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40화 세르네는 방금 붙잡은 남자의 기억을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제가 손을 써보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나의 여왕이시여. 예상대로, 이 남자는 시엘과 가장 가까운 측근이었다. 바힐 일행이 침공했을 때 시엘을 죽음의 무덤으로 무사히 대피시킨 인물이었으며, 화이트랜드를 다스리는 히에로미르와의 협상을 진행하고, 결사에 연락하여 포탈 허가까지 따낸 유능한 신하. 그의 기억의 겉부분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세르네는 시엘이 어디 숨어 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억이 없어.’ 모래 몬스터를 다스리는 건 시엘의 힘이 아닌 사막 여왕의 힘. 분명 아티팩트나 비법 같은 게 있을 것이다. 그녀가 조금 더 깊은 남자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푸욱! 정체불명의 소리와 함께 기억의 장면들이 끊겼다. 갑자기 시야가 현실로 되돌아온다. 세르네는 극도의 두통을 느끼며 뒷걸음질 쳤다. 이내 그녀의 눈에 보이는 건 숨겨둔 칼을 꺼내서 제 목에 틀어박은 남자의 모습이었다. “괜찮냐. 세르네.” 쓰러지는 그녀를 시몬이 늦지 않게 받아주며 혀를 찼다. “망할, 두 팔이 꺾인 놈이 저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호호호! 괜찮아요. 필요한 기억은 모두 캐냈으니까.” 세르네가 아예 몸을 휙 돌려 시몬의 몸을 끌어안는 시늉을 했다. “그보다 현기증이-” “결사의 지독함을 겪어보지 못했으니 방심한 검다, 시몬.” 레테가 성큼성큼 걸어와 시몬의 목덜미를 잡아끌어 세르네에게서 떼어냈다. 자리에 풀썩 넘어진 세르네가 방해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레테를 노려보았지만, 레테는 태연히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도 확인해 보십쇼.” “프리스트 따위가 명령하지 마요.” 어차피 할 일이긴 했다. 세르네는 방금 조사한 심복 외에 쓰러진 다른 남자들의 기억을 모두 추출한 뒤 빠르게 짜맞추고 교차검증했다. 마침내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준비 끝. 이제 구원자를 잡으러 가볼까요?” 시몬과 레테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죽음의 무덤. 온갖 모래 몬스터들이 바글거리는 이곳은 한 사람을 제외하면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장소였다. 구원자 시엘은 바로 이 13번째 무덤에 들어와 있었다. “……따분하구나.” 시엘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호화로운 궁전에 머물다가 이런 곳에 들어와 있으니 기분이 퍽 좋지 않았다. 모든 게 너무나 빠르게 일어나 버렸다. 대륙의 전력이 이쪽 세계로 넘어와 버렸고, 남동생 히에로미르는 죽었으며, 더 오아시스에서 쫓겨난 자신까지. 특히 그렇게나 강했던 히에로미르가 죽었다는 소식은 믿기 힘들었지만, 더 시티의 모든 국민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일명 ‘하늘 처형’. 도망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 주민들을 조롱하던 그를, 시몬 폴렌티아가 공간을 가르고 베어냈다고 하던가. 이후 더 시티는 해방되었고, 더 오아시스에도 대륙의 전력이 들이닥치며 이 모양 이 꼴이다. ‘하지만 나는 동생과는 달라. 반드시 살아남겠다.’ 스윽. 바닥에 누워 있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 이 세계에서는 너무나 낯선 현상이었다. 바로 저 힘 때문에 모래 몬스터의 통제가 어려워졌다. 옐로우랜드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전력이 이렇게 쉽게 무력화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저런 걸 오래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야.’ 바힐이 저 저주를 푸는 순간이 반격의 때다. 계속 본가의 지원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이번 포탈 허가 사건을 겪은 시엘은 본가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래 몬스터들을 이용해 옐로우랜드를 재장악한 뒤, 퍼틸리움이 나오는 화이트랜드까지 차지할 것이다. 그 뒤에 코랄을 다시 제작하면 모든 게 성공적이다. 코랄만 있다면 본가와의 협상도 가능해질 터. 그녀가 반격의 희망을 불태우고 있는 그때. “!” 무덤의 벽면에서 울림이 느껴졌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벽면에 귀를 대보았다. 콩- 콩콩콩콩- 콩콩- 콩- 비밀신호. 식사가 도착했다. 시엘은 자신의 안위에 대해서 만큼은 극도로 용의주도한 인물이었기에, 자신의 심복이라도 직접 대면하지 않았으며 머무는 무덤 내 장소도 계속해서 바꾸고 있었다. “가거라.” 그녀가 지시하자, 모래로 만들어진 뱀이 쉬이이 소리를 내며 좁은 벽돌 구멍의 통로로 나아갔다. 그렇게 잠시 뒤 모래 뱀이 식사가 당긴 쟁반을 문 채 통로로 나왔다. 쟁반 위에는 빵 몇 조각과 수프, 대추야자 몇 개가 다였다. 그녀가 인상을 팍 썼다. “점점 성의가 없어지는구나.” 무능한 부하들이다. 아무리 더 오아시스에서 활동이 어려워졌어도 고작 이 정도 음식 따위밖에 못 마련하다니. 나중에 자신이 여기서 나가면 모든 걸 싹 쓸어버리겠다고 다짐하며 그녀는 빵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 느릿하고 또 느릿하게. 입을 무겁게 움직이며 가만히 빵을 씹고 있던 그녀가 문득 입을 벌리고 손을 집어넣었다. 침 범벅이 된 빵 조각을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한숨처럼 말했다. “당했구나. 조르바.” 터어어어어어어엉!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벽면 한쪽이 무너져 내리며 시몬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령 알아차렸다고 한들!” 콰아아악! 앞으로 내디딘 오른발에 힘껏 힘을 주며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휘둘렀다. “바뀌는 건 없다!” 부웅! 시엘이 다급히 팔을 뻗었다. 허공이 깨진 유리창처럼 벌어지고, 시몬이 휘두른 파멸의 대검이 애꿎은 허공을 베었다. 퍼억! 퍽! 퍼벅! 그러나 그 짧은 틈에 시엘의 어깨와 복부, 발등에 깃털이 꽂혔다. 세르네가 상앗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단념하시죠?” 시엘의 머릿속에 온갖 통증과 무력감이 휘몰아쳤다. 눈앞에서 수많은 환상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졌지만, 구원자 시엘은 그 정신적 압박마저 견뎌냈다. ‘……반격을!’ 쩌어어어어어어엉! 그 순간 별빛처럼 나타난 레테가 어깨로 시엘이 손을 쓰기 전에 강타했다. 시엘이 멀찍이 날아가 반대편 벽면에 부딪히며 엎어졌다. ‘크윽!’ 군단장 시몬 폴렌티아. 성녀 레테 샤르데나. 차기 상아탑주인 세르네 아인다르크의 협공. 저 셋이 한자리에 있는 것도 끔찍한데 힘을 합친 채 좁은 곳에서 자신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엘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여기까지 들어온 건 저들의 엄연한 실책. “이곳은 내 영역이다!” 촤아아아아아! 그녀가 두 팔을 휘두르자 무덤의 사방팔방에서 수천 마리의 모래 몬스터들이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레테가 기다렸다는 듯 두 팔을 펼쳤다. <디바인 배리어> 터어어어어어어어엉! 몬스터들이 입을 벌린 채 투명한 벽에 부딪힌 것처럼 막혔다. 그러나 몬스터의 공세가 계속되며 결계가 빠르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동생과는 달라!” 시엘의 뒤에서도 허공이 유리처럼 깨지는 효과가 일어나더니 무수한 모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푸욱! 푹! 푹! 세르네가 즉시 날개를 펼치고 깃털을 날려서 몬스터들이 나오는 족족 무력화시켰다. 깃털에 칠흑수류계 마법이 걸려 있는지 모래 몬스터들이 축축하게 젖어들며 쓰러지고 있었다. [시몬!] 그리고 시몬의 어깨 뒤에 숨어 있던 헤르세바가 말했다. [저거야! 저 팔찌!] 시엘이 휘두르고 있는 오른팔에, 그녀의 팔목보다 크고 두꺼운 금색 팔찌가 흔들리고 있었다. “접수.” 시몬이 앞으로 뛰어나가며 파멸의 대검에 힘을 주었다. 시엘도 가장 경계하는 시몬의 움직임을 보고는 모래 몬스터를 무너뜨려 모래벽을 만들었지만. ‘공간째로!’ 세르네 덕분에 몸의 기억이 돌아온 시몬이 눈을 부릅뜨며 손에 힘을 주었다. ‘벤다!’ 쩌어어어어어어어어엉! 방패벽이 반으로 갈라지는 동시에, 그 뒤에 숨어 있던 시엘의 오른손까지 날아간 모습이 보인다. 목을 노리는 줄 알고 몸을 낮췄던 시엘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헤르세바!” 촤아아아아! 지팡이가 된 헤르세바가 급히 날아가, 날아가던 팔찌를 지팡이 끝으로 붙잡았다. “오래는 못 버팀다!” 레테가 힘겨운 듯 소리치고 있었다. 그녀가 수천 마리의 모래 몬스터들의 공격을 홀로 막아내고 있었다. 결국 결계가 빠직 빠직 금이 가더니. 째앵! 마침내 결계가 깨지며 모래 몬스터들이 사방에서 밀려들었다. 시몬과 세르네가 바로 다음 방어 기술을 준비하려 했지만. [멈춰.] 처어어억! 처어억! 헤르세바의 명령에 모든 모래 몬스터들이 멈춰 섰다. 그 모습을 본 시엘이 경악하며 눈을 굴렸다. “어, 어떻게 내 몬스터들을……! 너는 누구냐!” [나?] 쏴아아아아아아! 모래로 이루어진 여성의 몸이 지팡이 위에 만들어지며 손을 들어 올렸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 네가 표방하고 있는 그 사람이 아닐까?] 꾸우우우우웅! 근처의 모래 뱀의 통제권을 빼앗은 헤르세바가 모래 뱀을 움직여 시엘의 허리를 물게 한 뒤 그대로 다시 한번 벽에 충돌시켰다. 시엘이 크헉! 소리를 내며 피를 토했다. [잃어버린 걸 가지러 왔어.] 그녀가 시엘의 방 가운데에 놓여 있는 관의 뚜껑을 들어 올렸다. 그 관에는 누군가의 뼈가 들어 있었다. [여기 있었구나. 내 몸.] 헤르세바는 시몬을 돌아보았고, 시몬은 허가한다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키이이이잉! 헤르세바의 지팡이 끝에 매여 있는 아공간 반지가 빛을 발했다. 아공간이 열리고, 이내 언데드가 된 헤르세바. 정확히는 ‘리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치가 저벅 저벅 걸어가며 스스로 뼈를 벌리고, 그 안에 있는 라이프베슬을 자기 손으로 꺼냈다. 스으. 그리고 라이프베슬을 관 안의 가슴뼈 안에 놓는 순간. 쏴아아아아아아아아! 관 내부에 있는 하얗고 반짝이는 고운 모래들이 라이프베슬과 뼈를 덮어갔다. 헤르세바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지팡이와 팔찌도 뼈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내 고운 모래가 뼈를 완전히 뒤덮었다. 그 광경은 마치 뼈에 살이 들러붙는 듯한 광경이었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침내 나체의 여성이 된 헤르세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아.” 육체를 얻은 리치. 사막 여왕이 돌아왔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돌아보더니 이내 웃었다. “기분이 묘하네.” “크윽!” 모래 뱀에 붙들린 시엘이 버둥거리며 발악하듯 외쳤다. “진짜 사막 여왕의 심장을 갖고 오다니……! 하지만 이미 늦었다! 모래 몬스터는 내 힘으로 만들어진 존재들! 그 누구도 완벽히 통제하지 못해!” 그 말대로였다. 멈춰 있던 모래몬스터들이 금방 다시 폭주해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레테가 방어마법을 펼치고, 세르네가 새로운 결계를 펼쳐 막아냈다. “다 같이 죽는 거다! 꺄하하하하!” “과연 그럴까?” 새로운 육체를 수복한 헤르세바가 천장을 향해 날아올랐다. 황금빛 모래가 일어나며 그녀의 몸을 휘감아 옷을 만들어주었다. 헤르세바는 죽음의 무덤 내에서 익숙한 듯 길을 찾았다. 이내 좁은 통로를 통해 빠져나온 그녀가 마침내 모래 구조물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께에에에엑! -끼이이이! 시엘의 명령을 들은 모든 모래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헤르세바는 그 모습을 굽어보며 두 팔을 벌렸다. “비틀린 존재들이여.”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제 푹 쉬어라.” 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엘이 자랑하는 수백만 모래 몬스터들이 일제히 쓰러지며 모래로 변해 흩날리기 시작했다. 외부뿐만이 아니라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헤르세바는 여러 감정이 깃든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깝네.” 후웅! 시몬이 어느새 무덤 꼭대기로 올라와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전부 지운 거지? 네가 통제하면 되잖아.” “시엘의 말대로, 그녀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 전부 없애고 새로 만드는 게 나아.” 그녀가 생긋 웃었다. “그리고 고마워. 꼬맹아. 본래 육체로 돌아가는 걸 허락해 줘서.” “당연히 허락해야지. 나중에 무슨 원망을 들으려고.” 시몬의 말에 그녀가 푸훗 웃었다. 그러고는 정중히 시몬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사막 문명은 앞으로도, 군단과 함께하겠다.” 시몬이 허리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지.” 바로 그 뒤에. 레테가 시엘을 기절시켜 생포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쉽게 따낸 완승이었다. * * * “상황 종료다.” 통신 수정구를 들고 있던 까마귀 요원, 알레이스터가 그렇게 말하며 통신을 종료했다. 그 앞에는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는 바힐이 있었다. 샤아아아아아- 그가 서서히 눈을 뜨자, 세상도 눈을 뜨듯 어두웠던 하늘이 밝아지며 다시 낮으로 변했다. 어둠이 걷히고 태양이 찾아온 것이다. “의외로군.” 알레이스터가 중얼거렸다. “자네가 직접 해결할 줄 알았네만.” “학생에게 경험과 공을 양보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죠.”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린 바힐이 건조해진 눈에 수통에 든 물을 쏟아부은 뒤 미소 지었다. “시몬이 여기에 와 있는 게 느껴집니다.” “그래, 그래. 뒤처리할 일이 산더미일세. 움직이지.” 알레이스터가 걸어갔고 바힐이 뒤를 따랐다. 그가 킁킁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더니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런데 평소의 시몬과는 다르군요. 어쩐지 중대한 기회가 지나간 느낌인데 왜일까요.” “헛소리 말고 빨리 오기나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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