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47화 벤슨 공장은 다르블렝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시설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만드는 건 바로. “크리쳐라네.” 홈츠가 직접 휠체어 바퀴를 움직여 나아가며 말했다. 그는 네옴의 기술력을 쓰기는커녕, 휠체어조차도 남에게 맡기는 법이 없었다. “시온 탐정이라고 했던가.” “아, 넵.” 설마 먼저 말을 걸어줄 줄 몰랐던 시몬이 흠칫하며 대답했다. 팬심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애써 가라앉히고 있는데, 옆에서 레테가 쿡쿡 웃는 모습이 보였다. “외부인 출신이라고 들었네. 그렇다면 자네, 네옴이 무한히 샘솟는 ‘원류의 첨탑’에 여러 성녀들이 거쳐가며 힘을 부여한 건 알고 있나?” “물론입니다! 도시의 역사에 대해선 충분히 공부했죠.” 지금까지 다르블렝에는 역대 4명의 성녀들이 거쳐갔고, 한 명씩 거쳐갈 때마다 네옴에 특수한 힘이 추가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원류의 성녀의 정수를 물려받은 성녀들이 자신의 직영지로 다르블렝을 선택한 건, 사실 원류의 성녀에 대한 존경심 때문만은 아니야.” “아, 그러면요?” “자신의 권능과 네옴이 서로 호환이 되기 때문이라네.” 원류의 성녀 본인을 비롯해, 그녀의 정수를 물려받은 계보의 성녀들은 모두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에너지에 권능을 부여하는 능력’. 권능의 종류는 성녀마다 다르지만 네옴을 기반으로 권능을 형성하는 건 모두가 동일했다. 그런데 이 도시는 그 네옴이 무한히 흐른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홈그라운드. 아스페리아의 아록과 비교하는 것도 실례일 정도다. 도시 내부에서 성녀들은 무적이나 다름없고, 본인의 권능 연구나 능력 개발, 훈련에도 유리하다. 다르블렝 외의 다른 영지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결국 그 성녀분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지. 신성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할 뿐인…….” “홈츠 선생님!” 엑스머스가 헛기침을 하며 홈츠의 말을 막으려 했지만, 홈츠는 씩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뭐 어떤가. 우리 편끼리 하는 이야긴데.” 우리 편이라는 말에 시몬의 가슴이 더더욱 세차게 두근거렸다. ‘……나중에 책에 사인받아 가야겠다.’ 시몬이 그렇게 굳게 결심하는 사이, 홈츠의 듣기 좋은 딕션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이 도시를 거쳐간 성녀 중에 ‘창류의 성녀’라는 이가 있었지. 그녀는 네옴으로 자신에게 복종하는 크리쳐를 무한히 만들어내는 권능을 가졌네. 암흑연합의 군단장 못지않은 대병력을 이끌 수 있었지.” “소문으로만 듣던 군단장 못지않다니, 대단히 흥미롭네요.” 시몬은 얼굴에 철판 까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성녀도 죽기 전에 자신의 힘을 원류의 첨탑에 부여했고, 그 뒤로 다르블렝에서는 네옴으로 크리쳐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네. 다른 지역의 크리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고, 양산도 쉽지. 각 부유층 가정마다 네옴 크리쳐가 한 대씩은 있을 정도네.” “그런 크리쳐를 이 벤슨 공장에서 만드는 거군요.” “그렇지.” 꾸륵. 꾸르르륵. 공장 안으로 들어오니 파이프를 통해 철철 흐르는 네옴이 중앙으로 모이고 있었다. 이곳은 원류의 첨탑에서 직접 네옴을 공급받고 있었다. 작업 공정에서는 크리쳐의 기반이 되는 네옴 아티팩트가 중앙에 들어간다. 이내 뼈대로 그것을 감싼 뒤, 네옴을 흘려 크리쳐 형태의 모양을 굳힌다. 네옴이 크리쳐의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건 마치 칠흑의 기억하는 성질과 흡사했다. 크리쳐의 뼈대를 만들어주니, 네옴이 스스로 뭘 해야 하는지를 기억하는 것처럼 크리쳐의 형상으로 바뀌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창류의 성녀가 만드는 크리쳐의 열화판이긴 하지만, 이는 엄연히 성녀의 권능을 재현한 것이네. 다르블렝 외부의 기술과 비교하면 100년 이상 앞선 기술이지.” “대단하네요.” 물론 다르블렝 밖에 나가면 쓰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살벌한 집값을 내면서 다르블렝에 붙어 있으려는 이유는 이런 인프라 때문이라는 걸 알 것 같았다. 철컹! 철컹! 잠시 대화가 끊긴 사이 시몬은 공장의 작업 공정을 관찰했다. 이 공장은 노동자가 한 명도 없었다. 컨베이어 벨트를 움직이고, 뼈대를 올리고, 불량품을 확인하는 모든 작업을 크리쳐가 수행하고 있었다. 크리쳐를 크리쳐가 만드는 광경이 조금은 아이러니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가만히 공정을 관찰하던 시몬이 관을 따라 꿀렁꿀렁 흐르는 녹황색 에너지를 바라보았다. ‘세대를 거쳐가면서 능력이 쌓이고 더더욱 강력해지는 네옴이라…….’ 시몬의 눈이 좁아졌다. ‘어쩌면 강해지는 게 다가 아닐 수도 있지.’ 홈츠는 말했다. 난류의 성녀를 찾지 못한다면 원류의 첨탑이 폭주할지도 모른다고. 남들 이야기만 들으면 네옴은 신이 내린 자원이자 무적의 신소재 같아 보이지만, 뭔가 문제점이 있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현역 다르블렝의 성녀, ‘이렌’과 연결되어 있다. 그녀를 찾아야만 모든 수수께끼를 풀 수 있으리라. “홈츠 님.” 그때 먼저 도착해 있던 3대 명탐정 중 한 명인 게롤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다 처리해 뒀습니다. 기관실로 가시죠.” “수고했네.” “?” 처리해 뒀다는 게 무슨 말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며 시몬은 탐정들과 함께 공장의 가장 핵심 구역인 기관실로 향했다. 기관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네옴 아티팩트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무수한 스크린들이 떠올라 있었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이곳이 공장 전체를 통제하는 곳이었다. 곳곳에 공장 직원들이 쓰러져 있었는데, 죽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모두 잠이 든 듯 미동이 없었다. “수사도 아니고, 강제로 시설을 점유하다니…… 이래도 되는 겁니까?” 한 탐정이 불편한 기색으로 물었지만 게롤이 콧방귀를 뀌었다. “지금은 비상사태야. 법 같은 거 따지며 일할 때가 아니라고.”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럼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홈츠 님.” “그러지.” 홈츠가 휠체어 바퀴를 밀며 앞으로 나왔다. “이 공장이 바로 난류의 성녀님께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장소일세. 자신의 인가로 벌어진 사태를 목격하며 극도로 정신이 피폐해진 그분이, 과연 이곳에서 어떤 일을 겪으셨을지-” 그가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지금 우리가 재현해 볼걸세.” 차작. 착. 탐정들이 흩어져 관리자 자리에 앉아 네옴 아티팩트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아티팩트의 본체로 보이는 두꺼운 기기에, 자신이 가져온 네옴 아티팩트를 연달아 연결하자 스크린에 다양한 데이터가 떠올랐다. “7개월 이전의 모든 정보가 삭제되어 있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집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탐정들의 보고에 시몬이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당연하지만 기록을 지웠네요.” “자네.” 홈츠가 말을 걸었다. “탐정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시몬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추리력 아닌가요?” “아닐세. 요리사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 요리 솜씨가 아니라 좋은 재료를 값싸게 확보하는 능력인 것처럼, 탐정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얼마나 질 좋은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느냐지.” 드르륵- 그때 마침, 호텔에서 봤던 그 호텔리어들이 카트를 밀며 뭔가를 가져왔다. 카트 위에는 기관실에 있는 것과 상당히 비슷한 모양의 사각형 아티팩트가 놓여 있었다. “폐기되기 직전에 간신히 멀쩡한 놈 하나 건졌다네.” 철컥! 척! 호텔리어들이 이 아티팩트에 기관실의 선들을 꽂은 뒤 시스템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마나 스크린에 여러 명령어들이 복잡하게 쏟아졌다. “7개월 전에 실행된 명령어를 찾았습니다! 파일명 트리거 프로토콜입니다!” “실행합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실행하게.” 절컹! 절컹! 절컹! 절컹! 트리거 프로토콜을 실행하기 무섭게 공장 전체의 조명이 꺼지며 공장이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모두가 흠칫하며 주위를 경계했고, 레테도 시몬의 팔 쪽으로 살짝 붙었다. 이어지는 무거운 정적. 시몬은 정적이 이렇게 두려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흐흑. 그때. -흐흐흑. 흑 기계음으로 지직거리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모두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기관실 밖에서 들려.’ 행동력이 좋은 시몬과 게롤이 가장 먼저 기관실 밖으로 뛰어나갔고, 나머지 탐정들도 뒤따랐다. 모든 시스템이 정지되어 지독한 정적밖에 남지 않은 공장 내부. 바로 그곳에서 한 크리쳐의 가슴에 붙은 화면이 번쩍이며 빨간빛을 뿜고 있었다. [흐흐흑. 흐흑. 흑.] 기괴한 울음소리가 공장에 퍼졌다. 일행들이 침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리고 한 크리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붉은 안광으로 시몬 일행이 있는 곳을 노려보았다. [살려주세요.] 철썩 철썩,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아빠가 강에 빠졌어요! 살려주세요!] ‘설마!’ 시몬은 바로 어떤 상황인지 깨달았다. 보트에 탄 무단 체류자들이 물에 빠진 바로 그 상황이다. 당시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었다. 탁! 그때 또 하나의 크리쳐가 고개를 번쩍 들며 화면에 붉은빛을 뿜어냈다. [우, 우리가 왜 우리 집에서 나가야 하는 거죠? 평생을 여기서 살았어요!] 뒤이어 세 번째 크리쳐가 고개를 들었다. [거리에서 얼어 죽는 시체를 치우는 게 몇 번짼지 알아?] 네 번째 크리쳐가 몸을 일으켰다. [네옴 사용량을 더 줄이면 이 환자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오! 환자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란 말입니까?] 크리쳐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며 절규하듯 목소리를 토해냈다. 시몬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르블렝의 비극들!’ [왜! 나한테 왜 이러는데!] [살려주세요! 저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붉은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절규가 공장 내부를 메웠다. 그사이 중간중간 파란색 스크린이 번쩍이며 또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쩔 수 없소. 성녀님의 뜻입니다.] [위대한 딸의 허가를 받은 일입니다. 퇴거해 주십시오.] 파란 스크린은 단호하고 냉정한 음성이 들렸다. [……네, 다르블렝이 위험하다면 제가 결단을.] [제가 그분들을 설득하겠어요.] 그리고 심지어 난류의 성녀 본인인 듯한 목소리까지. [이대로 대책 없이 네옴 공급을 끊으면 어쩌겠단 겁니까! 저희도 피해자라고요!] [다르블렝을 위해서야!] 모든 목소리가 뒤엉키며 점점 커졌다. 붉은빛과 파란빛이 교차하며 공장을 혼란스럽게 물들였다. 시몬은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옥죄인다. 아무 관계 없는 외부인인 자신이 봐도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데, 과연 심약해질 대로 심약해진 당사자, 난류의 성녀가 이 광경을 직접 봤다면……. ‘그녀가 어떤 일을 저질렀어도 이상하지 않아.’ 덜컹! 그때 모든 크리쳐들이 고개를 들어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천장의 가장 큰 네옴 스크린에 빛이 들어오며 정체불명의 인물이 고개를 치켜드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팟! 파밧! 강렬한 빛이 터지며 공장의 모든 조명이 켜졌다. 붉고 파랗던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공장이 다시 움직였다. 크리쳐들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작업을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왜 중단됐지?” 엑스머스가 기관실을 향해 외쳤다. 기관실에 있던 탐정이 큰 소리로 답했다. “이 기기 한 대로는 여기까지밖에 재현할 수 없습니다! 뒤에 내용이 더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이거면 충분하네. 더 볼 필요도 없지.” 홈츠가 냉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성녀님을 정신적으로 몰아붙였다. 그 증거를 지금 확실히 확보하지 않았는가.” 그는 작동시켜 둔 메모리얼 수정구를 품에 소중히 넣었다. “하아.” 그때 시몬의 고개가 돌아갔다. 레테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괜찮아 레나?” “괜찮…… 슴다.” 그녀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최악’을 들여다본 기분임다. 난류의 성녀님은 그저 다르블렝을 위해 헌신했을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몰아세울 수 있는 거죠?” “동감이야.” “이번 문제, 누가 했건 간에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검다.” 같은 성녀이기에 더더욱 감정이 흔들렸던 모양. 시몬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얼마 없네! 이제 곧 공장주들이 돌아올걸세!” 홈츠가 목소리를 높였다. “정신력이 가루가 됐을 성녀께서 이후에 어떤 일을 저질렀을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게! 이 공장을 샅샅이 뒤져서 쥐꼬리만 한 정보라도 확보해야 하네!” 그리고는 한 차례 침음을 흘리다가 말을 이었다. “……설령 그것이 성녀님의 시체라고 해도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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