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12화 그날 저녁. 수련자들과 접촉하여 함께 수련을 경험한 시몬, 아록 외곽 곳곳을 돌아다니며 정령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하미엘, 아록 관련 공문서를 조사한 모제까지. 각자 정보를 얻고 돌아온 세 사람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미엘은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 듣지 못하도록 꼼꼼히 결계를 펼쳤다. “모처럼 결계도 펼쳤으니, 마땅히 받으셔야 할 대우를 받으시지요. 성자님.” 모제가 오른손으로 주위를 툭툭 만지자 주변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나무는 아름다운 조각상으로 변하고,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작은 웅덩이는 수영장 같은 호화로운 풀장으로 바뀌었다. 허름했던 그물침대는 호화로운 금빛 침대로 변해 기둥에 우아하게 매달렸다. 시몬은 입을 떡 벌렸다. 갑자기 신성연방풍 고급 호텔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겨, 결계가 중간에 풀리면 어쩌려고요!” 하미엘이 당황해하며 소리쳤지만, 모제는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귀를 후볐다. “결계 유지하는 거 하나 제대로 못 해? 범재의 무능함이 하늘을 찌르는걸.” “혹시 모르니까 말씀드린 거잖습니까!” 사이가 나쁜 두 사람이 또 투닥거리기 시작하자, 시몬이 손뼉을 치며 주의를 끌었다. “자, 그럼 각자의 영역에서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들을 정리해 보자.” 하미엘이 먼저 손을 들고 발언했다. “소관부터요! 정령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록의 자연이 훼손됐거나 산불이 났다거나 하는 비상사태는 아닌 것 같은데, 많은 정령들이 아록에서 빠져나오고 있어요. 다들 ‘인간들이 이상해졌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모제도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적지 않은 자금이 아록과 영원의 성녀에게 흘러 들어갔다는 서류상 증거가 있습니다. 자금의 출처는 돈 많은 부자들인 것 같은데, 그들 중의 일부는 아록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않고 있어요. 수련자들이 아록의 신수의 인정을 받아 아록에 들어가는 것 외에도, 아록인이 되는 다른 방법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시몬이 이야기했다. “수련자들은 아록에 들어가고 싶어서 근방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야. ‘극진’이라는 기술을 갈고닦아서 아록의 신수의 인정을 받는 게 그들의 목적이지. 매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수련 계곡에 들어오지만, 아록에 들어갈 수 있는 건 1년에 한두 명뿐이야. 겉으로 보이진 않지만 그로 인한 갈등이나 좌절감이 심한 편이야.” 하미엘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입을 가렸다. “1년에 2명……? 그런데 왜 수련 같은 걸 계속하고 있대요?” “수련자들은 감정의 통제에 능해. 번뇌에 사로잡히지 않겠다며 좌절감에 매몰되지 않고 꾸준히 수련에 매진하고 있나 봐. 이제 와서 그만두기엔 들인 시간이 많기도 하고, 적긴 해도 매해 꾸준히 성공 사례가 나오기도 하니까. 무엇보다 아록에 들어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욕망이 그들을 붙들어두는 것 같아.” 시몬이 목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수련자들 사이에서도 파벌이 나뉘어 있어. 아리우스를 중심으로 한 수련파와 탈로크를 중심으로 한 자유파. 서로가 생활환경이나 마음가짐, 목적성이 달라.” “제가 보기엔 두 쪽 다 멍청합니다.” 호화로운 공중 침대에 누운 모제가 삐딱하게 말했다. “진심으로 생각하건대, 범재들의 멍청함은 연구 대상입니다. 다 같은 인간이고 다 같이 인간종이라는 비슷한 용량의 뇌를 들고 있는데, 어디까지 멍청해질 수 있나 서로 경쟁하는 것 같아요.” “쫌!” 하미엘이 그를 노려보았지만, 모제는 어깨를 으쓱했다. “행복? 그런 극도로 주관적인 개념조차 자기가 정의하지 못해 남이 정해준 대로 살려고 하다니. ‘아록에 가면 행복할 수 있다’는 타인의 말을 믿고, 정작 지금의 자신을 불행에 빠뜨리는 신세가 어리석기 그지없습니다.” 하미엘이 부루퉁한 표정으로 모제를 바라보았다. “저는 수련자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데요. 그럼…… 모제 형제님은 지금 행복하세요?” 그 말을 들은 모제가 잠시 멈칫하더니, 가만히 고개만 돌려 시몬을 응시했다. 그의 눈에 거대한 존경심과 신앙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행복해.” “그냥 자기최면이잖아요!” 부담스러움에 고개를 한 차례 뺀 시몬이 머쓱하게 헛기침을 한 뒤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건 중요한 부분인데, 내가 아록의 신수를 만난 적이 있거든?” 두 사람의 고개가 얼른 시몬에게로 되돌아갔다. “그 신수가 내게 이야기했어.” “뭐라고 했는데요?” 하미엘이 보채듯 물었고, 시몬의 침을 꿀꺽 삼킨 뒤 말을 이었다. “구해줘. 라고.” 잠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하미엘이 소름이 끼친 듯 쓱쓱 제 어깨를 쓸어내렸고, 모제도 괜히 한 차례 어두워진 결계 밖을 살폈다. “아록에 무슨 일이 있는 건 확실해.” 시몬이 후욱 하고 숨을 내뱉었다. “영원의 성녀 아스페리아가 먼저 우리를 부를지, 아니면 우리가 하늘섬에 요청한 수사관이 먼저 도착할지는 모르겠지만, 하루빨리 아록에 진입해서 상황을 알아봐야겠어.” “마, 만약 두 쪽 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죠?” 하미엘의 물음에 시몬이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활짝 미소 지었다. “그럼 강행 돌파해야지.” 모제가 ‘믿습니다!’를 외치며 손뼉을 쳤다. 아록에 와서 가장 즐거워하는 반응이었다. * * * 회의를 마치고, 시몬과 모제, 하미엘은 ‘성물화’한 주변을 정리한 뒤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하루 많은 일을 겪은 시몬도 깊이 잠들었지만, 얼마 안 가 눈을 떴다. -냐옹! -냥 냥! 하양이와 까망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아록에 온 김에 풀어두었던 두 고양이 신수들 덕분에 신경 써야 할 일이 늘었다. 시몬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얘들아?” 하지만 대답은 없었고, 저 멀리 ‘냥!’ 하는 울음소리만 울렸다. ‘왜 이렇게 멀리까지 간 거야?’ 시몬은 한 차례 크게 하품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모제와 하미엘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소리가 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울음소리는 근처에서 들린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멀리 가야 했다. “얘들아, 괜찮…….” 그렇게 말하던 시몬의 눈이 급격히 커지더니, 얼른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달빛이 비치는 밤. 하양이와 까망이가 한 생물과 놀고 있었다. 그 생물은 작은 가젤처럼 생겼고, 목이 짧은 기린을 닮기도 했다. 다이아몬드 같은 각진 점박이 무늬가 몸에 큼지막하게 나 있었고, 목 부분에는 하얗고 폭신해 보이는 털이 나 있다. 신발을 신은 것처럼 네 발밑 부분에도 흰털이 나 있고, 머리에는 뿔 대신 솜뭉치 같은 둥근 것이 달려 있었다. 시몬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아록의 신수!’ -냥! 냥! -뺘아아-! 두 고양이 신수들과 너무나도 잘 어울려 놀고 있었다. 서로 부둥켜안고 뒹굴며 울음소리를 냈다. 까망이는 신수의 머리 위로 올라가 목을 타고 미끄럼틀처럼 쭉 내려오기도 했으며, 하양이는 꼬리를 덥석 물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뭔가.’ 귀여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그때 하양이와 까망이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갑자기 ‘냥 냥!’ 소리를 내며 쪼르르 달려왔다. 바로 시몬을 찾아내 버린 것이다. 시몬이 무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모습을 드러낸 뒤, 자세를 낮춰 두 신수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건 그렇고.’ 시몬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아록의 신수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몸을 낮추며 주춤주춤 물러서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도망칠 것 같은 모습. 뭔가 액션을 보이면 바로 도망칠 것 같았기에, 시몬은 최대한 아록의 신수를 자극하지 않고 두 신수 고양이를 열심히 쓰다듬고 귀여워해 주었다. -냐아앙! “배고프다고?” 시몬이 하는 수 없다는 듯 아공간에서 가방을 꺼냈다. 신수는 프리스트의 신성만 먹어도 살 수 있지만, 가끔은 음식을 주고 맛을 가르치는 게 필요하다고 안나에게 들었다. 안나 특제 사료를 꺼내 들었다. 여러 곡물을 뭉쳐 건조한 사료인데 바닥에 조심스럽게 뿌려놓자 아기 신수들이 빠르게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스릅. 그 모습을 보는 아록의 신수도 입맛을 다시는 모습이었다. 시몬이 웃는 얼굴로 권하듯 손바닥을 내밀었지만, 신수는 여전히 경계하며 몸을 더 낮추었다. ‘경계심이 두터워. 극진을 켠다고 해서 관심을 가질 것 같진 않네.’ 시몬도 신수학 공부는 꾸준히 해왔기에 어느 정도의 지식은 있었다. 시몬은 아록의 신수에게 신경을 끈 채 두 신수 고양이가 사료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냥! 갑자기 하양이가 사료 하나를 입에 물고 쪼르르 아록의 신수 쪽으로 다가갔다. 이내 신수 앞에 사료를 바닥에 톡 내려놓고는 ‘야옹!’ 하고 울었다. ‘너무 착해!’ 지켜보는 시몬의 마음이 몽실몽실해졌다. 인간이 아닌 하양이가 사료를 건네주니 경계심이 떨어졌는지, 주춤주춤 시몬의 눈치를 보며 아록의 신수가 혓바닥으로 사료를 맛보았다. -뺘아아! 역시 안나의 수제 사료. 아록의 신수도 맛있었는지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다. 그러나 사료의 양이 적었는지 더 먹고 싶은 눈치다. 시몬의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걸어왔다. 시몬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도록 앞에 사료를 부은 뒤 물러났고, 마침내 아록의 신수가 사료를 빠르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좋았어.’ 맛있는 걸 먹여주니 비로소 경계가 풀렸고, 아록의 신수가 시몬에게 다가왔다. -빠! 손을 핥더니, 이제 머리를 시몬의 손에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시몬은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쓰다듬었다. ‘극진, 이제 시도해도 되려나?’ 하양이와 까망이, 그리고 곰 신수 아칼리온. 사실 신수사제로 활동하기에 지금의 신수들로도 충분하지만, 아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역시 아록의 신수를 얻고 들어가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시도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시도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 어느 정도 신수와 호감을 쌓았다고 생각한 시몬이 두 팔을 뻗었다. ‘집중.’ 싸아아아아! 주위에 바람이 불고 대지가 떨린다. 곳곳에서 신성들이 일어나 시몬의 중앙으로 몰려들며 빛의 형태를 이룬다. <극진> 파아아아아! 신성의 원이 펼쳐졌다. 시몬은 긴장한 얼굴로 신수의 동태를 지켜보았다. 펄쩍! 사료를 먹고 기분이 좋아진 줄 알았던 아록의 신수가 폴짝 뛰었다. 시몬의 착각이 아니라면, 신수의 표정에는 ‘이럴 줄 알았어!’라는 듯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너무 성급했나?’ 하지만 의외로 극진에서 느껴지는 신성이 기분 좋았는지, 관심을 보이며 조금씩 신수가 다가왔다. 여기서 신수가 신성을 일으켜 시몬의 극진에 자신의 신성을 주입한다면 성공. 그렇지 않으면 실패였다. 아록의 신수가 신성을 일으키듯 몸에서 빛을 내기 시작하는 순간. 절레절레! 갑자기 정신 차려야 한다는 듯 아록의 신수가 고개를 맹렬히 저었다. 그러고는 극진을 지나쳐 시몬에게 다가와 옷깃을 가볍게 물었다. “왜, 왜 그래?” -빠아아아! “따라오라고?” 시몬이 결국 극진을 해제하고 아록의 신수를 따라 뛰어갔다. 아록의 신수는 옆에서 달리면서 톡 하고 얼굴을 시몬의 몸에 댔다. 그러자 신수의 감정이 시몬에게 흘러 들어왔다. -널 내가 사는 곳에 데려갈 수는 없어. 신수의 의지가 느껴졌다. -너도 그 인간들처럼 되는 건 싫어. “!”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수가 눈에 힘을 주고 ‘빠아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다면 역시……! 잠깐만!” 갑자기 아록의 신수가 파박 하고 뛰어 들어가 바위 뒤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시몬이 아록의 신수를 뒤따라갔다. “무슨 말이야!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줘!” 시몬이 그렇게 외치는 그때. 고오오오오오오! 갑자기 바위 너머로 거대한 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건……!’ 빛으로 이루어진 듯한 신수. 시몬이 지금까지 본 신수 중 가장 거대한 신수가 고개를 빼 밀어 시몬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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