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50화 시몬은 피어의 유적에 도착했다. 유적의 지하층 가장 깊은 곳에 알라제의 연구실이 있었고, 그곳에 도착하니 뭔가 거대한 게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우와아아!”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토해냈다. 동굴 한복판에 무수한 생체관들이 가득 이어져 있었고, 그 중심에 거대한 뱀 형태의 언데드가 조립되는 중이었다. 주위에는 연구복을 차려입은 알라제의 분신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파츠를 끼워 맞추고 있었다. 몸 내부가 터져 나갔을 텐데 여기까지 복원한 게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비늘 곳곳이 은빛의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놀랍게도 화이트랜드에서 자주 봤던 코랄의 보랏빛이 번쩍이며 혈관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코랄을 기반으로 만든 거야?” [정답.] 알라제가 공처럼 통통 뛰며 설명했다. [별의 성녀. 내부를 너무 많이 파괴했음. 칠흑 코어의 효율 부족, 추가 동력원 필요.] 잠시 머릿속에서 레테가 미안해하는 듯한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화이트랜드와 옐로우랜드의 코랄 자원을 기반으로 구축. 놀라운 동기화 비율.] 절그렁! 절그렁! 금속 비늘이 마치 악기처럼 촤륵거리며 펼쳐졌다 내려오는데,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황홀한 소리와 외견이었다. ‘금속 촉수인 오버로드와 비슷한 느낌의 메탈 언데드가 나왔네.’ 시몬이 옆으로 걸어가며 구경했고, 알라제가 통통 튀어다니며 설명을 계속했다. [주동력은 칠흑. 서브 동력이 코랄. 화이트랜드로부터 매년 안정적인 코랄 물량 확보 필요.] “안 그래도 네프티스 님께 부탁해서 군단이 코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요청해 뒀어. 나는 그런 것보다…….” 시몬이 한쪽에서 걸음을 멈췄다. “코어를 한번 보고 싶은데.” 꾸르륵! 그 말에 살덩어리 형태의 알라제가 불쑥 일어나더니, 고블린 모습의 시몬으로 변했다. 손이 생긴 알라제가 손가락을 딱 튕기자 내부의 금속 비늘들이 옆으로 촤라락 밀려나며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그 중앙에 칠흑 코어가 일렁이고 있었다. “다행이다.” 시몬이 가슴에 손을 얹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이건 언데드로 만들기 힘들 만큼 크게 훼손된 시체였다. 그나마 알라제의 생체 기술에 더해, 화이트랜드의 발전된 동력기관까지 합쳐져 여기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와아아! 삐융! 마침 다른 층에 있던 에이션트 언데드들도 준완성 단계인 몰굴라를 구경하러 왔다. 신이 난 프린스가 손에 든 공까지 내팽개친 채 뛰어나왔고, 그 머리 위에 올라가 있던 어린 라미아도 폴짝거리며 기뻐했다. [정말 멋지네요! 축하드리와요 군단장님!] “오우와.” 그 뒤로는 거미부대의 대장 에르제베트와, 이번에 새로운 육체를 손에 넣은 미라부대의 대장 헤르세바도 걸어오고 있었다. [이 비늘의 조형미에는 제 식견이 들어갔습니다.] 백귀부대의 대장 좀비집사가 비늘을 쓸면서 삐뚤어진 부분은 없는지 살폈다. 그 옆에 연인처럼 있는 마코가 먼지털이로 비늘에 조금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다들 만족스러운 얼굴로 군단의 새로운 동료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몰굴라 준완성 단계. 완성 전에 두 가지 선택지 있음. 군단장의 결단 필요.] 알라제의 말에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두 가지 선택지라니?” 알라제의 말에 따르면, 몰굴라는 에이션트 언데드로서의 사념과 의식은 완전히 상실됐다. 따라서 다른 에이션트 언데드나 미즈미르처럼 개별적인 이성을 가지고 움직이지는 못한다. 그러니 누군가가 직접 사념으로 움직여야 했다. [몰굴라를 소환형으로 할 것인가 군단형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 몰굴라를 소환형 언데드로 사용하면, 오버로드처럼 시몬이 직접 조종하는 언데드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 경우에는 거의 시몬의 장비처럼 사용될 예정이었다. 반면에 몰굴라를 군단형 언데드로 구축할 경우, 군단의 전력으로 편입되어 활용성이 확대된다. [사념을 가진 네크로맨서나 언데드가 직접 몰굴라를 조종해야 할 필요성.]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시몬이 입맛을 다시며 팔짱을 꼈다. “사실 나는 지금 가진 수단이 많으니까, 다른 에이션트 언데드들에게 줘서 자유롭게 운용하도록 하는 편이 군단의 전체적인 전력에 유리할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대장들이 갑자기 눈을 빛내며 달려들었다. [나 줘! 나! 나나나! 나나! 내가 조종할 거야아!] 프린스가 떼를 썼다. [군단장니임- 소녀에게 주신다면 기존의 거미부대에 부족한 화력을 보충하는 아주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사와요.] 에르제베트가 설탕처럼 끈적한 목소리로 말하며 시몬의 팔뚝에 달라붙었다. “꼬맹아! 이 뱀은 당연히 미라부대 거지? 그치 그치? 황금도시랑 미라를 꺼내기 전에 즉시전력이 필요해!” 헤르세바도 욕심이 생기는지 시몬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다들 볼품없이 무슨 짓입니까. 떨어지십시오.] [우리 백귀 부대에도 이동 수단이 필요해요!] 좀비집사와 마코가 거들었다. 다들 난리법석이라 시몬이 쩔쩔매고 있는 가운데. -삐유웅! 갑자기 들리는 커다란 외침에 모두의 고개가 들어갔다. -삐융! 삐융! 어느새 몰굴라의 뼈 위에서 장난을 치던 어린 라미아가 대굴대굴 굴러떨어져 내부로 들어갔다. 모두가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위험해! 라미아!” -삐융? 시몬이 다가가려 했지만, 라미아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근처의 코어에 자신의 몸을 접촉했다. 쿠구구구구구구! 그러자 몰굴라의 뼈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이 번쩍하고 라미아의 눈동자 색처럼 변하더니, 그것의 입이 쩌어억 벌어지며 괴성을 내질렀다. [깨유우우우우웅!] 코랄의 보랏빛이 유적 전체를 휘감듯 번쩍였다. 모두가 그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놀라운 적합성 수치.] 알라제가 마법진을 펼치며 내용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데드나가와 네크로바이퍼의 유전자 일치율 높음. 자유자재로 조종 가능.] 촤르르르르르르! 몰굴라가 몸부림치며 몸에 연결된 생체관을 떼어내더니 동굴을 미친 듯이 활보하기 시작했다. 저 거대한 몸체로 장애물이 많은 동굴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모습에 시몬은 감탄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깨융!] 다소 울음소리는 귀여워졌지만 말이다. 그러다 너무 격렬한 움직임으로 라미아가 퐁 하고 튕겨 나갔다. 시몬이 얼른 뛰어가 라미아를 품에 안아 받아냈고, 조종자를 잃은 몰굴라의 눈에 빛이 꺼지더니 바닥에 축 늘어졌다. “대단해 라미아!” 시몬이 탄성을 터뜨렸다. 라미아는 자신이 뭘 한지 모르겠다는 듯 ‘삐융?’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했다. [크흐흐! 결정됐군!] 저벅 저벅! 가장 늦게 들어온 피어가 파멸의 대검을 어깨에 짊어진 채 나타났다. [그렇지 않아도 데드나가 부대의 전력이 애매하지 않았나 소년! 몰굴라는 라미아가 가지는 게 맞을 것 같다만!]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피어.” 라미아는 아직 한 부대의 ‘대장’이라 부르기에는, 그 전력과 데드나가의 수가 부족했다. 하지만 몰굴라가 합류한다면 확실히 7군단의 한 축으로 활약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가능성. ‘7군단의 해상 전력을 증강시킬 기회야.’ 하늘이야 어떻게든 아케뮤스의 유산인 스컬윙 부대와 베히모스 전함으로 커버하고 있다지만, 바다 쪽은 전력이 크게 떨어지는 게 현실이었다. 앞으로 바다에서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긴 한데, 지금의 7군단은 해상전에 취약했다. 사실 대부분의 언데드가 소금물인 바다에 약한 상황에서, 라미아의 성장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알라제.”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몰굴라는 군단화해서 사용하는 걸로 결정할게. 그리고 바다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헤엄 기능을 추가할 수 있을까?” [이미 늪에서 헤엄을 치는 기능이 유전자에 존재.] 알라제가 말했다. [변형하면 바다에서도 활용 가능. 하지만 금속 육체와 코랄 동력인 만큼 소금물에 저항력을 가지게 개조하려면 시간이 필요.] “좋아, 시간은 얼마든지 줄 테니 부탁해.” [그리고 늪의 왕 몰굴라라는 이름, 이제는 무의미. 완전히 다른 언데드. 새로운 작명 필요.] “한번 생각해 볼게.” 시몬은 손뼉을 짝 치며 대장들을 돌아보았다. “몰굴라는 라미아의 나가부대에 투입할 거야. 이의 없지?” [오호호! 그게 군단장님의 뜻이라면요!] [어쩔 수 없군요. 라미아에게 잘 어울릴 것 같고 이번만큼은 양보하겠습니다.] 다른 언데드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라미아도 기쁜 듯 폴짝 뛰어서 시몬의 뺨에 찰싹 달라붙더니 제 뺨을 비비며 ‘삐유웅!’ 하고 아양을 떨어댔다. ‘기대된다.’ 라미아를 쓸어주며, 시몬은 금속 뱀의 모습을 응시했다. ‘완성작의 모습이!’ * * *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전공과목인 소환학 수업이 시작됐다. “안녀어엉! 조장!” “어, 어서 와 시몬.” 시몬은 소환학과에서 같은 조로 자주 활동했던 에슈 아르젤과 토토 아모리와도 재회했다.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인사를 마친 뒤, 에슈가 참았던 수다를 토해냈다. “조장! 룬 리그 너무너무 잘 봤어! 성녀들이랑 싸웠을 때 기분이 어땠어? 구원자는 어떻게 잡았어? 신의 손 모제가 폐막식 마지막에 무슨 이야기 한 거야? 혹시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거 없어?” 시몬이 쓰게 웃었다. “한 가지씩 질문해 주면 안 될까? 에슈.” “……무,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시몬.” 토토는 오랜만에 본 시몬이 어색한 건지, 아니면 룸메이트였던 친구가 너무 높은 곳으로 가서 부담스러운 건지 주뼛주뼛 인사했다. 그러자 시몬이 활짝 웃으며 토토의 손을 잡아주었다. “고마워 토토! 잘 있었지? 얼굴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야.” 시몬이 살갑게 대해주자 토토도 금방 적응해서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세 사람은 정신없이 수다를 떨었다. “그러고 보니 로레인은?” 소환학과의 10조는 시몬, 에슈, 토토, 그리고 로레인으로 이루어진 4인이었다. 그런데 로레인이 보이지 않았다. 에슈가 어깨를 으쓱했다. “로레인 님은 합동 지휘부 경험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네프티스 님의 후계자 수업을 받는다는 것 같아. 며칠 보기 힘들지도 몰라.” “그래?” 시몬도 지휘관 로레인의 지휘가 대단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로레인의 활약 덕분에 모두가 무사히 화이트랜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까. 마지막 폐막식에 다나 성녀와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로레인 덕분이라고 했다. “오! 학생회장!” “어서 와! 룬 리그 잘 봤다!” 다른 동기들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헥토르가 총과대를 그만둔 뒤 임시 대리로 일하고 있는 피에르 버클러. 결사로부터 무사히 탈출한 이후에도, 여전히 멍하니 창밖의 새만 보고 있는 화이트. 다음 총과대가 유력한 피츠제럴드, 그 밖에 아주 친하진 않지만 기네비어나 첸드라 같은 모범생들까지. 시몬이 그들과 인사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교수님 들어오신다!” 한 학생의 외침에 모두가 빠르게 자리로 돌아갔다. 시몬도 교복 넥타이를 고치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자세를 가다듬었다. ‘전장에 오래 있었더니 이런 공기가 그리웠지.’ 저벅 저벅. 잠시 후 소환학 조교들이 모두 도열한 뒤, 늘 그렇듯 더벅머리에 까끌까끌한 수염, 늘어진 셔츠를 입은 아론이 퀭한 얼굴로 슬리퍼를 질질 끌며 모습을 드러냈다. “……좋은 아침이다.” 아론이 그렇게 말하며 학생들을 돌아보다가 저 옆에 앉은 시몬과 눈을 마주쳤다. 시몬이 얼른 눈인사했고, 아론도 고개를 까닥했다. 아론은 저 뒷자리에 헥토르와도 눈인사를 나눈 뒤 분필을 들어 올렸다. “기말고사가 폐지됐다고 방심하지 마라. 다시 상기시키지만, 매년 키젠의 졸업자는 100명 미만이다. 3학년이라고 마음 놓지 말고 정진할 수 있도록.” “네!” “그리고 학기가 끝나기 전에 3학년 전체가 참가하는 큰 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니 긴장하도록. 앞으로는 시간이 없을 테니 졸업 논문은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두는 게 현명할 거다.” 아론이 분필로 쓱쓱 ‘졸업 연구 이론’이라고 칠판에 적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후우. 한숨을 푹 쉰 아론이 표정에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더벅머리를 몇 차례 쓸어 올리다가 말을 이었다. “담당교수의 1차 진로 면담을 진행할 거다.” 진로 면담! 앞으로 학생들의 장래에 대한 이야기였다. 모든 학생들의 표정에 기대 반, 걱정 반의 눈빛이 떠올랐다. 3학년이라면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시몬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앞으로의 진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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