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02화 식사를 마쳤다. 너무 많이 먹어서 속이 더부룩했던 시몬은 소화도 시킬 켬 집 밖에 마련된 장작터로 향했다. 땔감용 원목들이 차곡차곡 쌓인 채 햇빛에 건조되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착! 구석에 놓여 있던 벌목용 도끼를 들어 올린 시몬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옆으로 걸어가 원목을 살피며 땔감으로 쓸 것을 골랐다. 여러 원목 중에서 껍질에 살짝 푸르스름한 빛깔이 도는 것을 한 토막 꺼내 그루터기에 올려놓았다. 이건 레스힐 근방에서만 자라는 ‘뱃갈나무’였다. 보통 나무보다 튼튼해서 벌목하기가 몇 배는 더 어렵긴 하지만, 오래 타면서도 열량이 높은 성질 때문에 땔감으로는 1급 재료였다. “해볼까.” 시몬이 벌목용 도끼를 들어 올렸다. 장작 패기는 산골 소년의 덕목. 그리고 이 튼튼한 뱃갈나무를 쪼개기 위해서는 약간의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 따악! 따악! 시몬이 손목 힘과 도끼의 무게를 이용해 뱃갈나무의 윗부분에 흠집을 여러 번 남겼다. 적절한 힘으로만 찍으면 뱃갈나무는 그루터기에 올려진 채 끝부분에만 흠집이 남게 된다. 그렇게 네 번 정도 같은 자리에 흠집을 남긴 뒤, 이제 도끼를 힘차게 들어 올려. 쩌억! 일격에 뱃갈나무를 양쪽으로 쪼개 버렸다. 이상적으로 쪼개져 바닥에 떨어진 장작을 정리해 놓은 시몬이. 다음 원목을 가지고 왔다. 따악! 따악! 따악! 따악! 쩌억! 따악! 따악! 따악! 따악!쩌억! 시몬이 연신 땔감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느샌가 모제가 와서 등을 기댄 채 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안나가 챙겨준 것으로 보이는 코코아를 마시며 시몬의 작업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시몬은 무안하게 웃은 뒤 손바닥을 비볐다. 갑자기 구경꾼이 생기니 조금 긴장이 됐다. ‘일단 흠집 내기부터.’ 시몬이 다시 한번 살살 힘 조절을 하며 뱃갈나무의 윗부분에 흠집을 남기려 했으나. 쩌어어어억! 뭔가 거친 소리와 함께 뱃갈나무가 박살 나고, 아래의 그루터기까지 도끼가 파고들어가 버렸다. 시몬이 놀라며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눈을 지그시 뜨며 모제를 노려보았다. 후후!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모제가 빙글빙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 잘했지?’ 하는 표정이었다. “미안하지만 방해하지 말아줄래?” 갑자기 힘이 확 늘어났다. 틀림없이 모제가 신의 손으로 근력을 강화시키는 축복을 걸었으리라. “도와드린 겁니다. 성자님.” 모제가 가슴에 한 손을 얹고 공손히 말했다. “귀찮게 흠집을 여러 번 남긴 뒤 쪼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 건 범재들의 방식입니다. 성자가 되실 분인데 일격에 처리하셔야죠.” 시몬은 덤덤히 방금 쪼개진 뱃갈나무를 들어서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힘으로만 쪼개면 땔감으로는 꽝이야. 봐봐.” 장작은 나무의 결을 따라 쪼개는 게 중요하다. 너무 강한 힘으로 뱃갈나무를 쪼개니, 나뭇결이 지저분하게 비틀리고 다른 곳에도 금이 가듯 쩍쩍 갈라져 있었다. 시몬이 그것을 던져 버리고 다음 뱃갈나무 원목을 그루터기에 내려놓았다. “한 번에 못 쪼개서 이런 방식을 쓰는 게 아니야. 단순히 나무를 쪼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질 좋은 땔감을 얻는 게 목적이니까 이렇게 하는 거지.” 시몬이 다시 힘을 빼고 네 번 뱃갈나무를 두들겨 흠집을 남긴 뒤 한번에 쩍 소리와 함께 갈라 버렸다. 아까와는 달리 가볍게 반으로 툭 하고 떨어져 나가는 모습. 모제는 신기한 듯 쪼그려 앉아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벌목은커녕, 손에 물 한번 제대로 묻힌 적도 없어 보이는 전형적인 도련님 인상이었다. “범재의 방식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천재의 방식보다 이로울 수 있다. 제게 유익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성자님.” 타악. 시몬이 벌목도끼를 내려놓고 삐딱한 미소를 지었다. “그 호칭도 그렇고, 룬 리그 때와는 다르게 존댓말을 쓰는 것도 그렇고, 태도가 너무 많이 바뀌었는데?” 그 말을 들은 모제는 피식 웃음을 머금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바교 성전에서 여신이 직접 인간들 앞에 나타날 때, 여신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모제가 두 팔을 벌렸다. “두려워 말라.” 신의 목소리를 흉내 내듯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숭상하던 신이 막상 앞에 떡하니 나타나면, 인간들의 반응은 대체로 경악하거나, 공포에 질리거나, 두려움에 떨거나 뭐 그런 식이죠. 그러다 신이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면, 그제야 신을 목격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아주 커다란 신앙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요컨대 신을 목격하더라도 인간에게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모제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당신을 성자라고 확신했을 때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암흑연합의 군단장이기 때문이죠.” “그렇겠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당신의 말을 곱씹고 당신의 활약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제 가슴속 믿음은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화아아아아아아! 모제가 신성을 발현하는 ‘개등’을 하려고 하는지 등 뒤에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시몬이 펄쩍 뛰며 말렸다. “여긴 암흑연방이야!” “실례했습니다.” 그가 태연히 신성을 갈무리했다. 도시 한복판이었으면 네크로맨서들이 사방에서 뛰어나왔을 것이다. “결국 당신에 대한 믿음이 극도로 커졌을 때, 저는 더 이상 교황청에 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제 최우선 목표는 당신을 찾아내어 섬기는 것.” 그가 고개를 조아렸다. “그래서 레테 성녀를 찾았습니다. 당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요.” 레테는 처음에 당연히 모제를 의심했다. 그는 교황청 직속이자 교황의 후계자 중 한 명이었으며, 룬 리그에서도 네크로맨서들을 살해하려고 한 극단적인 하늘섬 강경파였으니까. 그런 그가 믿음을 바꾸었다니. 프리스트가 평생을 걸쳐 쌓아오는 믿음은 신념보다 더 큰 것이다. 한순간에 밥 바꿔 먹듯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레테는 모제를 시험했고, 모제는 강경파 측의 일급 정보를 넘기거나 레테가 지정한 성물을 훔치기도 했다. 심지어 자기 목숨을 끊을 각오까지 보였기에, 레테도 결국엔 그를 인정하고 이스라필 앞에 데려갔다. “그렇게 하늘섬 온건파 측의 스파이가 되었습니다만, 사실 그런 내부 파벌 따위 아무래도 좋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건 단 하나.”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시몬의 손등을 붙잡더니 눈을 감고 입술을 가져다 댔다. “당신입니다.” 팍! 시몬이 식겁하며 손을 빼내고는 오만상을 쓰며 말했다. “그게 주교급 이상에게 하는 의례인 건 아는데, 암흑연합에서는 남녀 귀족들이 하는 행위야.” “아, 혹시 제가 여자가 되었으면 합니까? 원한다면-” 모제가 신의 손을 제 얼굴에 가져다 대려고 하자 시몬이 ‘아니 아니 아니!’ 하고 극도로 부정하며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뭔 짓을 하려는지 짐작도 안 가지만 절대 하지 마!” “성자의 지시에 따릅니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녀석이랑 강경파 베테랑 성녀 둘을 만나러 가야 한다니, 시작부터가 난관이었다. “…….” 그때 모제가 시몬이 내려놓은 벌목도끼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데바교의 신도들은 성전에 나오는 신이나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성역화하고, 따라 하려는 관습이 있죠. 19고행 같은 것 말입니다.” 그렇게 말한 모제가 벌목 도끼를 집어 들었다. “성자의 어린 시절 근력 운동을 책임진 성스러운 행위라, 꼭 해보고 싶군요.” “아, 도움 많이 되긴 해. 축복은 절대 걸지 말고.” 시몬이 원목을 그루터기에 올려주었고 모제가 하아압 소리를 내며 힘껏 도끼를 내려쳤다. 삑! 그러나 모제의 숙련도가 문제였다. 도끼는 원목에 제대로 맞지도 않았고, 모제가 그만 손을 놓아버렸다. 한참을 붕붕 날아간 도끼가 2층인 시몬 방의 유리창을 깨부쉈다.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움찔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사고 쳤…….” “시몬!” 안나의 분노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두 소년은 말이라도 맞춘 듯 냅다 도망쳤다. * * * 저녁 시간이 되었다. 방의 창문을 수리한 시몬이 침대에 누워 조금 쉬고 있는데, 안나가 올라왔다. “시몬, 하미엘이 어디 있는지 아니? 이제 곧 저녁 식사 시간인데 보이질 않네.” 폴렌티아가에는 한 가지 절대적인 규칙이 있다. 아침 식사, 점심 식사, 저녁 식사 시간에는 늦지 않고 반드시 집에 와서 밥을 먹을 것. 오지 못한다면 천재지변 등 그에 합당한 이유를 제시할 것. 제아무리 손님 신분이라지만, 하미엘은 지금 폴렌티아가의 중요한 규칙을 어기려고 하고 있었다. “제가 찾아볼게요, 엄마.” 안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시몬이 나섰다. 알고 있는 정보는 산책을 나갔다는 것 정도. ‘생각보다 겁이 없네.’ 신성을 사용할 수 있는 시몬도 신성연방에 가면 긴장하거나 지나가는 이단심문관의 눈치는 보는데, 경계심이 두터운 프리스트가 혼자서 암흑연합의 땅에 산책을 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시몬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영지민들에게 물었다. “혹시 제 또래의 낯선 여자아이 보셨어요? 이마가 넓고 살짝 땋은 머리에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었는데요.” “아! 그 아가씨라면……!” 레스힐은 좁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그녀가 지나갔다는 길목을 따라 올라갔다. 잠시 뒤에 시몬은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확실히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 예전에 레테에게 데려다주니 무척 좋아했던, 레스힐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꽃밭이었다. 바로 그 가운데, 하미엘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하미…… 아.” 시몬이 말을 멈추고 그녀를 관찰했다. 어두워지는 밤에 반딧불처럼 빛나는 뭔가가 반짝거리며 그녀의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무척 많았다. 시몬은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저게 정령이구나.’ 대자연과도 같은 존재, 마나로부터 태어난 요정들. 그녀는 정령들과 교감하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라우스, 시몬 형제님.” “뭐 하고 있었어?” “이곳에 사는 정령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손등에 반딧불처럼 생긴 반짝이는 뭔가가 살포시 앉았다. “어딜 가든, 그곳의 자연에 사는 정령들과 대화하는 게 소관의 습관이거든요.” “그렇구나.” “역시 소관이 신성연방에서 암흑연합에 대해 배웠던 것들과는 많이 다르네요.” 그녀가 손등을 세우자 정령이 하늘하늘 날아올랐다. “이렇게 상냥한 정령들이 사는 자연이라니, 레스힐은 좋은 곳입니다.” “그래?” “네, 이렇게 좋은 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도 아마-” 시몬을 보고 뭐라 하려던 하미엘이 민망해졌는지 이내 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무적이던 하미엘의 눈에 아주 약간은 온기가 담겼다. 레스힐의 정령 덕분에 하미엘에게 약간의 우호적인 반응을 얻어낸 것 같았다. “하미엘은 실력이 좋은 정령술사인가 봐.” “그럭저럭은 하죠.” 콧대를 세우며 잘난 척하던 그녀가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마나 기반의 정령술은 암흑연합에서 정체를 숨기기 유리하니까, 제가 여기 모제 형제님을 데리고 온 거구요. 물론 뭐 이제는 사장되어 가는 시대착오적인 기술이지만요.”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렇게 말한 시몬이 활짝 웃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나도 배울 수 있을까?” “정령술을요? 왜요?” 그렇게 반문한 그녀가 갑자기 입꼬리를 올리며 검지를 휙휙 흔들었다. “시대착오적이라고 하긴 했지만, 정령술이 사장된 가장 큰 이유는 진입 장벽이 높아서예요. 순도 100% 재능의 영역이거든요.” 샤아아아아- 그때 갑자기 그녀의 주위를 맴돌던 정령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더니 시몬의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시몬이 하미엘이 했던 것처럼 손가락을 뻗자, 정령 하나가 그의 손끝에 앉았다. 하미엘의 얼굴이 멍해졌다. “어떻게…….”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마.” 시몬이 미소 지었다. “원래 폴렌티아 가문은 정령술사 가문이었대. 우리 아버지도 그렇고 지금은 다들 네크로맨서지만.” “노, 놀랍네요.” 시몬이 정령을 날려 보낸 뒤 하미엘을 바라보았다. “신성연방까지 가는 길은 멀잖아. 너만 좋다면 가벼운 정령술이라도 배우고 싶은데.” “그, 그야 저는 심심하지 않으니 좋죠! 그리고 배워두면 바로 쓸모도 있을 거구요.” “쓸모?”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처음으로 갈 곳은 신성연방의 4대 성역인 ‘아록’. 정령과 신수가 가득하고 태고의 자연이 보존된 아름답고 신성한 장소입니다. 정령술사나 신수사제에게는 전설적인 곳이나 다름없죠. 틀림없이 그곳에서 도움이 될 겁니다.” 시몬이 반색을 하며 손뼉을 쳤다. “재밌겠다!” “마냥 재밌지는 않을걸요. 그곳을 지배하는 여성.” 그녀가 목소리가 냉랭해졌다. “영원의 성녀, 아스페리아. 당신이 만났던 성녀들 중에 가장 까다롭고, 위험한 인물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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