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78화 보물섬에서 빠져나온 시몬은 바로 앵커폴 항구로 돌아가지 않고, 가장 가까운 근방 도시에 들렀다. ‘피어의 말대로 자금난 문제는 해결하고 가야 해.’ 보물섬의 보물은 찝찝해서 제대로 챙기진 않았다. 만약 챙긴다고 해도 실질적 가치는 얼마 되지 않아,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다른 방법으로 비상 자금을 획득할 필요가 있었고, 시몬은 항구도시에 도착한 뒤 도둑길드부터 갔다. 그곳에서 카쟌의 이름을 댄 뒤에, 이런저런 협조를 구했고 결국 최전선 국경과 연결된 통신 수정구를 손에 넣었다. ‘내가 아는 한, 이 문제에 가장 전문가야.’ 통신음이 멀리 울려 퍼진 뒤, 잠시 후 익숙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적에겐 멸망을! 아군엔 승리를! 충성. 전선 장교 조란디 카르타입니다! 무슨 용무로 전화주셨습니까! 시몬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필사적으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나야, 딕.” 이번 취업 평가가 시작된 뒤로 두 번째로 통화하는 키젠 동기는 딕 헤이워드였다. -시모오오온! 내 베프! 보고 싶다 친구야! 조란디를 연기하던 딕이 즉각 평소대로 돌아왔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을 왁왁 쏟아내기 시작했다. ‘……엄청 고생한 게 피부로 느껴지네.’ 기왕 연락했으니 딕으로부터 이런저런 임무 경과에 대해 들었다. 현재 딕은 국경 최전선의 경계 장교 신분으로 일하는 중이었다. 물론 보신주의, 안전제일주의 성향에 잔머리를 굴리는 걸 좋아하는 그에게 최전선 국경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온갖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었다. 그래도 어떤 난관이든 해결책을 찾아내고야 마는 딕답게 이번 일도 어떻게든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키젠에서 요구한 건 ‘조직 내 거대한 성과’, 혹은 ‘조직 내 틀이 바뀔 정도의 변화’. 전투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딕은 당연히 후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가짜 신분으로 입대한 딕은 보급 체계부터 손봤다. 중간에 부당이득을 챙기는 장교들의 증거를 모아 고발해서 전출시켜 버린 뒤, 상인의 힘과 신용을 이용해 가장 합리적인 보급 계약을 맺은 것. 전선의 병사들은 너무나 깨끗해진 보급품과, 최신 장비, 그리고 딱딱한 빵과 수프에서 벗어나 영양가 가득한 육류와 달걀을 먹게 되었다. 그 밖에도 딕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상관들과 친해진 뒤, 임무 성과나 악습에 손을 보는 등 부대 내의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그렇게 병사들의 사기가 크게 올랐고 보급이 좋아지니, 실제로도 전투 측 성과까지 발생하고 있었다. 역시 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시몬! 넌 무슨 임무 하고 있냐? “아, 그게.” 시몬이 바다에서 함장 자격시험을 치르고, 언노운을 쓰러뜨리기 위해 함대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딕은 부러워 죽겠다며 투정을 부렸다. -와, 그러니까 내가 개고생 하는 동안 너는 3군단 선단에서 귀족 여자들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거지? “그런 적 없어. 오히려 피하고 있는 중이야.” -제길. 잠시 딕이 귀를 후비는 소리가 들렸다. -뭐 아까 한 소리는 농담이고, 생각보다 너 수완이 좋은데? 위기에 빠진 선단을 헐값에 사들인 뒤 적대 선단을 무너뜨려서 사들인 선단을 본래의 컨디션 이상으로 만들었단 거지? 거기에 암흑 항해술이 적용된 함대까지 획득! 이 정도면 상인으로도 성공하겠는데? 시몬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2년 반 동안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게 있는 거겠지.” 그 말에 통신 수정구에서 딕이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대단히 기분 좋아하는 듯한 웃음소리였다. -이야, 학생회장께서 이렇게 띄워주는 거 보니 뭔가 나한테 바라는 게 있나 본데! 하여간 눈치는 빨랐다. 시몬이 땀을 삐질 흘리며 말했다. “바로 그 선단의 비용 때문에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 시몬은 바로 그 함대 제작에 필요한 자금에 대해 자문을 구했고, 그 말에 딕은 너무나 쉽게 해결책을 말해주었다. -에이, 뭘 은행에 빚까지 내고 돈 빌리려고. 내가 불러주는 상단에 내 이름 댄 다음에 ‘투자’가 필요하다고 해. 시몬은 딕과의 통화를 마친 뒤 정확히 딕이 알려주는 대로 했고. -선단주님! 선단주님! 이번엔 또 무슨 마술을 부리신 겁니까! ‘?’ 엘드릭 선단 본부에서 수년 치 활동 자금이 들어왔다는 보고를 듣게 되었다. * * * 그렇게 보물섬의 보물도 챙기지 않고 자금 문제도 해결했다. 이후 시몬은 배를 타고 다시 출항했고, 이틀 만에 앵커폴 항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 항구에 도착한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리 선단주께서 오셨다!” “기다렸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엘드릭 선단의 직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있었다. 항구에서부터 부두까지 사람들이 가득 몰려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직원이나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마을 주민들도 있었다. ‘나 하나 맞아주려고 이렇게 많은 인파가 올 리는 없는데?’ 시몬은 얼떨떨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며 부두에 배를 댔다. 엘드릭 부선단주 네이프와 에르제베트가 다가왔다. “에르제!” [어서 오세요 군단장님!] 에르제베트가 달려들어 시몬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네이프 또한 들뜬 얼굴로 말했다. “곧 신함대 진수식을 시작합니다. 선단주님이 돌아오시는 일정에 맞춰 준비했습니다!” [7군단의 첫 함대! 기대하셔도 좋사와요!] 시몬이 슬쩍 웃었다. “……진수식이었구나. 어쩐지.” “제군아아! 여기야 여기!” 저 멀리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명당에 자리 잡은 벤야 바닐라가 활기차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번 일의 실무자이자 언데드 엔지니어 삼총사인 디에고와, 마르코, 로드리온도 근처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시몬이 그쪽으로 다가가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시일에 딱 맞추셨네요!” “작업 자체는 어렵지 않았어.” 디에고가 손에 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다만 조력자가 문제였지. 내 살아생전 그토록 고집불통인 녀석은 처음이야.” “조력자요?” “그 알라제인가 뭔가 하는 언데드 말이야.” -건조하는 건 7군단의 함대. 바닐라 소속의 너희 인간들은 외부 기술자. 알라제는 당신들의 상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배에 언데드 비율을 높이면 배가 안 나간다니까! -언데드 비율을 높여야 함. 알라제와의 벤야 언데드 엔지니어들의 첫 합동 제작이었고, 둘 다 서로 생각이 다르다 보니 사사건건 부딪혔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놈, 능력은 있으니까 일은 편했다. 우리보다 한 세기는 뛰어난 언데드 기술력을 가졌어.” 그렇게 말한 비에고가 고개를 들었다. “아, 마침 시작하는군.” 쏴아아아아아아! 거미줄로 덮여 있는 비밀의 조선소에서부터 배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나타났다. 주민들과 엘드릭 직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소개할게 제군아!” 벤야가 손을 펼쳤다. “7군단 함대의 본선, 녹티스호야!” 쏴아아아아아아아아!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보여주듯, 순간적으로 선체가 바다로 2/3쯤 잠겼다가 다시 바닷물을 밀어내며 솟구치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잠수선과도 같은 그 모습에 사방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시몬도 그 장면을 보자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크기도 대형 범선. 비록 에이션트 언데드의 몸을 선체로 쓰는 3군단 본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규모 있는 크기였다. 벤야는 신이 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거대한 선체에 포문이 이중으로 달려 있어! 1층의 포문은 일반 화약 포대고, 2층의 포문은 특수한 언데드 포문이야. 가장 큰 특징은 언데드와 배를 결합한 것! 특히 선체의 아랫부분은 전부 언데드화되어 있다는 점이야.” 벤야의 설명을 들으며, 시몬은 다시 한번 녹티스호를 바라보았다. 햇빛이 비치며 검은 선체가 은은하게 빛을 발한 채로 바다 위를 질주하는 그 모습은, 마치 함선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역동적이었다. 철퍽! 철퍼억! 마침 선체의 아랫부분이 꿀렁이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처음엔 노로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그건 기다란 고래의 지느러미와 닮아 있었다. 각각 열 쌍의 지느러미가 물을 저으며 함선을 전진시켰다. “저 아랫부분이 말씀하신 그 언데드 사양 맞죠?” “응응! 저 녹티스호 내부에도 알라제가 타고 있어.” 그녀가 두 손을 모으며 설명했다. “마정석 엔진도 있어서 다른 함장들이 보통의 배처럼 조종할 수 있지만, 알라제가 직접 배에 타고 있으면 고속 이동을 비롯해 내장된 언데드 장비들을 사용할 수 있지!” “선장은 알라제인 셈이네요.” 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메탈 라미아를 라미아가 조종하는 것처럼, 녹티스호는 알라제가 조종하는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시몬은 에이션트 언데드 기반의 바다 공격체를 두 체나 소유하게 됐다. 쏴아아아! 쏴아아! 그 밖에 녹티스호를 지키는 호위함들이 하나둘 등장했다. 이 호위함들은 비교적 평범한 갤리온 느낌의 함선들로, 다수의 함포를 내장하고 있었다. 특히 7군단을 상징하듯 하나같이 새까만 돛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퍼엉! 펑! 진수식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진짜 포탄 대신 꽃 포탄을 터뜨려서 하늘을 장식했고, 주위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 장관을 즐겼다. 벤야가 설명을 재개했다. “엘드릭 선단이 보유한 가장 컨디션이 좋은 함선에, 바닐라의 기술력과 알라제의 언데드 능력을 부가했어. 가장 최첨단 장비로 무장했구, 제군이가 말한 유령 깃든 닻과 익사자 언데드가 깃든 돛, 세이렌 언데드도 추가했지.” “좋네요!” 3군단의 암흑 항해술을 그대로 물려받은 배들이 바다를 가르고 있다. 시몬의 옆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네이프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한번 훔쳤다. 아마도 자신의 배들이 다시는 바다에 못 나가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직 안 끝났어 제군아! 본선을 봐!” 벤야의 외침에 시몬의 고개가 돌아갔다. 본선인 녹티스호의 밑바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꾸룩. 꾸루루룩. 아랫부분이 열리더니, 그 내부에서 무수한 군단형 데드나가들이 나타났다. 바다에서 데드나가들이 창을 들고 배들과 함께 전진하는 모습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군단 본선 1척, 군단 호위함 30척, 총 31척 규모의 함대야! 수병인 데드나가들 합치면 규모는 훨씬 커지지!” “기대되네요!” 과거에는 순수하게 해상 지휘권을 가진 함장이 탄 배들만이 전투 권한을 얻었지만, 시간이 지나 현재는 탄 배의 호위함까지 모두 전투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편법인 셈이지만, 다른 함장이나 3군단 소속들도 다들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한다. ‘드디어 완성이다.’ 31척의 정예 언데드 함대. 3군단 전체에서도 전력으로서 대접받기에는 충분한 전력이었다.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노운을 쓰러뜨릴 준비가 된 것 같네요.” * * * 같은 시각. “……함장인 나한테 왜 굳이 이런 일을 시키는 거야?” 3군단 신규 함장인 알리라 헌트가 투덜투덜 엘드릭 선단 본부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부제독 아그라의 명령으로 시몬에게 작전 소집령을 전달하러 가고 있었다. “대단치도 않은 항구 마을이네.” 그녀가 앵커폴 항구를 보며 혀를 한 차례 찼다. “이런 곳에서 선단을 사고, 2주만에 자기 함대를 만든다고? 웃기는 소리. 그냥 3군단에 남는 게…….” 쏴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그녀의 입이 떡 벌어졌다. 반신이 언데드화된 검은 함선이 놀라운 속도로 바다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곳곳에 떠들썩한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뭐야! 뭐야 뭐야!” 그녀가 다급히 뛰어가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검은 깃으로 통일한 무수한 함선들이 열을 지어 항해하고 있었다. 모두 같은 깃발. 전부 엘드릭 선단의 배들이었다. “……지, 진짜 해낸 거야?” 그냥 배들을 가져온 것도 아니다. 3군단을 본받아 만든 듯한 ‘암흑 항해술’이 적용된 정예 언데드 함대. 앞으로의 작전에 활약할 중심 전력 취급받을 게 확실해 보였다. “유리 미그일,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을…….” 그렇게 말하던 그녀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마침 저 옆에 퀭한 얼굴로 무릎을 모은 채 앉은 남자가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에게 당해서 쫄딱 망하고, 오한 선단을 넘기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다른 자본가들의 간섭으로 선단주 자격을 넘기고 일반인으로 전락한 브랭크였다. “……내 배, 내 재력, 내 야망이…….” 그는 손에 든 500골드짜리 인수증을 파들파들 손을 떨며 든 채 바다의 배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주정뱅이 아저씨는 뭐야.” 알리라 헌트가 헛웃음을 흘리며 술냄새 나는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녀의 손에 든 봉투에는 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함장 전체 소집 명령 - 제독 라즌 맥밀런> <소집 목표 : 미스테리 킬>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