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34화 모든 게 새까맣다. 어둠 속에서 발밑이 꺼지며 쑤욱 떨어지는 감각에, 시몬은 아찔함과 두통을 느꼈다. 카드에 들어온 지 10분은 지난 것 같은데, 이 어둠은 언제까지 지속되는 걸까. [1명 공성팀 입장.] [수성팀 (15/15) 전원 입장.] [공성팀 (15/15) 전원 입장.] '!' 드디어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공성팀도 모두 들어온 것 같았다. [당신은 수성팀입니다.] [아온 왕국의 '가디언'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 가디언이 된 것도 좋지만, 시몬에게는 언제쯤 이 멀미 나는 상황이 끝날지가 가장 중요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그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그 하얗고 가느다란 손이 시몬의 손을 붙잡아서 끌어당겼다. -이쪽이야. 멍충아. 어둠 속에서 하늘색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게 보인다. 시몬은 홀린 듯이 그 손을 붙잡고 반대쪽으로 넘어갔다. 휘이이이이잉! 눈 부신 햇살이 망막을 두들기고 찬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든다. 어둠 속에서 벗어난 시몬이 처음 본 광경은, 주위에 펼쳐진 하늘과 같은 머리색의 아름다운 소녀였다. "가자, 시몬!" 메이린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 옆에는 물방울에 들어간 딕이 팔로 뒷머리를 받친 채 와하하! 웃고 있었다. "네가 딱 15명째였어! 아슬아슬했지만 결과적으로 신호탄 작전 대성공이고!" 주위를 둘러보니 투명한 방울에 둘러싸인 다른 학생들이 보인다. 시몬 본인까지 포함해 15명. 이들 모두가 수성팀이었다. "출발!" 물방울이 깨지며 15명의 소년 소녀들이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그의 아래로 보이는 광경은 탑처럼 우뚝 솟아 있는 커다란 성이었다. 딕이 칠판에 그렸던 바로 그 성이 완전한 모습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토해냈다. 그러고는 기분 좋게 하하! 웃었다. "아직 애라니까." 메이린이 작게 웃음을 흘렸다. 이내 낙하속도가 멈추며 15명의 수성팀 모두 성의 꼭대기에 안착했다. 오래된 벽돌 냄새가 났고, 가끔 화약 냄새 같은 것도 났다. 곳곳에서 인기척은 느껴졌지만, 주위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곧 전쟁이 벌어질 장소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보다 이 세계의 주민들은 인간이 아니었네.' 모두 수인이었다. 쥐의 귀와 꼬리가 달린 '쥐 인간'들. 물론 렛맨 같은 몬스터에 비할 바는 아니다. '엔돌라스 보드빌도 참 동물을 좋아한단 말이야.' 이 종족은 다 자란 어른도 시몬의 허리쯤 왔다. 손에 든 무기도 짧고, 사는 집도 작다. 이들은 긴장한 얼굴로 성 내부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화살통을 떨어뜨려서 선임에게 한 소리 듣는 병사,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소년병과, 얼굴에 기름 떼가 가득한 노인까지. 사소한 장면 하나하나도 세심하게 살아 있다. 너무나도 실감 나는 이 광경들은, 진짜로 전쟁의 현장 한복판에 뚝 떨어진 기분을 느끼게 했다. "어, 캐롯!" "미리! 오랜만이야!" 한편 학생들은 아는 사이끼리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시몬도 혹시나 아는 사람이 있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아!" 딱 한 명, 눈에 익은 안경남이 보였다. "피츠제럴드!" 같은 '돌연변이' 동아리 동기인 피츠제럴드였다. 그는 이런 와중에도 한 손에 책을 들고 있는, 활자 중독자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시몬." 그가 손에 든 「허세가 쏘아 올린 작은 공」라는 책을 탁 덮고는 다가왔다. 두 사람이 가볍게 악수했다. "반가워! 다행히 같은 팀이네?" "어어." 주위에 아는 지인이 없는 메이린은 뒷짐을 지고 시몬의 옆을 기웃거렸다. "아는 애야?" "응." 시몬이 뒤로 한 발짝 물러나 두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메이린 빌렌느야, 상아탑 소속이고. 그리고 이쪽은 피츠제럴드라고 해. 성은......." "잉겔스." 피츠제럴드의 툭 내뱉는 대꾸에 메이린의 눈이 커졌다. "잉겔스? 그 잉겔스 가문이야?" 메이린이 반응하는 걸 보니 대단한 가문 같아 보였다. 두 사람이 기품있게 손을 맞잡았다. "오랜만에 보는 빵빵한 집안이네." "상아탑의 빌렌느만 하나." 두 고위귀족 자제들이 손을 맞잡고 있는 가운데, 딕이 옆에서 휙 끼어들었다. "잘 부탁한다! 나는 딕 헤이워드라고 해!" 메이린이 인상을 찡그렸다. "넌 빠져 평민! 격 떨어지니까." "격 어쩌고 하기엔 귀족 영애도 입에 뭐 질질 흘리면서 먹는 건 다 똑같더만." "내, 내가 언제!!" 그렇게 학생들이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긴장감을 풀고 있는 때에, 왕궁의 문이 열리며 갑옷을 입은 대머리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여기 있는 사람들처럼 쥐 수인이었다. "찍찍! 가디언 여러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딕이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했다. "와! 요몽 아저씨! 안녕하세요!" 거의 동네 아저씨에게 인사하는 투였다. 요몽이라고 불린 남자의 눈이 커졌다. "찌, 찌익? 아직 소개도 안 했는데. 제 이름을 어떻게......." "아! 말 안 했나? 사실 저는 초능력자거든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어디 다음 대사도 한번 읊어볼까?" 딕이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찍찍! 폐하께서 가디언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시니 궁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 아, 아니. 대체 어떻게!" 메이린이 딕의 귀를 잡아당겼다. "부끄럽게 주접떨지 마 쫌!" "아! 아악! 귀 떨어지겠어!"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을 보며, 피츠제럴드는 눈을 끔뻑였다. "싸움?" 시몬이 쓴웃음을 흘렸다. "......원래 우리 조가 좀 이런 분위기야."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15명의 학생들은 요몽의 안내를 받아 무사히 왕성으로 들어왔다. 한 왕국의 궁전답게 상당히 컸다. 중앙 홀만 해도 수인 몇천 명은 넉넉하게 수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민간인들도 왕궁 안에 있네.' 여자와 아이들이 쪼르르 뛰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곳곳에서 배식이 이뤄지고 있었다. "찌익. 이쪽입니다." 그리고 이 커다란 왕궁의 왕좌에 앉아 있는 인자한 인상의 수인. 다른 주민들처럼 쥐의 귀가 달려 있고 그 아래에 왕관을 쓰고 있었다. "찍찍! 어서 오시오! 정의로운 가디언들이여!" 왕좌에서 일어난 왕이 큰 소리로 반겨주었다. 배식을 받던 주민들도 이쪽을 보고는 환호를 보냈다. "그대들의 등장은 예언에 따른 것! 왕국의 모든 백성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었소!" 아까부터 계속 언급되던 '가디언'은, 학생들이 수인들이 섬기는 창조주가 내려보낸 이계의 용사들이라는 설정이었다. 가디언들은 모두 적법한 지휘관으로서 왕의 이름으로 병사들을 통솔 할 수 있게 해두었다. 병사들도 모두 가디언을 따를 것이라고 한다. 시몬은 귀로 왕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시선은 주민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들은 배식을 받고 왕좌가 있는 벽 뒤편으로 가고 있었다. 메이린도 그게 궁금했는지 손을 들었다. "폐하. 저기 주민들은 왜 왕궁에 있는 거예요?" "찍찍! 짐이 직접 보여주겠소!" 왕이 학생들을 데리고 왕좌의 뒤편으로 데려갔다. 우글 우글 우글 우글! 왕좌의 뒤편에는 검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지하 공간이 나왔다. 그 안에는 노인들과 여자들,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흑요석 동굴이오. 찍찍." 왕이 친히 설명해 주었다. "왕국이 들어서기 전부터 존재하던 곳이지. 이 아온 성이 깎아지른 듯 경사지고 높은 이유도, 산맥과 흑요석 광산 위에 성을 지어서 그렇다오." 얼마나 깊고 넓은지 아래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층층마다 민간인들이 몸을 움츠리고 앉아 있었다. 시몬은 홀로 걸어가 그 암석을 툭툭 손등으로 두들겨 보았다. "여기 안전한 건가요? 전투가 벌어지면 무너질 염려가 있어 보이는데." "찍찍. 걱정 마시오. 흑요석 광산은 외부의 충격에 극도로 튼튼해서 이 왕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요. 설령 성 전체가 무너진다고 해도 광산 안 만큼은 안전하지."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에서의 흑요석 설정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흑요석은 고강도의 광물로 이름 높았다. 이번엔 다른 학생이 손을 들었다. "혹시 적국이 광산에 침입해서 왕국으로 올라오면 어쩌죠?" "찍찍. 그럴 염려는 없소! 광산에 있는 유일한 입구가 바로 이곳. 성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왕궁이니. 그게 바로 짐이 민간인들을 광산으로 모이게 한 이유요." 왕이 지엄한 목소리로 가슴에 손을 올렸다. "짐은 이 왕좌에서 죽을 생각이오. 절대 국민들을 방패로 목숨을 건사하진 않을 것이오." "......폐하." 메이린이 살짝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딕이 엄지손가락을 척 세웠다. "놈들이 여기까지 올 걱정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찍! 물론이오. 이제 몇 시간 내로 사악한 칼 왕국이 공격해 올 것이오. 놈들은 우리의 영토를 약탈하고 유린하며 오고 있소. 남은 건 이곳 수도뿐이오. 전 국민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태세를 마쳤소." 국왕이 학생들을 보며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부디 병사들을 이끌고 적을 막아주시오. 오늘 하루, 아니, 반나절만 버티면 지원군이 올 것이오! 찍찍!" 딕이 대표로 가슴을 탕 치며 말했다. "저희만 믿으시죠!" * * * 병력 차는 절대적이다. 2천 대 2만. 무려 10배의 전력 차다. 물론 이쪽은 성을 끼고 있지만, 대충 훑어봐도 느낄 수 있듯, 이 낡고 오래된 성은 견고한 요새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인들의 작은 팔다리로 만들어서 그런지 성 자체의 크기도 작고, 성문은 너덜너덜하며, 성벽의 높이도 낮다. 물론 쥐 수인들의 입장에선 적당한 크기의 성벽이겠지만, 네크로맨서들은 칠흑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올라올 수 있을 정도다. 거의 무조건 수성이 밀리게 되어 있는 세팅이지만, 시간만큼은 수성의 편이다. 계속 공성전 테마를 해온 딕은 아온 왕국의 승리와 칼 왕국의 승리 두 쪽 모두 경험해 봤고, 그 결말도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힘겹게 버티다가 아온 왕국의 지원군이 도착하면 수성 측의 승리. 그전에 성이 함락당하고 왕이 전사하면 칼 왕국의 승리다. "그럼 여기서 흩어지자!" 왕궁에서 벗어난 학생들은 일단 성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면서 포인트들을 점검하고, 두 시간 뒤에 다시 모이기로 했다. "매 게임마다 성의 구조나 물자, 식량 상태 등이 계속 바뀌거든. 수시로 체크해 봐야 해." 어떨 때는 대형 투석기가 있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성문에 바르는 강화액이나 움직이는 방어탑, 하늘을 나는 말 등이 있다고 했다. 시몬은 홀로 성을 둘러보기로 했다. 딕도 동의하고는 체크포인트를 알려주었다. 왕성에서 내려와 성벽 쪽을 체크하고, 그 길에 물자창고도 들러보라고 했다. 시몬은 홀로 성의 계단을 내려가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광산과 산맥 위에 지은 성인 만큼, 지상이 까마득하게 보였고 경사도 장난이 아니었다. 방어하는 입장에선 좋지만, 이 정도면 일상생활하다가 떨어져 죽은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아, 찾았다! 물자창고.' 시몬은 어렵지 않게 중요 체크포인트인 창고를 찾아내 안으로 들어갔다. 딕이 이곳의 물자들은 모두 쓰기 나름이라고 했다. 시몬은 쓸 만한 게 뭐가 있을지 뒤적거려 보았다. "아저씨, 이게 뭐예요?" 시몬이 상자에 나무열매처럼 생긴 까만 공을 들어 올렸다. 창고지기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기름열매입니다 가디언님! 안에 식물성 기름이 들어 있어서 깨트리고 불을 붙이면 활활 잘 타죠. 남은 물량은 가디언님이 가져가셔도 괜찮습니다!" "그래요?" 시몬은 그것을 아공간에 챙겨넣으며 미소 지었다. '이번 스켈레톤 메이지는 화염속성으로 가야겠다.' 첫 스켈레톤 메이지를 만들고 오늘, 3차 BMAT까지는 일주일 가까이 되는 시간이 있었다. 그사이에 시몬의 소환마법 실력도 비약적으로 늘었다. "전부 나와." 아공간이 열리고, 여덟 기의 스켈레톤 메이지들이 시몬의 앞에 부복했다. 시몬이 마법진을 펼쳤다. 우웅! 첫 번째 마법진. 우웅! 우웅! 우웅!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마법진. 시몬은 손가락을 움직여가며 허공에 띄워놓은 마법진들을 능숙하게 컨트롤했다. 마법진들이 각기 다른 수치들을 시몬의 앞에 출력하고 있다. <시몬 오리지널 - 마기브 시스템> 당연히 모티브는 소환학 수업에서 본 마기스테 시스템. 이내 시몬의 몸에서 흘러나온 클라우드가 마치 연결선처럼 죽 늘어지며 중앙의 마법진과 여덟 기의 스켈레톤 메이지들의 두개골을 연결한다. 현재 스켈레톤 메이지의 등록 기술은 칠흑빙결계의 '콜드 볼트'. "칠흑화염계의 '다크 블레이즈'로 변경한다." 시몬이 중앙의 마법진을 조작하자, 동시에 스켈레톤 메이지의 두개골에 새겨진 마법진들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본래 스켈레톤 메이지의 등록 마법을 변경하는 건 극도로 까다로운 작업이었지만, 시몬에게는 '클라우드'가 있었다. 이를 이용해 중앙 마법진의 구성을 스켈레톤 메이지들에게 간단히 덧씌울 수 있었다. 우우웅! "적용 완료." 시몬이 마법진과 클라우드를 꺼트렸다. 대표로 한 녀석에게만 시켜보기로 했다. "다크 블레이즈." 처억! 임의로 선택한 스켈레톤 메이지가 들어 올린 지팡이에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그 위로 화염이 일렁였다. 시몬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자." 처억! 척! 척! 시몬이 앞장서서 걷고, 지팡이를 든 언데드 마법사들이 뒤따랐다. 그 모습을 본 수인 병사들이 술렁거렸다. "......무, 무섭다 찍." "찍찍! 그래도 가디언은 아군이니까 다행이다." 시몬은 그들이 너무 놀라지 않도록 스켈레톤 메이지들을 줄을 세워 따라오게 했다. '기왕 이렇게 하게 된 거.' 그가 각오를 다지듯 성을 바라보았다. '반드시 아온 왕국이 승리하게 만들고, 최고 경품까지 따내겠어.'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