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50화 시몬과 레테는 탐정 사무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성난 시위대에 몇 번이고 휘말릴 뻔했다. 억누르고 참아왔던 감정이 일거에 폭발한 시민들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쏟아냈고, 모든 것을 부수거나 불태우고 있었다. 거리는 불길에 휩싸였고 상가들은 온통 유리창이 깨져 있었다. “다행히.” 시몬이 가슴에 손을 얹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리 탐정 사무소는 멀쩡하네.” “……그러네요. 왜 그럴까요?” 바로 옆의 식료품 가게는 물론 반대편 동네의 탐정 사무소도 약탈당했지만, 시몬과 레테의 사무소만큼은 멀쩡했다. 레테가 사무소를 향해 손을 뻗어보자, 허공이 출렁이며 네옴의 막 같은 것이 펼쳐져 있었다. 알고 보니 사무소 유리에 네옴 아티팩트 장비가 붙어있었다. “우리 이런 거 설치해 둔 적 없었죠?” “그렇…… 지?” 시몬이 가까이 걸어가 보니 네옴 아티팩트에서 삐빅! 하는 알림음이 들렸다. [거주자 확인. 보안이 해제되었습니다.] 그 말과 함께 막이 사라졌다. 시몬이 다가가 유리창에 부착된 장비를 뜯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장비 뒤에 귀여운 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소르엘라의 솜씨일까?’ 시몬은 손에 든 장비를 내리고는 닫힌 사무소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레테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왜 그러심까?” “소르엘라는…….” 잠시 망설이던 시몬이 말을 이었다. “떠났겠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시몬은 그녀가 진작에 떠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수요? 글쎄요. 여기 말고 어디 갈 데가 있을까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시몬이 이내 고개를 들고 열쇠를 문에 꽂았다. 달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적막에 잠긴 듯 사무실은 조용했다. “소르엘라! 있어?”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시몬은 작게 한숨을 쉬며 천장에 달린 네옴 조명을 켜려고 했으나. 달칵. 달칵. 버튼 소리나 날 뿐, 역시나 도시 모든 네옴의 공급이 끊긴 듯 켜지지 않았다. 털썩. 촛불을 켜서 테이블에 올려둔 시몬과 레테가 잠시 소파에 앉아 적막 속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래도 우리 사무소는 지켜주고 떠났네.’ 잠시 멍하니 그렇게 생각하던 시몬이 고개를 돌려 레테를 바라보았다. “오늘 새벽에 바로 로버트사로 출발할 거야.” “네, 당신도 눈 좀 붙여두…… 아?” 레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몬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 “저기!” 떠났다고 생각했던 소르엘라가 커다란 여행 배낭을 짊어진 채 2층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시몬이 뛰어갔다. “소르엘라! 아직 있었구나!” “탐정들은 만났나?” 그렇게 묻는 소르엘라는 갑자기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심정에 변화가 있었는지, 어딘가 표정이 결연해 보이기도 했다. 시몬이 속으로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응.” “결론은?” “……로버트사가 흑막이야. 그들이 모든 걸 꾸미고 있었어.”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럼 갈 건가? 로버트사.” “그래. 시위의 기세가 꺾이는 새벽에 출발할 생각이야.” 그 말에 그녀가 쿵 소리가 나게 여행 배낭을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소파에 앉았다. “나도 같이 가겠다.” “괘, 괜찮겠어? 위험할 텐데.” “나도 신성 사용자고 네옴 아티팩트에 능통한 엔지니어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장치를 작동시키자, 삐빅 소리와 함께 방의 조명이 다시 켜졌다. 동시에 위잉- 하고 원통형의 네옴 기계들이 돌아다니며 주위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청소하는 모습이 보였다. “본사에 간다면 방해는 안 될 거다.” “그럼요.” 레테가 소르엘라를 끌어안더니 무릎에 머리를 뉘여놓고는 머리를 쓰담쓰담했다. “당신도 우리 조수인 걸요 소르엘라. 같이 가요.” “…….” 그 말에 소르엘라도 안심한 듯 눈을 감는 모습이었다. 시몬도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잠깐의 적막. 잠깐의 평화.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다. 밤이 가장 깊어지고, 여기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세 사람은 결전을 위해 로버트사로 향할 것이다. 잠시 이렇게 머리를 비우고 숨을 돌릴 시간이 필요했다. * * * 소르엘라는 금방 곯아떨어졌고, 레테도 지쳤는지 눈을 감았다. 시몬만이 뜬눈으로 사무소를 지키고 있는데. 쿵쿵쿵! 갑자기 사무소 문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졸고 있던 레테가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소르엘라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문밖에 클로즈 팻말 걸어놨는데.” 시몬이 말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찾아올 손님도 없슴다.” 레테도 덧붙였다. 갑자기 다시금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팽팽해졌다. 시몬이 신성 목걸이에 손을 올렸고, 레테가 결계를 펼칠 준비를 했다. 유리창 너머로는 밖에 누가 있는지 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누구세요?” 시몬이 긴장하며 묻는 순간, 갑자기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다시 뵙겠습니다!” 빰바라밤! 하얀 식탁보를 뒤집어쓰고 나팔을 든 정령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그 너머로 신도복을 입은 소녀가 당당히 사무소로 들어와 탁 하고 발을 디디며 경례 자세를 취했다. “소관 천사의 성악대 하미엘! 다르블렝 임무에 합류했습니다!” “하미엘!” 너무나 반가운 얼굴이었다. 시몬과 레테가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고, 하미엘이 헤헤 웃었다. “소관이 말했지 않습니까! 일 끝나는 대로 바로 합류하겠다고요!” “다행이다. 이스라필 이모는?” “준비 만전입니다! 이제 다르블렝 일만 잘 해결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녀가 사무소 밖 유리창으로 불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듣던 대로 상황이 좀 심각해 보이네요.” * * * 하미엘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몬이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들려주는 사이 소르엘라는 완전히 잠들어 버렸고, 레테가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2층의 편안한 침대에 옮겨다 주었다. 이후 하미엘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녀는 성난 군중들이 역까지 들이닥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도시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 후엔 다르블렝 내부에 있는 성녀의 정수 연구소부터 먼저 들렀는데, 이미 시위대가 근처에 바글거려서 들어갈 수 없었고, 결국 시몬과 레테가 있는 사무소로 온 것이다. “그나마 핵심 자료들은 연구소 본부로 옮겨둬서 다행입니다! 입구는 결계로 막아놨으니 사람들에게 뚫릴 일도 없을 거예요.” 하미엘의 말을 들은 시몬이 놀라며 물었다. “다르블렝에도 성녀의 정수 연구소가 있었어?” “네! 부속 연구소긴 하지만요. 다르블렝의 ‘네옴’은 성녀들의 힘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신비로운 힘이잖아요? 이스라필 님도 정수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곳에 부속 연구소를 마련하신 겁니다!” 하미엘이 말을 멈추고 손으로 턱을 짚었다. “그런데 소식통에 의하면…… 근래 로버트사에서 연구소에 은밀하게 접근해 왔었다고 하네요! 혹시 성녀의 정수에 대한 데이터가 있다면 협조를 부탁한다고, 막대한 지원금까지 주면서 회유하려고 했답니다!” 이건 또 의외의 사태였다. 로버트사가 성녀의 정수에 관심이 있었다니! 시몬이 고개를 쭉 빼 밀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요청을 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스라필 성녀님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셨는지, 모으고 있던 자료를 전부 본부 연구소로 빼돌렸죠. 로버트사는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을 거예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테가 손뼉을 짝 쳤다. “다행임다. 그럼 정수 연구소에서는 네옴에 대한 비밀을 풀어냈어요?” “으음, 비밀을 풀어냈다기보다는 규칙성을 발견한 정도라고나 할까요.” “지금까지 알아낸 부분이라도 전부 알려줘 하미엘.” 시몬이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성녀 실종 사태, 폭주하는 원류의 첨탑, 음모를 꾸미고 있는 로버트사, 그리고 이번 대규모 시위까지. 나는 이 모든 게 단 하나의 진실에서 비롯된 거라고 믿고 있어.” “일리가 있네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빈 노트를 펼쳤다. “소관도 다르블렝의 성녀 실종 사건이 네옴과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계속 자료를 모으고 있었어요. 천천히 설명해 드릴게요.”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같은 성녀의 정수에 선택받은 전대 성녀와 현대 성녀는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다. 성체의 성녀 리사라의 경우 신체 변신 권능을 가지고 있고, 그 전대 성녀는 머리카락이 길어지는 권능을 가졌다. ‘육체의 강화’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저도 그래요.” 이야기를 듣던 레테가 자신을 가리켰다. “저는 ‘별’이고, 제 전대는 ‘불꽃’이었죠. 화력이라는 공통점이 있슴다.” “좋은 예시 감사합니다! 다르블렝 성녀들도 이 부분은 마찬가지지만, 조금 더 특별해요. 유독 연관성이 강하고 서로 하나의 에너지로 권능이 호환되기도 하죠.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하미엘이 역대 다르블렝 성녀들의 계보를 빠르게 노트에 휘갈겨 썼다. [원류의 성녀 - 네옴의 확장과 증식, 스스로 목숨을 던져 마지막에 원류의 첨탑을 창조.] [금류의 성녀 - 네옴을 굳혀 물질화하는 능력. 마지막에는 원류의 첨탑에 물질화 능력을 부여.] [혼류의 성녀 - 네옴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깃들게 하는 정신체 형성 능력. 마지막에는 원류의 첨탑에 생각하고 사고하는 능력을 부여.] [창류의 성녀 - 네옴으로 크리쳐를 만드는 신성 군단 능력. 원류의 첨탑에 크리쳐를 만드는 능력을 부여.] “다 됐습니다!” 하미엘이 깃펜을 내려놓았다. 팔짱을 낀 채 노트를 내려다보던 레테가 ‘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보니 더더욱 신기하긴 하네요. 성물을 매개체로 성녀들이 힘을 전달하다니. 이렇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경우는 처음 봄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하미엘, 그럼 현재 난류의 성녀님의 권능은 어떤 건데?” “음, 그분은 워낙 다재다능해서 권능의 효과에 대한 여러 설들이 많은데요. 정설을 말하자면-” 그녀가 손끝을 세우며 말을 이었다. “기후를 조종하는 권능!” 시몬은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기존 다르블렝 성녀들의 권능과는 확실히 달라!” “네, 그렇죠! 물론 그분도 같은 정수를 물려받았으니 네옴 자체는 다룰 수 있다고는 해요. 하지만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네옴 자체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하필이면 완전히 별개의 능력을 각성한 성녀. 이것이 원류의 탑이 흔들리는 근본적인 이유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소관은 부속 연구소로 들어가서 조금 더 많은 기록을 확보하려고 해요.”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부탁해. 로버트사 침입은 우리에게 맡기고, 하미엘은 계속 자료를 찾아줬으면 해. 네 정보가 중요하게 쓰일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하미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품을 뒤적거리다가 통신 수정구를 꺼냈다. “소관이 밖에서 정보를 찾으면서 서포트하겠습니다. 힌트를 알아낸다면 바로바로 알려 드릴게요!” 시몬이 그것을 받으며 미소 지었다. “맡겨줘.” 이제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몬은 걸어가서 코트를 겉에 둘러 입었다. “슬슬 로버트사로 출발하자.” * * * 불타는 거리를 지나고, 성난 군중 무리를 피해, 마침내 시몬과 레테, 그리고 소르엘라는 거대한 빌딩 앞에 도착했다. 주위의 건물들은 온통 유리창이 깨지거나 불이 붙어서 엉망이었지만, 로버트사의 건물만큼은 무사했다. 그도 그럴 게. “이게…… 뭐야?” 건물 전체가 하얀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정문이 있는 1층의 입구부터 최정상층까지, 전부 저 흰색 물질로 빈틈없이 덮여 있는 모습이다. 근처의 군중들 몇몇이 저곳에 불을 붙이거나 곡괭이로 부수려 했지만, 금방 시간 낭비란 걸 깨달았는지 돌아갔다. 주위의 건물이나 관공서까지 불타고 있는 가운데, 저 건물만큼은 홀로 우뚝 서서 멀쩡히 다르블렝의 시민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레테가 다가와 벽면을 손으로 살펴보며 말했다. “네옴을 굳혀서 만든 방어벽인가 봄다.” “그러네.” 네옴은 본래 녹황색 액체지만, 형태가 고체로 굳어지면 흰색으로 변했다. 아마도 이건 네옴에 힘을 부여한 ‘금류의 성녀’의 특성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시몬은 추측했다. 그녀는 네옴을 물질화하는 능력을 가졌었다. 개미 한 마리도 통과하지 못할 것 같은 빈틈없는 순백의 직육면체. 주위를 계속 훑어보던 레테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여기 안에 있는 사람들은 괜찮은 걸까요? 공기도 안 통할 것 같은데요.” “뭔가 내부에 조치를 취했겠지.” 시몬이 그녀의 말을 받으며 소르엘라를 바라보았다. “어때? 뚫을 수 있겠어?” 스스로 네옴 아티팩트의 전문가라고 밝힌 그녀가 다가가 검지로 슥슥 표면을 문질러 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응, 충분히.” “좋아.” 시몬이 손뼉을 짝 쳤다. “그럼 계획대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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