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45화 “잠깐만! 진정하고 생각해 봐 얘들아!” 2학년생 모두가 얼어붙어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건 전체 3위의 몰리 공주였다. “룬 리그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시간 흐름으로 보면 이제 막 폐막식 행사 치르고 있을 텐데, 어떻게 시몬 학생회장 선배님이 저기 앉아 계시겠어?” “그러고 보니……!”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가짜 시몬일 가능성. ‘키젠 놈들’의 수작일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퍼뜩 들었다. 지난 1년 반 동안 뒤통수를 한두 번 맞은 게 아니었으니까. 모두의 눈에 비로소 희망이 깃들었다. “너도 일어나 사샤! 수석인 네가 그렇게 꺾여 있으면……!” “그럼-” 아까부터 멍하니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사샤가 손을 아래로 내렸다. “확인해 보면 되겠네.” 학생들이 흠칫하며 사샤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바닥에 손바닥을 대고 눈을 감았다. “개원(開園).” 촤르르르륵! 바닥에 아공간이 열리고 그 안에서 무수한 넝쿨들이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동기들은 반가움 반, 두려움 반의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2학년 결투평가에서 사샤의 상대들에게 수많은 굴욕과 흑역사를 남겼던 식물형 언데드, ‘자르티스(Zartis)’. 촤아아아아아아! 바로 그 악명 높은 넝쿨들이 수십 갈래로 뻗어 나가더니 왕좌에 앉아 있는 시몬을 향해 쇄도했다. 자르티스의 장점은 보고도 피할 수 없는 속도와 유연함. 2학년들은 당신도 한번 당해보라는 표정으로 시몬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 지금까지 왕좌에 턱을 괸 채 가만히 앉아 있던 시몬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개문(開門).] 촤르르르르르르륵! 그러자 시몬의 전면으로 두 갈래의 거대한 촉수 칼날이 솟아올랐다. 그것이 휘둘러지며 허공에 하얀 금을 무수히 그었고, 이에 다가오던 넝쿨이 모조리 찢어발겨지며 그 잔해가 비처럼 내렸다. 아직 살아남은 넝쿨 몇 줄기가 다른 방향으로 우회하려 했지만 오버로드의 속도를 따돌리지 못하고 모조리 베이고 말았다. 지켜보던 모두의 입이 벌어졌다. 슥-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몬이 검지를 세우자 하늘에 펼쳐진 마법진에서 에메랄드빛 섬광이 내려와 칼날에 깃들었고, 칼날의 몸체가 활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 모습을 본 루어스만이 외쳤다. “피해-!” 촤아아아! 시몬이 검지를 내리는 것을 신호로, 두 갈래의 촉수 칼날이 당겨진 탄력을 더해 휘둘러졌다. 에메랄드빛 참격이 X자 모양으로 쏘아졌다. “크윽!” 이를 본 2학년 남학생이 뛰어들어 바닥에 손을 짚었다. <서먼 아이언 골렘> 즉시 바닥이 꿈틀대더니 거대한 금속 골렘이 일어나 두 팔을 앞세우는 방어 자세를 취했다. 쩌저저정! 그러나 참격은 금속 골렘의 몸을 두부 가르듯 말끔히 자르며 나아가 벽에 X자의 거대한 흉터를 남기곤 사라졌다. 아이언 골렘이 무너져 내리고, 그 후폭풍에 몇몇 학생들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지켜보던 모두의 눈이 커지다 못해 휘둥그레졌다. “저거…… 맞지?” “어…… 어…….” 1학년 시절부터 시몬 폴렌티아를 떠받쳐 온 소환수, 오버로드가 확실하다. 모두의 흔들리는 시선이 시몬에게로 향했다. ‘진짜 시몬 폴렌티아다!’ 시몬은 처음 등장했을 때의 왕좌에 앉아 턱을 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관조했다. 마치 고요한 석상과도 같은 모습. 그러다 그의 동공이 옆으로 돌아갔다. 촤아아아아! 어느새 전체 2위의 아서가 섬광처럼 들이닥쳐 검을 시몬의 이마를 향해 내지르고 있었다. 까앙! 그러나 즉시 한 자루의 검이 끼어들어 그 공격을 쳐냈다. 아서가 당황해하며 뒤로 물러났다. ‘수호병이 더 있었어?’ 천둥성의 디자인과 흡사한 청색 갑주가 보인다. 성주를 지키는 전신 갑주 차림의 수호병. 그러나 여기까지 오느라 상대했던 다른 수호병들과는 달랐다. 쨍! 쨍! 째쟁! 수호병이 매섭게 검을 휘두르며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아서는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아서를……!” “검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생전 처음 상대하는 검술에 당황한 아서가 빈틈을 보였고, 바로 그 틈을 비집고 돌파한 수호병이 아서를 지나치며 베기 자세를 취했다. 촤아아아아! 아서의 몸에서 분홍빛 장미 잎이 휘몰아쳤다. 그가 한참을 날아가 벽면에 쿵! 소리와 함께 부딪히고 말았다. “잠깐만! 저 수호병!” 지켜보던 한 남학생이 비명처럼 외쳤다. “데스나이트잖아!” 전신 갑주, 흘러나오는 칠흑. 너무 위험해서 그런지 데스 오러 블레이드는 쓰지 않고 일반 검을 들었지만, 투구 사이로 보이는 저 순수하게 둥글둥글한 푸른 안광. 확실히 그 유명한 학생회장의 데스나이트였다. 척. 척. 데스나이트가 걸어오며 시몬을 호위하듯 옆에 선 뒤 검을 바닥에 내리찍는 시늉을 했다. 꿍! 하는 진동이 바닥에 퍼져 나가자 학생들이 움찔거리며 주춤하는 반응을 보였다. “처, 천둥성주가 진짜 학생회장 선배님!” “시험 막바지라 다들 한계인데, 룬 리그 최강을 우리가 무슨 수로 이기란 거야!” 2학년들 대부분이 전의가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 네크로맨서의 의지가 꺾이는 건, 프리스트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만큼이나 치명적이었다. “끝이네.” 늘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던 5위의 루어스만마저 허허 웃고 있었다. 모두가 절망에 빠져 있는 가운데. “나-” 그 눈을 누구보다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키젠에 처음으로 감사해.” 사샤였다. 그녀는 시몬을 보고 의지가 꺾인 게 아니었다. 눈에서 불빛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시몬 오빠랑 큰 무대에서 싸우는 피날레. 너무 완벽해.” “당연하지.” 이번엔 전체 3위의 몰리 공주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숨을 내뱉었다. “우러러만 보던 목표가 저 앞에 있어. 다들 룬 리그를 보면서 내가 저기에 나가면 어땠을까? 내가 시몬 선배님이면 어떻게 했을까? 한 번쯤 상상해 본 적 있잖아.” 그녀가 모두를 돌아보았다. “학생회장 선배님께 도전하고, 가르침을 받을 기회는 앞으로 영영 없을지도 몰라. 이건 기회야.” 그 말에. 비로소 정신을 다잡은 학생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두려운 듯 입술과 다리는 떨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녀의 말대로, 네크로맨서라면 모두가 상승욕이 있고 어딘가 미쳐 있다. 시몬 폴렌티아와 싸울 기회는 흔치 않다. 지켜보던 시몬이 처음으로 턱을 괸 손을 풀고 미소 지었다. [이 천둥성주의 앞에서 보여라. 너희들의 각오를.] 여전한 압박감과 카리스마. 곳곳에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그거 쓸 거지?” 몰리 공주가 스피릿을 끌어올리며 조용히 사샤에게 물었다. 사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10분.” 몰리에게 한 말이었지만, 모든 2학년들이 그 말을 가슴에 새겼다. 사실상 시몬 폴렌티아에게 티끌만큼이라도 이길 승산이 있는 사람은 사샤다. 사샤야말로 330기의 최고의 네크로맨서. 그녀를 위해 10분을 번다. “학생회장 선배님.” 그때 또 한 명의 소녀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모두가 미묘한 미소를 짓더니 물러서듯 비켜주었다. 시몬도 눈을 크게 뜨며 소녀를 응시했다. 시몬의 2학년 시절 학생회장이 된 뒤에 이뤄낸 첫 성과, ‘키젠 입학생 구출 전설’의 당사자. 전체 10위의 하이디 페리스 본인이었다. 그녀가 두 손을 총구처럼 말아 쥔 채 걸어 나왔다. “선배님의 말씀대로, 키젠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어요. 그게 선배님께 은혜를 갚는 길이니까요.” 그녀가 모아 쥔 손을 시몬을 향해 겨누었다. “보여 드릴게요.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강해졌는지!” <페리스 오리지널 – 쉐이디미러(Shady Mirror)> 촤아아아아! 그녀의 몸에 잔상이 일어났다. 마치 여러 명의 페리스가 한 몸에 겹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레디코(Maledíco)> 터어어어엉! 그녀가 저주를 쏘아 보냈다. 뒤이어 잔상도 이를 따라 하듯 똑같은 저주를 발사했다. 흑마법 분신을 만들고, 탈진 저주인 말레디코를 따라 사용하게 하여 한 번에 세 발의 저주를 쏘아낸 것. 페리스는 스텍 쌓기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저주술사로 성장해 있었다. 스으. 이에 왕좌에 앉아 있던 시몬이 손을 휘젓자, 나아가던 저주가 중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캔슬레이션!’ 너무나 쉽게 저주가 파훼되어 버렸다. 하지만 페리스는 포기하지 않고 공세를 이어나갔다. 투쾅 투쾅 투쾅 투쾅 투쾅! 키젠 3학년 수준에서도 보기 힘든 대규모 저주 난사가 시작된다. 그녀가 발사한 저주를 그림자들이 따라 사용하며 저주가 벌떼처럼 날아간다. 이를 상대하는 시몬도 손을 휘저으며 막아냈다. 그러다 서서히 왕좌에서 엉덩이를 떼기 시작했고, 유일한 왕좌에 붙어 있던 한 손도 떼어내어 양손으로 하이디의 저주를 막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학생회장 선배님을!” “일으켰어!” 온몸에 잔상을 그리며 저주를 난사하는 하이디와, 제자리에 선 채 팔을 휘두르며 그것을 쳐내는 시몬. 튕겨 나간 저주가 온통 날아가 벽에 부딪히고 폭발했다. 바닥과 벽면이 얼어붙거나 석화되거나 잡초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칠흑을 끌어올리며 지켜보던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땀이 흥건해지는 걸 느꼈다. “이게 저주전이라니! 수준 뭐 이리 높냐?” “제대로 된 귀족 간의 대결 같은 느낌인데.” 그러나 태연히 저주를 막아내고 있는 시몬과는 달리 하이디는 전신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공격은 그녀가 주도하고 있었으나, 어딘가 자꾸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시몬을 공략하지 못하는 모습. 그때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몰리가 뭔가 알아낸 듯 외쳤다. “상대의 손동작에 현혹되지 마, 하이디! 팔을 휘두르는 동작과는 상관없이 캔슬레이션이 퍼져 있어!” “!” 하지만 한발 늦었다. 하이디가 힘을 모아 쏘아보낸 흑색 저주 한 발이, 시몬이 손끝에서 발사한 저주 한 발에 부딪히자, 그대로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가 하이디의 머리에 정통으로 꽂히고 말았다. 그녀의 고개가 크게 뒤로 밀려 나가며 털썩 두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얼굴이 반쯤 석화되어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다. 시몬의 승리. 시몬이 아주 만족스럽게 손뼉을 한 차례 짝! 치고는 다시 왕좌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와!’ 이를 지켜보던 2학년 학생들의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다 못해 들끓었다. 나도 저 사람과 싸우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시몬 폴렌티아라는 저 압도적인 존재가 마음이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아아아아아!” “가자아!” 2학년들이 일제히 칠흑을 뿜어내며 달려들었다. 이에 시몬도 손을 들어 아공간을 열었고 온갖 소환형 스켈레톤들과 좀비를 비롯한 언데드들을 쏟아내 학생들을 맞이했다. 콰콰콰콰콰-! 비 내리는 듯 쏟아지는 본 스피어들. 시체폭발하는 좀비들. 리노의 황금선을 작동한 채 빠르게 접근하는 구울들까지. 이 모든 걸 뚫고 들어오는 2학년만이 시몬과 겨룰 자격이 주어진다. “전체 41위 마투학과의 리오라스 소렐! 학생회장께 인사드림닷!” 언데드들을 뛰어넘어 온 리오라스가 칠흑을 휘감은 맹렬한 스트레이트를 내질렀다. 시몬은 여전히 왕좌에 앉은 채 고개를 꺾어 피해냈다. 꿍! 하고 왕좌에 작은 주먹 자국이 남았다. “우오오오오!” 첫 공격은 맞지 않았지만, 리오라스는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넘어가 연격을 퍼부어댔고 시몬도 앉은 채로 맞섰다. 타악! 탁! 타앗! 손등으로 주먹의 방향을 비틀고, 손목을 잡아 억제하고, 고개를 꺾어 피하고, 팔꿈치를 때려서 동작에 경직을 준다. 사람이 앉아서도 이렇게까지 잘 싸울 수 있다니! 리오라스는 내심 감탄했다. 물론 동시에 승부욕도 솟아올랐다. “다음 공격은 반드시 맞출 겁니다!” <부분 흑의> 이번엔 큰 동작이었다. 뒤로 쭉 뺀 그의 오른쪽 팔이 가시옷으로 휘감겼고, 칠흑을 전력으로 실은 그대로 시몬의 가슴을 향해 내질렀다. 터어어어어어어엉! 그러나 왕좌에 앉아 있던 시몬의 몸이 말 그대로 사라졌다. 리오라스가 다급히 고개를 들자, 한 손으로 왕좌의 끝부분을 짚은 채 물구나무 하듯 서 있는 시몬이 발을 내리고 있었다. 쩌어어어엉! 망치로 못을 박듯 시몬의 발이 리오라스의 정수리를 가격했다. 리오라스가 그대로 흰자를 보이며 쓰러졌고 시몬이 털썩 다시 왕좌에 앉았다. 한껏 부풀어 올라 있던 성주의 옷깃이 펄럭이며 내려앉았다. “맹독학과 과대!” 취이이이이이이이이이! 시몬이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어느새 몸이 독연기처럼 반 기체화 된 여학생이 시몬의 뒤에서 접근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네비 고르 인사드릴게요!” <베놈 봄버>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왕좌를 중심으로 독가스가 형성되어 펴져 나갔다. 틀림없이 시몬도 들이마셨다. 네비의 특제 독가스는 한번 맡으면 필승. 전신이 마비되는 효과다. 2학년 결투평가 10전 10승의 기술. 시몬의 몸에도 푸른 두드러기가 올랐다. 제대로 독이 걸린 걸 확인한 네비는 안도하듯 숨을 내쉬었지만. “아?” 그 푸른 두드러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진정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몬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그녀를 응시했다. ‘고작 수초 안에 저항계로 독을 풀……!’ 터어어어어어엉! 그녀가 한참을 날아가 저 반대편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아아아아!” “나도! 나도!” “여기도 갑니다! 학생회장님!” 2학년들이 앞다투어 시몬에게 달려들었지만 쉽지 않았다. 무수한 언데드들이 방해했고. -키잉! 최강의 수문장인 데스나이트가 검을 휘두르며 학생들을 벌써 세 명이나 아웃시켰기 때문. 그때 데스나이트가 급히 뒤를 돌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네 상대는 나야!” 까앙! 돌아온 아서가 검으로 데스나이트를 쳐내며 밀어냈다. 아서와 데스나이트의 매치업이 진행되고, 그 빈틈을 다른 학생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진짜.’ 시몬은 천둥성주를 연기하고 있었지만. ‘많이 좋아졌네. 2학년들.’ 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 이글이글이글! 질투심 가득한 표정으로 비장의 기술을 준비하고 있는 사샤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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