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46화 홈츠의 충격적인 선언에 주위가 급격히 떠들썩해졌다. 레테도 깜짝 놀라며 시몬의 귓가에 속닥거렸다. “그 정보! 우리가 이 자리에서 공개하려고 했잖슴까! 혹시 어디서 이야기한 적 있어요?” “당연히 없지. 그래도 명탐정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나 보네.” 다들 떠들썩한 가운데, 빈트로드나 엑스머스, 게롤 같은 3대 탐정들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외람되지만,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아닙니까?” 한 탐정이 손을 들었다. “로버트사가 성녀님의 실종에 관여되어 있다니……. 다르블렝은 신권과 정권이 가장 조화로운 도시입니다. 그들이 무슨 이익이 있어서 그런 무모한 짓을 벌이겠습니까?” “그건 지금부터 우리가 밝혀낼 일이지.” 휠체어에 앉은 홈츠가 담담하게 말했다. “자세한 설명에 앞서, 실종 전 성녀님의 행적을 이야기해야겠군. 엑스머스.” “예.” 엑스머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티팩트를 조작했다. 잠시 후 여러 자료들이 마나 스크린에 일렁이며 표시되었다. “성녀님의 실종 사건이 있기 전, 그분의 수첩에서 발견된 일정표일세.” 정보를 훑던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난류의 성녀의 스케줄은 다소 살인적이었다. 오전 회의 참석, 성당에서의 고해성사, 안보 회의 참석, 다른 도시에서 고아 지원을 위한 간담회, 복귀하자마자 도시 정책 의사 결정, 세례성사, 몬스터 소탕 작전 지휘까지. 이 정도가 내부 일정이었고, 외부 일정은 이보다 더 심했다. 하늘섬에 올라가는 경우도 많았고, 신성연방 전역을 다니며 결사를 처단하거나, 국경의 네크로맨서와 맞서 싸우기도 했다. “……아니, 누가 저렇게 일해요? 진짜 성녀를 말려 죽일 생각인가 봄다.” 레테가 혀를 찼다. 시몬이 보기에도 이 일정은 너무 과했다. 아무리 성녀가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고 해도 선이 있는 법이었다. 그러는 사이 홈츠가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로버트 시장 측은 자신들의 권력을 스스로 견제하겠다는 명분으로 신권의 비중을 늘리겠다고 선언했네. 모든 의사 결정에 성녀의 인가를 받도록 했지. 시민들은 스스로 권익을 내려놓은 결정이 대단하다며 반겼고, 성녀님도 이에 동의했지만…… 그 결정은 그분 개인에 있어서는 최악의 선택이었지.” 촤촤촤촤- 화면에 여러 성녀의 서명이 적힌 자료들이 떠올랐다. <무단 체류자 강제 송환 정책. 서명자 : 이렌> <크리쳐 노동력 전환 지원 정책. 서명자 : 이렌> 다르블렝에서 가장 큰 논란과 비난을 불러일으킨 사건들. 그 서명에는 항상 이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성녀님은 도시 행정에는 익숙하지 않으셨네. 평생을 신앙과 주민들을 위해 헌신하던 분이 복잡한 도시 문제를 어찌 잘 알겠나? 로버트 시장 측은 지난 백 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고질적 문제의 의사 결정을 떠넘겼고, 성녀님은 결단할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지난 수년간-” 팟. 파밧. 팟. 화면에 새로운 사진들이 떠올랐다. 약에 취해가는 사람들, 굶어가는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부모들, 크리쳐에게 일자리를 빼앗겨 길거리에 나앉은 노동자들, 밖에서 걸으면서 졸다가 무단 체류자 신세가 되어 쫓겨나는 주민들까지. 그리고 이 모든 사진에서, 갑자기 사진이 확대되며 한쪽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사진 모두에 얼굴을 가린 한 여성이 이를 지켜보는 모습이 담긴 것이다. “성녀께서는 자신이 내린 결정이 초래한 결과를 직접 보게 되었지.” 시위대가 던진 돌에 맞아 이마에 피를 흘리는 그녀의 모습,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분노에 찬 얼굴로 그녀를 비난하는 모습까지. 탐정들의 탄식과 중얼거림이 커져갔다. 게롤이 이마를 박박 긁으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홈츠 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로버트사에서 폭발 직전의 문제를 몰아서 성녀님께 결정을 내리도록 하고, 그 결정으로 인한 나쁜 면을 의도적으로 성녀님께 노출했다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이건 너무 범인을 찍어두고 추리한 느낌입니다.” “그래, 자네 말도 맞아. 나도 내 추리가 틀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던 사람일세.” 홈츠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가장 결정적인 자료를 보여주지.” 우웅- 다른 마나 스크린들이 꺼지고, 중앙의 큰 스크린에 새로운 사진이 떠올랐다. “이 사건은 다르블렝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겠지?” 강을 건너다 뒤집힌 작은 고무보트. 정원을 초과한 탑승자들, 차가운 물살, 그리고 다급하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녀의 모습까지. “……저럴 수가.” 레테가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입을 틀어막았다. “무단 체류자로 전락한 주민들이 강제 추방당한 사건이었지. 이때 작은 고무보트에 너무 많은 체류자들이 올라타게 되어 강을 건너다가 결국 배가 뒤집혔다네. 당시 수심은 차가웠고, 수중 몬스터들까지 덮쳤지. 보트에 타고 있던 20명 중의 16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단 4명이 성녀님 덕분에 살아남았다네.” 설명을 하던 홈츠가 눈을 감았다. “하지만 두 명은 무단 체류자 신분 때문에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했고, 살아남은 다른 두 아이도 부모가 죽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 끔찍한 비극이었네.” “……아.” “이 모든 비극은 성녀님이 ‘도시 인구 과밀집 해소’라는 명목으로 강제 추방 명령에 서명한 지 3주 만에 벌어진 일이었네.” 홈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분이 얼마나 큰 죄책감을 느끼셨을지, 나는 헤아릴 수조차 없네.” 무거운 정적이 홀을 짓눌렀다. 이내 홈츠가 시선을 보내자 호텔리어 복장의 직원들이 뭔가를 들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현장에서 발견된 고무보트일세. 폐기 처리 되기 전에 온갖 손을 써서 구해 왔지.” 중앙의 빈 테이블에 고무보트가 내려놓아지자, 홈츠가 말했다. “현장에 있던 그대로 들고 왔네. 사고 직전에 찍은 사진도 있지. 다들 나와서 한번 추리해 보겠나?” 그 말에 탐정들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자리에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쫘악! 쫙! 다들 준비해 둔 하얀 장갑을 끼고 잡아당기는 모습에는 프로페셔널한 모습마저 느껴졌다. 시몬과 레테도 앞으로 뛰어나와 장갑을 꼈다. 추리를 주도하는 건 혈기 넘치는 게롤이었다. “웃차, 여기 보트 밑바닥 끝에 이빨 자국이 가득합니다. 수중 몬스터의 공격을 받았네요.” 그가 보트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 옆으로 다가온 빈트로드가 돋보기로 그 자국을 들여다보았다. “보트에 손상이 갔지만, 직접적으로 보트가 침몰한 원인은 아님세.” “뒤에도 보죠.” 보트를 다시 뒤집는 순간 거의 모든 탐정들이 손끝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티가 거의 나지 않을 만큼 미세한 구멍이 나 있었다. 다들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게롤이 대표로 보트를 힘차게 들어 올려 그 구멍을 자세히 살폈다. “뾰족한 도구로 찌른 자국 같습니다. 누군가 강에서 잠수한 채 대기하고 있다가, 위로 올라와 고무보트에 구멍을 낸 건가?” “아뇨.” 불쑥 끼어든 시몬의 한마디에 게롤의 표정이 굳어졌다. 시몬은 그러거나 말거나 태연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구멍은 처음부터 뚫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 구멍 주위를 보면 압력으로 점점 벌어진 흔적이 보여요.” 시몬이 구멍이 난 주위를 매만졌다. “그리고 여길 만져봐요. 구멍 주위 표면은 다른 표면과는 뭔가 질감이 다르지 않습니까?” “……!” 시간이 흘러서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보통 보트의 매끈한 표면이 아니라 확실히 구멍 주위만 까끌까끌한 뭔가가 느껴졌다. “내가 좀 보겠네.” 빈트로드가 눈을 감고 표면을 만지작거리더니 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업용 테이프로군. 주로 네옴 파이프나 전선을 연결할 때 쓰는 거지. 투명한 종류도 있고.”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거야!” 주민들이 타고 갈 고무보트에 아주 미세한 구멍을 뚫어놓고 공업용 테이프를 붙인다. 이걸 뒤집어서 자세히 확인하지 않는 한, 일반인들은 눈치챌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배는 초기엔 문제없이 나아가지만, 차가운 수온과 물살 때문에 공업용 테이프가 접착력을 잃고 서서히 떨어진다. 결국 구멍이 드러나게 되고 압력 차에 의해 점점 배에 물이 들어오는 것으로, 배는 딱 강의 중간 즈음에서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 쳤을 테고, 그 소란에 잠을 자던 수중 몬스터들이 깨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수중 몬스터의 습격이라는 자연적인 비극으로 위장할 수 있었으리라. 빈트로드의 정리에 탐정들이 손뼉을 쳤다. “자네들에게 이 정도 추리는 너무 쉽겠지?” 홈츠가 휠체어를 밀고 들어오며 빈트로드를 향해 말했다. “아직 녹슬지 않았군. 합동수사가 기대되는걸.” “별말씀을요! 하하하!” 빈트로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뒤에서 레테가 조용히 ‘아저씨는 별로 한 거 없잖아요’ 하고 중얼거렸다. “이건 성녀님을 겨냥한 수많은 음모 중 하나에 불과하네. 이런 일들이 한둘이 아니야. 백 개의 함정을 만들어놓고, 한두 개라도 얻어걸리도록 한 거지. 특히 이번 익사 사태는 성녀님이 복귀하는 일정과 피해자들이 추방되는 시간대가 맞아떨어졌어. 이런 일이 가능한 세력은 다르블렝에 단 하나.”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로버트사일세. 이 음모의 배후지.”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진 가운데, 한 탐정이 손을 들었다. “앞서 이야기가 나왔지만, 로버트사 측에서 성녀님을 해칠 동기가 없습니다. 원류의 첨탑을 관장하는 성녀가 있어야 다르블렝도 생존할 수 있죠! 그들이 성녀를 다르블렝에 유치하기 위해 얼마나 갖은 노력을 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정녕 동기가 없다고 생각하나?” 홈츠가 턱에 손을 짚었다. “나는 짐작가는 부분이 있네만…….” 모두가 눈을 크게 뜨며 시선을 집중했다. 홈츠는 픽 웃으며 손을 턱에서 뗐다. “그건 여기서 논하기엔 적절하지 않군. 이건 논리적인 추리가 아니라 공상이니.” 시몬은 그 ‘공상’이란 말에 주목했다. 아까 자신에게 했던 말과 같으면서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또 나왔다. “다시 돌아와 다르블렝은 각종 문제로 폭발하기 직전이고, 난류의 성녀에 대한 불온한 여론이 형성되고 있네. 성녀님에 대한 억측이 담긴 음해성 보도를 최대한 내 이름으로 틀어막고 있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네.” 그가 탐정들을 돌아보았다. “명확한 점은 하나일세. 로버트 시장의 죄를 밝히기 위해서든,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서든, 우리는 난류의 성녀님을 찾아야 하네. 이 도시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미래요?” “그렇다네.” 홈츠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네옴을 만들어내는 탑, 원류의 첨탑이 심상치 않아. 어서 성녀님이 돌아와 주셔서 이를 통제하지 않으면 폭주할지도 모르네.” 모두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원류의 첨탑의 위기. 그야말로 도시전설처럼 불리던 다르블렝의 멸망이 가까운 지점까지 와 있었다. “이제 다 함께 성녀님께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로 가겠네. 그곳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길 바라지.” * * * 그렇게 다르블렝 최고 명탐정들의 합동수사가 시작됐다. 이 정도로 유명세가 높은 탐정들이 단체로 움직임을 보이면 로버트 측에 들킬 우려가 있었기에, 다들 각자 분장을 마친 뒤 홈츠가 말한 목적지에서 모이기로 했다. 시몬과 레테도 노동자 차림으로 분장한 뒤 계단을 내려가 다르블렝의 지하세계에 도착했다. “진짜 하루아침에 분위기가 바뀐 느낌임다.” “그러게.” <차별에 반대한다!> <복지법 반대! 우리는 싸우겠다!> 사람들이 하나둘 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와 항의하고 있었다. 거기에 최근, 네옴 아티팩트나 네옴 공급비를 또 올리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와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도시의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툭 찌르면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다. “아, 저김다.” 레테가 앞을 가리켰다. 지하세계로 가는 통로였다. 시몬은 계단을 내려가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없네.’ 그리고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지하세계의 중심, 지하 1층 광장에서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임금을 올려라! 하루에 한 끼도 겨우 먹는데, 이젠 못 해먹겠다!” “크리쳐를 몰아내라! 노동권 법안 반대! 일자리를 없애는 크리쳐를 몰아내라!” 점점 팽배해지는 불만. 레테의 표정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아마도…… 난류의 성녀님이 크리쳐 관련 법안에도 서명했겠죠?”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정말 성녀님에 대한 평판이 확 내려갈 거야.” 시몬과 레테는 빠르게 그들을 지나쳐 걸어갔다. 두 사람은 지하세계의 광장에서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지하 3층까지 도착했다. “여기구나.” 각기 노동자로 분장한 탐정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앞에는 커다란 공장이 눈앞에 있었다. “벤슨 공장에 온 걸 환영하네.” 휠체어를 탄 홈츠가 미소 지었다. “바로 여기가 성녀님께서 실종됐던 곳이지.” “…….” 으스스한 장소였다. 시몬은 공장 입구가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불쑥 든 생각이지만, 아록에서처럼 성녀가 이곳에 붙잡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신 바짝 차리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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