번뜩이는 듯했으며, 몸을 감싸고 있던 흙 묻은 옷은 성스러운 빛에 불타올라 사라지고, 그 자리에 황금과 백색의 무늬가 새겨진 성자의 예복이 자리 잡았다. 스스스- 주위의 공기와 세계의 섭리마저 바뀌고 있다. 이번엔 기계 성녀가 오염된 네옴을 날려 보냈으나, 그마저도 시몬의 손짓 한 번에 정화되어 사라졌다. 시몬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빛의 물결이 네옴 공격을 가볍게 집어삼킨 것이다. 삐리릭. 삐릭. 기계 성녀는 그 모습을 분석하려 했지만, 그녀의 판단 체계는 혼란 속에 빠졌다. [그 힘은 2급 관리자 이렌과 같은 권능. 불가능한 일. 불가능한 상태.] “불가능이란 없어. 혹시나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면 충고하나 하지.” 샤아아아아아아아- 성자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여, 이제는 백발이 된 시몬이 미소 지었다. “사람이 하는 일에 한계를 정해두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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