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10화 “아록 측에 들켰을지도 모른다구요?” “어어.” 탈로크가 입술에 올린 검지를 내리고는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에 경비가 삼엄해져서 말이야. 가시덤불 경계로부터 500m 내는 진입 금지야. 호수 깊은 곳까지 들어오는 것도 안 된다고.” 시몬이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다시 구멍으로 내부를 살폈다. 방금 봤던 그 꿈틀거리는 것이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시몬이 한숨을 푹 쉬며 다시 탈로크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는 형제님은 왜 여기 와 계신데요?” 시몬의 물음에 탈로크가 스읍 하는 소리를 냈다. “나도 오랜만에 온 거야! 아록의 상황이 신경 쓰여서!” “오랜만에? 그럼 전에도 오셨다는…… 읍.” 탈로크가 시몬의 입을 가리며 옆으로 돌아섰다. 잠시 샤아아아- 하고 가시덤불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기척이 들렸는데, 들짐승인가 보…… 어이쿠!” 탈로크가 눈을 찡그리며 엄살을 부렸다. 어느새 시몬에게 붙잡힌 팔이 옆으로 꺾여 있었다. 시몬이 옆으로 걸어가면서 손에 힘을 주자, 탈로크가 팔이 뒤로 꺾인 채로 ‘아, 아!’ 하면서 요란스럽게 파닥거렸다. 힘으로 빠져나오려 했지만 시몬의 완력을 어쩌지 못했다. “뭐 이런 귀염성 없는 놈이 다 있어!” “목소리 낮춰요. 그리고 대답이나 들어볼까요. 이전에도 경계에 들락날락하신 이유는?” “아, 뻔한 거 아니냐!” 그가 숨죽인 목소리로 외쳤다. “순진하게 아록의 신수의 선택을 받을 때까지 수련이나 하면서 허송세월 보내는 거, 이 탈로크와는 안 맞는다 이 말씀이야! 뭔가 다른 수단이 없을까 찾아보려고 온 거지! 그리고……!” “그리고?” 탈로크가 입꼬리를 쓱 올렸다. “확률은 낮지만 가끔 아록인들을 훔쳐볼 수 있거든. 그게 꽤 만족스…… 아아아!” 시몬이 손목을 한 차례 꺾은 뒤 탈로크를 놔주었다. 그가 앞으로 몇 발짝 물러나며 손목을 매만졌다. “매콤한 친구네.” “진짜로 아록의 수련자 맞아요? 아리우스 형제님이 싫어할 만하네요.” 시몬이 그렇게 말하여 옆으로 걸어갔다. 아리우스라는 이름이 나오자 탈로크의 눈썹이 꿈틀하더니, 얼른 시몬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이봐 신입! 그 고리타분한 아록 추종자 말은 들을 필요 없어! 내가 아록을 훔쳐봐서 잘 아는데, 아록은 그놈들이 생각하는 천국이 아니야!” “그럼요?” 탈로크가 턱을 쓸었다. “행복하다면 행복한 것 같은데, 내 눈으로 보기엔 좀 지루하고 따분해 보인다고 할까.” 여기서 시몬은 이 사람의 의견은 별로 참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것이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타입. 이런 인간에겐 일국의 왕 자리를 줘도 따분하다고 하지 않을까. “그보다 우리 신입도 아록에 흥미가 있는 것 같은데! 훔쳐볼 거면 여기 말고 더 좋은 포인트가 있어.” “그럼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목소리 더 낮춰요.”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이동하며 점점 가시덤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사이. 샤아아아아- 한 차례 바람이 불며 가시덤불이 흔들렸다. 방금 시몬이 들여다보던 가시덤불의 작은 구멍. 바로 그곳으로- “…….” 시뻘겋게 충혈된 눈동자가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시몬은 탈로크가 말한 가시덤불 경계의 포인트로 가보았지만,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으음, 이상하다? 여기 분명 큰 구멍이 있었는데. 언제 아록 놈들이 막아놨지?” 가시덤불에 변화가 생겼는지 포인트가 전부 막혀 있었던 것. 시몬은 시간을 날렸다는 사실에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꼈고, 그 모습을 본 탈로크가 키득거리며 한마디 했다. “미안, 미안. 사과의 의미로 내 집으로 초대하지.” “집이요?” 아록에는 주거지라는 개념이 없다. 수련자들은 모두 집 없이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는 아록인들을 동경하기에, 그들도 흙바닥이나 풀밭에 자거나, 잠자리가 꼭 필요하면 그물침대에서 자는 정도다. 비가 오면 나무 그늘에 잠시 비를 피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밤에도 따뜻한 사계절 온화한 날씨, 많지 않은 강수량에 도둑도 없고, 프라이버시도 필요 없다. 소유에서 번뇌가 온다고 생각하기에 수련자들은 자연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집이네요?” 시몬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록 외곽의 수련호수에서 조금 떨어진 숲. 그곳의 커다란 나무 위에 말끔하게 지어진 집 한 채가 보였다. 시몬이 3학년이 되고 차지한 소환학과 기숙사의 ‘트리하우스’와 비슷하면서도, 훨씬 와일드한 느낌이었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두 사람은 흔들거리는 밧줄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집 안에 들어서자 시몬은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속세다.’ 집 안은 놀랍도록 아득했다. 푹신한 소파도 있고, 곳곳에 술병들이 가득했다. 벽면에는 헐벗은 여성의 그림이 붙어 있었으며, 담뱃재가 수북했다. “웃차차!” 탈로크가 고리타분한 도복은 벗어 던지고 고급스러운 털잠옷을 걸쳤다. 그러고는 시가를 입에 문 채 방으로 걸어갔다. “잠깐 기다려! 먹을 만한 거 만들어올 테니.” 뭔가 고기를 써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그가 가져온 건 호화로운 은빛 접시에 담긴 커다란 고기 요리였다. 차갑게 먹는 수육 같은 음식인 듯했다. 아록에 와서 맨손으로 나물만 집어 먹던 시몬은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뇌물이야. 뇌물.” 탈로크는 접시를 시몬 앞 테이블에 내려놓고, 빵이나 잼, 버터 등을 착착 내려놓았다. “아리우스나 다른 수련자 형제들한텐 비밀로 해줘.” 달그락. 반짝이는 나이프와 포크가 시몬의 앞에 놓였다. 그 모든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다른 형제님들이 그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탈로크 형제님만 혼자 이런 생활을 즐기고 계셨던 겁니까?” “탈로크라고 편하게 불러.” 그가 소파에 털썩 앉으며 수육을 나이프로 슥슥 썰었다. “생각해 봐, 젊은 신입. 1년에 수련자가 얼마나 아록으로 들어가는 줄 알아?” “얼마나 들어가는데요?” “많아도 한두 명 정도야.” 그가 눈을 서늘하게 빛냈다. “반면, 매년 아록 외곽의 수련호수에 오는 사람들은 천 명이 훌쩍 넘지. 지금처럼 결사인가 뭔가로 세상이 어지러운 때에는 이천 명 가까이 되기도 해. 뭐, 대부분은 몇 달 못 버티고 나가떨어지지만 말이야.” 그가 나이프로 썬 수육을 시몬의 포크에 꽂아 건넸다. “내가 볼 땐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야.” “…….” “수련자들 평균 수련 기간이 10년이 넘고, 20년 넘게 수련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해. 그런데 정작 아록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수련 기간이 짧거나, 속세에 물든 놈들이 은근히 나온단 말이지. 바지런히 수련하는 놈들이 손해 보는 장사 아니겠냐?” 시몬이 마지못해 수육을 들어 입에 넣어보았다. 몬스터 고기로 보이지만, 며칠간 씁쓸한 풀이나 과일만 먹었더니 산해진미를 먹는 기분이었다. 시몬이 잘 먹는 모습에 탈로크도 만족스럽게 손가락을 튕기며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에 아록의 신수가 호수로 내려와서 난리 났다며? 신입 너도 봤지?” “네.” “그때 그 녀석들 표정 기억해?” 탈로크가 으흐흐 음흉하게 웃으며 두 눈을 가리켰다. “눈에 탐욕이 가득하지? 극진 펼치는 거 방해하면 죽이려 들 것 같지?” 시몬이 바로 답하지 못하자, 탈로크는 그것 보라는 듯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런 놈들이 무슨 수련자야! 정신 수양은 별 의미가 없어. 그럴 바엔 나처럼 운에 맡기고 시끌벅적 내키는 대로 사는 게 최고란 거지!” “그럴 바엔 차라리 도시로 돌아가서 보통 사람처럼 사는 게 더 낫지 않아요?” 시몬의 일침에 탈로크가 흠칫했다. “쓰으읍- 하아, 정곡을 찔렸구만. 그래, 그게 현명하긴 한데…… 매몰 비용이라는 게 있단 말씀이야. 나도 이제 7년 차고, 시간을 많이 썼으니 이제 와서 떠나기엔 좀 그래! 인생 한 방을 노리면서도 느긋하게 눌러사는 거. 그게 내 모토다.” 탈로크가 고깃덩어리를 입안에 쑤셔 넣으며 질근질근 씹었다. “만에 하나 아록의 신수를 손에 넣지 못해도,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하지 않도록 말이야.” “…….” 아리우스와 탈로크. 수련에 뜻을 두었지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두 수련자들. 시몬은 아직 아록에서의 경험이 적었기에, 당장은 어느 한쪽이 옳다고 판단할 수 없었다. “어제부터 수련을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네 인생을 위해 조언하마.” 어느새 포도주 뚜껑을 열고 한 잔 크게 들이켠 그가 ‘캬하’ 소리를 내며 시몬을 가리켰다. “적당히 수련 체험만 하고 가는 게 최선이고, 눌러앉을 생각이라도 수련에 모든 걸 쏟지 마. 전부 무의미한 시간 낭비가 될 가능성이 크니까.” * * * 시몬은 탈로크로부터 아록과 수련자들에 대해 여러 정보를 얻은 뒤 그의 집에서 빠져나왔다. 종반부터는 탈로크가 술에 취해서 제대로 된 정보인지, 아니면 그의 개인적인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봤을 때, 딸꾹! 영원의 성녀 있지? 고거, 아스페리아 성녀! 그 여자가 보통 여자가 아니야. 우리 모두를 속이고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시몬이 탈로크의 집에서부터 나와서 수련호수로 돌아올 즈음 벌써 날이 밝아 있었다. 아록은 밤이 짧고 낮이 긴 편이었다. “아, 형제님!” 수련호수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리고 있던 하미엘이 시몬을 보고 소리쳤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모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미엘, 모제.” “왜 이렇게 늦으신 거예요! 무슨 일이 있었나 걱정했잖아요!” “미안해. 탈로크를 만나고 왔어. 무슨 일이 있는지 차근차근…….” 뿌우우우우우우우우! 웅장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수 전체를 장악하듯 호수가 물결치고 주위가 진동했다. 곳곳에서 수련을 하던 수련자들이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에요?” 시몬이 물음에 한 수련자가 답했다. “아록에서…… 사람이 나옵니다.” “네?” “성녀의 집행자가 오고 있습니다!” 촤아아아아아! 일순 하늘에서 태양처럼 눈부신 빛이 일렁였다. 모두가 팔로 눈을 가렸다. 시몬도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전면을 살폈다. ‘저들이 바로…….’ 마치 성전에 등장하는 천사가 내려오듯, 빛의 날개를 세우고, 빛의 옷을 차려입은 남자와 여자와 창을 든 채 내려오고 있었다. 압도적인 광채와 신성. 두 사람이 일으키는 ‘개등’에 근처에 있는 수련자들 모두가 식겁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바닥에 바짝 엎드리는 자들도 있었다. 시몬과 하미엘도 사람들을 따라 적당히 고개를 숙였지만, 시선은 그 두 사람에게 꽂혀 있었다. 차박 차박. 시몬은 처음으로 보는 ‘아록인’들. 그런 아록인들 중에서도 성녀의 수발을 들 권리를 갖춘 자들. 수련자들이 모두 꿈에 그리는 목표인 ‘성녀의 집행자’들이 내려왔다. 차박. 차박. 그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자 수련자들이 빠르게 길을 만들어주었다. 허름한 수련복 차림의 그들과, 빛의 섬유로 옷을 지어 입은 집행자들 사이엔 커다란 격차가 나는 것처럼 보였다. 타다닷! 그때 수련자들의 대장격인 아리우스가 달려왔다. 새벽 훈련을 하고 있던 그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두 성녀의 집행자들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비트라 벤 라우스. 아록의 시민을 뵙습니다. 무슨 용무로 저희 미천한 것들을 찾아주셨는지요.” [위대한 성녀님의 뜻을 너희 기생자들에게 전하마.] 남녀 중에, 여성 집행자 쪽에서 입을 열었다. [탈로크라는 자를 우리 앞에 데려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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