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48화 침수되는 세상을 보고 위기감이 번쩍 들었던 것도 잠시. 룬 리그 시즌이 끝나고, 키젠 교수들은 지금까지 ‘느슨했지?’라고 말하듯 수업 진도를 맹렬히 빼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시몬은 하루하루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달려요! 달려!” 마투학 교수, 홍펭이 짝짝 손뼉을 치며 말했다. 3학년 학생들은 온갖 무거운 아티팩트를 몸에 매단 채 낑낑거리며 풀밭을 가로질러 달리고 있었다. “여러분은 평조에 얼마나 많은 근육을 활용하며 지내고 있나요? 근육의 제계는 위대해요! 인간이 본연의 정진적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근육 또한 마찬가지!” 그녀가 손뼉을 짝! 치자, 갑자기 학생들의 한쪽 팔이 늘어진 채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두 팔을 흔들며 달리던 학생들은 뭔가 어정쩡한 자세로 달리게 되었다. “부장, 출혈, 중독, 골절! 전장에저는 어떤 일도 벌어질 위험이 있어요! 몸의 밸런즈를 빠르게 맞추제요! 움직이지 않는 근육을 대체할 방법을 찾으제요!” 잠깐 불편한 듯 달리던 학생들이 팔을 쫙 붙이거나, 아예 두 팔을 모두 늘어뜨리고 달리는 등 바로바로 대처했다. 다시 홍펭이 박수를 짝 치자, 팔의 감각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다시 모두가 100%의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확실히 다르네!’ ‘전신을 이용하면 치고 달리는 느낌이 달라!’ 잠깐 빼앗겼던 부위가 돌아오니, 전력으로 달릴 때 팔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어떻게 사람이 균형을 쉽게 잡을 수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홍펭이 손뼉을 짝 하고 치자, 한쪽 다리에 힘이 빠진 학생들이 자리에서 휘청이거나 넘어졌다. 곳곳에서 헛! 이나 꺅! 하고 놀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움직이제요! 계속 달리제요!” 학생들이 다리를 질질 끌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남은 한쪽 다리로 뜀박질하듯 달리는 학생, 옆으로 기듯이 달리는 학생들 등 여러 개성 있고 재미있는 대응이 많이 나왔다. 그래도 모두가 일반인이 아닌 네크로맨서인 만큼 대처가 빨랐다. 칠흑으로 특정 부위에 힘을 집중시킬 수 있었기에 묘기 같은 움직임도 나타났다. “아으! 이게 뭐야!” 발이 움직이지 않자, 귀족 체면을 버리고 바닥을 기듯이 가는 메이린이 울먹이는 소리를 냈다. 그 옆으로 딕이 대굴대굴 굴러가다가 메이린에게 엄지를 척 내밀어 보였다. “이게 바로 칠흑 통나무 기법!” “진지하게 해! 븅딱아!” 그러다 홍펭이 손뼉을 짝! 치자 다시 다리에 힘이 돌아왔고, 모두가 정상 자세로 달리기 시작했다. ‘또 이상한 짓 당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가야 해!’ 모두가 똑같은 생각으로 전속력으로 후다닥 달려 나갔다. 그러나 학생들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홍펭 교수가 빙긋 웃더니 손뼉을 다시 한번 짝 하고 쳤다. “우왓!” “흡!” 털썩! 쿵! 전속력으로 달리던 학생들이 무릎을 바닥에 찧으며 쓰러지거나, 너무 급하게 가던 학생들은 요란하게 넘어졌다. 시몬도 마찬가지였다. ‘설 수가 없어!’ 두 다리의 어떤 근육이 마비됐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아예 일어나지지 않는다. 학생들이 낑낑대며 어떻게 움직일지 고민하고 있는 가운데. “조금 더 긴장감을 줘볼까요?” 홍펭이 휘이익-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지난 2년 반 가까이 홍펭을 겪어온 학생들이 ‘아’ 하고 흐려진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홍펭이 키우는 천 마리의 하마 떼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히익!” “가! 가가가가! 앞에 빨리 가!” 여러 자세를 생각하던 학생들이 무릎 연골을 억지로 칠흑으로 보강한 뒤 토끼뜀 자세로 통통 뛰어갔다. 그러나 앞에는 오르막길이었다. 굴러서 오르막을 오르는 건 불가능하니 이런 자세로 저 위까지 달려야 했다. “극한 장황에 몰리면 인간은 쓰지 않던 힘과 저력이 나오죠!” 홍펭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늦으면 밟힐 거예요.” “교수니이임!” 학생들이 울먹이며 토끼뜀으로 언덕을 뛰어 올라갔다. 신분 출신 성별을 막론하고 모두가 헉헉대며 흙먼지가 된 몸으로 통통 언덕을 올라오는 모습은 대단한 장관이었다. “계족 가요!” 홍펭이 소리치며 독려했다. “몸 전체가 마비되어도, 인간이라면 눈썹으로도 올라갈 주 있어요! 계족!” 학생들이 아찔한 표정으로 홍펭을 바라보았다. 이 교수님은 인간의 몸을 뭘로 아는 걸까. 진짜 그렇게 시킬 것 같아서 아찔했다. 그래도 3학년은 3학년. “흐억!” “흐아아아아아…….”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하마들보다 먼저 언덕을 올라와 바닥에 퍼질러졌다. 곳곳에 뻗거나 쓰러진 학생들이 속출했고, 조용히 나무 뒤로 올라가 토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 정도는 늘 있는 일이라 이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고쟁했어요!” 홍펭이 조교들을 이끌고 손뼉을 짝짝짝 치며 인사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근육을 잘 풀어주제요! 조교들도 학쟁들 도와주제요!” “예!” 다들 헉헉대며 퍼질러져 있는 가운데, 조교들이 학생들에게 얼음찜질을 해주거나 포션을 먹이는 등 조치를 해주었다. 시몬도 호흡법을 사용한 뒤, 과도하게 혹사한 다리 근육을 주물주물 풀어주었다. 만지는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근육통 일주일 치짜리다.’ “크크크!” 딕이 두 팔을 쩍 벌린 채 드러누워 있었다. “누가 3학년이 되면 학교생활이 널널해진다 하던가! 수업은 수업대로, 임무는 임무대로! 지옥이도다!” 그래도 이후에는 행복한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비 오는 날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간이 야외 수업인 홍펭의 마투학은 밥맛 하나만큼은 최고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또 막상 언덕까지 올라오니 경치가 말도 안 되게 좋았다. 로크섬의 경관은 봐도 봐도 이런 곳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새로웠다. 바다와 숲의 경관이 쭉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다들 풀밭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맛있는 식사를 즐겼다. 시원한 바람에 땀이 말라가는 것도 기분 좋았다. 인간이란 단순했다. 그렇게 고통스럽던 기억은 금방 사라지고 지금은 그저 평생 지금 이 순간만 같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미, 머리 풀린 거 묶어줄게.” “아, 고마워요! 메이린!” 메이린이 카미바레즈의 등 뒤로 돌아가 머리를 정성스럽게 묶어주고 있었고, 시몬과 딕은 반쯤 퍼질러 앉은 자세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쏴아아아아아아! 갑자기 거대한 바다가 쏟아져 로크섬을 뒤덮는 광경이 펼쳐졌다. 시몬이 흡! 소리를 내며 눈을 부릅떴다. “헤이, 시몬! 내 말 듣고 있어?” 딕의 말에 시몬이 정신을 차렸다. 잠깐 꿈을 꿨는지, 주위는 평온함 그 자체였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도 포근했다. “어, 어어. 미안해.” 시몬이 쓰게 웃으며 솔직하게 답했다. “잠시 넋이 나가 있었나 봐.” “흐흐, 아까 고생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딕이 어깨를 으쓱했다. 시몬이 딕을 보며 말했다. “내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던 건 어떻게 됐어?” “우리가 휴양섬에서 겪었던 침수 현상 말이지?” 촤락! 딕이 그 말 할 줄 알았다는 듯 아공간에서 가방을 꺼내 신문 기사 몇 장을 뒤적거렸다. “대륙의 바다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긴 한 것 같아. 의외로 내륙이나 항구도시가 피해를 입은 경우는 드물어서 큰 화제는 안 됐는데, 남쪽 바다의 섬이나 군도 같은 곳은 침수 피해가 크다고 알려져 있어. 또 금방 물이 빠지고 원래대로 돌아왔다가, 다시 물이 차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대. 그 과정에 토사가 유실되면서 점점 섬들이 물에 가라앉고 있고.” 이야기를 듣던 시몬이 팔짱을 꼈다. “결사의 다음 공세? 아니면 던전의 이상현상?” “그건 아직 모르지. 근데 암흑연합에서도 계속 이렇게 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바다 쪽 진출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시몬이 턱을 짚었다. “……확실히 그동안 바다를 생각 못 했어. 이런 대규모 자연현상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면, 결사는 사실상 손을 대지 않고도 대륙을 위험하게 만들 수…….” “시몬?” 갑자기 끼어든 말에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언제 다가왔는지, 메이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릎을 굽힌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즘 너무 걱정이 많은 거 아냐?”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는 시몬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화이트랜드라고 했지? 다른 차원에 다녀오고 너 조금 이상해.” “……아.” 솔직히 경각심이 확 생기기는 했다. 지금까지는 결사의 공격과 침공이 약간은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하는 일들이 대륙을 방해하고 전쟁과 혼란을 부추기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이트랜드의 전함 부대. 옐로우랜드의 죽음의 무덤 17채. 확실히 결사는 뭔가를 척척 준비하고 있다. 과거에 불렀던 호칭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결사’이지만, 그들은 대륙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규모와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학교고, 쉬는 시간이잖아? 무슨 일이 벌어지면 네프티스 님이 움직이실 거고 그때 나서면 되니까.” 문득 메이린이 부끄러워하며 뺨을 긁적이며 웃었다. “지, 지금은 조금 더 우리끼리 시간을 알차게 보냈으면 해서.” “고마워 메이린.” 시몬이 조금은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린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데, 바닥에 누운 딕이 푸흡푸흡 웃으며 입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피온 니임~!” “야!! 진짜아아아! 하지 말라고오!” 화가 난 메이린이 주위의 잡초를 뜯어서 딕에게 휙 날렸다. 딕이 ‘어이쿠’ 하면서 몸을 굴러 피했다. 시몬과 카미바레즈의 웃음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지몬!” 그때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홍펭이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직 힘, 남아 있죠?” 그러자 멤버들이 힘내라는 듯 툭 하고 시몬의 어깨와 등을 한 차례 토닥였다. “다, 다녀올게.”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딕이 두 팔을 벌리며 심취한 표정을 지었다. “군단장이여,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 * * 시몬은 홍펭을 따라 일행들이 쉬고 있는 곳에서 조금 한적한 장소로 이동했다. 민들레 홀씨가 살랑거리며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풀밭이었다. “교수님 무슨 일로…….” 휘이익! 그녀가 휘파람을 불었다. 놀란 시몬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눈을 깜빡이고 있는데, 하늘에서 마치 펠리컨을 연상케 하는 새 수십 마리가 나타났다. 새들은 끈에 뭔가를 묶은 채 날고 있었는데, 곧 그것을 땅에 떨어뜨렸다. 쿠웅! 커다란 대검 하나가 바닥에 꽂혔다. 주위가 들썩이며 뿌연 연기가 몰아쳤다. “지몬 학쟁.” 펄럭! 홍펭이 겉에 두른 겉옷을 벗었다. 어깨와 팔, 복부가 드러난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를 드러낸 그녀가 성큼성큼 걸어와 바닥에 떨어진 대검을 손에 쥐고 들어 올렸다. 스릉! 시몬의 눈이 커졌다. 시몬이 사용하는 파멸의 대검과 거의 90% 이상 흡사한 모습. 그녀가 대검을 겨누고 시몬에게 말했다. “피어와 파멸의 대검을 꺼내제요.” 아마 이번에도 심상치 않은 수업이 될 것 같았다. 시몬은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웃으며 아공간을 열었다. 촤르르르! 촤르르르르륵! 단숨에 피어의 본 아머를 입고 ‘피온’으로 변한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늘어뜨렸다. “자.” 홍펭의 동공이 번뜩였다. “지작해 볼까요?” 시몬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이어서 시작되는 홍펭과 시몬의 훈련. -대박 매치업이래! -어디서 하는데? 이 빅매치의 소문을 들은 학생들이 슬금슬금 몰려와 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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