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68화 “현재 바다에는 수많은 이상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3군단 본선 지휘실. 부제독 아그라의 디테일한 브리핑이 시작됐다. “이때 우리가 말하는 이상현상의 정의를, 이전의 바다에서는 관측된 적 없지만 최근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재해로 가정할 경우, 현재 바다에서 일어나는 이상현상은 모두 35가지입니다.” 그녀가 마나 스크린의 화면을 바꾸어, 여러 이상현상들이 관측된 사진을 함장들에게 보였다. 곳곳에서 소란스러운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전대미문이오.” “바다에서 50년 평생을 살았지만 이런 일은……!” 멀쩡하던 수면이 갑자기 빙판으로 뒤덮이는 현상, 심해어들의 떼죽음 현상, 물이 무중력 상태처럼 하늘로 올라갔다가 폭포처럼 떨어지는 현상 등 온갖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난감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아그라가 헛기침을 하며 설명을 재개했다. “물론 이 35가지 이상현상은, 몇 가지 주도적인 이상현상에 의해 파생되어 일어나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일종의 나비효과죠. 예를 들어-” 그녀가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작전부에서 마나 스크린에 다음 사진을 띄웠다. ‘저건!’ 이번엔 시몬도 눈에 힘을 주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마치 바다가 각이 진 것처럼, 한층 더 높아진 채 주위의 모든 섬이나 땅을 바다로 뒤덮고 있었다. “네,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일 현상입니다. 이 해일이 심해의 바닷물을 끄집어내어 수온을 크게 변화시킵니다. 그 과정에서 플랑크톤 같은 미생물들이 움직이고, 이를 잡아먹는 어류들, 또 이를 잡아먹는 해양 몬스터들이 점점 더 내륙과 가까운 곳으로 움직이는 거죠. 이제는 어촌 바로 앞바다에도 해양 몬스터들이 나타난다고 하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함장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바다에 비정상적으로 득실거리는 해양 몬스터들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었다. 그때 앞쪽에 앉은 로브로 얼굴을 가린 여성 함장이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저 미지의 해일 현상도 다른 이상현상으로부터 파생됐을 수 있겠군요.” “정확하십니다. 역시 서풍의 함장,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아그라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좌중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이렇게 바다에 수많은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핵심 이상현상’을 3가지로 꼽았습니다. 이 핵심 이상현상들을 해결할 수 있다면, 바다는 정상으로 돌아올 겁니다.” “어허!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았소! 부제독!” 이번에는 맞은편에 앉은 남자, 길쭉한 콧수염의 함장이 끼어들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수염을 늘어뜨렸다가 손을 놓자, 과녁에 박힌 화살처럼 파르르 떨렸다. 아그라가 돌아보며 말했다. “네, 로크랜드 함장, 말씀하시죠.” “그 뭐시더라. 일확천금! 그 이야기를 그냥 넘어가는 건 아닐 거라 믿소.” “하하! 자네 또 시작인가!” “여전하군, 눈동자 대신 금화가 박혀 있을 놈이라니까!” 끌끌끌끌! 하하하하하하! 함장들이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자기들만의 웃음코드에 즐거워했다. 신입 함장들은 슬슬 눈치를 보며 조용히 따라 웃었다. “원한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또한 세 가지 핵심 이상현상 중 하나이니까요.” 아그라가 지시를 내렸고, 잠시 후 화면에 메모리얼 수정구의 영상이 비쳤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 그 바다 한복판에 갑자기 대기의 마나가 크게 일렁이더니 주황색의 입구가 벌어졌다. “오오!” “흠!” 난데없이 바다에 ‘던전’이 열린 것이다. 지켜보던 이들이 탄성을 흘렸다. “이것이 세간에서 말하는 ‘보물섬’의 정체입니다.” 아그라의 설명과 함께, 메모리얼 수정구의 영상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주황색 던전 입구가 열린 지 얼마 안 되어 무수한 배들이 물살을 가르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어선을 개조한 불법 해양선들이었다. 경쟁이 붙었는지 서로 먼저 던전에 들어가려고 포격을 주고받고 난리도 아니었다. 지켜보던 함장들이 혀를 찼다. “허허! 저것들이!” “해상 지휘권도 없는 육지 놈들이 기어들어 와선!” 그러다 몇 개의 배들이 던전의 입구로 들어갔고, 얼마 안 가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 생각보다 던전에 오래 있지도 않았는데 들어갈 때와 나갈 때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무기가 잔뜩 실려 있던 배에 수많은 금이나 보석류 따위가 쌓여 있는 것이다. 처음에 보물섬 이야기를 꺼낸 로크랜드 함장의 눈에 탐욕이 서렸다. “보시다시피 이건 해역 곳곳에 보물 던전이 열리는 이상현상입니다.” 아그라가 화면을 돌리며 말했다. “들어간 이들의 말에 따르면, 던전에 ‘섬’ 하나가 있고 그 섬에 금은보화가 가득하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땅에서는 값비싼 광물까지 발굴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다른 던전과는 다르게 내부엔 몬스터나 던전주가 없으며, 입구가 열린 뒤 다섯 시간이 지나면 닫히는 게 이 보물 던전의 전부입니다.” “어허! 그런 걸 던전이라고 불러야 하오?” “노다지라고 불러야 맞지! 바다가 우리에게 선물을 주는 거요! 지금이라도 바다를 홀대하던 육지 놈들을 전부 몰아내고 우리가 저 보물섬을 차지해야 하……!” 쿵. 그때 저 멀리 있던 제독이 장화로 바닥을 걷어찼다. 로크랜드를 비롯해 유독 분위기를 흐리던 미꾸라지 같은 함장들이 즉시 입을 다물었다. 주위에 정적이 내려앉는 가운데. “수상할 만큼 쉽고 편리한 던전.” 불쑥 말을 내뱉는 건 팔짱을 낀 시몬이었다. “지키는 던전주도 없고 들어가서 보물과 광석만 챙기면 되는 던전이 바다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사람들을 벌떼처럼 바다로 끌어모으고 있다. 이 점이 핵심이겠네요.” “!” 몇몇 함장들이 첫 등장부터 건방져서 마음에 안 들던 시몬을 노려보고 있는 가운데. “유리 미그일 함장의 말이 맞습니다.” 아그라가 시몬을 향해 씩 웃어 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는 편리하기 짝이 없는 던전입니다.” 던전을 누군가 인위적으로, 그것도 연달아 만들어낼 수 있다거나 하는 건 아직 전례가 없는 일이긴 해도. 이건 지나칠 정도로 의도성이 보이고 의심스러웠다. 바다의 이상현상은 늘어나고 있으나, 보물섬 때문에 바다에 어중이떠중이들이 지나치게 몰리는 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3군단의 전력이 상당수 이들의 통제에 할애되고 있고 애를 먹고 있다. 숱하게 결사 사태를 겪은 시몬은 이 모든 걸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됐다. 아그라.” 쿵. 드디어 3군단의 남부제독, 바다의 수장인 라즌 맥밀런이 몸을 일으켜 다가왔다. “이다음부터는 내가 하지.” “예, 제독.” 아그라가 물러났고, 제독이 모두의 앞에서 입을 열었다. “본론을 말하겠다. 3대 핵심 이상현상은 보물섬, 심해 해일, 그리고 이것이다.” 그가 다시 화면을 제일 처음으로 돌렸다. 회의 시작할 때 봤던, 턱에 촉수 같은 것을 매단 초거대 생물이 바다를 두 다리로 걸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전에 발견된 적도 없고,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것을 ‘언노운(Unknown)’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했다.” 제독이 함장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언노운이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라 확신한다. 언노운이 최초 발견된 시기와 이상현상이 발생한 시기가 맞아떨어지고, 언노운의 움직임으로 해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언노운이 발견된 뒤 시간이 지난 자리에 던전이 열리지.” 그의 모자 아래에 의안이 빛을 뿜었다. “무엇보다 이놈은 바다를 오염시키고, 대륙에는 없던 정체불명의 해초들을 증식시키며, 기존의 몬스터의 공격성을 흉포화하는 건 물론 인간을 공격하지 않았던 온화한 해양 생물도 몬스터로 바꾸고 있다. 지금 언노운이 지나는 모든 바다가 죽음의 바다가 되고 있지.” 좌중에 쥐 죽은 듯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우리는 앞으로 4주 뒤, 언노운을 사냥하겠다.” 현재 3군단은 언노운의 위치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었다. 낮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밤에 주로 활동하며, 중간중간 갑자기 사라지는 등 수색에 난항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위치와 등장에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군단의 데이터는 점점 더 정밀해지고 있고, 곧 언노운이 등장할 위치를 추정할 수 있을 거라고 제독은 말했다. “언노운이 등장하는 밤, 모든 해양 병력을 집결시킬 것이다.” 제독이 목에 힘을 주었다. “그 힘으로 거의 대부분의 이상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언노운을 파괴한다.” “가능하리라 생각합니까.” 한 함장이 입을 열었다. “저 크기를 보십시오. 수심이 50발이 넘는 바다를 두 발로 딛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 발길질 한 번에 바다가 뒤집어엎어질 겁니다. 인간이 이길 수 있는 상대인지 의심스럽습니다. 게다가.” 그가 제독을 보았다. “제독은 이미 실패했지 않습니까. 호라이즌 함대가 전멸한 사태, 제독이 직접 지휘했다고 들었습니다.” 함장들이 굳은 얼굴로 수군거렸다. 호라이즌 함대의 전멸은 이미 모든 함장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소문으로 퍼져 있던 상태였다. “그게 뭐 어쨌단 거지.” “예?” 차악. 함장이 자리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가 후욱 하고 긴 연기를 뿜어내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네놈들이 내게 어떤 환상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패배라면 숱하게 했다.” “!” “나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패배한 군단장이다. 그런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패배고 나발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것은 대륙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몬스터고, 저것이 바다에 있는 한 나는 싸울 것이다.” 그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생각은 없다.” 그러다 우당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휘실로 들어왔다. 보물에 눈이 멀어 불법선박을 이끌던 용병이나 네크로맨서들이었다. 3군단 선원들이 그들을 걷어차며 안으로 들여보냈다. “빨리빨리 들어가!” “고개 팍 숙여! 어느 안전이라고 고개를 드나!” 지휘실에 거의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함장들이 당황한 얼굴로 제독과 이들을 번갈아 보았다. “제독! 저 육지의 기회주의자 놈들은 왜……!” “슬슬 수용할 선내 감옥이 부족해서 말이다.” 제독이 입을 열었다. “네놈들에게 제안을 하나 하마.” 무릎을 꿇은 채 덜덜 떨고 있던 자들이 비로소 고개를 들어 제독을 바라보았다. “배를 타고 먼 외해까지 나올 정도라면 기본적인 항해술은 갖고 있겠지. 네놈들도 그 조잡한 배를 이끌고 이번 작전에 합류해라.” “……제독!” 함장들이 벌떡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육지 놈들에게 어찌 그런……! 저들은 믿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제대로 된 항해권도 없는 놈들에게 작전을 수행시키면 해상 법률 위반입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제독이 그렇게 말하고는 끌려온 자들을 바라보았다. “네놈들은 육지로 넘기면 극형이다. 3군단의 지휘를 받아 작전을 수행할 것인가, 처벌을 받을 것인가 둘 중 하나를 택해라.” 죄수들의 시선이 화면에 나와 있는 거대한 괴물을 바라보았다. 죄를 사면해 주는 대신 저걸 상대하라는 말.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자, 잠깐만!” 그때 꼬질꼬질한 죄수들 중에 꽤 부티가 나는 남자가 결박된 몸을 비집고 나왔다. “이보시오 제독! 나, 나는 머틀록 가문의 루퍼스 머틀록 백작이오! 연합의 절차에 따라 나를 머틀록 가문으로 인도할 것을 요청하는 바요!” 그러자 앞다투어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나는 파로나 반도 사람이오! 당장 육지로 보내주시오!” “나, 나는 샤헤드 왕궁 소속이오! 품에 왕국의 인장이 있을 거요!” 일확천금을 노리고 정체를 숨긴 채 바다에 들어온 귀족들. 대륙 어딜 가든 콧방귀 좀 뀌는 자들이 수두룩했다. 3군단에 붙잡히고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입을 다물고 버텼지만 명예가 목숨보다 소중하진 않았다. “내게 손을 대면 어떻게 될지 아느냐!” “우리가 생산하는 식량으로 연명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천한 바닷놈들이!” 막상 신분을 밝히자 그들도 자신감이 붙었는지, 아니면 이판사판이란 건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외치고 있었다. 그걸 가만히 들으며 다음 담배를 입에 물고 태운 제독이 문득 입을 열었다. [타이달러스. 준비해라.] 3군단장의 절대명령. 그것이 이 배에 깃든 에이션트 언데드를 깨웠다. 동시에 이 지휘실이 꿀렁거리더니 선체가 격렬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와악!” “커흡!” 죄수들이 쓰러지거나 엎어지는 가운데, 제독이 저벅저벅 걸어가서 벽면 한쪽을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스르르르! 나무로 덧댄 평범한 벽면이 걷히고, 생체 벽 같은 게 나왔다. 단백질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투명한 벽이었는데 밖에는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고 해양 몬스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제독이 말했다. “아까 천한 바닷놈이라고 지껄였던 놈부터 끌고 나와라.” 터업. 텁! 3군단 선원들이 한 귀족의 양팔을 붙잡고 질질 끌고 오기 시작했다. “무, 무, 무엄하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무슨 짓을 할 생각이오 제독!” 쿠웅! 귀족이 제독의 발 앞에 내팽개쳐졌다. 선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철구를 그의 발에 매달기 시작했다. 그가 뒤늦게 분위기 파악을 마쳤는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 이러면 폐하께서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오!” 제독이 픽 웃었다. “네놈이 그리 존경하는 폐하께, 바다에서 마음대로 할 권한을 받은 게 누구라고 생각하나.” 귀족이 철구를 매단 채 투명한 벽으로 끌려갔다. 그가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그만! 그만! 제발 그만하시오! 나는 일국의 자작이란 말이오!” “그랬던가?” 제독이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지상에서의 지위가 아닌가.” “!” “여기는 바다다. 혹시 이자의 신분을 보장할 수 있는 자가 있나.” 모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작의 표정이 시뻘게졌다. “네놈들으으을!” 그 순간. 터엉! 제독이 직접 발로 자작의 등을 걷어찼다. 그의 몸이 투명한 벽면에 부딪히더니, 마치 스펀지처럼 빠져나가 배에서 바다 한복판으로 나갔다. 그가 몸을 뒤틀며 괴로워했고, 이내 물고기와 해양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투명한 바다가 피범벅으로 변했다. 모두가 할 말을 잊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부제독 아그라가 쓱쓱 서류에 깃펜으로 기록했다. “코넬리우스 자작, 해상 법률을 어기고 신분을 숨긴 채 무리하게 보물섬을 찾아 항해하다가 몬스터에게 먹혀 실종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런가.” 제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국의 귀족이 그저 깃펜 한 줄의 기록으로만 남겨졌다. 후욱- 담배를 손가락에 쥔 제독이 입을 열었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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