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74화 “죽여라!” 갑판 위의 모든 선원들이 일제히 무기를 꼬나쥐고 시몬을 향해 달려들었다. 시몬은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그린 채 허리를 젖혔다. 후웅! 부아앙! 무기들이 긴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가른다. 칼날이 번뜩이며 공기를 찢고, 쇠사슬 소리와 함께 철퇴가 아래로 떨어진다. 하지만 시몬의 눈동자는 고요하게 빛났다. ‘확실히 다르네.’ 마투학 교수 홍펭의 ‘거리 수업’을 듣기 전과 들은 후가 다르다. 전보다 무기의 궤적이 아주 잘 보인다. 내리그어지는 검. 찔러오는 창. 횡으로 휘둘러지는 도끼. 무기를 휘두르는 궤적이란 게 저렇게나 비좁고 형편없었다. 인간은 저렇게 비좁은 거리와 공간만으로 ‘살상 범위’를 설정하고, 저 살상 범위 안에 적이 들어와 주길 기도하면서 무기를 휘두르는 것이었다. 이것이 병장기 전투의 실체. 그렇다면 이쪽이 할 수 있는 건 간단하다. “이놈! 이놈!” “왜 이렇게 안 맞아?” 살상 범위를 피해 최소한의 거리를 확보하며 물러나는 것. 다만 상대가 살상 범위를 인식해야 무기를 휘두르기 때문에 최소한 아슬아슬해 보이는 간격까지 조절해야 한다. 부아아아아아앙! 종이 한 장 차이로 검이 시몬의 머리 위를 지나간다. 검을 휘두른 상대가 답답해하며 소리를 지른다. ‘반격.’ 타악. 시몬은 발뒤꿈치로 근처에 놓여 있던 대걸레를 붙잡았다. 나사를 풀고 걸레 부분은 뜯어내 바다에 던진 뒤, 봉만으로 자세를 취한다. “흡.” 시몬이 숨을 내뱉으며 짧게 돌진한다. 봉대로 상대의 이마를 찔러서 무력화하고, 몸을 낮춰 검을 피한 뒤 봉을 휘둘러 측면의 상대를 때려눕힌다. 적의 거리와 궤적이 보이는 만큼 자신의 궤적도 잘 보인다. 이제 할 일은 간단하다. 상대의 범위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자신의 범위에 상대를 넣으면 된다. 따악! 딱! 따닥! 봉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상대의 몸을 때리기 시작한다. 곳곳에서 무기를 놓치고 손목을 부여잡는 선원이나, 머리에 봉을 맞고 회까닥 뒤집어지는 선원들이 속출했다. “이 새끼!” 측면으로 파고든 선원이 품에서 단검 세 자루를 날리지만 시몬은 봉을 휘둘러 가볍게 튕겨낸 뒤, 나머지 하나는 직접 손으로 잡아채서 상대에게 돌려준다. 따악. 따다다닥. 말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에 선원들이 모조리 나가떨어지고 있을 때. “!” 솜털이 쭈뼛 오르는 감각을 느낀 시몬이 급히 동작을 중단하고 뒤로 물러난다. 그가 있던 자리에 은빛 봉 하나가 날아와 기둥 옆면에 ‘텅!’ 하고 틀어박힌다. “유리 미그이일!” 어느새 하늘을 날아온 배질 포트시가, 새로운 은을 한 줌 꺼내 봉처럼 늘린 뒤 시몬에게 내려쳤다. 시몬도 봉대를 앞으로 세웠다. 빠악! 칠흑을 봉대에 주입해서 한번 막긴 했지만, 재질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봉대가 그대로 부러지자 시몬이 그것을 옆으로 던지며 물러났다. “……배질 포트시.” “대답하십시오!” 배질이 이를 악물곤 달려들며 외쳤다. “왜 이제 와서 우리 앞에 나타난 겁니까!” 부아아앙! 배질의 은빛 창이 시몬의 눈 옆으로 지나갔다. 확실히 단련된 마투파 네크로맨서라 그런지, 일개 선원들과는 힘과 날카로움이 달랐다. 시몬은 아까 바닥에 박혀 있던 단검을 발등으로 뽑아서 채어 올린 뒤, 그것을 손으로 붙잡아 전투 자세를 취했다. 촤촤촤촤촤! 배질의 창이 잔상을 그리며 쏟아졌다. 시몬은 내려오는 한쪽 안경을 추켜올린 채, 단검을 쥔 다른 한 손으로 모든 공격을 받아냈다. “왜 과거에는 입 다물고 당하기만 했던 겁니까!” 챙! 채앵! 챙! 채재쟁! 가장 좁은 ‘거리’를 보유한 단검으로도, 시몬은 최소한의 동작을 취해 창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시몬의 현란한 움직임에 배질의 분노는 더더욱 커졌다. 그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렇게 강하면서, 왜 당신을 따르던 이들을 기만한 겁니까?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따랐어!” 콰악! 배질이 오른발로 강하게 갑판을 디뎠다. “대체 왜!” 촤아아아아아아! 살벌하게 다가오는 배질의 창을, 시몬이 단검을 쥐고 위에서 아래로 짧고 강하게 내려쳤다. ‘뼉!’ 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창대가 부딪혀 아래로 꺾였다. 배질이 ‘큭!’ 소리를 흘렸다. 창대를 붙잡은 손에 찌르르한 감각을 느꼈다. “나는 에스텔라 살롱의 다섯 명 중에 네가 가장 이해가 안 돼. 배질 포트시.” 시몬이 저벅저벅 옆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내가 힘을 가진 게 기만이라고 생각하나 봐?” “당연합니다!” “힘을 가진 유리 미그일과, 힘이 없는 유리 미그일은 별개의 인물이야?” 그 말에 일순 배질이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유리 미그일에게 힘이나 좋은 배경이 없었다면 너는 살롱에서 그를 따르지 않았겠네.” “그, 그건……! 아닙니다!” “거짓말.”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십니까? 가문도 좋고, 집안에 돈도 많고, 남들보다 백배 천배는 유리한 환경에서 시작하셨으면서! 배질은 유리의 환경을 부러워했다. -당신이 이런 인간인 줄도 모르고 따라다녔다가 살롱에서 내 평판이……!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평판과 이익을 위해 유리를 추종했다. 전부 배질 본인이 한 말이고, 추측할 수 있는 단서는 널려 있었다. 시몬의 말을 들은 배질이 흠칫하다가 말했다. “왜, 왜 자 자꾸 본인 이야기를 남처럼 이야기하는 겁니까! 그리고 살롱은 약육강식의 정글입니다! 그게 뭐 잘못됐습니까?” “너는 유리 미그일이라는 인간 자체가 아니라, 그의 힘과 환경을 추종했어. 그러다 유리 미그일이 가진 걸 잃고 몰락하자 네 평판도 타격을 입었지.” 시몬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건 결국 네 선택의 문제 아닌가?” “!” “네가 유리 미그일이라는 인간 자체를 섬겼으면 몰라. 자기 이익을 위해 그를 추종했다가 함께 평판이 떨어졌으면서 왜 그에게 감정적으로 화를 내는 거지?” 정곡을 제대로 찔린 듯 배질의 얼굴이 벌게졌다. 시몬이 단검을 고쳐 잡고 그에게 겨누었다. “심지어 넌 그를 끝까지 믿지도 않았어. 나중엔 같이 평판이 떨어지자 살롱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리 미그일의 치부까지 드러내서 그를 웃음거리로 만들었지. 유리가 화를 냈으면 냈지, 왜 네가-” 저벅 저벅. 시몬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화를 내고 있는 거냔 말이야.” 감정적으로 흔들리고 만 배질이 비명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창을 내질렀으나, 배질의 이 일격은 빈틈투성이다. 단검으로 살짝 옆으로 흘려내면서 앞으로 바짝 다가온 시몬이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퍼억! “꺼흑!” 배질의 복부가 크게 꺾이며 무릎을 꿇었다. 시몬이 그대로 반대쪽 다리로 그의 등을 걷어찼다. 콰아아아아앙! 갑판을 크게 뚫고 나가며 배질의 몸이 틀어박혔다. 배질은 그대로 혼절한 듯 움직이지 못했다. 단검을 떨어뜨린 시몬이 손을 탁탁 털며 한마디 했다. “이제…….” 쏴아아아아아아아! <파천> 이번에는 바다에서 물줄기가 쏟아졌다. 시몬이 허리를 굽혀 그 공격을 피했고, 청파류 사용자들 네 명이 갑판 위로 뛰어왔다. 처적. 척. 다른 배에 있던 선원들도 무기를 쥔 채 갈고리 밧줄을 타고 이리로 건너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화살이나, 흑마법진이 겨누어진다. 청파류 사용자 한 명이 대표로 앞으로 나와 말했다. “포기해라, 신입 함장 유리 미그일. 너는 포위당했다.” 시몬은 특유의 태연한 얼굴로 팔을 빙빙 돌린 뒤 무릎을 굽혔다. “너희들이야말로 포기하려면 이게 마지막 기회야. 지금이라도 오한 선단을 포기하고 엘드릭에 들어오겠다면 용서해 줄 수 있어.”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협상 결렬. 시몬이 씩 웃으며 발밑에 칠흑을 일으켰다. “그럼 다 모인 것 같으니, 끝내볼까.” 터엉! 시몬이 무릎을 펴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어느새 그의 발밑에 도약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다. 다른 이들이 급히 막으려 했지만, 하늘로 솟구치는 시몬의 움직임이 한발 더 빨랐다. 휘오오오오! 하늘에서 늪에 얽매여 옴짝달싹 못 하는 오한 선단의 배들을 굽어보며, 시몬이 바다를 향해 팔을 뻗었다. [라미아, 시작하자.] 쿠구구구구구! 요동치는 바다에서 메탈 라미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메탈 라미아의 아가리가 쩌어억 벌어지더니, 그 안에 푸르스름한 에너지가 드래곤의 브레스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물벼락> 쿠릉! 바닷물로 이루어진 푸른 벼락이 라미아로부터 시몬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남들이 보기에는 갑자기 소환수가 술사를 노리는 공격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시몬은 기다렸다는 듯 그 물의 벼락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리고. ‘결을 붙잡는다!’ 덥석! 놀랍게도 시몬이 날아가는 물벼락 한 줄기를 그대로 손으로 움켜쥐었다. 쏴아아아아아! 쏴아아아! 이어서 메탈 라미아가 순차적으로 물벼락을 쏟아보내기 시작했고, 시몬의 두 팔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여 물벼락을 자신의 옆에 붙잡아두었다. 물벼락은 사라지거나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않고 시몬의 곁에 머물며 마치 옷감처럼 엮이기 시작했다. 남이 보기엔 불가능해 보이는 신기. 배 아래의 선원들은 웅성거리며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쿠르르릉! 쿠릉! 라미아의 물벼락이 점점 더 늘어나고 이를 붙잡는 시몬의 손길도 빨라졌다. 두 손으로도 모자라 두 다리의 발가락까지 쓰고 있었다. 가히 무아지경의 경지. 이 기술을 떠올리게 된 계기는 심플했다. -라미아. 네 칠흑과 수분으로 만든 물벼락 말고, 바다를 그대로 벼락처럼 쏴줄 수 있을까? -삐유웅! 라미아는 데드나가인 만큼 ‘결’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다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메탈 라미아의 압도적인 스펙으로, 결을 손상시키지 않고 물줄기를 뽑아내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이제 하늘은.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눈이 부실 만큼 무수한 푸른 물줄기가 서로 얽히고설킨 채 기다리고 있었다. “…….” 마침 기절했던 배질 포트시도 눈을 떴다. 그가 쓰러진 채 하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는 놀라지도 않았다. 유리 미그일. 아니, 그 너머의 존재가 보인다. “간다.” 시몬이 앞에 삐쭉 튀어나온 두 물줄기의 결을 양손으로 부여잡고 내려오자, 모든 물줄기가 이에 공명하며 함께 내려온다. 그동안 연습했던 비기 중의 비기. 쿠화아아아아아아악! 푸른 벼락이 호우처럼 내리는 기술. 물벼락 한 줄기 한 줄기에 청파류의 힘이 담긴 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다. <시몬 & 라미아 연계기 – 취연성뢰(聚漣成雷)>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강화된 광범위 물벼락이, 늪에 갇힌 모든 배를 구멍내고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피해애애애애애!” 네크로맨서들이 방어 마법진을 펼치며 버텨보려다가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도주했다. 선원들은 식겁하며 바다로 뛰어내렸다. 쿠구구구구구! 가히 압도적인 화력. 늪에 갇힌 모든 오한의 배들이 구멍이 뚫리고 가라앉는다. 어떤 흑마법이나 방비를 한 배도 예외는 없었다. “이, 이게 무슨……!” “내 눈이 잘못된 거 아니지?” 그 결과는 전멸. 고작 단 한 명의 남자에 의해 오한 선단의 모든 함선이 전멸하고 말았다. 바다에 이 강렬한 소문이 퍼지는 건 하루면 충분했고. -지, 지금 뭐라고? 결국 오한 선단의 선단주인 브랭크의 귀에도 그 소식이 들어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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