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48화 탐정들, 그리고 시몬과 레테는 빠르게 주위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언제 공포스러운 분위기였냐는 듯, 공장은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시몬은 아까 본 광경에 대한 여운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저 크리쳐들이 돌변해서 빨간 화면을 띄울 것 같다는 예감이 불쑥불쑥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됐다. ‘집중하자.’ 시몬이 제 뺨을 짝짝 가볍게 때렸다. ‘일단 그 상황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을지 생각해 보는 거야. 가장 극단적인 건 성녀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 하지만 그 예상은 바로 머릿속에서 지웠다. 이 도시에 와서 성녀의 정수를 몇 번이나 느꼈으니까. 난류의 성녀는 분명히 살아 있다. 그렇다면 성녀의 다음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시몬이 고심하고 있는데, 옆에서 단서를 찾으러 주변을 뒤적거리는 레테의 뒷모습이 보였다. “저기, 레테.” “네에.” 사실 같은 성녀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네가 난류의 성녀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어떻게 하긴요.” 그녀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힘으로 모조리 박살 내버렸겠죠.” “……하하.” 레테다운 답변이었다. 시몬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그녀가 스윽 팔을 내렸다. “뭐,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면 글쎄요. 제가 이렌 성녀님의 입장이고, 그런 폭력적인 수단을 쓰는 게 아니라면…….” 그녀는 한참을 생각한 끝에 고개를 갸웃했다. “다 포기하고 싶지 않겠슴까?” “응?” “결국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녀로 선택받아 버려서 이런 일들을 겪은 거잖아요. 저라면 이제 성녀고 뭐고 지긋지긋할 것 같슴다. 모든 걸 포기하고 어딘가로 도망치듯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모든 걸 포기한다. 시몬은 그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린 채 다시 물었다. “하지만 성녀의 정수를 자기 마음대로 넣었다 뺐다 할 수는 없잖아?” “당연히 그렇죠. 최근에야 이스라필 님 연구소를 중심으로 그쪽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다른 성녀들은 제대로 된 방법을 모르겠죠. 난류의 성녀가 그쪽으로 협조를 구해왔다면 이스라필 님도 아셨을 거예요.”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듯한 추측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은 여기까지, 이제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수색을 재개할 때였다. 두 사람은 단서를 찾아 공장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여긴…….’ 아직 공장화가 되지 않은 공간 같았다. 뭔가 새로운 공정을 구축해 보려고 했다가, 장비 몇 대만 들여놓고 잊은 채 방치된 느낌이다. “라이트.” 시몬은 손바닥 위로 불빛을 만들어낸 다음, 성큼성큼 걸어가며 바닥을 관찰했다. 바닥의 표면이 비교적 깨끗했는데 한쪽만 찌그러진 흔적이 보였다. ‘위에서 뭔가가 떨어진 흔적이네.’ 라이트 마법을 위로 띄워보았지만 위는 까마득하게 높았다. 어딘가로 연결된 것 같았다. 우선 시몬은 라이트 마법을 허공에 유지한 채, 무릎을 굽혀 천천히 그 텅 빈 곳으로 손바닥을 대보았다. “!” 일순. 주위가 새하얗게 변했다. ‘성녀의 정수의 흔적이야!’ 그러나 그 하얀 배경은 왕좌들이 나오기도 전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흔적이 너무 얕게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 그친 것이다. 시몬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훑었다. ‘여기서 분명 무슨 일이 있었어.’ “시몬!” 레테가 갑자기 뛰어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그녀가 즉시 시몬의 앞으로 뛰어 들어와 방어마법진을 펼쳤다. 이내 시야 전체를 가리며 다가오는 거대한 녹황색의 빛이 시몬의 눈에 들어왔다. ―――――――――!! 귀가 먹먹해지며 거대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레테가 펼친 결계가 일순 그 위력에 깨지려 했지만, 시몬이 급히 자신도 방어마법진을 펼쳐서 후폭풍을 함께 받아냈다. 공장 전체가 뒤흔들리는 압도적인 화력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마워 레테! 괜찮아?” “전 괜찮슴다!” 레테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망할! 이 공격, 알고 있슴다! 제가 슬래그본 길드에 잠입했을 때 받았던 그 공격이에요!” 폭연이 정신없이 피어올라 있는 가운데, 두 사람이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눈동자가 가늘어지다가 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거기 서!” 레테가 버럭 외치며 무릎을 굽혔다. 그녀의 두 다리에 신성이 모여들었다. “시몬! 습격자는 제가 쫓을 테니 사람들을 구해서 탈출해 주세요! 홈츠 탐정님이 위험함다!” “알았어! 너무 무리는 하지 마!” 레테가 추격자를 쫓아가고 시몬도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 폭발음을 들었는지 빈트로드와 게롤도 뛰어 들어왔다. “시온 탐정! 자네 괜찮은가?” “방금 무슨 소리야!” 두 사람이 달려오는 너머를 본 시몬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공장에서 작업하고 있던 크리쳐들이 하나둘 고개를 움직이더니 전면의 화면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시몬이 외쳤다. “크리쳐들이 이상합니다! 조심해요!” 그 말에 즉시 두 탐정이 뒤를 돌아보며 방어마법진을 펼치거나, 휴대용 네옴 방패를 들었다. 어느새 보통의 손 대신 네옴 무기로 전환한 크리쳐들이 네옴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파바바박! 총탄들이 방패나 마법진을 뚫지 못하고 벽과 바닥에 튕겨 나간다. 위잉 위잉 위잉! [비상사태. 비상사태.] 동시에 공장 전체가 붉게 물들기 시작하며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디토네이트 프로토콜 발동.] [전 공장 시스템 강제 자폭까지 20분 전.] “이런 미친 새끼들이!” 게롤이 격분하며 외쳤다. 시몬은 빠르게 게롤을 지나쳐 달려갔다. “얘들아 나와!” 목걸이 모양의 신성 아공간에서 시몬의 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양이와 까망이가 사물화를 사용하여 시몬의 양손에 차크람처럼 들렸다. 스릉! 승! 시몬이 팔을 가볍게 그으며 지나가자, 탐정들을 공격하던 크리쳐들이 두 동강 나며 쓰러졌다. 철컥! 반대편 공정에 있던 크리쳐들이 무장한 시몬에게 총구를 겨냥했지만. -우워어어엉! 그 즉시 시몬의 곰 신수, 덩치가 커진 아칼리온이 탄환을 날리려던 크리쳐들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크리쳐들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뛰어요!” 시몬이 외쳤다. 멍하니 있던 빈트로드와 게롤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몬을 뒤쫓아 달렸다. “이봐, 너 신수사제였나? 좀 싸울 줄 아는데!” “게롤 선배는요?” 게롤이 히죽 웃으며 두 팔을 펼쳐 들었다. 그의 팔 앞으로 빙빙 돌아가는 신성 장판이 일어나 쏟아지는 총탄을 막아내더니, 그대로 날아가 크리쳐들을 벽에 짓이겨 버렸다. “공격형 수호마법 전문이라고나 할까.” “그럼 다른 탐정님들의 구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홈츠 탐정님께 먼저 갈게요!” “어, 부탁한다.” 게롤이 팔을 내리긋자, 그의 신성 장판이 하늘에서 연달아 떨어져 다가오는 크리쳐들을 깔아뭉개는 모습이 보였다. <헤이스트> 시몬은 속도를 높이는 축복을 건 뒤 빠르게 기관실이 있는 쪽으로 달렸다. 벌써 빨간 눈의 크리쳐들이 홈츠를 노리고 이동하려는 듯 출구에 몰려 있었다. “아칼리온!” 시몬이 신수 축복 마법진을 만들어 전면에 펼쳤다. 그 즉시 아칼리온이 ‘우어엉!’ 소리를 내며 달려들어 마법진을 통과했다. 쿠쿠쿠쿠쿵! 빨라진 속도로 돌진한 아칼리온이 출구에 있는 크리쳐들을 그대로 들이받으며 볼링핀처럼 날려 버렸다. 시몬도 그 틈을 타서 빠져나와 달렸다. 기관실 옆에 넓은 작업 구역이 보인다. ‘홈츠 탐정님!’ 홈츠가 잔해물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고, 그 앞으로는 엑스머스가 신성 방어벽을 펼친 채 쏟아지는 탄환을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몇몇 탐정들은 기습에 당했는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1층과 2층, 그리고 사방에서 붉은 빛을 뿜는 크리쳐들이 총격을 쏟아내고 있었다. 엑스머스의 방어마법진은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금이 가 있었다. ‘일일이 가서 쓰러뜨리기엔 너무 늦어!’ 처억! 시몬은 전속력으로 달리며 손에 든 차크람을 느슨하게 새끼손가락만으로 걸어서 아래로 늘어뜨렸다. ‘지금 이 순간, 한 단계 더 발전한다!’ 주변의 시야가 좁고 선명해지며 집중력이 고조된다. 마치 극진을 펼친 듯한 집중력이 머릿속에 차오른다.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 온 시몬의 감각이 강렬한 자극을 받았고, 해결책을 쏟아내기 위해 분주하게 날뛰었다. ‘아록에서 모제가 신수들에게 걸어준 축복을 떠올려!’ 그때 하양이와 까망이는 이미 사물화가 되어 있었지만, 모제의 축복이 걸리자 형태가 또 한 번 변화했었다. 신수들도 그 변화에 대한 감각은 아직도 몸에 남아 있을 터. ‘바로 그 형태를 재현한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감각적으로 룬어와 수식, 마나 회로를 재구성해서 마법진을 준비한 시몬이, 두 팔을 세우며 한 쌍의 신성마법진을 허공에 겹치도록 펼쳤다. 이내 두 차크람을 그 안으로 집어넣었다. “얘들아! 3차 사물화야!” 신수들과 연결된 감각을 통해 의도를 하양이와 까망이에게 전달했고, 신수들이 이에 응답하며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원래 두 신수의 사물화 형태는 둘이 하나가 되는 ‘전차’의 형태. 그리고 그 전차에서 바퀴만으로 사물화를 집중한 게 현재의 ‘차크람’ 형태. 그리고 이번에 하려는 건 바퀴의 형태뿐만 아니라, 기능까지 추가한 3차 사물화였다. <시몬 오리지널 – 로타리오(rotátĭo)> 키이이이이이이잉! 차크람의 크기가 커지고, 칼날이 둥근 형체를 전부 감싸는 형태로 바뀌었다. 두 차크람이 제자리에서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하자. 시몬이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으로 밀었다. 촤아아아아아아! 백과 흑의 차크람이 빛살처럼 쏘아져 나가 주위를 휩쓸기 시작한다. 하양이는 1층의 크리쳐들을 베어내고, 까망이는 순식간에 벽을 타고 올라가 2층의 크리쳐들을 찢어버렸다. 희고 검은 꼬리가 지난 곳마다 크리쳐들의 몸이 숭숭 떨어져 나간다. “후읍!” 양손이 자유로워진 시몬도 앞으로 도약해서 성투로 연달아 크리쳐들을 때려 부쉈다. 꽈득! 퍽! 크리쳐들이 박살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촤아아아악! 신성 스파크를 튀기며 시몬이 마침내 홈츠와 엑스머스의 바로 앞에 도달했다. 차분히 가라앉은 눈동자가 주위 상황을 빠르게 관조했다. 방어마법진을 펼치고 있던 엑스머스가 탄성을 흘렸지만, 곧 다급히 외쳤다. “이보게! 뒤!” 아직 한 크리쳐가 남아 있었다. 두 팔을 늘어뜨린 시몬의 뒤통수를 향해 크리쳐가 총탄을 발사하려는 순간. 스릉! 두 차크람이 X자로 교차하며 날아와 크리쳐를 베어버렸다. 시몬이 두 팔을 뻗었고, 양손에 두 차크람이 촤악! 촥! 하는 소리와 함께 손에 잡혔다. 그대로 시몬이 몸을 빙글 회전하여 두 차크람을 교차로 휘두르자. 쩌저저저저저저정! 공장이 X자로 갈라지며 그 반경에 들어온 모든 크리쳐들을 깨끗하게 갈라 버렸다. 지켜보던 엑스머스의 입이 벌어졌다. “허어!” 같은 남자가 봐도 소름 끼칠 만큼 멋있는 광경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마침내 고조된 집중력을 내려놓은 시몬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홈츠가 힘겹게 웃어 보였다. “나는 괜찮네. 시온 탐정.”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시몬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의 복부 한쪽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 “기관실에 있던 탐정들은 모두 당했네.” 시선을 돌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피가 흥건했다. 시몬이 급히 치유마법을 펼치려 했지만, 홈츠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최소한의 지혈은 했어.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먼저일세!” 그렇지 않아도 크리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시몬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차크람을 앞세웠다. “대단히 실례지만, 다소 거칠게 돌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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