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49화 “중요한 건 거리예요.” 까아아아앙! 시몬은 홍펭과 검합을 나누며 실전 훈련을 진행했다. 홍펭은 대검의 사거리를 활용하여 어떻게 상대와의 거리를 조절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적의 다음 움직임을 예측하고, 한발 앞서 나의 움직임을 변화지키제요.” 타닥. 대검을 세운 홍펭이 앞으로 한 발짝 걸어 나왔다. 평소처럼 돌진하려던 시몬이 잠시 멈칫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과연.’ 오묘한 뭔가가 있다. “느껴지나요?” “네.” 불편했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게 불편하다. 최근 바힐과 함께 전이기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공간의 법칙에 대해 알게 된 뒤였기에 이런 일련의 그림이 더 자세히 보인다. ‘내가 앞으로 나가면 교수님이 먼저 공격 주도권을 가지는 거고-’ 시몬이 뒤로 두 걸음 물러나자 기다렸다는 듯 홍펭이 앞으로 나왔다. ‘반대로 가도 마찬가지.’ “역지 이해가 빠르네요 지몬! 거리는 적과의 우위를 결정짓는 가장 간결하고 쉬운 주단이에요!” 그녀가 거리를 유지한 채 대검을 휘둘러 왔다. 까앙! 깡! 까앙! 손잡이를 길게 잡고 대검을 휘둘러 대는 홍펭. 시몬은 공격을 받아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홍펭이 걸음을 조절하여 시몬의 동작을 사전 차단한다. “접근한다. 벤다. 이게 다가 아니에요. 어떤 위치에서 베는가. 얼마만큼 적에게 나아갈 것인가.” 채앵! 시몬이 홍펭의 검을 쳐내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저번 화이트랜드에서 에프넬의 수호학 교수 브로데릭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룬 리그 잘 봤네! 자네와 성녀님의 전투는 인상적이었지만, 내 경험에 따라 몇 가지 조언을 주고 싶은 게 있었지! 특히 상대와의 거리에 대한 부분인데! ‘고수들에게는 하나같이 보이는 거구나!’ 시몬이 들뜬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부족해! 아직도 배울 건 산더미 같이 많아!’ 까앙! 깡! 피어를 입게 되면 기본적으로 몸과 마음이 전투에 최적화되고, 호전적인 성향으로 바뀌는 부분이 있었다. 힘과 속도와 칠흑량, 간단히 말하면 체급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느낌으로 싸워왔다. 하지만 늘 그렇게 싸울 수는 없다. 앞으로는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와도 싸워야 할 터. 홍펭이나 브로데릭이 봤다면, 다른 적에게도 그 허점이 보이리라. 그러니 약점을 극복해야 했다. 시몬도 적극적으로 거리를 이용한 검술을 구사했다. 까앙! 깡! 시몬이 섣불리 접근하지 않고 홍펭의 검을 걷어내다가, 일순 앞으로 들이닥칠 것처럼 다리에 힘을 주었다. 거리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려던 홍펭이 뒤로 물러났으나 시몬은 동작을 캔슬하고 원거리 검기를 날려 그녀의 방어 동작을 이끌어낸 뒤, 측면으로 우회해 돌파했다. 채앵! 처음으로 제대로 검을 맞댄 자세가 되었다. “훌륭해요! 지몬!” 홍펭의 얼굴에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이 어렸다. 얼마나 기뻤는지 잠시 검을 맞댄 채로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다리를 들썩거리기도 했다. 저 옆에서 지켜보던 마투학 조교 브레드가 쩝 하고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렸다. 깡! 홍펭이 시몬의 검을 밀어내며 자세를 바꿨다. “그럼요! 그러면요! 이렇게! 제가 앞으로 다가가면?” 착! 시몬이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이렇게 대처합니다.” “그럼 이번엔 이렇게 자세를 낮추고 찌르기 자세로 나온다면?” 처억! 시몬이 대검을 멀리 고쳐잡고 물러나기 편하기 살짝 발뒤꿈치를 들었다. “좋아요! 그럼 이렇게! 이렇게 하면?” 샤샥. 샥. 홍펭이 자세를 바꾸고, 시몬이 그에 맞춰 자세를 변경한다. 휴식을 마친 뒤 시몬이 걱정됐던 메이린과 딕, 카미바레즈도 홍펭을 구경하러 왔다. 이미 몇몇 마투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샤샥! 샥! 샤샤샤샤샥! 두 사람이 빠르게 동작을 고치거나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검합이 이뤄지지 않는 동작. 홍펭이 옆으로 무게 중심을 기울이자 시몬이 움찔하며 뒤로 확 물러나기도 했고, 시몬이 우회하는 척 옆으로 한 발을 옮기자 그에 말린 홍펭이 당했다는 듯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물론 마투기에 큰 관심이 없는 메이린이 보기에는. “……저거 무슨 그림자밟기 놀이 같은 거야?” 그냥 제자리에서 샥샥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오오! 오우! 그런데 마투가 경지에 오른 학생들이나, 마투학 조교들은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고 있었다. 탄성을 터뜨리거나, 창의적인 움직임이라며 감탄하거나, 거리 조절의 신이라며 감격하는 학생도 있었다. “……??” 메이린의 표정이 해괴하게 일그러져갔다. 외눈박이 마을에서는 두 눈 달린 사람이 비정상인이라더니, 딱 그런 심정이었다. “뭔데. 뭔데! 누가 이기고 있는 건데!” 메이린이 설명을 요구하듯 주위를 둘러보았고, 마침 딕이 음음! 하고 웃으며 팔짱을 꼈다. “와우! 이건 놀라운걸.” “아 진짜아! 나도 설명해 줘!” “사실 나도 몰라. 그냥 환호하니까 같이 하는 거지.” “멍충아!” 메이린이 왁왁 화를 내는 가운데, 카미바레즈는 열심히 손뼉을 짝짝 치며 응원했다. “시몬 힘내요!” 그때 이 거리두기의 결판이 났다. 시몬이 일순 앞으로 쏘아지며 대검을 내려쳤고, 홍펭이 불안전하게 막느라 자리에 쓰러졌다.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잘했어요! 지몬!” “감사합니다 교수님!” 시몬이 헐레벌떡 달려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엄청 봐준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시몬도 애초에 거리로 이긴 게 아니라, 그나마 괜찮은 틈을 잡고 힘으로 찍어 눌렀을 뿐.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교습 잘 부탁드립니다!” “당연하죠! 자제 잡아요!” “네?” 그녀가 대검을 느슨하게 쥔 채 기울이는 자세를 취했다. “두 번째 레즌! 바로 지작할게요!” “아…….” 그 뒤에는 강의욕으로 흥분한 홍펭에게 열 번은 더 넘어진 시몬이었다. * * * “전에 마투학 시간에서 재미 좀 봤다고 들었다! 이것들아!” 이번엔 별야의 맹독학 수업. 홍펭의 마투학 수업을 듣고 바로 넘어온 시몬과 학생들은 진이 빠진 얼굴로 강의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 수업도 기대해 줘라! 자! 오늘 다뤄볼 녀석은 이거다!” 드르르륵! 맹독학 조교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며 서빙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그 카트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흰 알약들이 수더분하게 쌓여 있었다. “근 일주일간 룬 리그가 화제였지! 에프넬이든 결사든 신성 사용자들과 싸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골치가 아플 거다!” 그녀가 집게손가락으로 알약 하나를 들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살폈다. “물론 룬 리그 대표들이 전반적으로 신성에 잘 대처하긴 했지만 현실은 저렇지 않아! 싸우다 보면 퇴마의 신성에 몇 번은 처맞고, 대네크로맨서전 축복에 걸려 빌빌대다가 쓰러지기 일쑤지! 하지만 네크로맨서들은 늘 답을 찾는 존재들이다! 그 답이 이것!” 그녀가 그 알약을 혀로 살짝 핥아서 맛을 보았다. 모든 독이든 해독제든 별야는 수업 전에 직접 저렇게 맛을 보고 성분을 감지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오늘 물건 좋네!” 그녀가 삐쭉삐쭉한 상어이빨을 드러내며 수석조교에게 엄지를 척 세우자, 수석조교가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내 별야가 방금 핥은 알약을 다시 무수한 알약 더미 위에 떨어뜨렸다. 학생들의 표정이 살짝 흐려지는 가운데, 딕과 한 남학생이 속닥거렸다. “오른쪽 세 번째?” “네 번째 같은데. 별야 교수님이 핥은 건 내 거다.” 메이린이 경멸의 시선으로 그들을 노려보자 그제야 그들의 입이 쏙 들어갔다. “아무튼 다시 설명으로 돌아와서! 그 답이 이것. 실렌트리스 맹독이다!” 그녀가 검지로 알약을 가리켰다. “몬스터 실렌트리스의 맹독에 다양한 화합물을 첨가해서 만든 제품이지! 맹독이라 그냥 먹기만 하면 치명적이지만, 체내에 주입된 신성에 반응해서 일정 비율의 신성을 응고시키고 소변이나 땀으로 배출시키는 효능을 가졌다! 완전하진 않지만 일종의 자연 신성 해독제란 거다!” 오오오! 학생들이 들썩거렸다. “그, 그럼 신성에 대처할 수 있는 괜찮은 수단이 있는 거였네요!” “왜 이렇게 알려지지 않았죠?” “그야.” 별야가 히죽 웃었다. “보통은 먹으면 죽거든.” 학생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리스크는 큰데 신성을 다 막아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만약 이걸 먼저 먹었는데 프리스트의 신성이 체내에 없다면 무조건 죽는 거야. 물론! 방금 말한 건 다 일반인들의 이야기고 내 맹독학 수업을 들은 제자들은 다르지!” 드르륵! 드르르륵! 이번엔 조교들이 뒤편에서 신성이 함유된 포션병이 든 끌차를 가지고 나타났다. 네크로맨서들에게 신성은 독이나 다름없기에 몇 차례나 안전장치를 한 모습. 몇몇 학생들은 울먹이기 시작했다. “즐거운 저항계 시간이다!” 별야가 손뼉을 쳤다. “목표는 실렌트리스 성분을 체내에 적응시켜서 즉사 위험을 줄이고, 그다음엔 직접 신성을 주입한 뒤 실렌트리스를 구강투여하고 이 성분의 힘으로 체내의 신성을 중화하는 훈련까지 진행한다!” 그렇게 말한 그녀의 눈이 희번뜩해졌다. “못 하면 강의실에서 못 나가. 나랑 같이 이불 펴고 여기서 자고 가는 거다.” 학생들의 곡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지나가던 2학년 학생들이 그 소리를 듣고 겁에 질려서, 키젠 본부에 신고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진 건 덤이었다. * * * 이어지는 수업들도 교수들은 어딘가 홀린 사람처럼 진행했다. “지금 바로, 전부 외우십시오.” 칠판에 쓰는 걸로도 부족해, 그 옆의 간이 칠판까지 꽉꽉 채워서 필기를 마친 제인이 분필을 늘어뜨리며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30분 뒤 쪽지 시험을 진행하겠습니다.” “네, 네?” 제인은 모두가 어려워하는 브린어로 쓰인 이론 분석을 학생들에게 달달 외우게 하고, 쪽지 시험을 한 시간에 한 번씩 치르는 강행군을 시작했다. “창의성이 현저히 부족하군요.” 바힐은 저주 수업은 평소대로 진행했지만, 이어지는 창작 저주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과제 폭격을 날렸다. 보통 바힐의 수업은 듣기도 좋고 이해도 잘되어서 평가가 상당히 좋았지만, 이 창작 저주만큼은 엄격한 교수로서의 잣대를 들이밀었다. 그 와중에 시몬의 창작은 바로 통과해 버렸고, 바힐이 헤벌쭉해진 표정으로 시몬의 수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설명하는 바람에 동기들의 부러움과 질투 섞인 시선을 받아야 했다. “……뭐.” “잘하긴 하네.” 그래도 다행히 키젠은 키젠인지라 그 이상의 이야기는 없었다. 능력이 되면 빨리 마치는 건 익숙했다. ‘내일은 군단학 수업이구나.’ 시몬이 피곤한 얼굴로 어깨를 짚었다. 컨디션을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 오늘은 쉬러 갈 생각이었다. 시몬이 캠퍼스를 걸어가고 있는데. 토옹! 토옹! 캠퍼스 한복판에 어딘가 익숙한 공 같은 살점 덩어리가 굴러오고 있었다. “어, 저거 7군단 쪽 에이션트 언데드다.” “또 뭔가 만들려나 봐.” 이제는 걸어가던 학생들도 익숙한지, 길거리의 에이션트 언데드를 일상적인 일처럼 받아들였다. 시몬이 정체를 드러낸 뒤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늪의 왕 몰굴라, 준완성 단계.] 그가 통통 튀었다. [체크 바람.] 시몬이 씩 웃었다. 뭔가 일이 일어나기 전에 완성됐으면 하는 두 전력이 있었다. 하나는 마검을 든 마누스. 다른 하나는 레테로부터 선물받은 늪의 왕 몰굴라의 시체였다. 둘 다 에이션트 언데드급 재료로 만들기에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바로 갈게! 안내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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