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29화 시간이 나면 근방의 다른 마을이라도 들를까 했는데, 레테가 가고 싶은 곳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 유명한 아록의 수련호수! 신성연방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 아니겠슴까.” 앞서 걸어가던 레테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끈으로 묶은 포니테일 머리가 바람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렸다. “결사 사태가 끝나면, 저도 여기서 느긋하게 자연을 벗 삼아 수련 체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 생각보다 열악한 환경에 놀랄걸.” 먼저 수련자 생활을 경험한 시몬이 팔짱을 낀 채 웃음 지었다. 집에서 잘 수도 없고, 음식도 맛이 없고, 화장실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제는 아스페리아의 아록이 붕괴되었으니, 그 엄격한 규율도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여기 언덕을 돌아서 바로 앞에 보이는 곳이야.” 시몬이 팔짱을 낀 손을 풀며 앞을 가리켰다. “원래 호수를 배경으로 수련자들이 신수들과 어울려 수련하는 게 장관인데, 그걸 못 보는 건 아쉽…….” 그렇게 말한 시몬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쏴아아아아아아-! 마치 신선이 은거할 것 같은 아름다운 배경. 쏟아지는 폭포 아래, 여전히 많은 수련자들이 호수물을 맞으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얕은 호수 위에는 수련자들이 무도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 다리가 수면을 훑는다. 참방! 쏴아아아아아! 발소리와 함께 호수 곳곳에서 파문이 일었다. 호수 아래, 폭포 위, 나무와 바위 위까지, 곳곳의 수련자들이 같은 동작으로 무도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내 그들이 두 팔을 앞으로 내보내며 하이라이트에 진입한다. <극진> 화아아아아아아아아! 자연과 어우러진 신성이 모여들며 수련호수 곳곳에 꽃을 피워냈다. 이 모습을 처음 보는 레테가 눈을 반짝이며 두 손을 모았다. “시온 형제님, 오셨습니까?” 마침 가장 앞에서 수련하던 수련자, 아리우스가 극진을 꺼뜨린 채 다가왔다. 그가 우선 레테의 앞에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여신의 가장 가까운 딸을 뵙사옵니다.” “라우스임다.” 레테가 빙긋 웃으며 격식 없이 인사했다. 이내 아리우스의 신뢰 가득한 시선이 시몬에게로 향했다. “조금 놀라신 모양이군요. 시온 형제님.” “아, 네.” 시몬은 부정하지 않았다. “아록은 붕괴됐잖아요. 수련을 할 이유가 없으니 다들 떠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저도 처음엔 이곳을 떠날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리우스가 흠흠 헛기침을 했다. “시온 형제님의 말이 계속 뇌리에 맴돌더군요.” -아름다운 환경에서 수련하고, 형제자매들과 웃고 울고, 가끔은 슬퍼하고, 가끔은 기뻐하고, 이런 모든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순 없는 걸까요? 잠시 회상하던 그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속세로 나가 편하게 살 수도 있을 겁니다. 다시 예전처럼 국경으로 돌아가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던 때가 언제였을까.” “그게 바로 모두와 함께 수련하던 지금이었군요.” “예.” 그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저는 형제자매들과 이곳에 남아 ‘수련’ 그 자체에 의미를 두기로 했습니다. 정신을 수양하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겁니다. 그리고 아스페리아 성녀님이 없는 동안, 우리가 이곳 아록을 지킬 겁니다.” 그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매해 많은 프리스트들이 휴가를 내고 아록에 방문해서 수련 체험을 해주시니, 그분들의 입장에서도 갑자기 수련자들이 사라지면 많이 아쉬워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네요.” 시몬은 맞장구를 치며 아리우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이곳에서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걱정과 고민이 사라진 모습. 걱정 자체를 할 수 없게 된 아록인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편안해 보였다. “참, 그런데 탈로크 형제님은 어디 계세요?” “탈로크 형제는 돈과 명예를 찾아 속세로 떠난다고 했습니다.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시몬이 키득거렸다. 탈로크다웠다. 그 밖에도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아리우스의 형인 보우스는 아록 내부의 생활이 힘들었다며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고, 다른 아록인들도 모두 치유를 받은 뒤 수련호수에 남거나 속세로 가는 것 중 하나를 택하기로 했다. 성녀의 집행자는 조직 자체가 해산되었다. 아스페리아에게 여전히 충성하던 책임자급들은 하늘섬에 불려갔고, 몇몇 수련자 출신 집행자들은 차라리 수련할 때가 좋았다며 호수에 남기로 했다. “시온 형제님, 레테 성녀님, 두 분의 앞길에 여신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척! 아리우스가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처억! 척! 호수 앞, 폭포 위, 나무 위, 그 밖의 다른 수련자들도 일제히 자세를 취하며 시몬과 레테에게 예를 표했다. “잘 가십시오, 시온 형제님!” “아록에 행복을 되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불쑥 튀어나온 누군가의 그 한마디에 시몬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두 손을 모으며 응답했다. “네! 여러분 모두 행복하세요.” * * * 아록 사태는 잘 수습되어 가고 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시몬은 아록을 떠나 ‘마지막 강경파 성녀’를 찾기 위해 새로운 지역으로 향해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빠아아! 낙원의 여섯 신수 중 하나, 작은 모습으로 돌아온 지라타스가 시몬의 바짓가랑이를 문 채 어딘가로 끌고 가고 있었다. “알았어, 알았어. 조금만 천천히 가!” 시몬이 휘청휘청하며 따라가고 있었다. -냐옹! -냥 냥! 하양이와 까망이는 지라타스의 등에 올라탄 채 신이 나서 폴짝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가끔 힘이 넘치는 까망이가 등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시몬이 다시 붙잡아서 등 뒤에 올려놔야 했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빠아아! 지라타스는 낙원의 여섯 신수 중 하나. 애초에 시몬이 소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시몬이 함께 모험을 떠나자고 말을 꺼내보았지만, 지라타스는 아록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며 거절했다. 그 대신 지라타스는 시몬을 아록 깊숙한 곳으로 이끌고 있었다. 얕은 호수를 지나, 가시덤불을 넘어, 마음에 번뇌가 있으면 건널 수 없다는 베리타스강까지 건넜다. ‘어디까지 가는 거지?’ 행복에 심취한 아록인들이 떠나서 이제는 조용해진 아록 평원을 지나갔고, 전투가 벌어졌던 텅 빈 영원의 궁전도 지났다. 그렇게 아록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무렵. -끼룩 끼룩! -꾸우우-! 숲 곳곳에서 새들과 원숭이 같은 생물들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시몬에게 경고했지만, 지라타스가 ‘빠아아’ 하고 울부짖자 바로 조용해졌다. 중간에 덩치가 큰 신수들도 조용히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뭔가를 지키고 있어?’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숲에서 한참을 걸어야 나오는 아록의 끝자락, 바로 이곳에. “아!” 하얀 섬유를 엮어 만든 듯한 둥지가 있었다. 그 위에는 커다란 점박이 알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알?’ -빠아아! 지라타스가 울음소리를 냈다. 시몬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둥지에 다가가 그 알을 들어보았다. ‘고동이 느껴져. 그리고…….’ 알껍데기에서 은은한 신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알 자체로도 신성을 발산하는 걸 보니, 이 안에 살아 숨쉬는 게 보통 생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뺘아! “내가 데려가라고?” -빠! “혹시 네가 낳은 거야?” 퍽! 지라타스가 짧은 다리로 시몬의 무릎을 찼다. 뭔가 대단히 실례되는 말을 한 것 같았다. 시몬은 급히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알을 낳은 엄마나 아빠는?” -뺘아아! “이제 없어?” 시몬은 의아한 얼굴로 알을 쓰다듬었다. 하양이와 까망이도 신기했는지 시몬의 어깨 위로 폴짝 뛰어오르더니 조심스레 앞발로 알을 매만졌다. 장난기 많은 아기 신수들도 이걸 조심히 다뤄야 하는 건지 아는 모양. 시몬이 알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 알에서는 어떤 신수가 태어날까?’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앞으로의 여행에 새로운 즐거움이 늘어난 것 같았다. * * * 아록을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시몬과 레테, 모제와 하미엘은 수련자들과 아록인들의 성대한 작별 인사를 받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얼마 걷지 않아, 아록에 들어왔을 때 고생했던 것처럼 방대한 산봉우리가 우뚝 우뚝 솟은 대자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까지는 서둘러도 하루는 잡아야겠슴다.” 레테가 이마에 손등을 얹고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사이 시몬과 모제는 시선을 교환하고 있었다. 모제가 오른손으로 시몬의 팔을 몇 번 툭툭 건드려서 빨라지는 축복을 부여했다. “레테.” “네?” “여기 업혀.” 시몬이 자세를 낮추며 등을 보였다. 레테는 군말하지 않고 걸어오더니 시몬의 등에 폭 하고 몸을 기댔다. 시몬은 깃털이라도 매단 듯 가뿐한 동작으로 그녀를 업고 몸을 똑바로 했다. “……오와.” 그 모습을 본 하미엘이 입을 가렸다. 일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강한 신뢰가 느껴지는 게 멋있게 느껴졌다. “반면에…….” 그녀가 차갑게 식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옆에는 모제가 있었다. 모제는 세상 싫은 표정으로 두 팔만 벌린 채 서 있었다. 그가 한탄 같은 소리를 냈다. “타든가 말든가.” “아, 쫌! 시몬 형제님처럼 자세를 낮춰야 소관이 타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 “범재들은 바라는 것도 많아.” 그래도 이번 아록 사건으로 다소 성격이 누그러진 모제가 엉거주춤 자세를 낮췄다. 하미엘도 한숨을 몇 번이나 푹푹 쉬며 그의 등에 몸을 기댔다. 이내 모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업은 사람이나, 탄 사람이나 모두 있는 힘껏 안면 근육을 구기고 있었다. “기분 나빠.” 하미엘이 중얼거렸다. “……나도 마찬가지다. 뇌 텅 빈 범재를 업고 말처럼 달리는 굴욕이라니.” 모제도 궁시렁거렸다. “그럼 출발하자!” 시몬이 무릎을 굽히고는 모제가 걸어준 축복에 힘입어 탄력을 받아 공중으로 치솟았다. 레테가 뒤에서 시몬을 꼭 끌어안는 게 느껴졌다. “같이 가시죠 성자님!” 모제도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렇게 3일이 걸릴 거리를 이번에는 다섯 시간 만에 주파했다. * * * 철컹 철컹 철컹! 어느새 처음에 아록에 도착했을 때 내렸던 신성열차 승차장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하얀 연기를 뿌리며 열차들이 하나둘 지나가고 있었다. “송구합니다만 저는 여기까집니다. 성자님.” 모제가 크흡 하고 코 먹은 소리로 말했다. 벌써부터 작별이 가슴 아픈지 코끝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이 신의 손 모제, 여정의 끝까지 성자님을 모시고 싶었지만 교황청에서 아스페리아 조사 건으로 소환령을 내렸습니다.” “네 이름으로 수사관을 요청했으니까 당연한 일이지. 예상했어.” 시몬이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하자, 모제가 무릎을 꿇고 한 손을 내밀었다. “최대한 빨리, 판결이 정리되는 대로 합류하겠습니다!” 이건 고위 프리스트에게 하는 손등 키스 예법이었다. 옆에 있던 레테는 자기를 향한 행동인 줄 알고 한숨을 푹 쉬며 손등을 내밀었으나, 모제는 그녀의 손을 벌레라도 건드리는 것처럼 툭 옆으로 밀치고는 시몬의 손을 빼앗아 그 위에 입을 맞췄다.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나의 영원한 신앙이여.” “이 새끼가?” 빠직! 레테의 관자놀이에 혈관이 두드러졌다. 모제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레테를 쳐다보았다. “내가 섬기는 신앙은 오직 한 분뿐이다. 어차피 내가 장래에 교황이든 추기경이든 되면 거의 동등한 위치일 텐데, 서로 격식 없이 하지.” “룬 리그 때 덜 맞으셨나 봄다.” 레테가 손가락 마디를 꺾으며 뚜둑 소리를 내고 있는데, 시몬이 얼른 웃으며 레테의 어깨를 붙잡아 뒤로 당겼다. “소관도 연구소로 가보겠습니다!” 이번엔 하미엘이 척 하고 경례 자세를 취하며 나섰다. “이스라필 성녀님께서 부르셨거든요! 시몬 형제님이 다음 성녀가 마무리된 뒤에 이스라필 님의 성녀의 정수의 잔재도 취하셔야 하니 그 부분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래, 고생했어 하미엘.” “그리고…….” 하미엘이 레테를 바라보며 눈을 찡긋했다. “모제 형제님 없이 저 혼자 끼면 뭔가 좀 그렇기두 하구?” 그 말을 들은 레테가 상냥하게 웃었다. 잠시 여자들이 시선을 교환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래도 소관은 빨리 급한 업무만 마무리하고 목적지에 합류하겠습니다. 모제 형제님보다는 빨리 도착할 것 같아요.” “그래, 잘 부탁해.” 마침 시몬과 레테가 탈 신성열차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승강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 * * 모제와 하미엘과 작별 인사를 한 두 사람은 기지개를 쭉 켜며 열차 1등실에 들어왔다. “하아.” 레테가 안락하고 폭신한 소파에 등을 기댔다. 시몬도 맞은편에 앉아 신성 아공간을 연 뒤 알을 꺼내고 쓰담쓰담했다. 레테가 눈을 빛내며 자세를 낮췄다. “그검까? 낙원의 여섯 신수가 줬다는 신수의 알.” “맞아.” “틈틈이 신성을 부여하고, 체온으로 감싸줘야 할 검다. 뭐가 나올지 궁금하네요.” 시몬이 레테가 시키는 대로 알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런데 이다음 성녀를 만날 목적지는 어디야?” 레테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아록과는 정반대의 분위기가 나는 곳일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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