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51화 시몬이 소르엘라를 업었고, 레테가 모두에게 축복을 걸었다. 몸을 빠르게 하고 중력의 영향을 덜 받게 하는 종류의 축복이었다. 툭툭. 레테가 벽을 몇 번 오른발로 디뎌보더니, 순식간에 왼발을 떼어내어 벽면에 올리고는 그대로 파밧! 소리와 함께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시몬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두 발로 벽면을 올랐다. “꽉 잡아! 소르엘라!” 타앗! 팟! 시몬과 레테가 절벽을 타는 맹수처럼 빌딩을 오르기 시작했다. 소르엘라는 시몬의 목에 두른 팔에 힘을 주며 몸을 고정했다. 가공할 만한 속도로 빌딩을 올라가니, 시위대의 불길 때문에 흘러내렸던 땀방울이 빠르게 마르고 차가운 바람이 피부에 스쳤다. ‘1층부터 정직하게 차례차례 올라가는 건 시간 낭비야. 외부에서 바로 ‘시장실’이 있는 최상층으로 직행하는 게 최선이지.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빌딩의 표면에서 불쑥불쑥 직사각형 형태의 블록들이 연달아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블록들을 세우고 연달아 그것들을 이어붙이는 듯한 광경. 순식간에 수백 대의 포대가 형성되었다. 이 또한 네옴에 깃든 전대 성녀의 능력이었다. “돌파하겠슴다!” 앞서 달리던 레테가 두 손바닥에 준비해 둔 백마법진을 전면에 펼쳤다. 두 마법진이 겹쳐지며 3차원으로 확장되더니 이내 눈부신 빛의 성벽으로 변했다. <브로데릭 리메이크 - 그레이트 월>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수백 대의 포대가 불을 뿜는다. 허공이 네옴 탄환으로 빼곡하게 뒤덮이며 녹황색으로 물드는 모습은 공포스러울 지경이었지만, 레테는 두 손바닥으로 빛의 성벽을 밀면서 돌진했다. 파바바바박! 성벽이 쏟아지는 공격을 모조리 튕겨냈다. 소르엘라를 업은 시몬은 그 뒤에 바짝 붙어 달렸다. 퍼억! 그런데 갑자기 발밑에 탄환이 떨어졌다. 시몬이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전면뿐만 아니라 후방에서도 표면이 블록 형태로 일어나더니 포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몬이 후방에도 방어마법진을 펼치며 조금 더 버티다가 말했다. “이 정도 올라왔으면 됐어! 소르엘라! 중간층에서 잠입하자!” 그 말을 들은 소르엘라가 시몬의 등 뒤에서 내려왔다. 배낭에서 네옴 아티팩트가 달린 말뚝 같은 것을 꺼내 바닥에 툭툭 꽂았다. 그러고는 탄환이 빗발치는 전장 속에서 집중하듯 두 손을 모으더니 힘껏 하얀 바닥을 짚었다. 꾸르르르르르르르릉! 그녀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그렇게 튼튼했던 네옴 표면이 초콜릿처럼 녹아내렸다. 고체화 상태가 해제된 네옴 방어벽은 다시 녹황색 액체로 돌아갔다. 그렇게 살갗이 모두 벗겨지고, 그 안에는 평범한 건축물의 투박한 외벽이 보였다. “지금이야 레테!” “네!” 레테가 빛의 성벽을 앞으로 걷어차고는 시몬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그녀가 별의 힘을 끌어모아 주먹을 쥐더니, 녹아내린 하얀 벽 안으로 보이는 건물 외벽을 힘껏 강타했다. 투콰아아앙! 육중한 폭음과 함께 외벽이 무너져 내리고 건물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세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우당탕탕! 레테는 소르엘라를 끌어안고, 시몬이 두 사람을 한꺼번에 감싸안았다. 시몬의 등과 팔꿈치가 바닥에 몇 번을 부딪치며 튕겨 나갔다가 멈춰 섰다. ‘사, 살았다.’ 로버트사의 건물 내부까지 무사히 들어왔다. 소르엘라가 일시적으로 녹였던 네옴 표면이 다시 복구되었고, 외부의 소음은 완전히 차단되었다. 온몸에 긴장감이 폭발해서 아픈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레테가 벌떡 상체를 일으키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심까!” “난 괜찮아.” “다 까졌잖아요!” 레테가 얼른 두 손바닥을 내밀어 시몬의 몸 곳곳에 치유마법을 걸어주었다. 그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가는 동안, 소르엘라는 경계하듯 주위를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정말로 네 말대로 됐네, 소르엘라. 방금 어떤 원리로 네옴 벽을 뚫은 거야?” 시몬의 물음에 소르엘라가 태연히 답했다. “내 이능이랑 아티팩트.” 소르엘라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이능 사용자고 신성의 성질을 무효화하는 이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보다 강력한 신성의 효과를 무효화하기는 어려워서, 네옴을 진동시키는 아티팩트를 표면에 연결한 뒤에 이능을 사용했다고. 설명을 들은 시몬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그녀의 말을 전부 믿지는 않았다. ‘정말로 저게 이능일까?’ 소르엘라는 다르블렝에서 자랐다고만 말했을 뿐,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다. 억지로 추궁할 수도 없는 노릇. 다만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로버트사에 깊은 원한을 품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고, 난류의 성녀와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았다. 시몬은 그녀가 어떤 식으로든 이번 일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을 정리한 시몬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음.’ 이곳은 로버트사 본사답게 말끔한 사무실 같은 공간이었다. 책상마다 네옴 장비나 모니터가 놓여 있었고, 여기저기 펜과 서류가 흩어져 있었다. 반쯤 먹다 만 샌드위치나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진 슬리퍼도 보였다. “고마워 레테.” 치료해 준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표한 시몬이 웃차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본격적으로 탐색을 시작했다. 이상할 정도로 정적에 휩싸인 사무실. 의자에 걸어둔 겉옷이라든가, 바닥의 과자 부스러기라든가, 금방이라도 사람들이 돌아올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기분 나쁜 정적만이 이 공간에 맴돌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사람들이 있었어.” 시몬이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샌드위치를 들었다가 놓으며 말했다. 그러다 그 자리에 무릎을 붙이고 몸을 최대한 낮춘 뒤 바닥을 살폈다. “물걸레질을 한 곳 위로 발자국들이 같은 방향으로 나 있네. 누군가의 부름에 이 사무실의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이동한 것 같아.” 타닥. 탁. 소르엘라는 사무실 곳곳에 있는 네옴 장비들을 건드려 보고 있었다. 거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를 연결해 보는 등 여러 시도를 했지만 결국 먹통인지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레테는. “아- 아- 내 말 안 들림까?” 커다란 네옴 기계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었다. “데우스 인 마키나 온라인! 이번엔 왜 반응이 없는 거야?” “……레나.” 시몬이 조용히 말했다. “한 발짝 멀리서 보니까 기계치 같아.” “무슨 소림까!” 레테가 벌게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전에 침입했던 슬래그본 길드에서 이거랑 비슷한 장비를 봤었거든요! 거기서 막 이상한 목소리가 모든 정보를 알려줬다구요!” “그랬구나.” 시몬이 건성으로 대답하자, 레테가 상큼하게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시몬이 얼른 ‘미안!’ 하고 말하며 급하게 사과했다. “모든 장비 오프 상태. 네옴 공급 중단. 이곳에 더 이상의 단서는 없다. 그리고…….” “?” 주위를 둘러보던 소르엘라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자꾸 팔에 소름이 끼친다. 뭔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으음, 알겠어. 대충 다 본 것 같으니까 이동하자.” 사람들의 발자국들은 계단, 그리고 네옴 승강기로 이어져 있었다. 승강기를 타는 건 너무 위험하다는 레테의 의견에, 일단 계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계단을 타고 도착한 바로 위층 사무실도 처음에 본 사무실처럼 텅 비어 있었다. 일단은 계속해서 계단으로 위를 향해 오르고 있는데. “!” 천장이 무너져서 계단으로는 더 올라갈 수 없는 구간이 나왔다. 몇 개 층이 붕괴된 모양이었다. “이제 어쩌지?” 시몬이 중얼거렸다. 레테가 작은 주먹을 꾹 쥐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 부숴 버리고 올라갈까요?” “……위층에 사람이 있으면 어쩌려고. 건물 전체가 붕괴할 위험도 있고, 무엇보다 우리 신성도 아껴야 해. 어떤 적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라.” 그렇게 말한 시몬이 고개를 돌려 네옴 승강기를 바라보았다. 레테가 ‘윽’ 하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타실검까.” “리스크를 짊어져야지.” “갑자기 공격받아서 훅 떨어질 것 같아 무섭다구요.” “떨어져도 네 수호마법이라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야.” 시몬의 설득에 레테가 한숨을 푹 쉬었다. 결국 세 사람은 네옴 승강기 앞에 섰다. 시몬이 상승 버튼을 누르자, 잠시 후 띵 소리와 함께 승강기 문이 그들의 앞에 열렸다. “결계를 펼치겠슴다.” 레테가 먼저 들어가 승강기가 짜부라져도 살 수 있도록 구석구석 신성마법을 펼쳤다. 그 후에 모두가 승강기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이 빌딩은 최대 40층까지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40층 버튼은 비활성화 상태였고, 39층이 최대였다. 시몬이 우선 39층을 눌렀다. 키이이이잉! 모터가 돌아가고 태엽 같은 게 감기는 소리가 잠시 울려 퍼지더니. 덜컹 덜컹! 승강기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한다. 밖은 유리였지만, 하얀 네옴 방어벽 때문에 밖은 보이지 않는다. 시몬은 두 손으로 손잡이를 붙잡은 채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생각보다 쭉쭉 잘 올라가는데?’ 레테가 일일이 층을 부수고 올라가는 것보다 시간을 훨씬 절약하며 상승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최정상층까지 바로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꾸웅! 낙관적인 생각을 하기 무섭게 격렬한 진동과 함께 승강기기 멈췄다. 레테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소르엘라를 감싸고 쪼그려 앉았다. 시몬이 급히 고개를 들었다. ‘위가 막혔어.’ 시몬이 승강기 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여기서부터도 천장 일부가 무너지고 레일이 뒤틀려서 네옴 승강기가 더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 승강기 밖에 적힌 숫자를 확인해 보니 30층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계단으로 올라가자.” 결국 시몬은 두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30층의 사무실도 다른 층과 별다를 것 없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 레테가 입을 감싸며 다른 한 손으로는 소르엘라의 눈을 가렸다. 시몬의 동공도 격렬히 흔들리고 있었다. 이 30층의 사무실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바닥과 벽에는 피가 묻은 손자국이 가득했고, 곳곳에 직원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시몬이 침을 꿀꺽 삼키고 걸어가 시체를 자세히 살폈다. “총상이야. 그것도 네옴 탄환.” “누군가 들이닥쳐서 사람들을 학살한 것 같슴다.” 레테가 굳은 얼굴로 시몬을 보았다. “성난 군중들이 벌인 짓일까요?” “겉으론 그렇게 보이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시몬이 바닥에 떨어진 탄환의 흔적을 살폈다. “밖에서 흔히 사람들이 쓰던 네옴 라이플과는 규격이 달라. 이건 오히려 우리가 빌딩을 올라왔을 때 공격당한 그 탄환에 가까워.” 흠칫! 그때 소르엘라가 소름 끼친다는 듯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레테가 급히 말했다. “소르엘라! 왜 그러심까?” “……저쪽.” 소르엘라의 손이 한쪽을 가리켰다. 주르르르륵- 사무실의 천장의 틈에서 점성 있는 녹황색의 액체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층 전체를 뒤덮을 듯 다량으로 쏟아져 내리더니, 서서히 굳어지며 하얀 팔의 형태를 만들었다. 그 팔이 천장을 붙들고는― 꾸드드드드득! 그대로 잡아 뜯어 위층으로 향하는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이내 구멍 위로 거대한 눈알이 내려와 세 사람을 살폈다. [생존자 발견.] 기계적인 음성이 울려 퍼졌다. [본사 사원은 1분 안에 자살 요청. 그러지 않을 경우 전원 사살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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