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04화 신성연방으로 밀입국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중립지대 상단을 통해 국경을 넘는 ‘신성의 문 루트’는 밀입국이 어렵다고 소문이 나 있지만, 사실 신성 사용자에 한해서는 가장 쉬운 루트였다. 시몬과 모제, 그리고 하미엘은 화물 상자 안에 들어간 채 신성의 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시몬도 칠흑을 지우고 프리스트로 변한 상태였기 때문에 역시나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모두 화물에서 떨어지시오!” “빨리빨리 움직여!” 오늘만큼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시몬이 상자에 벌어진 틈으로 밖을 엿보니, 짐마차를 인솔하던 상인들이 하나둘 자신의 짐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들을 위협하는 건 하얀 로브를 입은 신성연방의 프리스트들이었다. 상인으로 분장한 브로커가 즉각 따졌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미 검사를 마친 화물에 이런 추가 절차는 사전에 고지된 바가 없……!” 스릉! 한 프리스트가 검을 뽑아 목에 겨누자, 브로커도 입을 다물고 두 손을 든 채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신성의 문을 통과한 수백 명의 상인들이 무장한 프리스트들에게 떠밀려 한쪽에서 대기했다. “검사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있으시오!” 무장한 프리스트들이 상인들을 둘러싸고 창과 검으로 위협했다. 상인들은 공포에 질린 채 동공을 이리저리 흔들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저벅 저벅 저벅. 잠시 후 또 다른 한 무리의 프리스트들이 들어왔다. 사제복을 입고 팔에 보라색 완장을 찬 이들은 전원이 신성연방의 국경 감독관들. 눈에는 독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이미 한바탕 ‘높으신 분’들에게 한 소리 듣고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결사의 공세가 재개됨에 따라, 국경의 화물 단속을 엄격하게 하라는 상부의 명이오.” “특히.” 그 옆의 한 감독관이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냅다 검을 뽑아 짐마차에 든 자루를 푹 찔렀다. 상인들의 놀란 소리가 튀어나왔다. “신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결사의 일원들이 이 루트로 이동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소.” 쏴아아아아아- 자루에 뚫린 구멍으로 밀가루가 바닥을 타고 흘러내렸다. 너무나 살벌한 분위기에, 상인들은 감히 따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푸욱! 푹! 감독관은 칼날에 신성을 입힌 뒤, 마구 화물을 찌르며 지나갔다. 옷감이든, 포대든, 화물 상자든 지나가면서 마구잡이로 푹푹 찔렀다. 화물의 품질이 상하는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라는 듯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다른 감독관들도 짐마차에 실린 화물을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뚜껑을 열거나 무기로 찔러보기 시작했다. ‘운이 나빴네.’ 시몬이 입술을 살짝 짓씹었다. ‘그동안 문제없었는데 하필 마지막 방학 때 이런 일이…….’ 덜덜덜덜! 그때 옆에서 유난히 진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하미엘이 까맣게 겁에 질린 얼굴로 떨고 있었다. 그녀가 입으로 뻐끔거리며 물었다. ‘어, 어어어, 어쩌죠?’ 푸욱! 푹! 게다가 하필이면 검으로 화물을 찔러보는 감독관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시몬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혔다. ‘혼자 있었다면 어떻게든 피했겠지만.’ 지금은 하나의 화물 상자에 세 명이 밀착한 채 붙어 있다. 검이 들어오면 세 명 다 찔리는 각도였다. 푸욱! 푹! 저벅! 저벅! 감독관의 발소리, 그리고 검으로 화물을 찔러보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신성연방 국경 초입부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쩔 수 없다. 시몬이 조용히 팔을 뻗으며 전투를 준비했다. 푸욱! 그사이 감독관이 바로 앞의 화물을 찔렀다. 그러고는 마침내 시몬 일행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하미엘은 입을 틀어막은 채 필사적으로 비명을 참고 있었다. “여기,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그렇게 중얼거린 감독관이 짧은 기합 소리를 내며 화물 상자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하미엘이 눈을 질끈 감는 그 순간. 뼉! 뭔가 이가 나간 소리와 함께, 검이 나무로 된 화물 상자를 뚫지 못하고 구겨져 버렸다. 감독관이 당황해하며 구겨진 제 검을 바라보았다. “지금 뭘 하는 거냐!” 쩌렁쩌렁! 언제 나타났는지, 갑자기 회색 머리의 소년이 그 감독관의 손목을 붙잡은 채 노려보고 있었다. 감독관도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네, 네놈은 뭐냐! 어디서 나타났나!” ‘모제!’ 상자에 같이 있던 모제가 귀신같이 밖으로 나가 있었다. 시몬이 시선을 돌리자, 상자의 아랫부분과 짐마차 수레 아랫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밑으로 구멍을 뚫고 밖으로 나간 것 같았다. “모두 들어라!” 모제가 버럭 소리 지르며 하늘섬과 교황의 표식이 적힌 신분증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나는 교황 성하의 지시를 받고 이곳에 당도한 교황청 직속 성물 관리원의 일원이다! 이곳에 성물을 밀반입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그 말을 들은 시몬이 소리 없이 손뼉을 쳤다. 그러고 보니 모제는 교황청 직속으로 성물을 해석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이런 문제에서도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지금부터 긴급 화물 조사를 진행하겠다! 여기가 수상하군!” 모제가 어깨로 감독관을 밀치고 걸어가 바로 앞의 짐마차를 신의 손으로 착착 건드렸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화물들이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포장된 천을 찢어버리며 금박을 입힌 기둥이나 황금 동상 따위가 튀어나왔다. 모제의 능력인 ‘만물의 성물화’였다. “성물이 있다면 반응이 있었을 텐데 아니었군! 그러면 여긴가?” 그가 오른손으로 짐마차나 화물을 짚으며 지나가기만 하면, 허름한 짐마차는 귀족들이 탈 것 같은 화려한 무늬의 은빛 마차로 변하고, 음식들이 금으로 변해 사방팔방 튀어 나갔다. 책은 거대한 바위만 한 크기로 변해서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다. 모제의 기행에 멍해 있던 감독관이 급히 외쳤다. “어, 어디서 갑자기 들어와 이런 짓을 하는 거냐! 수우우우우- 사아아앙- 하아아아아-” 감독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제의 손길이 그의 어깨를 스쳐 가며 그의 움직임을 극도로 느리게 만들었다. 모제가 한심하단 눈으로 감독관을 응시했다. “축복을 걸어줘도 못 써먹는 한심한 범재 놈 같으니.” 모제는 가볍게 발끝을 내밀었다. 그의 발에 걸린 감독관이 그대로 넘어져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말았다. 채앵! 챙! 그 모습을 본 다른 동료 감독관들이 급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멈추시오 형제! 무슨 자격으로 이러는 거요!” “아무리 교황청 직속이라 해도 이건 월권입니다! 우리 감독관들이 화물 검열을 선제적으로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수상하니 저놈도 체포해!” “뭐?” 모제는 비웃듯 고개를 기울인 채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의 괴상한 표정에 감독관들은 움찔하며 본능적으로 물러섰다. “그러는 댁들이 더 수상한데? 감독관 신분으로 성유물을 몰래 가로채려는 대역죄를 저지른 건 아니겠지?” “헛소리요!” “그래, 좋아. 정 너희들이 먼저 화물을 조사해야겠다면…….” 촤아! 어느새 모제가 바람처럼 그들의 뒤에서 나타나 오른손으로 그들을 만지고 지나갔다. “내가 도와주지!” “!” 당했다. 그런 직감을 한 감독관들이 다급히 뒤를 돌아보며 무기를 휘두르려 했으나. 터어어엉! 터어어어어엉! 그들의 몸이 통제되지 않는 속도로 튀어 나가 벽에 부딪히고, 나무에 처박혔다. 그저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디딘 것뿐인데, 경관이 엄청나게 빠르게 지나가며 벽과 땅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다. “으윽!” “이, 이게 무슨!”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뒤에서 가만히 서 있던 모제가 한심하단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감독관 한 명이 이마에서 피를 줄줄 흘린 채로 외쳤다. 모제가 당당히 대꾸했다. “빨리 일을 끝내라고 ‘더 빨라지는 축복’을 걸어줬을 뿐이야. 그런데 너희들, 도와준 사람한테 냅다 무기까지 휘두르는 걸 보니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확실해 보이는데.” 모제의 눈빛이 번뜩였다. “제대로 파헤쳐 봐야겠어.” “크윽!” 쓰러져 있던 감독관이 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나려 했지만. “?!” 이번에는 완력이 강해져 있었다. 바닥을 짚는 것만으로도 그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감독관의 아악! 하는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졌다. “먼저 수사할 기회를 양보했는데 안 해? 그럼 내가 하지!” 모제가 주위를 깽판 치며 온통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바로 이 틈을 타서. 샤아아아- 하미엘이 움직였다. 그녀가 정령을 밖으로 보냈고, 이내 짐마차를 이끄는 말이나 가축들의 눈앞에 빙빙 돌게 했다. 그러자 말들이 일제히 ‘히히힝!’ 소리를 내며 날뛰기 시작했다. 주위로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지금이에요!” 바로 이 틈에 시몬과 하미엘이 짐마차에서 내려온 뒤 흙먼지 사이를 달려 나갔다. 일단 급히 근처의 창고에 숨어들었다. “허억!” “하악! 학!”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시몬은 하미엘이 괜찮은지 한번 체크하고는 모제 쪽을 보았다. “모제는 괜찮겠지?” “네! 저 인간! 저래 봬도 차세대 교황 후보로까지 언급되는 인물이라서 체포당하진 않을 거예요!” 그때 한 무리의 감독관들이 우르르 창고로 들어왔다. “저기다!” “혼란을 틈타 누군가 저기로 들어갔다!” 감독관들 중에서 눈썰미가 좋은 자가 있는 모양. 시몬과 하미엘이 다급히 달려서 창고의 반대쪽 문으로 빠져나가려 했지만, 밖에서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비료 자루 뒤에 몸을 숨겼고, 곧바로 무장한 감독관 여섯 명이 신성 마법진을 펼치며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 누구냐!” “정체를 드러내라!” 감독관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며 긴장감이 고조되어 갔다. 피유우우우- 그런데 갑자기 창밖에서 피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내 창가로 피리가 불쑥 튀어나와 곡을 연주했고, 화물 뒤에도 피리 소리가 들렸다. 감독관들은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주위를 둘러보다가 귀를 틀어막으려 했지만. 쿵! 털썩. 한발 늦었다. 이미 피리 소리에 감독관들이 하나둘 쓰러져 잠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피리를 입에 물고 연주하던 하미엘이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왔다. “잘 자요, 형제님들.” “대단한데!” 잠시 네크로맨서로 돌아와 슬립 저주를 쓸지 고민하던 시몬이 탄성을 흘렸다. 심지어 같은 팀인 시몬에게는 졸음 효과가 없었다. 하미엘이 플루트에서 입을 떼며 말했다. “룬 리그 참가자인 소관입니다! 이 정도는 당연하죠!” 빠밤 빠밤! 뒤에서 하얀 식탁보를 뒤집은 정령들이 화려한 음악을 한 차례 연주했다. “으으음-” 그때 한 감독관이 벌써 눈을 뜨려 하고 있었다. 시몬이 어이없는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이거 얼마나 오래가?” “10초 정도? 뛰어요!” 하미엘이 그렇게 말하며 냅다 달렸고 시몬도 뒤따랐다. 그렇게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모제도 현장에서 빠져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타시죠!” 그가 짐마차 하나를 빼돌려 ‘신의 손’을 이용해 화려한 마차로 변신시켜 놓은 상태였다. 시몬과 하미엘이 마차에 올라타고 마부석에 앉은 모제가 말을 몰았다. “다들 잘했어! 모제! 하미엘!” “이 정도는 간단하죠 성자님!” 순식간에 현장에서 벗어난 마차는 도시를 가로질러 달렸다. 하미엘이 손에 든 티켓을 들고 외쳤다. “더 서둘러요! 모제 형제님! 지금 바로 가면 늦게 않게 신성열차에 탈 수 있어요!” “이게 최고 속도야!” 쿠르르르르!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국경 감독관들이 마차를 타고 뒤따라오고 있었다. 갑자기 벌어진 추격전. 그런데 상대는 보통의 말이 아니라 신수 백마를 사용한 듯, 빠르게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범재들이 끈질기긴!” 모제가 혀를 찼다. 그때 시몬이 신성 아공간을 열었다. “다들 준비해.” “?” 신성연방 방학이면 늘 함께하는 시몬의 신수들이 등장할 차례였다. -냐옹! -야오오옹! 변신형 신수 하양이와 까망이, 그리고 곰돌이 인형처럼 생긴 신수 아칼리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몬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마차 문을 열고 외쳤다. “모제! 마차를 골목으로 돌려! 그리고 내가 신호하면 두 사람 다 마차에서 뛰어내려 새 마차로 갈아타는 거야!” “네, 네?” “지금!”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들이 힘차게 마차에서 뛰어내렸고, 시몬은 하양이와 까망이에 신성을 주입해 공중으로 던졌다. 두 신수는 공중으로 떨어지는 일행들을 잡아챈 뒤, ‘사물화’의 힘으로 마차로 변했다. 아칼리온도 거대화되어 마차의 앞으로 나갔다. 촤락! 마차에 올라탄 시몬이 신성 고삐를 아칼리온의 목에 감으며 외쳤다. “날아!” 화아아아아아아아악! 그들의 몸이 번개처럼 하늘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뒤늦게 골목을 틀어서 도착한 감독관들이 본 것은, 허물어진 평범한 짐마차와 하늘에 그어진 하얀 금빛 자국뿐이었다. * * * 처음 합을 맞춰보았지만 나쁘지 않은 팀워크였다. 그렇게 시몬 일행은 신성열차가 다니는 역 근처까지 한 번에 도착했다. 시몬은 모제에게 사태가 커지진 않겠냐고 말했지만, 모제는 감독관들이 상부에 보고하지 못할 거라고 단언했다. 그렇게 일을 잘하고 보고를 잘했다면 신성의 문 방비에 구멍이 뚫리지도 않았을 거라고. “웃차.” 이내 마차에서 제일 먼저 뛰어내린 모제가 바닥의 허름한 카펫을 짚자. 촤아아아아아아! 카펫이 반짝이며 백색이 수놓아진 화려한 레드 카펫으로 변했다. 모제는 허리를 굽히고 팔을 휘두르며 시몬에게 인사했다. “열차까지 모시겠습니다. 성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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