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69화 제독의 ‘처형식’을 본 죄수들은 태도가 돌변했다. 바다 밑바닥의 말미잘처럼 바짝 엎드린 채 작전이든 뭐든 참가할 테니 살려만 달라며 빌기 시작한 것. 이에 제독은 옆의 부하를 부른 뒤, 저들에게 함대 정규 훈련을 명목으로 한 ‘교정’을 지시했다. “지금부터 육지에서 사용하던 네놈들의 이름, 직위, 신분은 없다. 너희는 이제 군인이다. 따라와라.” 그렇게 죄수들이 물러나며 한바탕 난리가 난 뒤, 함장들의 작전 회의도 재개되었다. 제독이 한번 분위기를 잡아서 그런지 함장 회의도 물 흐르듯 빠르게 진행되었다. D-Day는 앞으로 4주 뒤, 작전명 ‘미스테리 킬’. 해역의 모든 함대가 모여 ‘언노운’을 공략하는 게 목적이다. 그 전까지 함장들은 자신의 함대를 준비하고 정비하여 남쪽 바다로 나온 뒤, 해당 작전 지역까지 도착해야 했다. 그렇게 작전 회의까지 모두 끝나고 함장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짧은 시간 많은 일을 겪어서 기운이 쭉 빠진 신입 함장들이 터벅 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신입들! 너희는 이쪽이다!” 이번엔 부제독 아그라와의 면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곧 본선에서의 2주간 훈련도 끝나간다. 면담 내용은 ‘미스테리 킬’에 참여할 때 어떤 함대의 형태로 참여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두 가지 옵션이 있다.” 첫 번째는 3군단 본부 휘하 함대에 들어가는 것. 이 경우 신규 함장들은 3군단에 종속되어 활동하게 된다. 항해사도, 배도, 선원도 전부 3군단에서 지원해 준다. 해상 지휘권만 있을 뿐 아직 어리숙한 신입 함장들은 이쪽으로 지원하는 게 정석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개별 함대로 나서는 것. 3군단에 독립해서 개별적으로 함대를 구축해 미스테리 킬에 참여하는 것이다. 3군단과 제독의 입김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지만 독자적인 함선, 인력, 자본, 그리고 노하우가 있어야 가능하다. “개별 함대로 나가고 싶은 신입 함장은 거수해라.” 고작 2주간의 훈련을 받고 제대로 바다에서 싸우기는 힘들다. 대부분이 휘하 함대에 들어가리라 생각했지만. 무려 세 사람이나 손을 들었다. “의외군.” 부제독 아그라가 삐딱한 미소를 지었다. 시몬, 마일러, 그리고 오드레시아가 개별 함대를 지원했다. “마일러 드 샤르모, 넌 그럴 거라 생각했지. 명문 샤르모라면 함대 걱정은 없을 테니까.” 그녀의 시선이 시몬과 오드레시아에게로 향했다. “너희는? 무작정 3군단 밖으로 나가서 함대를 꾸릴 자신이 있나? 남은 시간은 고작 4주뿐이다.” 오드레시아가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저희 집안이 작은 선단을 하고 있어서요. 제가 가진 해상 지휘권을 중심으로 함대를 만들어서 나갈 거예요.” “그래, 청파류를 쓰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았는데 역시나 이쪽 종사자였구나.”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너는 어떻지? 유리 미그일. 부친인 변경백께서 함대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못 들었는데.” 시몬이 씩 웃었다. “물밑에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계획대로만 진행하면 시간 안에 다른 함대 못지않은 전력을 갖춰 오겠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개소리하지 말고 휘하에 들어오라며 한 대 쥐어박았겠지만.” 그녀가 훗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보여준 게 있으니 믿겠다.” “감사합니다.” 시몬은 훈련 기간 동안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고, 뱃사람들은 그것을 보았다. 그걸로 끝. 뱃사람들에게 그 외에 자격이니 신분이니 하는 더 이상의 이해관계는 필요하지 않았다. 신입 함장들, 특히 에스텔라 살롱의 부러움과 질투 가득한 시선이 꽂혔다. 그때. “저, 저도!” 새로운 인물이 손을 번쩍 들었다. 놀랍게도 포트시 남작가의 후계자이자, 한때 유리의 추종자였던 배질 포트시였다. “생각해 보니 저도 개별 함대로 나가고 싶습니다!” 시몬을 보면서 밝았던 아그라의 표정이 힘껏 구겨졌다. “네놈은 또 왜애애?” 노골적으로 정말정말 싫다는 표정이었다. 다들 아그라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봐서 당황했다. 배질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했다. “그, 그게! 시험 전에 다른 선단에 스카웃 제의를 받은 적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쪽에서 일하면 어떨까 해서……!” “그야 어중이떠중이들이 네놈의 해상 지휘권을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거겠지!” 아그라가 격분하며 목제 의족으로 배질이 앉은 의자를 걷어찼다. 의자가 쓰러지고 배질이 우왁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졌다. “어떤 선단에 들어갈 건지! 4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어떻게 함대를 만들어 올 건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개별 함대 자격은 없다!” “아, 아니……! 유리는 믿어주셨으면서 왜 저는……!” “본선 훈련 내내 아직도 청파류의 결도 못 느끼는 놈이 말이 많다!” 모두가 고개를 휙휙 돌리며 웃음을 참았다. “유리.” 그때 크리스티나가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아버님…… 아니, 변경백께서 도움을 주지 않을 거란 건 잘 알아. 무모한 행동은 하지 마. 나중에라도 힘들어지면 우리 가문의 함선을 빌려서…….” “뗏목을 타면 탔지.” 시몬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너희 함대에 들어갈 일은 없어.” 크리스티나가 ‘큭’ 소리를 내며 입술을 깨물었다. 알리라 헌트는 감히 크리스티나 님 앞에서 싸가지 밥 말아먹었다며 노발대발했고, 약혼자 로잘린은 고소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렇게 신입 함장 면담이 모두 끝났다. * * * 이후에 남아 있는 본선 훈련도 철저하게 진행됐다. 항해술, 항만법, 기관제어법, 다양한 종류의 선박을 다루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원래라면 2년은 직접 배를 타고 항해하며 배워야 하는 내용을 2주 만에 마무리하는 것이니 상당히 훈련 강도가 높았지만 모든 신입 함장들이 잘 따라왔다. 물론 시몬이 가장 집중하며 들은 건 3군단 본선에서 사용하는 최신 ‘암흑 항해술’이었다. ‘재밌네. 3군단에서는 따개비 몬스터로 만든 언데드로 정찰을 하는구나.’ 손에 넣을 해양 몬스터의 시체, 그리고 언데드의 활용법과 소환 마법진까지 배웠다. 나름 선단 비밀이 아닐까 했는데 선원들은 기꺼이 모든 것을 공개했다. 물론 청파류도 잊지 않고 열심히 단련했다. 이 와중에 크리스티나와 마일러는 청파류를 어느 정도 훈련해 왔던 건지 본선 훈련에서 결을 잡는 데 성공하며, 청파류 사용자가 되었다. 물론 이미 청파류 사용자였던 시몬의 경지는 더더욱 단단해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본선에서 떠날 시간이 됐다. “4주 뒤 작전에서 보자고! 아기 함장님들!” “그사이 무럭무럭 성장해서 같이 제대로 싸워봅시다!” 이제는 정이 든 3군단 본선의 선원들과 인사하며, 시몬과 마일러, 오드레시아와 배질은 각각 작은 배에 옮겨 탔다. 나머지 휘하에 남기로 한 신입 함장들도 본선에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중에 봐!” 쏴아아아아! 시몬도 배를 한 척 타고 이동했다. 3군단 선단의 배인 만큼 돛과 마정석 엔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웃차. 시몬은 비로소 배의 의자에 앉아 다리를 쭉 폈다. 정규 훈련을 소화하고, 개인적으로는 3군단의 노하우를 배우느라 거의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그때 시몬을 데려다주기로 한 3군단 항해사가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목적지는 어디로 하시겠습니까. 함장님.” “앵커폴 항구로 부탁드려요.” 그 말을 들은 항해사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무법 지대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첫 항해를 시작하신다니,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흐음…… 그러시다면 안내하겠습니다.” 항해사는 더 묻지 않고 함선에 3군단의 깃발을 올린 뒤, 배를 움직였다. 항해사의 말대로, 점점 앵거폴 항구와 가까워지자 곳곳에서 무장한 어선이나 소중규모 함선까지 무수히 보이기 시작했다. 사방에 난파선이나 배의 조각 따위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심지어 방금 전투가 벌어진 듯 불이 붙은 채 가라앉는 함선이 보였다. 다행히 3군단의 깃발을 올려놓으니 각 선박은 멀찍이서 경계하듯 지켜볼 뿐 접근하진 않았다. “제정신이 아닌 놈들입니다.” 3군단 선원이 혀를 차더니, 갑자기 왈칵 화를 냈다. “재물에 눈이 먼 육지 놈들! 이상현상만 아니면 진작에 손봤을 겁니다!” “휘하 함대를 보내서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희도 그러고는 싶지만 정규 함대가 오면 몬스터의 살점을 뿌려서 해양 몬스터를 부른 뒤에 도망치는 악랄한 놈들입니다. 죄 없는 상선이나 주민들만 피해를 보죠.” 앵커폴 항구는 많은 선단들이 본거지로 삼고 있으며, 무수한 어선과 상선을 보유한 항구도시였다. 그러나 현재는 ‘보물섬’을 노리는 사람들이 몰려 선단을 공격하고 배를 빼앗아 바다로 나가는 등 무법 지대가 되어 있었다. 규모가 큰 선단 외에, 작은 선단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여기에 온 거지.’ 시몬이 팔짱을 끼며 입꼬리를 올렸다. 잠시 후, 항구가 가까워지자 시몬이 아공간을 열고 데이모스를 꺼내며 말했다.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부턴 제가 알아서 가겠습니다.” “아! 육지까지 모셔다드릴 수도 있는데, 괜찮으실까요?” “네, 괜히 3군단 소속이란 걸로 이쪽 무법자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 듯 선원도 고개를 끄덕인 뒤, 시몬에게 경례했다. “그럼 미스테리 킬 작전 때 뵙겠습니다!” “넵.” 시몬도 경례를 받아준 뒤 데이모스를 타고 이동했다. 물살을 가르며 지나다가 이내 근처에 보이는 길쭉한 부둣가가 보였다. ‘어, 송장거미다.’ 마침 송장거미 한 마리가 짧은 다리로 집은 깃발을 휙휙 흔들어서 착륙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나름 시몬처럼 ‘분장’을 한 건지, 새빨갛게 칠해져 게로 위장한 모습이 앙증맞았다. 그쪽으로 다가간 시몬이 훌쩍 점프해서 부둣가에 올라온 뒤 데이모스를 회수했다. 그런데. ‘응?’ 부두에 레드 카펫이 깔려 있었다. ‘……뭐야, 이거.’ 퍼엉! 펑! 그때 폭죽 같은 소리와 함께 꽃들이 하늘하늘 내려왔다. [오호호호호!] 드레스 차림의 에르제베트가 한 손에 꽃을 든 채 화사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송장거미들도 나풀거리는 드레스 자락을 붙잡은 채 키릭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군단장님! 어서 오시와요!] “고, 고생하셨습니다! 학생회장님!” 그 옆에는 시몬의 스카우터인 롤랜드도 쿵짝을 맞추며 달려오고 있었다. [훈련 완수를 축하드리와요!] 에르제베트에게 꽃다발을 받은 시몬이 쓰게 웃었다. “눈에 띄면 안 된다니까. 에르제.” [거미줄로 결계를 쳤으니까 밖에서 보지 못할 거예요. 그보다 준비 싹 다 해놨사와요!] “맞습니다.” 스카우터 롤랜드가 땀을 닦으며 에르제베트를 힐긋 본 뒤 시몬을 보았다. “제가 살아서 에이션트 언데드를 보게 될 줄이야. 그, 그보다 역시 군단의 준비성은 철저하군요.” “스카우터님도 오랜만이네요.” 시몬이 에르제베트가 준비한 값비싼 재킷을 가볍게 걸친 뒤, 머리에는 선글라스를 썼다. 이러니 젊은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럼 쇼핑하러 가볼까요?” “쇼핑이라 하심은…….” 시몬이 씩 웃었다. “선단 쇼핑이요.” 시몬은 모든 계획을 세워둔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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