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62화 시몬이 가장 먼저 1위로 시험 결승 지점인 배 위에 올라탔고, 그 밖에 다른 수험자들도 차례차례 힘겹게 배에 올라왔다. 해상 지휘권을 받을 수 있는 합격자는 총 10명. 에스텔라 살롱 출신이자 시험 내내 특출난 힘을 보여줬던 크리스티나, 마일러, 로잘린, 배질은 모두 합격했고, 그래도 경쟁이 만만치 않았는지 쌍둥이인 알리라 헌트와 펠리라 헌트 중에 알리라 헌트만 합격했다. 그리고 시몬에게 깃펜을 주워준, 양머리 안경 여자도 마지막 10번째로 합격했다. 그녀가 갑판에 손을 짚고 올라오자 시몬이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잡아.” “……아, 고마워요.” 알리라 헌트는 ‘꼴에 나대긴’ 하고 퉁명스럽게 한마디 했고, 크리스티나와 로잘린은 복잡한 심경이 드러난 표정으로 시몬을 지켜보았다. “시험 종료입니다!” 그녀가 들어오는 것으로, 3군단 소속 선원이 시험 종료를 알렸다. 다른 수험자들이 어떻게든 배에 달라붙으려고 해양 몬스터들을 해치며 돌파하는 중이었지만, 배는 10명의 합격자들이 모두 타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렸다. 배에 올라오려던 수험자들이 손을 뻗으며 절규하는 소리가 들렸다. “3군단의 함장 자격을 얻게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다가온 선원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합격자분들 모두 이쪽으로 오시죠.” 3군단 선원이 ‘합격자’라고 공인해 주자 모두의 얼굴이 한결 펴졌다. 시몬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선원을 따라 걸었다. * * * 모든 건 쉴 틈 없이 바쁘게 진행되었다.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배에서 샤워를 한 뒤, 사이즈가 맞지 않고 주렁주렁 뭔가 매달린 게 많은 선단의 정복을 차려입었다. 잠시 뒤 저 멀리서 커다란 배 한 척이 보인다. “와, 저건……!” “스킬라호다! 맞지?” 3군단 선단의 본선, 스킬라(Scylla). 배가 아니라 거의 하나의 섬과도 같은 거대한 선체가 바다에 둥둥 떠 있었다. 지켜보는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런 거대한 게 물에 뜰 수도 있구나.’ 어쨌건 지금 타고 있는 배에서 본선인 스킬라호로 이선해야 했는데, 높이가 상당히 차이가 났다. 지금 타고 있는 배를 근처에 댄 뒤 밧줄을 타고 낑낑대며 본선에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제일 늦게 도착한 시몬이 갑판에 착지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 세상만사에 관심 없는 유리 미그일을 연기해야 하건만, 잠깐이지만 시몬의 눈이 호기심과 흥미로 번쩍였다. 배의 갑판이 아니라 울창한 정글과 해저터널을 반쯤 섞어 놓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기둥 곳곳에 어두운 해초들이 자라나 있다. -크르르르르! -게게겍! 문어나 어인 같은 각종 해양 언데드들이 득실거리며 지나다닌다. 선원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런 언데드들을 비켜서 걸으며 주위를 청소하고 있었다. 살짝 겁에 질린 듯한 알리라 헌트가 선원에게 말을 걸었다. “언데드를 이렇게 풀어둬도 괜찮아요?” “군단형 언데드니까 괜찮습죠! 전부 제독이나, 그분의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통제하고 있거든요.” 다들 주위를 경계하듯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시몬은 발에 닿는 감촉과 칠흑을 느끼고는 미소 지었다. ‘재밌네. 이 배 자체가 에이션트 언데드네요? 피어.’ [크흐흐흐! 정답이다. 3군단의 타이달러스라고 하는 녀석이지.] 피어는 추억을 떠올리는 듯 미소 지었다. [사실상 이 녀석을 누가 가졌느냐에 따라 어떤 군단장이 바다로 나가느냐 정해질 정도로 중요하다!] ‘흥미롭네요.’ 갖고 싶다. 시몬은 문득 그렇게 생각했으나 얼른 고개를 저었다. 남의 영역에 몰래 온 것도 좀 그런데, 남의 에이션트 언데드에 눈독 들이는 건 실례였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3군단의 진영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됐다. 바다에서 지내는 군단장과 군단은 신비롭고 독창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눈빛.” 그때 옆에서 문득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랜만이네.” 크리스티나 셀린이 그렇게 말하고는 걸어갔다. 시몬은 움찔하고는 등줄기에 오싹한 감각이 달리는 것을 느꼈다. ‘나 지금 유리 연기 중이었지. 들뜨지 말자.’ 시몬은 얼른 표정을 고치고 안경을 추켜올리며 다시금 만사 귀찮은 태도를 보였지만, 크리스티나 셀린은 돌아보지 않았다. “저기.” 그때 작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시몬이 고개를 돌리니, 안경을 쓴 양모양 머리의 여성이 있었다. “아깐 도와줘서 고마워요. 제 이름은 오드레시아라고 해요.” 시몬이 무표정을 유지하며 답했다. “유리 미그일. 깃펜을 주워준 보답을 했을 뿐이야.” 두 사람은 둘 다 말수가 많지 않았기에 그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침묵을 지켰다. 이내 일행들은 언데드들이 득실거리는 해초 지역을 벗어나 사람들이 많은 갑판 구역으로 들어왔다. 배가 워낙 넓어서 언데드의 구역과, 인간의 구역이 따로 나뉘어져 있었다. 예이! 휘익! 신명 나는 음악 소리가 들린다. 벌써 술판이 벌어져 있었는데, 뱃사람들답게 태양에 익은 구릿빛 피부에 활기가 넘쳐 보이는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겉으로는 그냥 평범한 선원 같아 보였지만 하나하나 단련된 육체에, 만만치 않은 칠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겔겔겔겔! 특이한 네크로맨서들도 많았다. 양쪽 동공이 코보다 더 앞으로 튀어나온 자도 있었고, 혀를 자유롭게 늘려 다른 테이블의 음식을 훔쳐 먹는 자도 있었다. 곳곳에 파리와 벌레가 계속 꼬이는 자도 있었고, 쿼터 오크나 다크 엘프 같은 아종족들도 많았다. 인종의 다양성만큼은 어떤 군단보다 다채로웠다. ‘이 배에서 근무하는 것도 재밌긴 하겠다.’ 다만 지금은 즉시전력이 필요하기에 본선에서의 교육은 2주 정도에 불과하다. 그 기간 훈련을 받은 뒤 시몬은 자신의 함대를 직접 지휘하게 될 것이다. “주목해라!” 마침 연단에 나무 다리로 갑판을 딛고 나타난 부제독 아그라가 외쳤다. 그러나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그녀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주목하라고! 이 발톱에 낀 때보다 못한 새끼들아!” 끅끅끅! 하하하하하하! 그제야 선원들이 봐주는 둥 마는 둥 하며 웃어댔다. 그녀는 한 차례 혀를 찬 뒤 팔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 배에 오른 신참들이다. 본선에서 2주의 교육 기간을 거친 뒤 바로 함장으로서 전력으로 채용할 거다. 중요한 작전에서 얼 타지 않게 제대로 가르쳐 주도록!” 선원들이 턱을 쓸거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함장 자격시험에 합격한 10명을 바라보았다. 시몬은 비롯한 모두가 느꼈다.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뱃사람으로서 단련되다 못해 배와 일체화된 이들과, 아직 파릇파릇한 귀족 청년들은 너무나도 살아온 환경이 달랐다. 뭔가 불만스러운 듯 지그시 노려보던 선원들이 이내 입술을 씰룩이더니. 파하하하하하! 결국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열심히 해보자고!” “일로! 일로 와! 오늘은 첫날이니 거하게 한잔해!” 뱃사람들의 친화력은 대단했다. 바로 어깨동무하고 술부터 먹이려 드는 모습. 마일러와 다르크는 술부터 받아 들었고, 크리스티나에게는 여성 선원들이 다가와 둘러싸고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라고?” “크리스티나 셀린.” “크리스티나!” 여성 선원들이 그녀를 가리키며 그렇게 외치자, 다른 이들도 목이 터져라 힘껏 복창하며 이름을 외쳤다.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이 그렇게 본선 중심부에서 가장 끝부분까지 퍼져 나갔다. 일종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한 그들만의 문화인 듯 보였다. 크리스티나도 뱃사람들처럼 배에 힘주어 말하는 등 적응하려 하는 모습이었다. 알리라 헌트는 ‘저급해’를 중얼거리며 거리를 두려 했다가, 바로 다른 뱃사람들에게 끌려가서 술을 먹게 됐다. “하하하하하! 우리가 웃기지? 웃기긴 해!” “너희도 1주일만 지나면 우리랑 비슷한 꼴이 될 거야! 내 보장하지!” 시몬도 오늘 같은 날은 취하면서 즐기고 싶었지만, 유리 연기를 해야 했기에 적당히 거리감을 두면서 깨작깨작 술을 마셨다. “아아악!” 벌써 애착인형이 되어, 수염이 득시글하게 난 뚱뚱한 여성의 턱에 비벼지던 배질이 시몬을 가리켰다. “왜 나한테만 그러는 겁니까! 저 사람은요!” “저 녀석?” 수염 난 여성이 푸핫 웃었다. “저놈은 딱 봐도 괴물이잖아. 뭐가 있는 줄 모르는데 사려야지!” 몇몇 선원들은 본능적으로 시몬이 뭔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걸 전혀 모르는 배질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그렇게 첫날은 선상 파티가 이어졌다. 신입 함장들 또한 빠르게 갑판 위의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특히 에스텔라 살롱 출신들은 숨 막히는 사교계에서 눈칫밥으로 먹고살던 이들이기에, 의외로 적응이 빠른 모습. 사실 그들이 잘 적응했다기보다는 3군단 선원들의 친화력이 워낙 대단했다. “내 이름은 토미 피셔! 내가 네 사수다!” 수염이 북슬북슬하게 난 남자가 요란하게 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해도 보는 법! 바람을 읽는 법! 키 잡고 운전하는 법! 밧줄 다루는 법! 뭐든 다 가르쳐 줄 테니 잘해보자고!” “잘 부탁드립니다.” 시몬도 가볍게 잔을 부딪히고는 한잔했다. 그가 흘흘 웃으며 고개를 쓱 들이밀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 같은 남자가 무슨 이유로 배에 올랐지?” “제가 뭐요?” 시몬이 천연덕스럽게 말했고, 토미가 쓱 고개를 돌렸다. “언데드들이 경계하지 않나.” 크르르르. 키이잉! 말 그대로였다. 3군단의 언데드들이 시몬을 주시하고 있었다. 시몬은 아차 싶어서 최대한으로 칠흑을 숨겼다. “제가 원래 망자들에게 미움받는 성격이라서요.” “하하하하! 말하기 싫으면 됐다!”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마일러와 배질이 귀족들의 춤을 재현하고 있었고, 선원들이 깔깔 배를 잡으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불쑥 말했다. “제독께서는 안 오시나 보네요.” “뭐, 워낙 바쁜 분이니까 말이야!” 그가 낄낄낄 웃었다. “특히 요즘 같은 시기는 말이지!” “그 대규모 작전을 준비 중이라서 그런 거죠?” “그래! 바다가 심상치 않아.” 토미가 턱을 쓱쓱 쓸었다. “도저히 무슨 조화인지 모를 일들만 벌어지지. 우리도 설명하고 싶어도 처음 겪는 일들뿐이라 말하기 어렵단 말이야.” 쾅 쾅! 그때 부제독 아그라가 나무 의족으로 갑판을 강하게 내려치며 외쳤다. “이제 그만! 취침 시간이다! 야간조를 제외하고 전부 갑판에서 꺼져!” 선원들이 아쉬운 듯 마지막으로 잔을 비운 뒤 하나둘 일어나 비틀비틀 갑판 아래의 선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네들 방은 계단을 다섯 번 내려가면 있다네! 문 앞에 이름을 써서 붙여놨다는데, 대륙어를 모르는 놈이 썼으니 그냥 아무 방이나 적당히 골라 잡고 들어가!” “감사합니다.” 시몬도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흔들리는 배 안을 삐걱삐걱 걸어갔다. 여기가 에이션트 언데드의 내부라니,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선원들이 하나둘 제 방으로 들어가 바로 곯아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다섯 번 내려가면 나오는 층. 여기구나.’ 시몬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유리!” 갑자기 뒤에서 외침이 들렸다. 시몬이 등을 돌려보자, 크리스티나, 마일러, 배질, 그리고 로잘린이 동시에 시몬을 부르고 있었다. “나 좀 봐!” “저 좀 보시죠!” 시몬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난 할 이야기 없어.” 시몬이 그들을 피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에게 느끼는 감정 이전에, 정체를 들키면 안 되니까. 시몬은 유리의 연기에 힘을 주듯 무심하게 자기 방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가 버렸다. “저런 모습은 여전하네요.” 배질 포트시가 그렇게 말하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크리스티나 셀린은 제 가슴에 손을 꾹 올렸다. ‘대체 뭐지? 뭐냐고 이 기분은……!’ “크리스티나아.” 로잘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파혼해 줘서 고맙다고 말해야 하나.” “…….” “나 대박을 건진 것 같아! 역시 내 안목은 최고야! 먼저 들어갈게!” 그녀가 안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크리스티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유리 미그일.’ 이번 시험에서 보여준 모습. 그동안의 유리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반드시 비밀을 알아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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