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44화 현재 키젠에서는 2학년인 330기 학생들의 단체시험이 진행 중이었다. 바로 그 현장으로, 업무 지원 요청을 받은 학생회장 시몬과 그를 보좌하러 온 부회장 메이린이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도착했다. “여기가 천둥섬이구나.” 손을 이마에 얹은 시몬이 탄성을 흘렸다. 섬 위에는 비정상적으로 확장된 적란운이 껴 있었는데, 연신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벼락이 번쩍이고 있었다. 다행히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시험 장소인 천둥섬에서 살짝 떨어진 섬이었다. 지금 이곳은 안전 구역이자 시험 관리자들의 베이스캠프였다. “도착하셨습니까! 학생회장님.” “무리한 부탁이었을 텐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2학년 조교들이 굽신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진짜로 올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다. 메이린이 허리에 손을 얹으며 난감한 웃음을 흘렸다. “무리한 부탁인 걸 알면서도 요청하신 거예요? 저희, 룬 리그에서 복귀한 다음 날에 여기 있는 거거든요.” “죄, 죄송합니다! 2학년 담당 교수님께서 이번 시험의 감독관은 시몬 폴렌티아 학생회장이 아니면 안 된다고…….” “괜찮아 메이린, 우리 일이잖아.” 조교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시몬은 키젠 생활 내내 조교들이 학생과 교수들 중간에 껴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잘 봐왔기에 그들을 최대한 배려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조교들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는 중에, 메이린이 서류를 팔랑팔랑 넘기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우리도 2학년 때 치렀던 시험이야.” 그녀는 안경까지 쓰며 똑 부러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학년 전체가 섬에 떨어져서 48시간 동안 버티는 <생존 혹은 승리>의 단체시험, 기억해?” “기억나. 우리는 ‘천둥섬’이 아니라, ‘화산섬’에서 했지만.” 키젠의 단체시험은 서로 경쟁하고 살아남는 서바이벌류가 많은데, 이 시험만큼은 전교생이 힘을 합쳐 하나의 목표를 쟁취하는 점이 포인트였다. 특히 당시 시험의 최종보스인 ‘화산성주’로서 나타난 북부대공 진과, 전체 5위였던 아세라즈 미켈의 자퇴로 기억이 남는 시험이었다. 329기 학생들이 힘을 합쳐 북부대공 진을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늘 제멋대로 움직이고 협동성은 눈곱만큼도 없었던 학생들이 희생의 가치를 배웠고, 유대감이 크게 강화되었다. 수석인 시몬을 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Top10들이 시몬을 인정하고 존중하던 것도 이때부터. “사실상 이번 룬 리그의 승리를 위한 밑바탕이 된 시험이라고 생각해.” 시몬의 감상에 메이린이 응!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쿠르르르릉! 시험 현장인 천둥섬은 난리도 아니었다. 하늘을 뒤덮은 새까만 적란운에서부터 벼락이 떨어져 내리자, 학생들의 까마득한 비명과 고함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이 베이스캠프에서 시험을 관리하는 관리자들 또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곳곳에 펼쳐진 마나 스크린을 보고, 학생들의 움직임을 좇으며 점수를 매기는 등 바쁜 모습이다. 고장 난 옵저버 아티팩트를 수리하거나 다시 섬으로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고, 학생들의 움직임에 따라 준비된 이벤트를 척척 지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벼락의 수가 부족해! 칠흑을 더 투입해! -효과팀 네크로맨서들이 도저히 못 하겠다는데요? -죽어도 하고 죽으라 해! 늘 시험에 참가하는 학생의 입장이었는데, 이렇게 관리자 입장에서 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데 메이린. 이미 시험은 한참 전에 시작한 것 같은데?” “맞아, 시몬. 오늘이 시험 마지막 날이고 곧 천둥성주가 나타날 거야.” 그렇게 말한 메이린이 걸음을 멈추고 시몬을 가리켰다. 시몬이 멍한 얼굴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나?” “응!” “자, 잠깐!” 시몬의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시험 감독관이라며? 그냥 후배들을 돕기 위한 인력이 부족하구나 싶어서 왔는데?” “뭘 생각한 거야, 바보.” 메이린이 입가를 가리며 푸훕 웃었다. “2학년 교수들이 굳이 본부에 요청해서 너를 데려올 이유가 뭐가 있겠어? 당연히 천둥성주 자리를 맡게 할 생각이었겠지!” “전혀 몰랐어!” 시몬은 문득 자신이 2학년이던 시절, 이 시험을 치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갑자기 화산섬에 마그마가 터져 나오며 떠오르던 거대한 성. 그리고 그 위에 군림하듯 서서 학생들에게 절대적인 절망감을 부여했던 화산성주 진 아르스칼트의 등장. 바로 그 역할을. ‘……내가 해야 한다고?’ “하하! 어서 오십시오 학생회장!” 그때 마침 익숙한 얼굴의 남자와, 처음 보는 얼굴의 여자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쪽은 늘 키젠의 시험장을 만들고 도움을 주는 카드의 네크로맨서, ‘엔돌라스 보드빌’이었다. 다른 한쪽은 키젠 교수로 보이는 정장 차림에 안경을 쓴 여성이었다. 시몬이 우선 엔돌라스와 정중히 인사하며 악수했다. “또 뵙습니다. 엔돌라스 경.” “하하하! 1학년 시절부터 늘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내 시험을 깨뜨리는 골칫덩어리였는데, 이번엔 이렇게 같은 팀으로 만나 천만다행입니다!” “제가 힘들게 해드린 것 같아서 죄송스럽네요.” 시몬이 웃는 얼굴로 인사한 뒤 고개를 돌렸다. 저 안경 교수는 모르는 사람이다. 그때 메이린이 허겁지겁 달려와 귓가에 대고 설명했다. ‘저분이 2학년 총괄교수인 필 교수님이셔!’ 필이라면 자신을 이번 시험에 지명한 장본인이다. 시몬이 깍듯이 인사했다.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답니다.” 그녀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임무로 바쁠 학생회장을 무리하게 천둥성주로 섭외한 이유는, 당신이 2학년 학생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네?” “학생회장도 2학년 시절에 겪었겠지만, 단체시험에 등장하는 섬의 성주는 압도적인 지명도를 가진 인물이어야 의미가 있지요. 우러러보는 대상과 마주했을 때의 그 충격을 이겨내고, 마침내 쓰러뜨릴 수 있어야 학생들은 한 단계 크게 성장하는 법입니다.” 그녀가 손바닥을 펼치며 웃어 보였다. “부디 우리 2학년 학생들의 도약을 위한 명품 조연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 메이린이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데 시몬이 불쑥 말했다. “제가 성주로서 2학년들을 시험하다가, 적당히 패배하는 모습을 원하시나요?” “무슨 말씀을.” 그녀가 호호 웃었다.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2학년 학생들은 역대 최고니까요.” * * * 올해 2학년들의 단체 시험도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작년처럼 네프티스가 난입해서 ‘탈락 = 퇴학’을 선언하는 극단적인 룰은 없었지만, 시험 초, 2학년들은 철저히 생존 위주의 움직임을 보였다. 이 천둥섬에서의 핵심 요소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날벼락. 온갖 흑마법과 저주로 비정상적으로 부풀어진 먹구름 속에서, 거의 회피가 불가능한 속도의 벼락이 무작위로 떨어져 내렸다. 어지간히 방어능력이 뛰어난 네크로맨서가 아니라면 벼락 한 방에 허무하게 모든 라이프 게이지를 잃고 탈락할 정도로 위력이 높았기 때문에 함부로 섬에서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 섬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며 얻은 포인트로 ‘피뢰침’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정보가 학생들 사이에서 공유되면서, 시험의 흐름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피뢰침을 활동 영역 인근에 설치하면 인근에 떨어지는 벼락을 피뢰침을 통해 빨아들일 수 있게 된다. 학생들에겐 일종의 안전지대가 생기는 셈이었다. 그 외에도 ‘반사침’이라는 아티팩트도 있었는데, 포인트는 더 비싸지만 해당 지역에 떨어지는 벼락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내는 장비였다. 바로 이 반사침 때문에 수십 명이 넘는 학생들 간에 연합이 이루어졌고, 반사침을 닥치는 대로 설치한 뒤 서로에게 벼락을 돌려보내는 ‘벼락 전쟁’이 시작됐다. -재미없어. 이 생존 연합과 반사침의 지루한 틀을 깨버린 건 다름 아닌 어린 나이의 2학년 수석, 전체 1위의 사샤 앤드라실이었다. 그녀는 무력 통일 전략을 구사했다. -난 이렇게 뻔하게 시험을 끝낼 생각 없어. 마지막 날에 천둥성주를 잡을 공략팀을 만들 거야. 벼락이고 뭐고 전기를 흡수하는 식물 언데드를 몸에 휘감은 그녀가 연합을 다 때려부수고 다니기 시작했다. 전력이 되는 학생들은 협력 or 탈락이라는 강제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사샤가 활동하는 섬의 반대편에서는 전체 3위의 드레스덴 왕국의 공주, 몰리 드레스덴이 활약했다. 그녀는 본연의 권위와 우아한 리더십으로 연합을 규합하여 새로운 ‘공략팀’을 만들고, 반사침 설치를 금지하는 지침을 세웠다. 그렇게 섬 중앙으로 진출한 사샤 세력과 몰리 세력이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 것으로써, 대규모 천둥성주 공략팀이 완성되었다. 그즈음에 아서 블레만도 심심하다며 합류했고, 다시 한번 2학년은 이 말썽의 ‘삼총사’가 주도하게 됐다. 그리고 시험 마지막 날, 드디어 천둥성이 나타났다. 쿠구구구구구구구! 천둥성은 적란운에서 내려와 섬 바로 위에 강림했으며, 무수한 벼락을 쏟아 보냈다. 사실상 피뢰침으로 막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벼락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섬 끝에서 생존하려던 전략을 세운 학생들은 낭패를 겪었다. 벼락에 맞아 아웃당하기 일쑤였다. -천둥성으로 가자! 이 섬에서 저 성만 벼락에서 안전해! -못 올라가면 그냥 탈락이야! 달려! 그로 인해 공략팀을 비롯한 2학년 전원이 천둥섬을 향해 움직였다. 엔돌라스 보드빌의 기물 효과인지, 천둥섬 주위에 펼쳐진 구름을 밟고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물론 그사이 끝없이 쏟아지는 벼락과, 천둥성의 날개 달린 비행 몬스터들의 공격으로 대다수의 학생들이 탈락했다. 오로지 치열하게 싸워왔던 사샤가 이끄는 핵심 공략팀만이 마침내 천둥성 내부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허억! 헉!” “으어어어…….” 그렇게 천둥성 정상층의 대문만을 남겨둔 채, 2학년들은 다들 진이 빠진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아 있거나 쓰러져 있었다. 사샤는 벽에 기대어 물을 발칵발칵 들이켜고 있었고, 몰리 공주도 왕족의 체면은 버려둔 채 바닥에 뻗어 있었다. 오로지 용병왕, 전체 2위의 아서 만이 멀쩡히 서 있었다. 그가 하하하! 웃으며 동기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단련이 부족한걸!” “……근육 돼지는 닥쳐.” [남은 시간 - 00 : 50 : 54] [생존자수 : 30/315] 여기까지 살아남은 건 전체 315명 중에 고작 30명. 천둥성에 제때 올라타지 못한 학생들은 모두 탈락해 버렸다. “그래도 Top 30위 안에 들었다.” “예이.” 아직 힘이 남아 있는 학생들은 서로 하이파이브하며 힘겹게나마 웃었다. 그중에 한 학생이 주위의 면면을 살펴보며 감탄했다. “우리 멤버 구성이 대단하긴 해.” 전체 1위, 사샤 앤드라실. 전체 2위, 아서 블레만. 전체 3위, 몰리 드레스덴. 전체 5위, 루어스만 파베론. 전체 7위, 모드릭 스탈링스. 전체 10위, 하이디 페리스. Top10 중 무려 6명이 살아남았다. 전력은 누가 봐도 최정예였다. “다들 고생 많았어.” 몰리 공주가 삐뚤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야말로 330기 학생들의 실질적인 리더였다. “이제 마지막 보스전이야. 준비하자.” 그녀의 독려에, 모두의 두려운 시선이 거대한 문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저 안에 있는 천둥성주가 누군지 이야기 안 해줬지?” “……동아리 선배가 말해주셨는데, 작년에는 북부대공 진 아르스칼트 교수님이었대.” “진짜?” 2학년들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져 가는 사이, 한 남학생이 웃으며 말했다. “에이, 작년이 비정상적이고 올해는 다를 거야. 작년은 네프티스 님이 끼어들어서 이상해진 거였대.” “그, 그렇겠지?” 다들 눈알을 굴리고 있는 가운데. “제안 하나 하지.” 전체 7위, 모드릭이 손을 들고 발언한 뒤 몰리를 바라보았다. “괜찮지 공주님?” “물론이야. 그리고 공주님이라 부르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우리-” 모드릭이 목에 힘주어 말했다. “여기서 시험 끝내자. 천둥성주는 도전하지 말고.” “!” 모드릭의 발언에 주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지금까지도 움직임이 없는 걸 보니 천둥성주는 이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시험 세부 룰에 따르면 시험 끝까지 생존할 시 100포인트를 얻어. 다른 애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로 시험을 끝낼 수 있지.” “…….” 모두가 침음을 흘리는 가운데, 아서가 말했다. “모드릭. 시험 룰은 다 숙지하고 하는 소리야?” “왜 안 끼어드나 했다. 용병.” 모드릭이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천둥성주에게 도전하지 않으면 하위 100명은 퇴학 처리한다는 그게 맘에 걸리는 거지? 그냥 퇴학당하라지.” “모드릭!” “오히려 그 룰은 천둥성주에게 도전할 것인가, 도전하지 않을 것인가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증거야. 그리고.”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어차피 키젠 졸업자는 150명 남짓이야. 떨거지들이 지금 떨어지나 나중에 떨어지나 매한가지라고.” 그 말에 머리끝까지 분노한 아서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또 또 또. 영웅 놀이. 현실 직시하자고. 어차피 다들 1학년 시절에 경쟁자들 떨어뜨리면서 여기까지 왔잖아.” 모드릭이 낄낄거렸다. 아서가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경쟁이란 게 원래 잔인하다고 해도, 지금 우리가 그들의 퇴학을 결정할 자격은 없어!” “언제 어디서 석차 꼴등인 새끼가 100위권까지 치고 올라와도 이상할 게 없는 게 키젠이야. 경쟁자는 떨어뜨릴 수 있을 때 떨어뜨려야 해.” 모드릭이 어깨를 으쓱했다. “너희 삼총사는 Top10 중에서도 늘 압도적이라 잘 모르려나. 과연 누가 더 이기적일까.” 아서가 주먹을 움켜쥐고 그에게 한 방 먹이려는 순간. “아- 아, 말이 기네.” 싸늘한 음성에 모두가 흠칫하며 어깨를 떨었다. 압도적 전체 1위. 사샤 앤드라실이 싸늘한 눈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걸 니들이 왜 궁리해? 결정은 내가 해.” 2학년 330기의 실질적 리더는 몰리 공주, 정신적 지주는 아서라고 하지만. 결국 주도권을 가진 사람은 1위의 사샤였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가자 모드릭이 움찔하며 팔을 뻗었다. “야! 잠……!” 촤아아아아아! 사샤의 손끝에서 나무줄기가 일어나 모드릭을 휘감더니 벽에 쿵! 하고 처박아 버렸다.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천둥성주에 도전할 거야. 그러기 위해 여기 온 거고! 반대한다면 힘으로 막아보든가.” 사샤의 선언에, 곳곳에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역시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우리 막내.” 전체 5위, 실눈을 뜬 루어스만이 다가와 사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사실 동기들을 100명이나 퇴학시키면 잠 못 잘 것 같아서 그러는 거지?” “손 치워!” 사실 사샤는 실력주의 키젠에 입학하긴 했지만 18살인 동기들보다 한참 어려서, 루어스만에게는 막내로 불렀다. 손을 깨물린 루어스만이 손을 탈탈 털자 곳곳에 비로소 동기들의 웃음이 튀어나왔다. “애들아, 솔직히 키젠이 악랄한 거 한두 번이야? 천둥성주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큰돈을 들여 섭외했을 텐데, 무조건 시험 끝나기 전에 한 번은 튀어나온다고 봐.” 그가 손바닥을 비비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거 상대 안 한다고 했다가 천둥성주가 문을 열고 나오면 어쩔래? 우리 체면이 많이 아니겠지? 동기들 얼굴 어떻게 보겠냐. 다들 지켜보고 있을 텐데.” 모두가 그 말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총사는 너무 올곧고, 나머지 Top10들은 지나치게 이득을 셈하지만, 루어스만은 늘 이들 간의 분쟁을 중재하는 역할이었다. “최선을 다해보자.” 그렇게 말한 그가 모드릭을 바라보았다. “도와줄 거지? 모드릭.” 나무에 붙들려 있던 모드릭이 쯧 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찬성하건 반대하건 선택의 여지는 없는 셈. 나무에 힘이 풀리며 그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럼 간다.” 사샤가 문 앞에 서서 문을 짚었다. 몰리 공주도 사샤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었다. “다들 룬 리그 몇 번은 봤잖아. 어떤 상대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해.” “그럼!” “가자고!” 사샤가 힘차게 문을 열어젖혔다. 와아아아아아! 2학년들이 함성과 함께 보스전이 펼쳐질 거대한 방 안으로 들어왔다. 텅 빈 거대한 공간. 아무런 가구나 장식도 없이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 떡하니 마련된 왕좌. 그 위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누, 누구지?” “……위압감 미쳤다.” 다들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데. 털썩. 당당히 앞으로 걸어가던 사샤가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몰리가 얼른 말했다. “왜 그래 사샤!” “자, 잠깐만!” 한 남학생이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저 사람 혹시……!” 스으. 처음 보는 청색 복장. 그리고 푸른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그늘에 가려진 눈동자가 번뜩인다. [여기까지 당도한 걸 환영하마.] 가볍게 손끝을 두들기는 손가락. 거만하게 꼰 다리. 손바닥으로 턱을 짚은 채, 가늠하듯 훑어보는 시선. 무엇보다 압도적인 위압감. [잘 왔다.] 올해의 천둥성주는 ‘시몬 폴렌티아’였다. 털썩. 쿵. 절그렁! 다들 무릎이 꺾이거나 무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우리 그냥…….” 그 누구보다 낙천적이던 루어스만도 입꼬리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기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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