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09화 “후우우!” 한 수련자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무릎을 굽힌 채 ‘극진’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호수에서 목을 축이던 아록의 여우 신수가 그 모습을 발견했다. 참방참방. 호기심이 생겼는지, 신수가 물을 튀기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긴장감으로 얼굴이 창백해진 수련자는 숨까지 참아가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아록의 신수가 외곽까지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고, 수련자들의 신성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더더욱 드물었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걸 수련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부럽다!” “저 녀석, 오늘 등선하는 거야?” 곳곳에 다른 수련자들도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아록의 신수와 처음으로 대면한 수련자의 극진을 방해하지 않는 건 수련자들 사이의 절대적인 불문율이었다. 마침내 신수가 수련자의 극진 앞으로 다가왔다. 극진은 수련자의 모든 것. 그의 극진이 마음에 든다면 신수가 다가와 자신의 신성을 그곳에 흘려보내는 것으로 계약이 성립된다. “지, 진짜 저 녀석이 아록으로 가는 건가.” “긴장돼서 숨도 못 쉬겠군.” 수련자들은 하나같이 자기 일처럼 몰입하여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홱. 여우 신수가 외면하듯 고개를 돌려 버리더니, 참방참방 호수 물을 튀기며 다른 곳으로 유유히 가버렸다. 수련자는 눈앞이 새카매지는 절망을 느꼈는지 힘없이 호수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늘어뜨렸다. 그리고. 키이이이잉! 키이이이이이이잉! 기다렸다는 듯 호수의 모든 수련자들이 앞다투어 극진을 펼치며 여우 신수를 유혹했다. 첫 대면을 한 수련자가 실패했으니, 지금부터는 경쟁전이었다. 타악! 절실한 표정으로 앞으로 뛰쳐나온 아리우스 또한 주위의 자연을 끌어와 극진을 펼쳤다. 눈 깜빡할 사이에 이 넓은 호수 전체가 신성의 힘으로 가득 차게 됐다. “이보시게 형제! 뭘 멍하니 있는 겐가!” 극진을 펼친 한 수련자가 가만히 서 있는 시몬을 향해 외쳤다. “아리우스 형제를 넘어 우리에게까지 신수가 오긴 힘들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펼쳐보게!” “아, 저는…….” 참방참방. 여우 신수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련자들 모두가 십수 년 수련의 성과를 발휘하듯 최대한의 집중력을 끌어올린 채 극진을 펼치고 기다렸다. 하지만 여우 신수는 여러 극진들을 하나둘 지나치며 도도하게 총총 걸어갔다. 외면받은 수련자들은 힘이 빠져 그대로 호수에 주저앉거나 아쉬움에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아리우스 형제에게 간다!” “역시!” 모두의 시선이 아리우스로 향했다. 아리우스는 등의 도복이 땀으로 흥건히 젖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여우 신수가 자신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그의 입꼬리가 환희로 떨렸다. ‘드디어 내가…… 아록으로!’ 그러나 여우 신수는 아리우스의 극진을 본체만체하며 그의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 버렸다. 외면받은 아리우스도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호수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잠깐!” “어디까지 가는 거야?” 수련자들을 도도하게 지나친 여우 신수가 마침내- “?” 아직 극진을 펼치지도 않은 시몬 앞에서 멈춰 섰다. 모든 수련자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소, 속세인!” “어제 들어온 녀석 아냐?” 멀리서 주저앉아 있던 아리우스가 그 모습을 보고는 버럭 외쳤다. “어서 극진을 펼치십시오 시온 형제님!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셈입니까!” 그 말을 들은 시몬이 정신을 가다듬고는 자신의 극진을 펼쳤다. 아직은 다소 불안정하지만 너무나 깨끗하면서도 정순한 극진에, 여우 신수는 관심을 보이듯 다가와 코를 킁킁거렸다. ‘?!’ 그 순간.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시몬은 신수의 감정이 자신에게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신수에 대한 소유욕으로 눈이 멀어 있을 때, 순수한 외부인인 시몬만큼은 알 수 있었다. ‘다들 잘못 짚었어.’ 시몬은 제 손으로 극진을 꺼뜨린 뒤, 여우 신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 신수에게는 이미 주인이 있다. 그리고. “……도.” 시몬의 동공이 흔들렸다. “도와달라고?” -케웅! 신수가 그 말에 응답하듯 울음소리를 냈다. 움찔! 그러다 멀리서 무언가를 감지한 것처럼, 갑자기 전신의 털을 곤두세우더니 후다닥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떠나 버렸다. 모두가 허망한 표정으로 눈을 감거나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도 실패인가.” “20년간 이 짓거리를 했는데도 수련 부족이라니!” “대체 나는 언제까지…….” 모두가 허망해하거나 짙은 회한에 잠겨 한숨을 쉬고 있었다. 첨벙첨벙! 그 가운데 호수 물을 헤치며 한 수련자가 씩씩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다름 아닌 처음에 여우 신수에게 극진을 펼쳤던 바로 그 수련자였다. “이 개자식!” 덥석! 그가 시몬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챘다. “아록의 신수는 처음부터 나한테 관심이 있었어! 네가 방해했지? 어? 뒤에서 뭔가 손을 썼지!” 시몬은 당황하지 않고 두 손을 펼쳐 보이며 답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오해는 무슨 오해! 네가 내 10년을 망쳤……!” “바티오 형제!” 버럭 소리치는 외침에 바티오라 불린 수련자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리우스가 분노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부끄럽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겁니까! 자신의 수련 부족으로 일어난 일을, 감정에 휘둘려 다른 사람을 탓하다니!” 그 말에 바티오의 어깨가 말린 잎사귀처럼 움츠러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렇게 썩어빠진 정신 상태니 첫 신수와의 대면에서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외면당한 것 아닙니까!” 상처를 후벼 파는 한마디에, 바티오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 그가 바들바들 어깨를 떨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리우스 형제.” 그리고 풀이 죽은 얼굴로 시몬에게도 사과했다. “내가 잘못했소.” “괜찮습니다.” 그가 어깨가 축 늘어진 뒷모습을 보인 채 터덜터덜 호수 밖으로 걸어갔다. 시몬은 저 바티오라는 수련자가 내일이면 수련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 아리우스 역시 마음이 편해 보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끌어올린 그 분노. 그리고 방금 그 말은 바티오에게 한 말이었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던진 말이기도 했으리라. “자, 다시 수련하러 갑시다. 아록에 있는 한, 이런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번뇌에 사로잡히지 맙시다! 부족함을 절감했다면 수련만이 답입니다!” 수련자들이 정신을 수습하고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리우스도 감정을 진정시켰는지 평소의 얼굴로 다가와 시몬에게 물었다. “……아까 일 말입니다, 시온 형제님.” “아, 네.” “왜 극진을 멈춘 겁니까?” 시몬이 태연히 답했다. “그 아이는 이미 주인이 있는 것 같아서요. 주인을 구하러 온 게 아니라, 자신의 주인을 도와달라고 도움을 청하러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리우스가 미약하게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리가요. 이곳 아록에서 주인이 있는 신수들은 이렇게 먼 외곽 지역까지 나오지 않습니다. 보통은 주인 곁을 지키거나 근처에 있죠.” “……음.” 시몬은 더 설명하려고 했지만 설득의 근거가 부족했다. 게다가 자신은 여기 온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외부인이지 않은가. “다음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물론 너무 아쉬워하지도 마시구요.” 그렇게 말한 아리우스가 터덜터덜 걸어갔다. “더 나은 신수가 형제님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요. 저보다 아록에 먼저 들어가는 건, 형제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 * 시몬의 동료인 하미엘과 모제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휘이이- 휘이이이- 하미엘은 수련자들이 시끄럽게 몰려들건 말건, 악기를 연주하며 정령들을 만나러 자연 곳곳을 쏘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주위로 여러 정령들이 모여들었다. 정령들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며, 아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하나하나 파악해 나갔다. 그녀의 손끝에서 나오는 음률이 정령들과의 소통을 이어주는 매개가 되고 있었다. 동시에 같은 시각, 모제는 아록의 안내원과 함께 있었다. -흥미로운 자료인걸. 모제는 하늘섬에서 근무했던 만큼 일종의 고위 공무원이었다. 내정을 꿰뚫어 보는 탁월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록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서류로 분석하고 파악했다. 모제가 툭 하고 서류를 내려놓으며 미소 지었다. -그 영원의 성녀 아스페리아라는 여자, 얼마나 철면피인지 궁금해서라도 빨리 만나보고 싶은데. 그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경계심이 동시에 어려 있었다. * * *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사이, 아록 외곽에도 밤이 찾아왔다. 수련자들도 이제 수련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러 자리를 떠났다. 평소라면 밤샘 수련을 하는 자들도 종종 있었지만, 오늘 아침에 아록의 신수를 놓쳐 버린 대형 사태가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추스를 겸 일찍 쉬기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한 시몬이 홀로 호수로 나왔다. 참방참방. 바지를 최대한 걷어 올리고 단단히 묶은 뒤, 어둠이 깔린 호수를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백마법을 써서 주위를 밝히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 위험이 있었으니 최대한 맨눈으로 밤길을 더듬으며 이동했다. ‘아침에는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밤이 된 호수는 기괴할 만큼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빼룩 빼룩! -끄그그그그. 처음 들어보는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호숫가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죽은 듯이 멈춰있었다. ‘이쯤이면 뭔가 보여야 할 텐데…… 아.’ 시몬의 눈이 커졌다. 호수의 끝. 그 너머로 육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육지 위로는 방대한 자연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가시덤불.’ 이것이 아록 외곽과 내부를 차단하는 경계인 것 같았다. 가시가 잔뜩 엉켜 있는 이것은 무언가를 막기 위해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몬은 성큼성큼 물 밖으로 걸어 나와 그 앞에 섰다. 이 가시덤불에는 특별히 강력한 백마법이 걸려 있는 건 아니었다. 칠흑 화염계를 쓴다면 어렵지 않게 불태울 수 있을 정도. ‘으으음, 내부가 보일 듯 말 듯 한데.’ 시몬은 가시 사이로 보이는 틈을 찾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인내심을 가지고 주위를 살피며 걷다 보니, 마침내 가시덤불에 살짝 엿볼 수 있는 작은 틈을 발견했다. 시몬이 그 틈으로 내부를 엿보았다. ‘아.’ 저곳이 바로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아록의 진짜 모습. 내부의 풍경은 외곽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중간중간 불룩불룩 솟은 구릉과 언덕이 점점이 이어져 있었다. ‘어, 잠깐만.’ 시몬의 눈이 커졌다. 언덕 너머에서 무언가 꿈틀꿈틀 움직임이 보였다. ‘뭔가 보이는 것 같기도…….’ 잔뜩 집중한 시몬이 눈을 가늘게 뜨며 구멍 너머를 주시하고 있는 그때. 슥- 갑자기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시몬이 반사적으로 뒤돌아 팔을 뻗었고, 두꺼운 손목이 그의 손에 붙잡혔다. “누구…… 아!” “쉿. 쉿.” 입술에 검지를 올리며 그렇게 말한 자는 도복을 입고 머리가 삐쭉 솟아 있는 수련자. 아리우스와 대립하던 탈로크였다. “여긴 위험해. 신입. 아록 측에 들켰을지도 몰라.”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