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51화 아론은 키젠에서의 진로 면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매해 당혹스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3학년 교수직을 맡으면 가장 골치 아픈 게 학생들의 진로 문제인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가진 마인드는 이런 식이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말해봐라. -제 진로는 키젠 졸업입니다! 이걸 대답이라고 하는 학생들이 반쯤 된다. 그러면 아론은 이마를 잠시 가볍게 감싸 쥐었다가 말을 꺼낸다. -학교를 졸업하는 건 진로가 아니다. -그, 그런가요? -졸업 이후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 이야기해 보란 거다. 이 말을 이해하고 제대로 면담에 임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역으로 되묻는 학생들도 있다. -지금 제 지상과제는 키젠 졸업뿐입니다! 총원이 280명 가까이 되는데 100명도 졸업 못 하잖아요? 다른 미래는 눈에 안 들어와요! -그냥 키젠만 졸업하면 진로고 뭐고 필요 없이 인생 끝나는 거 아니에요? 어디든 들어갈 수 있지 않나요? 아론은 학생들을 탓하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현재의 교육체계는 어딘가 비틀려 있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느낄 뿐이다. 키젠은 아이들이 입학하는 그 순간부터 살벌한 생존경쟁을 부추기며 경쟁에 미친 자들만 살아남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3학년이 된 지금조차도 살아남느라 애를 쓰는 학생들에게 진로 탐색은 조금 먼 이야기일 수도 있다. 물론 3학년 2학기만 되면 누구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정신을 바짝 차리겠지만,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니까. 1차 진로 면담에서는 타이르듯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그래. 설령 그 말이 맞다고 해도 키젠을 졸업한 뒤에 뭘 할 건지는 생각해 봐야 하지 않나? 만약 키젠을 졸업하지 못하고 떨어진 뒤에는 뭘 할 거지? 그 경우에 대한 대책은? 그제야 학생들은 하나둘 미래를 생각해 보더니 비로소 다양한 이야기를 꺼낸다. -네크로맨서 특수요원이 되고 싶어요. BCS나 벤젼스, 레드후드에 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구요! -왕궁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4대 왕궁 어디든 불러주는 곳만 있다면요! -펜타모니엄에 취업해서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역시 이런 진로에 대한 부분은 귀족 출신보다 평민 아이들이 똑 부러지게 답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성찰과 객관화가 확실히 되어 있고, 꿈과 돈을 적절하게 고려할 줄 안다. 귀족 가문 아이들의 경우에는 조금 난감하다. -그게, 그, 엄마 아빠한테 물어봐야 하는데요……. -그냥 저희 아버지 영지나 물려받을 것 같습니다. -사교계에 진출해서 키젠 출신의 잘생긴 남편감을 얻을 거예요! 가문에 강하게 엮여 있어, 본인이 가진 능력에 비해 귀족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학생들. -키젠 본부 진출이요! -교수님처럼 키젠 교수가 되고 싶어요! 이 경우는 평소에 진로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학생들에게서 나오는 일종의 ‘정답’이다. 돈과 명예를 둘 다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 뭘까 생각하다가 나온 답. 공통점은 머리가 꽃밭이라는 점이다. 그 밖에도 정신 나간 답변들이 많다. -시몬 폴렌티아를 꺾는 게 제 진로이자 앞으로의 미래입니다. -……생존. 세 명뿐인 직속제자 중에 두 명은 하나같이 나사가 빠져 있고. -트레져헌터요! -제 몸을 키메라로 제조한 뒤에 반인류 클랜에 가입하면 재밌지 않을까요? -식인 식물 박물관 사업이요! 이상한 녀석들도 많다. “후우우.” ‘제 꿈은 드래곤 슬레이어입니다’라고 말하는 학생을 밖으로 내보낸 아론이 콧잔등을 움켜쥔 채 한숨을 푸우욱 쉬었다. 머리가 아프다. 실력만 뛰어날 뿐이지, 이렇게 자아성찰이 덜 된 아이들을 사회에 배출해야 한다니 교육자로서 죄를 짓는 것 같기도 하다. “아론 교수님.” 빼꼼. 문밖에서 얼굴을 내민 수석조교가 안쓰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음 학생 들여보내도 될까요?” “……그래, 부탁하지.” “그래도 다음 학생은 조금 힘이 나실 거예요!” “?” 잠시 후. 달칵. 말끔하게 다려 입은 교복이 인상적인,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이 깊게 고개를 숙이며 면담실로 들어왔다. 아론도 비로소 굽어진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시몬 폴렌티아.’ 근처에 놓아둔 컵으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인 아론이 말했다. “앉아라.” “네.” 시몬이 자리에 앉았고, 아론은 시몬의 프로필과 성과가 적힌 서류들을 쭉쭉 훑어보았다. 지금까지 본 학생들 중에 서류량이 단연 압도적으로 많았다. “앞으로의 진로와 장래에 대해 말해봐라.” 시몬은 살짝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암흑연합의 군단장으로서…… 앞으로도 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타악. 한 손으로 서류를 든 채 읽어 내려가던 아론이 부스스한 더벅머리를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군단장은 엄밀히 말해 ‘직업’이 아니다, 시몬. 특수한 ‘직위’나 ‘직무’에 가깝지.” “아…….” “우리 학교에 군단학 수업을 맡고 계신 진 아르스칼트 님을 예를 들자면, 그분의 직업은 제2군단장이 아니다. ‘칼로스 왕국 북부의 관리자’이자, ‘빌케노스의 대영주’다. 최근에는 ‘키젠 임시 교수’도 하나 추가됐군.”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팟 하고 이해가 되었다. “너도 슬슬 소속을 생각해 둬야 할 거다.” 아론이 손에 든 서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볼드윈 왕국 출신이라고 했지? 군단장급 네크로맨서라면 볼드윈 왕국으로부터 막대한 봉급과 봉토를 받고 일할 수 있을 거다.” “…….” “그 밖에도 현재 네 7군단의 영역인 ‘프로스트 필드’와 ‘데스랜드’, 그리고 ‘비명의 정글’ 일부를 차지한 점을 고려했을 때 드레스덴 왕국이나 칼로스 왕국과 손을 잡는 것도 괜찮겠지.” 시몬은 뭔가 썩 마음에 와닿지 않는지 눈을 감았다가 떴다. “활동하려면 꼭 소속이 필요한 건가요?” “그렇다.” 쓰윽. 아론이 한 서류를 펼쳐서 시몬에게 내밀었다. “비교적 최근 임무였던 ‘리버론’ 사태를 기억하나?” “아, 네.” 방구석 본 드래곤 미르미즈를 만들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때 여러 드래곤들을 만나고, 결사의 계획을 막아냈다. 인간과 적대하는 드래곤의 문화 때문에 골치를 썩이기도 했다. “만약 당시의 네가 ‘키젠 학생’이라는 소속이 없었을 경우를 상정해 본다면.” 촤르륵! 아론이 서류 뒤편을 펼쳤다. “전술지휘권 침해, 영지 자주권 침해, 왕실 영역 침범죄, 영주 모욕죄, 제15조 드래곤 관련 법률 위반 등등 64건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시몬은 바로 아론이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캐치했다. “이 모든 걸 막아준 게 제 소속인 키젠이군요.” “그래.” 아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꼭 키젠 본부 소속이 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학생 시절에 비하면 키젠 본부의 제약도 상당히 많은 편이니까. 키젠을 혐오하거나 반대하는 자들도 많으니, 어떻게 보면 지금 키젠 학생 시절이 가장 자유로울 때지.” “왜 그렇게 된 거죠?” “암흑연합 대법률이 제대로 정해지기 전에 네프티스 님이 직접 집어넣은 법률도 있고, ‘학생들이 뭘 알겠어’ 하는 어른들의 용인 가능한 시선도 있지. 성인이 된 이후에는 네 움직임과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가 부여될 거다.” 그렇게 된다면 엄청 귀찮은 일이었다. 암흑연합이 네 개 왕국과 무수한 조직체들이 합쳐진 비정상적인 동맹 체제라 법률이 복잡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러니 소속을 가지는 건, 너에 대한 간섭을 막아줄 방패를 만드는 거다. 비교적 운신의 폭과 활동 범위도 넓어지지. 금전적으로 유리한 점도 있고.” 아론이 등을 기울였다. “네 생각은 어떻지?” “……저는.” “희망 사항일 뿐이라도 좋다. 자유롭게 말해봐라.” 소속을 가져야 한다고 아론은 말하지만, 시몬은 뭔가 탐탁지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희망 사항일 뿐이라면, 저는 제 군단을 브랜드화해서 누구에게도 참견받지 않는 확고한 신세력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예를 들자면-” 시몬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제1군단처럼요.” 아론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네 입에서 그 말이 나올 줄은 몰랐군. 그래, 1군단이라는 예시는 있지.” “하지만 저는 1군단장과는 다릅니다. 영토 안에 틀어박히지도 않을 테고, 대륙의 문제에 방관하지도 않을 겁니다.” “…….” 아론이 쓱쓱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매만졌다. “희망 사항일 뿐이라고 해도 좋다고 말한 건 나니까. 그래, 알겠다. 나가봐라.”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시몬이 깊게 고개를 숙인 뒤 나갔다. 아론은 쓱쓱 깃펜으로 면담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중앙에 큰 글씨로 썼다. <시몬 폴렌티아 희망 : 완전 독립 군단> * * * 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담당 교수들의 진로 면담이 끝나고, 키젠 캠퍼스는 들썩이는 분위기로 변했다. -야! 야! 넌 뭐라고 답했어? -앞으로도 평생 로크섬에 남고 싶어서 키젠 교수 되고 싶다고 했는데. -미친놈이신가. -이제 진짜 우리도 장래를 고민하긴 해야지. 여전히 학생들에게 있어 졸업과 직결된 학업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좀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긴 해야지 않겠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거기에 임무를 갔던 학생들이 속속 돌아오고, 학교에서 학생들의 새 임무를 반려하고 있다는 정보가 떠돌며 뭔가 터질 거라는 조짐이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 터질 거라는 게 뭔지는 분명했다. 바로 아론을 비롯한 담당교수들이 공지했던, 3학년 전체가 치르는 ‘단체시험’이었다. 그렇게 학생들이 모두 임무에서 복귀한 뒤, 3학년 총괄 교수이기도 한 제인이 대강당에 3학년 전체를 불러 모았다. 오랜만에 오전 조례. 아침 일찍 모든 학생들이 각 기숙사에서 나와 대강당으로 향했다. 시몬과 학생회 멤버들도 중간에 모여서 같이 걸어갔다. “매 해마다 달라.” 딕이 기지개를 쭈욱 켜며 말을 이었다. “3학년 단체시험은 딱 정해진 게 없대. 근데 1학년 2학년 때랑은 성격이 다르다고 하더라.” “긴장돼요!” 카미바레즈가 두 손을 모은 채 날개를 파닥거렸다. 메이린이 그녀를 안심시키고 있는데, 딕이 쓱 하고 검지와 중지로 서류봉투를 시몬에게 넘겼다. “아, 그리고 이거 시몬이 부탁한 정보.” “땡큐.” “뭔데 뭔데?” “저도 궁금해요!”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시몬이 봉투를 붙잡고 말했다. “지금 대륙의 바다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딕한테 알아봐 달라고 했거든.” “난리도 아니더라.” 딕이 낄낄 웃으며 뒷머리를 받쳤다. “왜 이렇게 정보가 없나 싶었는데 정보를 차단한 거였더라고. 나도 시간 나면 바로 가볼 생각이야.” 시몬은 빨리 열어보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렸지만, 이제 곧 조례가 시작한다. 모두 함께 대강당 앞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시몬 안녕!” “회장! 오랜만이다!” 몇몇 눈에 익은 동기들이 인사해왔다. 시몬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얼마 안 가 여러 조교들과 함께 제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 흠.” 오늘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는 정장을 차려입고, 절제된 느낌의 단발을 정돈한 그녀가 손에 든 확성 수정구의 상태를 체크하고는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3학년 여러분. 진로 면담은 잘 받았겠죠?” “네! 교수님!” “그럼 지금부터-” 그녀가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3학년 단체시험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제인이 뒤를 가리켰다. 연단 뒤편에 있는 마나 스크린에 새로운 글자가 떠올랐고. 아아악-! 그것을 본 학생들이 모두 당했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고,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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