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65화 크리스티나가 유리 미그일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대단하지 않았다. 살롱에서 그와 직접 만났을 때, 세상 순수한 성격과 담백한 말투에 반했다. 그는 살롱에서 알랑방구나 뀌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고, 아버지의 의사에 반하여 약혼까지 하게 됐다. 하지만 몇 년 뒤 안 좋은 소문이 꼬이기 시작했다. -카르민시아 가문의 여식을 글쎄……. -그렇게 어린 영애의 몸에 손을 대다니! 인간 쓰레기야! 갑자기 나쁜 소문과 온갖 유언비어가 퍼져 나간 것, 그때 유리 미그일은 모든 건 헛소문일 뿐이라며 일일이 대처하지 않았다. 다소 안일한 것처럼 보이는 행동. 살롱에서 소문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몰라서 그런 식으로 답답하게 군 걸까. 그의 모든 장점이, 좋게 봤던 부분들이 단점으로 바뀌었다. ‘무능, 무지, 무신경의 남자.’ 배를 탄 크리스티나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쏴아아아아! 바다에 뛰어든 유리가 파도를 일으켜 신입 함장들이 탄 배들을 밀어내며 해양 몬스터들을 쫓아내는 모습이 보인다. 그제야 조금씩 보인다. 위험에 빠졌을 때 누구보다 앞장섰던 인물이었음을. 무뚝뚝하지만 속은 깊었던 인물이었음을. 꽈악! 크리스티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는 남남이다. 그의 말대로 다 끝난 사이다. 모른 척하고 제 갈 길 가면 된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두근 두근! 5년 전에 식었던 심장이 왜 다시 세차기 뛰기 시작하는가.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날 지경이었다. 마음을 뜯어버리고 싶다. 가능하다면 감정을 느끼는 기관을 모조리 도려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만큼 비참했으니까. ‘수년 전의 유리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혹시나 하는 말인데, 크리스티나.” 그때 반대편 배에 타 있던 현 약혼자, 로잘린이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지금 저 모습을 보고 이제 와서 마음이 흔들린다면, 참 구차하다. 그치?” 꾸득. 그녀가 입술을 한 차례 더 질끈 씹은 뒤 고개를 돌렸다. “알고 있어.” 크리스티나의 대답을 들은 로잘린이 다시 고개를 돌려 유리를 보았다. 그 옆에 함께 헤엄치며 오고 있는 오드레시아가 거슬렸지만, 뭐 이 정도쯤이야. “혹시 로잘린 아가씨야말로 유리 경을 다시 보는 건 아니죠?” 이번엔 로잘린을 좋아하던 배질이 슬슬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유리 경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지갑이니 돈줄이니, 늘 그렇게 말했었잖아요.” “오, 오호호호! 그, 그게 무슨 소리니 배질! 그건 살롱이니까 그렇게 말한 거구, 나만큼은 처음부터 유리의 진가를 알아봤지!” “아! 다들 왜 그래!” 알리라 헌트가 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모든 귀족들이 우러러보는 에스텔라 살롱이야! 유리가 바다에서 좀 잘 싸운 것 좀 가지고 다들 왜 그렇게 눈치 보면서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거야?”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고, 알리라 헌트가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때 더러운 소문을 우리 앞에서 제대로 해명하지도 않고 멋대로 은둔한 유리가 잘못한 거지!” “……이제 알겠네요.” 배질이 눈에 불을 켜고 중얼거렸다. “유리 경은 우리 앞에서 능력을 숨긴 겁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비참한 기분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요.” “아니지! 이런 힘이 있었으면 다르크 할렉에게 괴롭힘당했을 때 어떻게든……!” “복수를 위해 이를 악물고 성장한건가?” “거기. 살롱 친구들.” 그때 정신없이 떠들던 다섯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이번 일과 상관없는 인물, 에스텔라 살롱 출신이 아닌 군인 출신의 로타리오가 경멸의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유리의 힘으로 도망치는 이 순간만큼은 입 좀 닥쳐줄래? 진심으로 인간 혐오가 생길 것 같으니까.” “…….” “하여간 살롱이니 사교회니 고위귀족 중에는 정상이 없어. 유리가 불쌍하다. 이것들아.” 알리라 헌트가 다시 벌떡 일어났다. “아저씨 지금 우릴 모욕하는……! 꺅!” 쿠쿠쿠쿵! 갑자기 모두가 탄 배가 급격히 흔들렸다. 파도를 타고 나아가던 그들의 중심으로 거대한 악어 입의 몬스터들이 끼어들었다. 그것들이 입을 쩍 벌리자 바닷물이 빨려들어 가며 파도를 이루는 ‘결’을 흩어버렸다. “저, 저 악어 같은 거 ‘딥바이서’맞지?” “피해!” 다들 빠르게 배를 기동하며 저주나 칠흑 원소계 마법을 날려서 딥바이서라 불린 몬스터를 일시적으로 쫓아냈다. 그러나 한 마리가 다가 아니었다. “계속 와!” 콰콰콰콰콰콰! 수면을 가르며 살벌한 속도로 접근해 오는 해양 몬스터인 딥바이서. 켈프이블이나 씨 팽거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험도의 잔악무도한 몬스터였다. “유리!” 바다에서 시몬과 함께 파도를 일으키던 오드레시아도 그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물살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며 소리쳤다.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게요! 유리는 동료들이랑 먼저……!” 쏴아아아아아아아! 그러나 그보다 빠르게 시몬이 두 팔로 수면을 밀어냈다. 다시 한번 파도가 솟구치며 오드레시아와 배들을 동시에 뒤로 쭈욱 밀어냈다. “유리!” “동료들을 지켜줘! 오드레시아!” 그렇게 말한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딥바이서 5마리가 거대한 입을 벌린 채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야-” 시몬이 조용히 수면 위로 아공간을 열고 완성된 마법진을 아공간에 앞에 펼쳐두었다. “제대로 데뷔전을 치러보겠네.” 늪의 왕이라 불리던 에이션트 언데드. 몰굴라의 등장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금속 뱀이 튀어나오고, 뒤이어 ‘삐융!’ 하고 아공간에서 어린 라미아가 튀어나온다. 시몬이 금속 뱀 내부의 코어에 마법진을 펼치게 하고, 라미아가 뽀골뽀골 나아가서 코어 위의 마법진에 안착한다. 우웅! 뱀의 눈에 라미아와 똑같은 안광이 반짝인다. ‘날뛰어! 라미아!’ [빼우우우우우우우우우!] 울려 퍼지는 맹렬한 포효에, 다가오던 딥바이서들이 흠칫한다. 뒤이어 몰굴라가 은빛 섬광을 번쩍이며 접근해 딥바이서 하나의 옆구리에 앞니를 박아 넣었다. 괴성을 지르며 딥바이서 하나가 절명하고, 몰굴라가 다음 타겟을 정한다. 촤르르륵! 거대한 꼬리로 딥바이서 하나를 휘감아 쥐어짜서 죽인 뒤 그대로 던져 버렸다. 던지는 방향은 일행들을 노리던 딥바이서가 있는 그곳. 두 딥바이서끼리 충돌하며 커다란 물줄기를 일으켰다. “설마!” 크리스티나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쏴아아아아아아! 정체가 불분명했던 거대한 은빛의 금속의 바다뱀이 수면 위로 솟구쳐 하늘로 올라왔다. 그 위에 올라탄 채 허리에 손을 얹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역시 저걸 다루는 건 유리였어!’ 물방울이 튀어올라 그녀의 뺨에 묻었다. 다른 한 손으로 태연히 안경을 추켜올린 그의 모습. 그러다 유리가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가 시선을 돌리는 모습이 보인다. “라미아.” 시몬이 작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물벼락.”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그러자 바다뱀의 몸통에서 푸른 에너지가 번쩍이더니, 거대한 물줄기가 벼락처럼 솟구쳐서 주위에 다가오는 딥바이서들을 쓸어버렸다. 와아아아아아! 지켜보던 이들이 절로 탄성을 흘렸다. 첨버어엉! 바다뱀이 다시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이내 일행들이 있는 배 아래를 지나가며, 다가오는 딥바이서 하나의 목을 물어서 쓰러뜨렸다. “대단해!” “유리의 소환수인가!” 모두가 환호하는 가운데, 살롱 출신의 신입 함장들은 벙찐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크리스티나 셀린은 눈을 떼지 못했다. 몰굴라가 일으킨 물방울들이 비처럼 그녀의 어깨와 머리카락을 계속 적시고 있었다. 슥- 그때 시몬이 고개를 돌려 크리스티나를 응시했다. 시선이 마주한 순간 크리스티나는 숨이 멎는 걸 느꼈다. 언데드에 탄 그의 얼굴이, 과거 파혼하겠다며 말하던 지친 표정과 겹쳐 보였다. 마음이 콕콕 송곳에 찔리듯 아팠다. “크리스티나.” 그때 그의 입술이 열리며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그녀가 고개를 드니, 시몬이 손바닥을 펼쳐 옆으로 미는 동작을 했다. 그녀가 멍하니 그가 시킨 대로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고. 투콰아아아아아악! 몰굴라가 입을 벌려 무언가를 발사했다. 정체불명의 보라색 에너지 같은 게 고개를 기울인 그녀의 옆을 지나쳐 날아갔다. 고오오오오오오! 그녀가 뒤늦게 돌아보니 목만 남은 딥바이서가 한 마리가 보였다. 얼굴이 원형으로 날아간 채, 그 흔적만 남아 있었다. 얼굴을 잃은 딥바이서가 축 늘어지며 바닷속에 다시 빠졌다. 핏방울과 물방울이 튀어서 그녀의 머리카락에 닿았다. ‘심장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위기여서 그런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지는.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 * * 시몬의 대활약으로 신입 함장들은 무사히 본선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몬스터들이 계속 몰려들었지만, 본선의 선원들이 직접 바다로 나와 청파류를 사용해 견제했다. “다들 물러나라!” 신입들이 모두 배에 올라온 걸 본 부제독 아그라가 오크통을 연달아 바다 위로 던졌다. 그 안에 담겨 있던 몬스터의 기름이 둥둥 퍼져 나갔고, 이내 그녀가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더니, 그것을 바다에 던졌다. 화르르르르르르륵! 바다의 한 구역 전체가 불길이 치밀었다. 다가오던 켈프이블들이 괴로워하며 물러났다. “타이달러스는?” “깨어났습니다! 일정보다 일찍 깨워서 조금 피곤한가 본데요.” “어쩔 수 없어! 칠흑을 주입해라!” 네크로맨서들이 갑판 아래로 내려갔고, 잠시 후.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 갑자기 배에 요란한 진동이 일어났다. 선체에 나무로 덧댄 옆부분이 박살 나더니, 바로 그곳으로 푸른 형광색의 거대한 지느러미가 튀어나왔다. 철썩! 촤아아아아아! 다른 방향에도 지느러미가 튀어나왔다. 해양 몬스터들이 다가와 물려고 했지만 가볍게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튕겨 나갔다. [그래.] 스오오오오오. 마지막으로 배 앞에 머리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거대한 거북이의 형상을 한 머리였다. [문제가 발생했구나.] 3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 타이달러스. 시몬이 예상했던 대로 이 배 전체가 에이션트 언데드였다. [내 오랜 친구도 내 등껍질 위에 타 있군.] [크흐흐흐!] 다른 사람들이 무슨 소린지 모르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피어는 시몬의 머릿속에만 들리는 웃음소리로 웃었다. 부제독 아그라가 외쳤다. “여기서 탈출해야 한다! 타이달러스!” [알겠다.] 쏴아아아! 타이달러스가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나아갔다. 신기하게도 지느러미가 닿는 곳마다 바다 또한 형광색으로 물들며 물결이 일어났다. 배를 공격하러 다가오던 몬스터들은 타이달러스의 등장에 감히 공격하지 못했다. “저 마물들도 본능적으로 아는 거지.” 멍한 표정의 시몬의 옆으로 부제독 아그라가 다가오며 키득거렸다. “가까이 다가오면 타이달러스에게 죽는다는 걸.” “아…….” “이번에 활약 대단했다, 유리.” 그녀가 시몬의 어깨를 짚었다. “덕분에 돌발 상황에서 귀한 인력들을 구할 수 있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녀가 시몬의 어깨를 재차 두들기고는 조용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네놈도 이번 임무만 끝내고 3군단을 나갈 생각이냐?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네놈을 놓치는 건 너무 아까울 것 같은데.” “……하하.” 시몬은 노코멘트하기로 했다. 이내 부제독인 그녀가 시몬을 격려해 준 뒤 떠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선원들이 뛰어들어 왔다. “대단해! 유리 미그일!” “이번 전투의 최고 공헌자야!” 와아아아아아아! 왁자지껄한 선원들이 시몬에게 몰려와 장난을 치거나 칭찬해 주었다. 시몬은 지금까지 본선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모든 일에 수준급 습득력을 가졌고, 그 이상으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있었기에 평판이 좋았다. 급기야 헹가래까지 태워지기 시작했다. 시몬이 당황해하며 말했다. “너무 높습니다!” “함장 나으리가 그거밖에 못 하냔다! 더 높이!” 퍼어엉! 퍼엉!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선원들이 흑마법으로 폭죽까지 만들어 밤하늘에 퍼뜨렸다. 헹가래를 받는 시몬도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미소 지었다. “술 꺼내 와! 오늘은 마시고 죽자!” “고럼! 고럼!” 와하하하하하하하! 모두가 웃고 떠들며 즐기는 가운데. “…….” “…….” 에스텔라 샬롱의 다섯 명만이 웃지 못하고 덩그러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