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36화 텔레포트 마법진이 준비되었다. 화이트랜드는 애초에 대륙처럼 마나가 풍부한 세계가 아니었기에, 생각보다 설치에 시간이 걸렸다. 키젠 본부 요원은 마정석 같은 온갖 소품을 총동원해서 간신히 두 명이 넘어갈 수 있는 사양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완성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최대 탑승 인원이 두 명뿐이니, 소식을 전하러 온 본부 요원도 당분간 화이트랜드에 남아야 했다. 시몬과 레테는 고개를 끄덕이고 화이트랜드의 동료들에게 인사했다. “간다.” 기억을 잃은 시몬은 쿨하게 등을 돌렸다. “금방 해결하고 돌아오겠슴다.” 레테는 화사하게 손을 흔들어준 뒤, 그나마 믿을 만한 카미바레즈와 아렌디아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없는 동안 더 시티를 잘 부탁해요.” “네! 이쪽은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쳇.” 카미바레즈는 자신이 못 간다는 사실이 아쉬운 듯 팔짱을 끼고 있었지만, 현장에서 요청한 게 저 두 사람이니 어쩔 수는 없었다. “카미바레즈.” 그때 시몬이 입을 열었다.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돌리자, 시몬이 옷 소매를 걷어 쇄골을 보였다. “원하나.” 그 즉시 카미바레즈의 얼굴이 퐁 하고 붉어졌다. 빠직! 하고 이마에 혈관이 도드라진 레테가 달려와 그의 귀를 잡고 질질 텔레포트로 끌고 갔다. “못살아! 잠시라도 한눈을 팔 수가 없어!” “이 정도야 별거 아닌데.” “폴렌티아 가문은 미쳤어! 온화한 우리 선생님이 시집가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슴까 진짜!” 그렇게 잠시 왁왁 다툼이 있고 난 뒤에 텔레포트 마법진이 작동되었다. 시몬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에이션트 언데드 알라제를 바라보았다. “몰굴라였나? 네가 만들려는 걸 완성하려면 옐로우랜드의 자원도 필요할 텐데 같이 안 가냐?” [몰굴라 제작 진행 중.] 알라제가 통통 튀며 답했다. [지금 필요한 자원, 더 시티에 적재 확인. 추가적인 퍼틸리움 확보 필요.]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확보해 오겠다고 말했다. 이내 모든 준비를 마친 시몬과 레테가 텔레포트 마법진에 올라탔다. 두 발이 붕 떠오르는 감각과 함께 두 사람이 눈을 감았다. * * * 옐로우랜드. 사시사철 눈이 쏟아지는 화이트랜드와는 달리, 사시사철 햇볕이 내리쬐는 사막 지역. 텔레포트를 마친 두 사람은 눈을 뜨자마자 진풍경을 목도했다. -스스스스스스스! -캬라라라라락! 터엉! 투명한 결계에 이빨을 박아 넣은 채 몸부림치는 모래 몬스터들의 모습. 크고 작은 무수한 모래 몬스터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그리고 전면에는 신성연방의 프리스트들과 암흑연합의 요원들이 결계를 펼친 채 버티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도착한 직후에 죄송스럽지만 지원을!” “고생하셨슴다.” 프리스트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 레테의 표정이 흐려졌다. ‘인간적으로 너무 많잖아. 이건.’ 저 멀리 바글거리는 게 전부 모래 몬스터들이었다. 더 시티를 공격한 북신군조차 능가할 정도로 아득히 많은 수. 이들의 뒤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옹기종기 모여든 주민들과 피난민들이 덜덜 떨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시사철 아침인 곳이라고 들었는데.’ 주위가 초저녁이 된 것처럼 어두웠다.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우글거리는 사막의 몬스터들. 사막과 어둠의 조화는 어쩐지 공포스러웠다. 묘한 기분에 진저리치게 된다. “그럼 가볍게 놀아볼까.” 어느새 피어의 본 아머로 무장한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붙잡으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레테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잠시만요. 섣불리 힘을 쓰지 말고 계획을 세우죠.” “계획은 무슨 계…….” 시몬이 말을 멈추더니 생각에 잠겼다. “왜 그러심까?” “헤르세바가 내보내 달라는 것 같은데.” 시몬이 즉시 아공간을 열었고, 그 안에서 지팡이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7군단 미라부대의 대장. 몸은 리치에, 정신은 지팡이에 갇힌 언데드 헤르세바가 드디어 옐로우랜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지팡이 위로 황금빛 모래가 일렁이더니 긴 머리의 여성으로 변했다. [익숙해.] 스으으읍- 하아아아- 그녀는 두 팔을 크게 펼치며 숨을 들이마시는 시늉을 했다. 모래의 몸일 텐데도 호흡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레테는 살짝 소름이 끼쳤다. “변했군.” 시몬이 헤르세바에게 다가왔다. 역시 주인은 뭔가 변화를 눈치챈 모양. 레테가 얼른 물었다. “뭐가 변했단 검까?” “더 아름다워졌어.” 퍼억! 그대로 레테의 주먹이 시몬의 등에 꽂혔다. 시몬이 옆으로 나자빠지고 레테가 씩씩거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적당히 해라 새끼야.” “이 여자가 진짜……!” 옆에서 그런 난리가 펼쳐지고 있는데 헤르세바는 여전히 집중력이 깨지지 않았는지 주위를 훑어보고 있었다. 파차앙! 그때 문제가 발생했다. 모래 몬스터들이 결계 한쪽을 부수고 내부로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겁에 질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붙잡고 몬스터들에게 다가가려는데. [멈춰. 꼬맹아.] “뭐?” 헤르세바가 팔을 세워 들었다. <게하임> 촤르르르르르르르르르! 황금의 성벽이 갑자기 눈앞에서 드높게 솟구쳤다. 시몬이 놀란 눈으로 물러나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눈이 휘둥그레진 채 입을 벌렸다. “……너.” 에이션트 언데드의 비기인 게하임은 에이션트 언데드의 감정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헤르세바의 게하임의 근원은 ‘그리움’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리며, 자신의 던전이 아닌 곳에도 황금의 건물, 요새,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힘. 기억을 잃은 시몬은 헤르세바의 그리움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구구구구구! 황량한 벌판에 성벽과 건물이 솟아나고 있다. 헤르세바는 어느 때보다 쉽게 도시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그녀가 손짓하는 곳마다 금빛 건축물이 솟아올랐고 성곽이 일어났다. 두둥! 가히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인원이 안전하게 있을 만한 도시 요새가 만들어졌다. “어떻게 한 거지?” 시몬이 묻자 헤르세바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잘 몰라. 그냥, 원래 있던 걸 복원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본 그녀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언젠가 여기 온 적이 있었던 것 같아.] “호, 혹시……!” 그때 겁에 질려 있던 주민들이 하나둘 가까이 헤르세바에 다가왔다. 그중의 가장 나이가 든 노인이 말했다. “사막 여왕님 아니십니까!” [?] 헤르세바가 자신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우뚱했고, 시몬과 레테도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한 시선을 교환했다. * * * 옐로우랜드에 도착 후, 드디어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구원자 시엘은 포탈을 타고 대륙의 ‘시작의 동굴’에서 옐로우랜드에 귀환했다. 곧 대륙에서의 공격이 시작될 걸 직감한 그녀가 군세를 모으기 시작할 즈음, 암흑연합의 바힐과 알레이스터, 그리고 신성연방의 브로데릭이 도착했다. 그들의 기습 공세로 시엘은 군대를 제대로 구축하기도 전에 도시에서 붙잡힐 위기에 빠졌고, 결국 궁전을 탈출해 16채의 ‘죽음의 무덤’ 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모든 죽음의 무덤을 일제히 개방.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이 대륙에서 온 사람들은 물론 옐로우랜드 전역을 휩쓸기 시작했다. 납치된 대륙의 주민들을 구출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였다. 브로데릭은 신성 요새를 펼쳐 옐로우랜드의 도심을 보호했고, 바힐은 저 모래 몬스터들의 공격성이 태양빛에 관련이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는 하늘에 저주를 걸어 옐로우랜드를 밤으로 바꾸었다. 준비가 부족했기에 완전히 새까만 저녁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모래 몬스터들의 공격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바힐이 시간을 벌어준 사이 대륙의 연합 세력이 반격을 준비했으나, 시엘이 직접 병력들을 컨트롤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옐로우랜드의 도심부를 공격하고 있었다. 바로 이 즈음 시몬과 레테가 도착한 것이다.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하는 짓이 비슷함다.” 레테가 인상을 썼다. “자기 도시 사람들이 해를 입는 걸 신경도 쓰지 않는 점 말이에요. 역으로 외부인인 우리가 주민들을 지켜야 한다니.” “살기 위해 추하게 발버둥 치는 거겠지.” 시몬이 픽 웃으며 말했다. 어쨌거나 헤르세바의 활약으로 한 차례 공격을 막아낸 시몬과 레테, 그리고 헤르세바는 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을 따라 근방에 있는 유적지를 향해 걷고 있었다. 노인은 헤르세바를 우러러보며 말했다. “……어찌 그런 몸이 되셨습니까.” 다스리던 영지는 던전이 됐고, 주민들은 미라가 됐으며, 헤르세바 본인은 간신히 심장만 라이프베슬로 남은 채 리치가 됐다는 말에 노인은 눈물까지 흘렸다. 헤르세바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모습도 나름 쾌적해.] “이쪽이옵니다.” 마을로부터 제법 떨어진 거리에 있는 텅 빈 사막. 그곳에는 모래에 파묻혀 지붕 정도만 남은 유적이 보인다. 네 명은 횃불을 들고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여길 보십시오.” 노인이 횃불로 벽면 한쪽을 가리켰다. 수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가장 아래에는 사막에 있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두 팔을 위로 올려 경배하는 모습. 그리고 구름이 조금 있다가 그 위에 하늘에 있는 땅의 사람들이 경배하는 모습. 그리고 가장 꼭대기. 시몬과 레테가 동시에 외쳤다. “헤르세바!” 헤르세바로 보이는 긴 머리의 여성이 모든 것을 굽어보는 듯한 그림이 보인다. [이게 나야?] 헤르세바는 복잡한 심정의 표정으로 벽면을 쓸었다. 이내 사막 여왕에 대한 노인의 설명이 시작됐다. 사막 여왕은 눈부신 사막 문명을 건립한 인물이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얼마나 그 영향력이 막강했는지 여왕은 자신의 세계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세계의 사막을 휘하 영토로 보유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옐로우랜드였다. 화이트랜드와는 달리 옐로우랜드는 여왕의 보살핌으로 아주 먼 과거에도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아무리 무덥고 뜨거운 사막이라고 해도 눈부신 사막 문명의 기술력을 지원받아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자기 사막 문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배층인 사막 문명과 여왕이 사라지자, 남은 다섯 사막 영지들은 혼란과 충격에 빠졌으며 그들도 결국 다른 세력에 의해 무너지거나 흡수되었다. 옐로우랜드도 극소수의 사람만 살아남게 되었으나, 사막 문명이 사라진 이곳에 새로운 자들이 나타났다. -내가 새로운 사막 여왕이니라. 바로 결사와 하계의 쌍둥이들이었다. 그중에 쌍둥이 누이 시엘은 이 세계를 장악한 뒤, 스스로 사막 여왕임을 자처하며 사람들을 부려 이곳의 자원을 확보했다.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이곳에 데려와 노동력으로 쓰는 건 덤이었다. 토착민들의 저항도 있었지만 어쩐 연유인지 그녀는 사막 여왕의 힘의 일부를 쓸 수 있었다. 바로 모래 몬스터들을 만들고 통제하는 것. 그녀는 자신의 그 방법으로 ‘죽음의 무덤’에서 무수한 모래 몬스터들을 탄생시키며 다가오는 전쟁을 준비했다. [자, 잠깐만. 좀 혼란스러운데.] 헤르세바가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죽기 전엔 사막 여왕이었고, 여기도 내 영역권이었단 거지?] “그러하옵니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건 저도 잘…….” “문명이 누군가의 습격을 받은 것 같슴다.” 레테가 대신 말했다. “결사든,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든, 결국 문명은 파괴됐고 헤르세바 당신은 언데드로서 이렇게 남아 있게 된 거죠. 다행히 생전의 권능은 사용할 수 있어서 당신 소유의 던전, 그러니까 당신의 영지로 상대를 끌어들여 싸울 수도 있는 거구요.” [으음.] “자초지종은 모르겠지만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시몬이 팔짱을 꼈다. “시엘을 쓰러뜨리고, 그녀가 사용하는 여왕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게 된다면-” “지금의 상황을 뒤엎을 수 있을 검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이트랜드의 열쇠가 북신 자이로스였다면. 옐로우랜드의 열쇠는 사막 여왕 헤르세바였다. “준비해, 헤르세바.” 시몬이 말했다. “중요한 레벨업 이벤트다. 빼앗겼던 걸 되찾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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