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63화 바다에서 맞이하는 첫날 아침. 본격적으로 3군단 본선 위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빨리 빨리 움직여!” “서둘러라!” 어제의 풀어진 모습과는 달리, 일과가 시작되니 모든 선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시몬을 포함한 10명의 신입 함장들은 즉시 밀도 높은 교육에 들어갔다. “명심해라! 돛은 배의 생명이고 바람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배에 탄 모든 사람의 생사가 결정된다! 먼저 굵은 밧줄을 당겨 큰 돛을 올리는 거다. 거기 너, 한번 해봐! 그렇지! 손가락 끝에 거친 밧줄이 문질러지는 감각을 기억해라! 늘 느끼는 그 감각이 아니면 바로 줄을 교환해야 하니까!” 돛줄을 당기고 풀어서 돛을 펴는 법. “이 표시가 바로 암초 구간입니다. 나침반을 보고 우회해서 항해해야 하죠. 그리고 여기 이 선이 보이시죠? 선이 밀집할수록 바닥이 가파르게 떨어진다는 걸 의미합니다.” 해도를 보는 방법. “이봐, 친구! 키를 빨리 돌린다고 방향 전환이 잘되는 게 아니야! 너무 급하게 돌리면 배가 기울어지거나 방향을 잃을 수 있다! 천천히! 부드럽게!” 배의 키와 타륜을 돌리는 방법. 그 밖에도 해류와 바람을 이해하는 방법, 별자리와 태양을 이용해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 로프의 매듭을 묶는 방법, 응급처치 방법, 기관실의 유지 보수 방법까지. 온갖 다양한 지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뭐 하나 간단하지 않았다. ‘배울 점이 많아서 좋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시몬이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바로 ‘네크로맨서들의 항해’를 배울 수 있다는 점. 3군단의 본선 인원은 전원이 네크로맨서다. 그들의 지식과 경험이 뱃생활 곳곳에 깃들어 있었다. “이게 바로 닻이다.” 갑판 위로 거대한 금속 덩어리와 사슬이 떡하니 놓여 있고, 그 주위로 10명의 신입 함장들이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강의을 맡은 선원이 진중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안전한 정박지를 선택했다면 닻을 내려서 배를 정박하거나, 바닷물의 저항으로 배의 속도를 느리게 할 수도 있다. 원래 닻을 내리려면 몇십 명이 달라붙어서 낑낑대야 하지만, 우리는 이 안에 망령을 깃들게 해서 편리하지.” 그렇게 말한 선원이 조심히 닻에 귀를 기울인 뒤, 손등으로 통통 닻을 두들겼다. 그러자 닻에서 웅웅 하고 마치 반응하는 듯한 소리가 나왔다. 모두가 신기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탄성을 흘렸다. “질문 있습니다.” 시몬이 안경을 추켜올렸다. “닻에 든 망령의 종류는요?” “짜식, 3군단 선단의 내부 기밀을 싹쓸이하려고 하나.” 선원은 낄낄거리며 그렇게 한번 튕겼지만, 결국 설명해 주었다. “모스록섬에 있는 망령 언데드 ‘스틸하울(Steelhowl)’을 끌어들여 깃들였다! 모스록섬은 선단 본부에서 이틀쯤 서북쪽으로 가면 나오지! 그 섬의 주민들에게 값을 치르고 비석을 뽑아서 가공해 닻으로 만든 거다!” 선원은 간단하게 몇 가지 망령 언데드를 깨우는 의식을 하더니, 갑자기 그 무거운 닻을 덥석 붙잡고 한 손으로 들어 올려 어깨에 짊어졌다. 모두가 감탄성을 터뜨렸다. “이 녀석은 익사자 언데드다. 물에서 나오려는 성질이 있지. 우선 칠흑으로 닻의 겉부분을 덮어서 놈이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하게 한 뒤, 이렇게 바다에 빠뜨린다.” 첨벙! 닻이 바다에 빠졌다. 뒤이어 닻과 연결된 사슬이 온갖 녹 먼지와 불꽃을 튀기며 뒤따라 내려간다. “항해 중이니 바로 올려보마. 흠흠!” 그가 목청껏 외쳤다. “익사자가 올라온다!” 그러자 전파하듯 다른 선원들도 빠르게 ‘익사자가 올라온다!’ 하고 연달아 외쳤다. 다들 그러자 귀에 흑마법을 걸거나, 그냥 맨손으로 틀어막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도 눈치껏 귀를 막았고, 다른 신입 함장들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귀를 막거나 조치했다. “칠흑을 걷겠다!” 선원이 사슬에 ‘다크 드레인’ 흑마법을 걸어둔 뒤, 자신도 귀를 막았다. 그러자. 쿠구구구구구구구! 수면이 격렬히 흔들리더니 이내 푸확! 소리와 함께 물줄기가 산처럼 솟구치며 그 무거운 닻이 올라왔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악! 닻이 비명을 지른다.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며 허공에서 몸부림을 쳐댔고 선원은 익숙한 듯 사슬을 잡아당겨 다시 갑판으로 끌어온 뒤 부채 같은 도구로 바람을 일으켰다.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도 물 밖으로 올라왔다는 것을 익사자 언데드에게 알리는 것 같다고 시몬은 생각했다. 잠시 후 닻이 진정됐는지 조용해졌다. “굳이 이렇게 해야 되는 이유가 있어요?” 괴로운 표정의 배질 포트시가 귀에서 손을 떼고 말했다. 선원이 낄낄댔다. “어디 뭐 한적한 동부 바다는 보통의 방식으로도 충분하지. 하지만 이곳 남부 바다는 해양 몬스터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득실거리는 곳이다! 닻의 사슬을 씹어 먹거나, 역으로 닻을 이용해 배를 잡아당겨 심해로 끌어들이는 독한 것들도 있지! 그래서 우리도 언데드라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취해서 우리 배를 지키는 거다.” “아……!” 그 밖에도 신기한 부분들이 많았다. 닻뿐만이 아니라 돛에도 망령이 깃들어 있었는데, 돛을 청소하려고 접을 때마다 망령들이 뭐라뭐라 끊임없기 귓가에 말을 걸어댔다. 그 밖에도 따개비 형태의 언데드를 배의 벽면에 붙여서 몬스터의 접근을 막는 법. 배의 앞부분에 배치한 세이렌 언데드의 행동을 보고, 전방의 바다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파악하는 방법까지. 3군단이 네크로맨서들의 선단인 만큼 가장 선진화된 ‘암흑 항해술’을 가지고 있었다. 시몬은 가슴이 너무 뛰는 바람에 참기 힘들 정도였다. ‘여기 온 건 정답이었어!’ 이 지식들을 모조리 체득한 다음, 2주 후에 본선에서 나와 독립해서 자신만의 언데드 함선을 만들 것이다. 시몬의 머릿속에 수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시몬은 수업이 끝나고도 다른 선원들한테 물어물어 어떤 몬스터로 언데드를 만든 건지, 그 몬스터는 어디에서 봤는지 묻고 다녔다. 3군단이어서 가능한 수단도 있었고, 네크로맨서라면 누구든 가능한 것들도 있었다. 시몬은 열심히 노트에 필기를 하고 머릿속에 지식을 집어넣었다. 가끔 세상 피곤한 듯 연기하던 유리 미그일이 아니라 시몬 본연의 학생으로서의 학구열 가득한 모습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서 곤란하긴 했다. 물론 이렇게 재미있는 수업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철퍽. “……왜 선내 청소까지 우리가 해야 하냐.” 같은 10명의 신입 함장 동기 중 한 명인 남자가 중얼거렸다. 30대 초반의 그는 잘 기른 턱수염에 배가 툭 튀어나온 남자였다. 그는 에스텔라 살롱 출신이 아니었고, 시몬에게도 친근히 말을 걸어주었다. 시몬은 태연히 답했다. “선원들이 쉬는 시간을 빼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거니까, 이 정도는 우리가 당연히 해야지.” “세간에서는 그런 걸 짬 맞았다고 표현해.” 배의 청소만큼은 언데드들이 하지 않았다. 언데드들에게 시킬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청소에 능한 언데드 따위는 거의 없다. 더더욱이 구조가 복잡한 선내라면 더 그렇다. 물걸레질을 시켜도 제대로 닦이지도 않고 더러운 오물은 그대로였기에 어쩔 수 없이 사람이 직접 해야 했다. 스윽! 스윽! 시몬이 빡빡 힘주어 바닥을 닦는 모습을 본 함장 동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 너.” 시몬이 무릎을 굽히며 답했다. “청소도 공부가 되니까.” “뭐?” “바닥의 발자국이나 벽면의 얼룩을 보면, 선원들이 말해주지 않은 언데드가 더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이들의 어떤 언데드인지, 어디에 쓰이는지 생각해 보는 거지. 사람들의 동선도 파악할 수 있다.” 남자가 헛웃음을 쳤다. “산업스파이처럼 말하는군.” 시몬은 부정하지 못했다. 반쯤은 비슷한 느낌이긴 했다. “마음에 들었다, 안경잽이. 나는 로타리오다.” “유리 미그일.” “그래, 사교회 놈들이 그렇게 떠들던 ‘유리’가 너였군. 그 알리라 헌트인가? 그 여자가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데?” 로타리오가 목소리를 흉내냈다. “함장 시험에 합격한 건 분명 속임수를 썼을 거야! 멍청이 주제에 살롱 밖에 나왔다고 열심히 하는 척하는 거 기분 나빠!” 머릿속에 장면이 그대로 그려졌다. 시몬은 푸핫 소리를 내며 다시 물걸레를 양동이에 넣었다가 빨고는 바닥을 닦았다. “신경 안 써.” “그래, 그래. 직접 보니 네가 진국이고, 그들이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는 건 잘 알겠다.” 로타리오 또한 다시 청소를 시작하며 걸레로 바닥을 빡빡 닦았다. “하지만 무슨 마음의 변화라도 생겼나? 이야기를 다 믿는 건 아니지만 사교계 시절에는 꽤 무기력하게 지낸 것 같던데.” “딱히 없어.” 시몬과 로타리오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 저 뒤편에서 청소를 마치고 돌아가던 크리스티나 셀린은 입을 틀어막은 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니지만 우연히 이야기를 들려왔다. “전 약혼자도 여기 있다던데. 좀 어색하겠는걸.” 로타리오의 그 말을 들은 그녀가 흠칫하더니, 이내 귀를 쫑긋했다. 이내 시몬의 답이 돌아왔다. “아무렇지도 않아.” 쿵. 그녀의 심장이 철렁이며 아래로 떨어졌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내가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뭔가 자신만 바보가 된 기분에 그녀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얼굴이 열이 나고 화끈거렸다. ‘유리 미그일……!’ 남들은 믿어주지 않겠지만, 처음 그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사랑이 맞았다. 직접 셀린 가문을 통치하라고 말한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동생들에게 그 자리를 넘긴 채 미그일 가문과 약혼한 것도 유리 미그일을 사랑해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사교계에서 유리 미그일이란 존재는 점점 거품이 가라앉듯이 그 실체가 드러났다. 그에게 반했던 무뚝뚝한 매력은 꼴 보기 싫은 무력감으로 변모했으며, 살롱 사람답지 않은 순수한 태도도 야망없고 무능하게 보였다. -살롱에 떠도는 안 좋은 소문 말이야! 모두 앞에서 똑 부러지게 해명을 좀 해! 그게 그렇게 어려워? -……내가 말한다고 믿어줄 사람이 있나? 너조차도 그럴 마음이 없잖아. 그렇게 말하는 유리 미그일의 눈에는 힘이 없었다. -질색이야! 자신은 셀린 가문의 가주 자리까지 던지고 왔는데. 이딴 남자를 선택한 자신의 안목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거기에 자신까지 싸잡혀서 평판에도 훼손이 가는 게 두려웠다. 결국 그에게 파혼을 강요했다. 그렇게 유리와의 관계가 파탄났다. 다만, 지금이라도 뒤늦게 가문으로 돌아가서 셀린가를 이끈다고 아버지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결국 크리스티나는 새로운 남자를 찾아 약혼했다. 이번엔 고집불통 유리 같은 자가 아니라, 곧 죽을 게 뻔한 병약한 남자를. 그의 권력과 가문의 힘을 모두 얻기 위해. 하지만. ‘왜 이제 와서 나타난 거지?’ 그녀가 이를 빠득 갈았다. ‘왜 내게 이런 기분을……!’ 바로 그때. 쓰윽- 청소를 하던 유리 미그일과 마주치고 말았다. 바닥을 닦던 그가 고개를 들어 크리스티나를 바라보았다. 크리스티나는 자신이 너무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못 박힌 듯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끄러웠지만, 어떻게 생각한다면 차라리 잘됐다. 뭐라도 해명을 듣고 싶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유리 미그일을 바라보았고. “…….” 유리는 그저 지나가는 선원을 본 것처럼 다시 밀대로 바닥을 닦으며 나아갔다. 그녀의 가슴에 울컥하는 응어리가 솟구쳤다. “뭐라 말이라도 해보지?” 그녀가 소리쳤다. “거의 5년 만이야! 나한테 아무런 할 말 없어? 정말로?” “…….” 유리가 무감정한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답했다. “끝난 사이잖아. 평소대로 해.” 유리는 다시 바닥을 닦으며 지나갔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빠지려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몸을 기댔다. ‘유리 미그이이이일!’ 그녀가 알 수 없는 당혹감과 분노로 벌게져 있었지만. ‘안 들켰다.’ 유리로 변신한 시몬은 안도하며 지나갔다.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그녀와 거리를 둬야겠다고 다짐했다. * * * 그리고 그날 밤. 부제독 아그라가 신입 함장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오늘은 실전 훈련을 하겠다! 갑작스러운 실전 선언. 본선에서 5척의 작은 배가 준비된 채 기다리고 있었고, 신입 함장들은 두 명이 짝을 지어 한 배에 탑승한 채 망망대해를 노 저어 가야 했다. 이번에 할 실전 훈련은 심해 몬스터 사냥. 10명의 함장들이 열심히 노를 저으며 새까만 밤바다를 나아갔다. 본선에서 기다리고 있는 부제독 아그라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해줄 말은 하나다. 죽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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