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06화 “와아아아아아!” 가히 ‘낙원’이라고 할 법한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태고의 자연. 가지런하게 자라난 고목들이 하늘을 향해 우뚝 우뚝 솟아 있고, 그 사이로 햇빛이 부드럽게 스며들어 풍경을 환하게 밝혔다. 들판에는 형형색색의 향기로운 꽃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으며, 사슴이나 말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호수는 거울처럼 맑고 투명해서, 주변의 나무와 하늘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었다. 곳곳에 솟은 기암괴석 위로는 여러 줄기의 폭포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물방울이 부딪혀 흩어질 때마다 햇빛이 반사되어 무지개가 생겨났다. “저기 봐요! 사람들도 있어요!” 하미엘이 가리킨 방향을 보니 정말로 사람들이 있었다. 복장이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들은 도복 같은 넉넉한 옷을 입은 채 자유롭게 자연을 거닐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풀밭에 누워서 물끄러미 구름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폭포 아래 정좌하고 차분하게 물을 맞으며 수련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연을 벗 삼아 술을 마시는 사람들, 계곡에 발을 담그고 담소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신기하다.’ 그야말로 신선놀음. 정말로 신선이 기거하는 곳과도 같았다.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신비로운 풍경에 시몬은 압도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파라한 교수님이랑 느낌이 비슷하네.’ 키젠의 신성방어학 교수 파라한은 프리스트이면서도 뒷짐을 진 채 부채를 흔드는 등 신선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곳 출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라우스. 속세에서 오신 분들 되십니까.” 그때 도복을 입은 한 남자가 두 손을 곱게 포개며 인사를 건넸다. 하미엘이 눈치껏 그 동작을 따라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라우스! 반갑습니다 형제님! 저희는 이곳에서 머물며 신성 수련을 하기 위해…….” “비켜.” 하미엘의 얼굴을 옆으로 치워 버리며 모제가 등장했다. 하미엘이 이익! 하고 화를 내며 폴짝 뛰었지만 모제는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영원의 성녀, 아스페리아 님을 만나고 싶다.” 대뜸 본론부터 박아버리는 모제였다. 그의 무례한 태도에 당황해할 만도 했지만, 남자는 태연히 미소 지으며 두 손을 배꼽 위에 가지런히 포갰다. “저는 아록의 손님을 맞이하는 아록의 안내원입니다. 성녀님께 어떤 용무가 있으신지요?” “우리는 하늘섬에서 왔다.” 쿵! 모제가 신성 아공간을 열고 커다란 금속 악기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대성물 ‘엘사이르의 영종’이다. 최근에 해석을 완료했고, 성녀님께 진상할 물건이지. 그러니 안내해라.” 모제는 이미 이곳을 다스리는 영원의 성녀, 아스페리아를 만나기 위한 요청을 넣어두었다. 그것도 프리스트라면 누구나 가지길 꿈에 그리는 성물을 진상하기 위해서. 신성연방에서 성물의 가치는 대단히 높다. 누구라도 성물을 주러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급히 뛰어나와 물건을 받아가려 할 것이고, 성녀라고 해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성물을 바치기 위해 아스페리아와 만나는 그사이. ‘성녀와 접촉하여 정수의 잔재를 손에 넣는다.’ 시몬이 눈을 빛내며 남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남자는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섬의 프리스트분들이셨군요. 혹시 언제 성녀님께 소식을 보내셨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한 달쯤 됐을걸.” “그렇군요. 아마도 형제님께서 보내준 서신은 아직 성녀님께 당도하지 않았을 겁니다.” 모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직도……?” 아록은 바깥세상과 극단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는 곳이다. 지금 일행들이 와 있는 곳도 아름다워 보이지만 사실은 아록의 외곽 지역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아록’은 아니다. 아록은 특정 일자에만 허가된 속세인이 내부로 들어갈 수 있으며, 이때 속세의 소식이나 서신 또한 전해진다. “마침 이틀 전에 서신을 가진 전령이 아록으로 들어갔습니다.”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오늘 밤이면 답을 가지고 돌아올 테니 그동안은 느긋하게 기다리시죠.” “절차 더럽게 번거롭네! 감히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기다리게 하겠다는……!” 덥석! 시몬이 모제의 입을 막으며 미소 지었다. “라우스, 형제님의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쉴 곳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 * 당연하겠지만, 바로 성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오늘 저녁에는 서신을 갖고 아록에 들어간 전령이 돌아온다니 그의 답변을 받아볼 수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세 사람은 일단 그 말에 만족하기로 하고, 안내원을 따라 숙소로 향했다. “이쪽에서 주무시면 됩니다.” “…….” 세 사람은 그저 입을 벌린 채 우뚝 멈춰 섰다. 안내해 준 곳은 그저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숲 한복판, 그물 침대 세 개가 덩그러니 있고, 바닥에는 천 쪼가리가 깔린 소박한 공간이었다. “이, 이건 너무합니다!” 하미엘이 소리 질렀다. “아무리 저 인간이 못나게 굴었어도 우리는 손님이에요! 손님을 첫날부터 노숙하게 하는 건 너무 심하잖아요! 외부인에 대한 괴롭힘입니까! 텃새인가요?” “그럴 리가요!” 안내원이 다급히 손을 휘저었다. “아록에서는 본래 ‘집’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네?” “그 말이 맞는 것 같네.” 시몬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까 봤던 들판이나 호숫가와는 달리, 이곳 숲의 그늘 아래에는 사람들이 머물다 간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숲 곳곳에 널린 빨래나 식기들이 가득했다. 정말로 그냥 밖에서 자는 것 같았다. 실제로 풀밭이나 바위 위에 누워 드르렁거리며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록은 계절 내내 기후가 온화하지요. 밤에도 따뜻해서 주거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안내원이 부드럽게 말했다. 하미엘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도, 도둑이 들어오면요?” “아록의 사람들은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습니다.” “비가 오면요?” “나무 그늘로 잠시 피하시면 됩니다.” “누가 갈아입는 거 훔쳐보면요!” “아록의 사람들은 욕정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는요!” “빽빽한 도심에서 생활하시던 분이라면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아록에는 비밀이란 게 없습니다. 모두가 사실을 공유하며 평화롭게 지내죠.” 하미엘이 뭔가 더 물으려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럼 화장실은…….” 안내원이 환한 표정으로 멀찍이 숲의 어두운 지역을 가리켰다. “이곳은 사람들이 자는 공간이니, 되도록 어둡고 먼 곳에서 땅을 파고 해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쿵! 하미엘이 근처 나무에 이마를 찧으며 축 늘어졌다. “하루도 안 됐는데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어…….” 시몬은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며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쿠울! 쿨쿨! 그 옆에는 벌써 그물 침대에 누워 세상모르고 낮잠을 자고 있는 모제의 모습이 보였다. 누구보다 빠르게 이곳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록에서는 이쪽 의상으로 갈아입어 주시길 바랍니다.” 펄럭! 아까 계곡에서 사람들이 입고 있던, 그 품이 큰 도복 세 벌을 내려놓은 안내원이 두 손을 포개며 미소 지었다. 시몬이 도복을 챙기며 물었다. “신발은 없나요?” “아록에서는 맨발로 다니셔야 합니다. 모두 갈아입으시고 짐 정리가 끝나시면 처음 만났던 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저녁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그렇게 안내원이 물러나고, 세 사람은 도복으로 갈아입었다. ‘음!’ 시몬은 꽤 이 도복이 마음에 들어서 여러 번 몸을 돌려 보았다. 자연 원단이 시원하기도 하고, 수련자들이 입는 옷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하아.” 마찬가지로 어두운 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온 하미엘은 벌써 맥이 빠진 표정이었다. 시몬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원래 아록이 이런 곳이었어?” “소관도 소문은 들었는데, 소문이 과소평가된 거였습니다. 이 정도일 줄은…….” 저녁 식사를 먹기 위해 움직이며 시몬은 하미엘이 알고 있는 아록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들었다. 4대 성역, 아록. 이곳은 신성량이 풍부한 곳인 건 물론, 온화한 날씨 덕분에 가만히 있어도 영양분이 가득한 과일 등이 주렁주렁 자란다고 한다. 배고픔도 없고 병도 없는, 말 그대로 낙원에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아록은 마치 ‘낙원’의 타이틀을 가져간 하늘섬에게 항의라도 하듯, 누구보다 성전에 나온 낙원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걱정도 근심도 두려움도 없으며 신선처럼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록에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니다. 이곳을 다스리는 영원의 성녀의 가족들. 직계 후손들. 그리고 깨달음을 얻고 아록으로 들어갈 자격을 얻은 자들만이 영원의 성녀를 만나 허락을 받은 뒤 아록에서 살 수 있었다. “여기는 진짜 아록이 아니라 외곽 지역이라고 했지? 그런데도 이렇게 생활하는 거야?” “네.” 이곳 아록 외곽에 지내는 사람들은 아록인들을 동경하며, 자신도 아록에 들어가기 위해 수련으로 육체와 마음을 갈고닦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이 주거지를 두지 않는 것도, 채식을 하거나 도복을 입고 소탈하게 다니는 것도, 모두 아록인들을 따라 하는 거겠죠. 그들과 동화되어 아록에 들어가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하미엘을 따라 걸으며 시몬이 물었다. “아록에 들어갈 자격이 뭔데?” “신수.” 그녀가 손끝을 세우며 답했다. “아록에 사는 신수의 인정을 받아 그들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아록의 신수들은 극도로 경계심이 많고 예민해서, 가장 순수한 신성 사용자만을 주인으로 섬겨요. 그렇게 눈이 높은 아록의 신수가 주인으로 인정한 인간만이 아록에 들어올 자격을 얻는 거예요.” “오.” 시몬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 “아록에서 사는 건 관심 없지만, 나도 한 마리 갖고 싶네.” “쉽지 않을걸요.” 하미엘이 입꼬리를 올린 채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쉬웠다면,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련을 하고 있을 리 없잖아요.” 시몬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쏴아아아아! 쏴아아아! 폭포 곳곳에 자리 잡고 정좌 자세로 물을 받으며 마음을 비우며 버티는 사람들. 드륵 드륵! 자기 몸만 한 거대한 바위를 옮기는 사람. 고오오! 달구어진 바위 위에 앉아 그야말로 돌처럼 굳어져 버린 사람들 등등. 각기 자연을 활용한 수련법이 달랐다. 시몬은 관광객처럼 눈을 빛내며 흥미롭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련을 통해 깨끗한 마음, 깨끗한 육체, 순수한 신성을 가진 자만이 아록의 신수들이 찾아온다는 건가.’ “아, 여러분! 이쪽입니다.” 마침 준비가 끝난 안내원이 세 사람을 데리러 왔다. * * * 아록에서의 첫 식사. 저녁 시간이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안내원은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바위 위로 이들을 안내했다. “멋지네요!” 쏴아아아아아아! 폭포수가 쏟아지는 이 아름다운 대자연에서 먹는 식사. 이곳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안내원은 풀줄기를 엮어 만든 보자기를 풀더니 그 안에서 각종 나물과 채소를 꺼내 나뭇잎 위에 정성스럽게 올려놓았다. “으윽.” 하미엘이 흠칫하는 반응을 보였다. “역시나 전부 채식……. 혹시 고기는 없나요?” 안내원이 살짝 웃으며 두 손을 모았다. “없습니다. 깨끗한 정신은 깨끗한 음식으로부터 시작하니까요.” 간도 없이 밍밍한 채소와 나물들이었고, 식기도 없어서 맨손으로 먹어야 했지만, 그래도 주위의 빼어난 경관 덕분에 그 맛조차도 신선하고 상쾌하게 느껴졌다. 시몬은 신선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미엘도 처음에만 투덜거렸을 뿐, 몸도 건강해지고 다이어트하는 느낌이라며 좋아했다. 그러다 폭포 속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을 보던 시몬이 운을 뗐다. “안내원님도 아록으로 가시기를 원하나요?” “물론입니다.” 안내원이 미소 지었다. “저 또한 연방 일을 하면서 수련을 병행하고 있지요. 언젠가 신수의 인정을 받아-” 그의 시선이 먼 곳으로 향했다. “저희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갈 겁니다.” 말없이 음식을 집어 먹던 모제가 호기심이 생긴 듯 불쑥 말했다. “그럼 당신 부모님은 신수의 인정을 받아 아록에 들어간 거야? 직계 자손은 아록에서 머물 수 있다고 들었는데.” 안내원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록이 아니라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분은 모두 수련자들이었지요. 그리고 제가 태어난 뒤에 얼마 안 가 두 분이 한 쌍의 신수의 주인이 되어 아록으로 가셨습니다.” “낳아준 부모와는 달리 그쪽만 범재였네.” “모아 형제님!” 하미엘이 버럭 화를 냈다. 모제는 어쩌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신수학을 전공했다면 여기서 일주일 안에 신수를 얻어냈을 거야.” 하미엘이 따끔하게 모제에게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안내원은 의외로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 수련이 아직 부족한 탓이죠.” “…….” 아록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리고 모든 걸 자신의 수련 부족 탓으로 돌리는 안내원. 시몬은 그런 모습들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지금은 임무에 집중해야 할 때다. “이제 곧 날이 저물고 전령이 돌아오겠군요. 만약 아록에 들어가셔서 제 부모를 보신다면-” 그가 미소 지었다. “안부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록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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