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37화 신성연방에서 성녀라는 말은 함부로 쓰지 못한다. 다른 이를 성녀에 비유하거나, 성녀 같다는 미사여구를 사용하는 것도 교리에 따라서는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연방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다르블렝은 사정이 다른 모양이었다. “외부인들께 너무 주민들끼리 이야기하는 내용을 들려드렸나?” 너무 진지해진 시몬과 레테를 보며 라벨라가 손을 휘저었다. “다르블렝에는 뒷골목에 흘러든 고아나 아이들을 데려다 홀로 키우는 미스테리한 여성의 소문이 있어요. 아마 부유한 자산가 같은데, 그런 사람이 전 재산을 털어 고아들을 돌보는 모습이 신기한지 주민들이 드문드문 ‘성녀’라고 부르고 있나 봐요. 우리 고아원처럼 시청이나 후원자들의 후원 없이 사비로만 아이들을 키운다는 게 쉽지 않긴 하니까요.” “…….” 성녀라는 단어에 제대로 꽂힌 시몬이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데, 라벨라가 인상을 썼다. “그래서, 이제 방은 다 본 거죠? 일을 맡아주실 건가요 아니면 지금이라도 그만두실 건가요?” 그 물음에 시몬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물론 맡겠습니다. 이번 일, 저희들을 믿고 기다려 주시죠.” * * * 그렇게 고아원을 나와서 걸어가고 있는데, 레테의 표정은 찜찜했다. “왜 이번 의뢰를 수락하신 검까?” 그녀의 물음에 시몬이 입을 열었다. “사정을 모두 들어버렸잖아. 너도 그 마빈이란 아이를 찾고 싶지?” “물론 그렇죠! 하지만 학대 정황이 있지 않슴까! 설령 찾아낸다고 해도 마빈을 그 고아원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싶진 않아요!” 시몬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레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도 그래. 의뢰를 해결해도 마빈을 고아원으로 돌려보내진 않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탐정으로서 마빈을 찾아내려면 이 의뢰를 유지해야 해. 의뢰 없이 도시를 들쑤시면 외부인의 난동으로 보일 여지가 있으니까.” 레테가 입술을 깨문 채 으음- 소리를 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야 좋아요.” “마빈이 고아원에서 탈출해서 잘 지내고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시몬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쓱 둘러보았다. 1인승 네옴 자동차들이 도로를 쌩쌩 달리고 있고, 온갖 사람들이 정신없이 오가는 대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그건 낙관적인 예상이겠지. 솔직히 위험에 처했을 가능성이 더 커.” “네, 제대로 찾아보죠.” 레테도 양 허리에 손을 얹으며 결의를 다졌다. “라벨라도 마빈을 찾는 데는 진심이고, 아동 복지계에 오랫동안 몸을 담은 사람이니 허술한 정보를 제공하진 않았을 검다. 우선 찾아가야 할 곳은 인신매매 정황이 의심스러운 슬래그본 길드, 다르블렝의 섬유 공업 단지, 그리고―” “뒷골목의 성녀.”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성녀에 대해 쥐꼬리만 한 단서라도 손에 넣었다. 신성연방에서 감히 성녀라고 불리는 인물. 물론 레테에게 들은 바로는 이번에 찾아야 할 성녀의 이명은 ‘난류의 성녀’지만, 1%의 확률이라고 해도 확인해야만 했다. 의뢰 목표인 마빈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면 더더욱. “제가 슬래그본 길드에 갈게요.” 레테가 자신의 가슴을 손끝으로 가리킨 뒤, 손을 빙글 돌려서 시몬 쪽을 가리켰다. “당신이 뒷골목의 성녀를 맡으세요.” “너무 위험해!” 시몬이 펄쩍 뛰자, 레테가 훗 하고 웃으며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제가 누구라고 생각하심까. 성녀의 힘을 쓰지 않아도 그런 썩어빠진 조직 정도는 가볍게 무너뜨릴 자신이 있으니 안심하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시몬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 인신매매 조직원들이 위험해서 하는 소리야. 죽이진 않을 거지?” 퍽! 화가 난 레테가 냅다 시몬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시몬이 아파하며 정강이를 붙잡고 휘청거렸다. “니가 왜 걔들 목숨을 걱정하냐 이 자식아! 죽고 싶냐!” “네 평소 행실을 생각하면…… 아, 아무것도 아냐.” 레테가 다시 걷어찰 태세를 취하자 시몬이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두 번 농담을 했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리를 내린 레테가 콧방귀를 뀌었다. “아무튼, 성녀의 정수를 감지할 수 있는 당신이 뒷골목 쪽으로 가야 나중에 그 여자가 진짜 성녀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지 않겠슴까.” “그건 맞네.” 시몬도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덜 위험한 일, 더 위험한 일 가릴 게 아니라 효율성을 위해 움직여야 할 시기다. 그때 레테가 말을 멈추고 찌리릿 시몬을 노려보았다. “또 왜 그래?” “거기서도 헤실헤실, 하지 말아요.” “무, 물론이야.” * * * 레테가 변장을 준비했다. 탐정복은 벗어서 걸어놓고, 길거리에서 구매한 평범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이어서 입가에 붉은 립스틱을 칠하고 짙은 화장을 한 뒤 가벼운 바구니를 들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그때 시몬의 농담 섞인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추리소설이 도움이 되더라고. 그녀는 나가기 전에 책을 펼쳐서 몇 장 읽어보았지만,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무슨 소린지도 잘 모르겠고, 직접 뛰어드는 게 낫겠네.’ 그렇게 그녀가 향한 곳은 신성열차가 들어오는 역 근처의 길목이었다. 원래라면 번화한 곳이겠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풀풀 나는 이곳에, 레테는 바구니를 든 채 가볍게 걸어갔다. “라, 라우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위험합니다.” 다급히 따라온 경관이 그녀를 붙잡고 경고했다. 레테는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를 지었다. “왜요?” “왜라니…… 질 나쁜 놈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 그렇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어요.” “위험해지면 그때 도와줘요. 경관님이잖아요.” 레테가 경관의 손을 뿌리치고 성큼성큼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경관이 팔을 뻗으며 그녀를 제지하려 했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선이 있는 것처럼 급히 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리더니 결국은 물러났다. 여러 작은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는 이 골목길에는 온갖 쓰레기나 텅 빈 주사기 따위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레테는 고개를 한껏 치켜든 채 도도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그녀의 눈에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퀭한 얼굴, 몸이 녹아내렸거나 보랏빛으로 물든 피부의 사람들, 몇몇 이들은 탐욕이 일렁거리는 눈으로 레테를 바라보았고, 또 몇몇은 키득거리며 웃기도 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본 그녀가 나지막하게 독백했다. “시시하네.” 그 말을 들은 남자들이 응? 하는 표정을 짓더니 코웃음을 치며 하나둘 벽에서 등을 떼고 걸어 나왔다. “아가씨. 여긴 무슨 일로 왔어?” “몸 팔러 온 거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는데. 반대쪽 골목이야.” 남자들이 그녀를 둘러싸며 낄낄거리자, 레테가 한숨을 푹 쉬며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슬래그본 길드.” 우뚝. 그 말을 듣자마자 남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용무가 있는 건 그쪽이에요. 아, 설마 이름만 듣고 쫀 검까? 겁쟁이들은 비켜요.” 레테가 하얀 머리카락을 넘기며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뒤에서 덩치 큰 남자가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아채며 말했다. “뭐? 겁쟁이? 이 계집이 보자 보자 하니까……!” 꾸드득! 끄아아아아악! 남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어느새 남자의 발등을 구둣발로 세게 짓밟은 레테가 빙긋 웃었다. “방금 나한테 뭐라 했냐? 이 새끼야.” 퍼억! 그녀의 손바닥이 남자의 복부에 꽂히고, 남자의 몸이 기역 자로 꺾인 채 저만치 날아가 건물벽을 뚫고 나가떨어졌다. “……!” 갑자기 벌어진 광경에 남자들이 멍하니 입을 벌렸고, 레테가 흐트러진 옆머리를 쓱 쓸어 넘기며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들 평소에 눈치 없단 소리 많이 듣죠? 감당이 될 만한 사람만 덤벼요.” “침입자다!” “붙잡아!” 남자들이 일제히 소리 지르며 골목 곳곳에서 뛰어들었다. 레테는 들고 있던 바구니를 하늘로 던져 버리고는 손을 풀었다. 쐐액!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단검을 고개를 틀어 피한 레테가 앞으로 성큼 나오며 남자의 턱을 후려쳤다. 이빨이 두 개가 번쩍이며 태양빛에 반사되어 날아갔다. 그녀가 몸을 회전하며 잔상을 일으켰다. 퍼어어억! 팔꿈치에 맞은 남자가 고꾸라지고. 빠악! 발차기에 얼굴을 걷어차인 남자가 저만치 날아갔다. 퍼억! 쩍! 꽈득! 남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날아가 벽을 뚫고 들어가 처박혔다. 벽에 꽂혀서 하반신을 내민 그들은 하나같이 축 늘어진 채 미동이 없었다. “이, 이게!” 슈슉! 슉! 실력자로 보이는 남자가 거칠게 단검을 휘두르기 시작했지만 레테는 우아하게 입가를 가리고 하품을 하면서 피했다. 이내 뭐에 맞은지도 모르고 걷어차인 그의 몸이 동료들 다섯 명을 한꺼번에 날려 보내며 나가떨어졌다. “무슨 소란이냐!” 이번에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듯, 잘 훈련된 근육질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저 여자는 뭐……! 커흑!” 검은 남자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거의 빛처럼 도달한 레테의 무릎이 그의 얼굴에 꽂힌 것이다. 남자의 몸이 건물 몇 채를 부수며 날아갔다. “누구냐!” 그들이 주먹에 신성을 일으키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레테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세상 어디에든 있는 쓰레기들은 그렇다 치고, 여신의 은총을 받은 신성 사용자들이 여기서 뭐 하는 검까?” “뭐, 뭐라고?” “니들은 더 맞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헛웃음을 치며 두 팔을 세워 들었다. 그의 양 주먹에 신성이 맺혔다. “재미있구나! 나 철벽의 오운……!” 뿌드드득! 그러나 소개를 채 마치기도 전에 뒤로 돌아온 레테가 그의 양팔을 붙잡고 다리로 등을 짓밟았다. 아아아아아아악! “약골의 오운이 아니고?” “잡아!” 신성 사용자 조직원들까지 일제히 달려들었고 레테도 자신의 몸에 축복을 건 뒤,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후위로 들어와 상대의 팔을 붙잡아 꺾고, 다리 관절을 반대로 돌렸다. 그녀의 손에 붙잡힌 남자들이 괴성을 질러댔다. 온갖 관절들이 기이하게 꺾였다. 꽈득! 뚜둑! 으적! 멀리서 지켜보는 이들의 눈에는, 마치 그녀가 남자들의 몸 뒤로 순간이동하듯 나타나 지나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몸이 닿을 때마다 그들의 몸이 불가능한 각도로 꺾이며 고장난 악기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한편 지붕 위. “……뭐, 뭐야? 저 여자.” 한 남자가 네옴 라이플의 조준경을 들여다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조준경으로 레테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중얼거렸다. “이, 일단 생포해야 하니까 다리를……!” 그런데 조준경 속에서 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싸우던 레테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가 응? 하는 소리를 내며 조준경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는데. “실례함다~” 바로 그 조준경 속에 커다란 눈동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슬래그본 길드 사람들을 찾고 있는데요.” “으, 으아아!” 너무 놀란 그가 총까지 내팽개친 채 물러섰다. 레테가 뒷짐을 진 채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모르시나요?” 남자가 허둥지둥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려는데, 레테가 순식간에 뒤로 돌아와 그의 머리를 강하게 짓밟았다. 꾸우우우우웅! 남자의 몸이 지붕을 뚫고 아래로 추락했다. 레테가 사뿐히 두 다리로 지붕을 디딘 뒤 훌쩍 점프했고, 그녀가 있던 자리로 여러 포탄이 떨어져 폭발했다. “적이다!” “일단 다 뛰어나와!” 우르르르르르르르! 소란을 듣고 아지트에 바글거리던 조직원들이 정신없이 뛰어나왔다. 그러나. 키이이이이이잉! 레테가 그들의 머리 위에서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주먹에 방대한 양의 신성이 번쩍이며 모이고 있었다. “우르르 나오면 해결될 줄 알았어요?” “!” 그녀가 힘껏 주먹을 내지르는 방향으로. 후와아아아아아아악! 다르블렝 경관은 물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던 범죄의 온상 한복판에 거대한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 * * “그게 사실인가?” 슬래그본 길드의 간부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고 있었다. 주변 조직원들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래그본 길드 나오라면서 우리 조직을 단신으로 박살 내고 있습니다!” “그런 과격한 여자는 생전 처음 봅니다!” 쯧. 간부가 혀를 찼다. 그가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광장으로 들어섰다. 휘오오오오오오! 그곳은 이미 상황이 정리되어 있었다. 스륵. 슥. 곳곳에 널브러진 조직원들 무리를 깔고 앉은 하얀 머리의 여성이 손을 털며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지루한 표정으로 손에 든 추리소설을 읽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게 맞으려나.” “내가 슬래그본 길드 소속이요! 당신은 누구요!” 그녀가 쓰윽 책을 내리며 손가락을 앞으로 척 하고 세웠다. 간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그녀의 손가락이 빙그르르 돌아갔고, 간부의 시선도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주위를 훑었다. 곳곳의 벽에 장식처럼 꽂힌 조직원들, 피를 뿌리며 포개어진 조직원들, 온갖 박살 난 아지트 파편과 무기들이 가득했다. “보스 데려와.” 레테가 다리를 꼬고 웃었다. “이게 당신이 감당할 사이즈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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