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52화 <3학년 1학기 단체시험 : 취업 평가> 마나 스크린에 당당히 떠올라 있는 이 글자를 보는 순간 학생들은 불안과 초조함에 휩싸였다. 제인은 긴 속눈썹을 늘어뜨린 채 차분히 서류를 펼쳐 들고는 말했다. “다들 담당교수님들과 진로 면담은 잘했겠죠?” 아아- 곳곳에서 당했다는 듯한 절규와 아쉬운 음성이 이어졌다. ‘키젠 놈들!’ ‘또 망했어!’ 하고 분노를 터뜨리는 학생도 있었다. 스윽. 그러나 제인이 서류에서 눈을 슥 떼서 학생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자잘한 반항은 바로 제압되었다. “이번 단체시험의 평가 기준은 ‘취업’입니다.” 그녀가 손에 든 서류 뭉치를 테이블에 탁탁 쳐서 정리하고는 말을 이었다. “제가 직접 학생들과 면담해 보기도 하고, 다른 교수님들의 이야기도 들어봤는데, 여러분은 미래에 대한 성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더군요. 수준 이하의 답을 하는 학생들까지 있어서 실망을 숨기기 어려웠습니다.” “학기 5,684호 실망 달성이요.” “딕 헤이워드.” 제인의 부름에, 시몬의 옆자리에서 장난을 치던 딕이 긴장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곳곳에서 자잘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메이린은 왜 민망함은 자신의 몫이냐며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본인의 진로에 대해 설명해 보세요.” “예, 옙!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네크로맨서 용품과 재료를 취급하는 대규모 상단을 차리고, 전시엔 네크로맨서들을 후방에서 돕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잘했습니다.” “예?” 당연히 혼날 줄 알았던 딕이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너무 놀랐는지 예-? 할 때 목소리가 삐끗하고 올라갔다. “물론 최후방에 틀어박혀 동기들이 고초를 겪건 말건 자기 돈벌이에 힘쓰고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겠다는 사적인 의도가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메이린의 ‘큭’ 하고 조용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본인의 비전이 들어가 있고,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으며, 구체적인 성찰이 포함된 청사진이었습니다. 모두 박수.” 짝짝짝짝. 대강당의 모든 학생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생전 이런 대규모 박수갈채를 받아본 적 없던 딕의 눈이 감격으로 차올랐다. “제인 교수님! 2년 반 만에 드디어 교수님께서 제 진심을 알아주신……!” “고작 이 정도의 진로 설계가 박수를 받을 만큼 다른 학생들의 진로는 형편없다는 이야기겠죠.” 바로 모두의 마음에 못을 박아버린 제인이 손짓으로 딕에게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딕이 퀭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고 학생회 멤버들은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써야 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본 내용으로 들어가죠.” 제인이 손에 든 서류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여러분은 남은 학기 기간 동안, 키젠 학생 신분을 숨기고 각 조직체에 자신의 힘으로 취업하여 활동해야 합니다.” 웅성 웅성! 곳곳에서 불안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기서 여러분이 가장 궁금한 건 ‘어디에’ 취업할 것인가겠죠. 물론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키젠에서는 여러분의 진로 면담 내용을 참고하여, 여러분이 취업할 조직체를 정해두었습니다. 채용 공고가 있든 없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당 조직에 입사해야 하며, 실패할 경우-” 제인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1학기 전체 과락 평가를 받고 퇴학당하게 될 겁니다.” 곳곳에서 암울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물론 이런 일에 적응했는지, ‘키젠답네’ 하고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학생들도 있었다. “퇴학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과락 기준부터 설명하죠. 기한 내 취업에 실패한 경우, 그리고 취업처에서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어 해고당하는 경우입니다.” 제인이 한 손으로 칠판에 글씨를 썼다. <취업 실패> <해고> 그녀가 딱 하고 분필로 방점을 찍은 뒤 학생들을 응시했다. “이 정도도 못 해내서 떨어지는 학생은 우리 키젠에 없기를 바랍니다. 그럼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을 설명하겠습니다. 평가 기준의 첫 번째는 입사 후 해당 조직 내에 거대한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 분명히 말하지만 사소한 변화는 평가 대상이 아닙니다. 조직체의 ‘틀’을 바꿀 정도여야 합니다.” 틀을 바꿀 정도의 변화. 시몬은 그 말을 입 모양으로 중얼거리며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입사 전 해당 취업처가 내던 성과의 두 배에 달하는 성과를 낼 것. 두 가지 중 하나는 반드시 해내야 합니다.” 와- 곳곳에서 힘겨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취업도 힘든데 조직에 거대한 변화나 성과를 내라고?” “학기 말까지 한두 달밖에 없지 않나? 현실적으로 힘들어 보이는데.” 딕이 팔로 뒷머리를 받치며 낄낄댔다. “이거, 진로 대충 적어낸 사람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네!” 그 말을 들은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런 거예요? 딕.” “설명해 줄게. 예를 들면 본인 아버지를 따라 대장간을 물려받겠다는 꿈을 쓴 사람이 있다고 쳐봐.” 딕이 두 손을 펼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평소에 가업 하던 거 하면서, 그동안 인맥으로 모은 네크로맨서 손님을 엄청 유치하면 되는 거 아냐? 동기나 후배들한테도 한번 들르라고 해서 평소보다 매출 두 배 세 배로 높이면 되는 거잖아.” 시몬 일행은 물론, 딕의 이야기를 훔쳐 듣던 뒷자리의 학생들도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천잰데?’ 하는 표정이었다. “……잠깐만, 나는 진로 희망을 상아탑이라고 썼는데.” 메이린이 얼어붙은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이미 상아탑 소속인데 어떻게 또 상아탑에 취업하란 거지?” “그러고 보니! 저희 학과 학생들은 아버지의 영지를 물려받겠다고 쓴 분들도 많았어요!” “그럼 가족 취업? 엄청 쉽네! 아무리 왜곡 아티팩트를 써도 엄마 아빠한테는 들킬 것 같긴 하지만!” 곳곳에 그런 이야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다들 비로소 안심하거나 안도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야, 야, 이번 시험 할 만하다!” “장래 희망으로 키젠 본부, 키젠 교수 이런 거 쓴 애들이 진짜 지옥이네.” “어쩌겠어? 본인 면담 내용을 바탕으로 취업처를 정했다는데 할 말 없지. 그러니까 꿈은 현실적으로 가져야 해!” 여러 기쁨과 절망이 교차하고 있는 가운데, 이야기를 듣던 시몬도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저 말대로라면…….’ 시몬의 경우, 자신이 군단장으로 있는 7군단에 자신이 취업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건 뭔가 이상했다. 시몬이 고개를 들어 제인을 바라보았다. “다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요.” 제인의 싸늘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저는 단 한마디도 여러분이 희망하는 취업처로 들어가게 될 거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만.” 그 말에, 다시 한번 지독한 정적이 대강당에 내려앉았다. 제인의 말이 이어졌다. “어디로 취업할지 궁금하다면 곧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겁니다.” 제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각 학과의 수석조교들이 커다란 임무서 뭉치를 들고 나타났다. 이내 그들이 테이블과 의자를 끌고 와 앉고, 그 위에 임무서를 올려둔 채 대기했다. “그 외에 다른 질문 있나요?” 처억! 그때 거의 반사적으로 번쩍 들어 올려지는 손이 있었다. 제인은 이제는 그쪽을 보지도 않고 검지를 세웠다. “제이미 빅토리아입니닷!” 통칭 ‘반장’이란 별명을 가진 제이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눈동자는 새로운 과제에 대한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교수님께서 키젠 학생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취업과 성과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키젠 학생 신분이라는 사실을 사측에 들키면 퇴학이나 과락 같은 리스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모두가 아주 좋은 질문이라는 듯 제인을 바라보았다. 이번 평가는 기존의 임무와는 궤가 완전히 다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다른 점은 ‘키젠 학생’ 신분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만약 키젠 학생 신분임을 알릴 수 있다면 취업의 난이도는 쉬워지고, 취업처 내에서 발언권도 강해진다. 그야 키젠 3학년은 네프티스의 그늘 아래 있고 비상 지휘권과 수사권까지 갖추고 있으니까. 곧바로 물음에 대한 제인의 답이 이어졌다. “퇴학은 아니지만, 임무의 난이도가 쉬워지는 만큼 리스크도 있습니다. 키젠 신분을 취업처의 책임자가 알게 될 경우 성과 기준이 두 배로 높아집니다. 즉-” 그녀가 분필을 들고 필기한 부분에 동그라미를 친 뒤 ‘X2’를 그렸다. “기존에는 조직 내 거대한 변화나 거대한 성과. 두 가지 중 하나를 성공시키면 합격이었습니다만, 정체를 들키게 되면 두 가지 모두를 해내야 합격입니다.” “와……!” 이거야말로 극악이다. 많은 사람들이 속해 있는 조직은 기본적으로 체질 변화에 저항감이 있다. 변화와 성과 두 가지를 모두 짧은 시간 내에 이뤄내야 하는 건 극도로 어려웠다. “너무 막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제인이 입을 열었다. “취업은 키젠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할 겁니다. 가짜 신분도 이미 섭외 완료되었고, 학생 한 명당 베테랑 스카우터 한 명을 붙여줄 예정이며 관련 예산도 있습니다. 조직의 장에 대한 정보 열람, 자주 가는 장소 등 정보도 충분히 제공할 겁니다.” 개인마다 스카우터를 붙여준다는 말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단, 지원하는 건 취업까지. 그 후에는 여러분의 힘으로 성과와 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더 질문 있나요?” 주위가 조용해졌다.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담당 교수님이나 곧 만나게 될 스카우터님께 여쭤보십시오. 그럼, 학과별로 수석조교들이 호명하는 순서대로 나와서 임무서를 받아 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임무서에는 여러분이 들어가야 할 취업처, 채용 일정, 사용할 가짜 신분, 담당 스카우터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각 취업처에 대한 정보는 본인만 알고 있길 바랍니다.” 제인이 말을 마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곱 명의 수석조교들이 확성 수정구를 들고 입을 열었다. “사령학과 엘리사 셀린 학생!” “소환학과 에슈 아르젤 학생!” “칠흑역학과 라헤임 노스폴드 학생!” 학생들이 한 명 한 명 불려가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 폭발적인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다들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으으, 불길해. 뭔가 불안해!” 메이린이 제 어깨를 팔로 감싼 채 다리를 콩콩 떨었다. 딕은 태평하게 낄낄거리며 두 팔을 늘어뜨렸다. “뭐 별거 있겠어? 아무리 어려워도 취업은 가능한 곳으로 정해뒀겠지.” -맹독학과 딕 헤이워드 학생! 수석조교의 외침에 딕이 ‘예입!’ 하고 외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갔다 온다!” “딕! 파이팅이에요!” “잘하고 와.” 한편 여러 학생들의 시선은 단 한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3학년 전체에서 제일 먼저 임무서를 받은 유령함대의 엘리사 셀린. 그녀는 트윈테일 머리를 휘날리며 쏜살같이 뛰어나가 수석조교의 임무서를 수령했다. 이내 극도로 긴장한 표정으로 손에 든 임무서를 가슴에 붙이고 혼잣말을 중얼중얼거리다가, 혀로 바짝 마른 입술을 적시며 봉투를 펼쳤다. 그러다 전교생의 시선이 집중된 걸 뒤늦게 깨닫고 민망한지 외쳤다. “뭐, 뭘 봐 이것들아!” 동기들이 그제야 샥샥 고개를 돌렸다. 엘리사는 바로 동기들을 등지고 뒤돌아선 채 조심스레 임무서에 나와 있는 취업처를 확인했고. 털썩! 그대로 다리에 힘이 빠진 듯,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버렸다. “뭐야! 어디가 나왔길래 저래?” “희망하는 곳이 아닌가 본데?” “불안하다 불안해.” 거기에 임무서를 확인한 다른 학생들도 엘리사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천장을 보고 한숨을 푹 쉬거나, 얼굴빛이 새까맣게 변한 채 걸어 나오는 학생도 있었다. “뭐야!” “말은 못 해도 힌트만 좀 줘!” 주위에서 아우성쳤지만, 결과를 확인한 학생들 모두 충격에 빠져서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우하하하!” 그리고 분위기 파악을 못 한 딕이 신나는 걸음걸이로 뛰어가 임무서를 수령했다. 이내 시몬의 옆자리에 돌아와 내용을 확인했고. “…….” 그대로 넋을 놓은 채 온몸이 슬라임처럼 축 늘어졌다. 시몬은 그가 떨어뜨린 임무서에서 우연치 않게 내용을 보고 말았다. <중립지대 최전선 경계 장교> <가짜 신분 : 조란디 카르타> <담당 스카우터 : 에린딜라 실브레이> 시몬은 그제야 난감한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로 희망과는 정반대네.’ 안전한 도시에서 유통과 보급 일을 하려던 딕이 최전방 전선, 그것도 가장 위험하다는 중립지대 전선에서 장교로 싸우게 됐다. 진로 면담에서 적혔던 희망과 정반대의 취업처. 여기서 성과를 내야 하는 건 사실상 전쟁에서 승리하고 전선을 밀어내는 것밖에 없는데 가히 말도 안 되는 난이도였다. 이어지는 학생들도 모두 표정이 좋지 않았다. 시몬은 귀를 쫑긋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아틀리에 가문의 에기르 알지? 진로를 아틀리에 대영주라고 적었다가 지금 영지에 기생하는 범죄 집단에 들어가게 됐어!” “와, 성과를 내려면 자기 손으로 영지를 무너뜨려야 하는 거 아냐?” “엘리사는 해적이던데? 아버지 휘하 해군에 진압당하면 어떻게 되냐?” 웅성 웅성 웅성! 모두가 아찔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뒤이어 학생들이 차례차례 임무서를 받았다. 메이린의 경우 진로 희망은 상아탑의 상아탑주였다. 그러나 받게 된 건 상아탑과 상극 중의 상극, 마정석을 놓고 다투는 ‘흑철 성채’였다. 카미바레즈는 우르슬라의 뱀파이어 영역권에 근무하고 싶다고 썼다가, 극동 지역의 퇴마 가문에 들어가게 되었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 ‘내 차례!’ 그래도 미리 알게 됐으니 마음이 괜찮았다. 시몬은 임무서를 받은 뒤, 바로 그것을 펼쳐 내용을 확인했다. ‘역시.’ 그것은 시몬이 예상했던 대로였다. <취업처 : 3군단 제독 직속 작전부> 시몬은 삐딱한 미소를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현장이 아니라 3군단의 작전부라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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