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29화 관제탑 위. 다비나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몬이 해냈어!’ 북쪽에서 불어오는 북풍과 함께 나타난 저 하얀 군사들. 절망적인 전력 차를 단번에 뒤집어 버렸다. 다비나는 고개를 들고 깊게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설원의 차가운 냉기가 이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숨이 턱 막히고 갑갑한 도시의 열기보다는, 이런 야생의 시원스러운 냉기가 그녀에겐 더 좋았다. -나다. 그때 히에로미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관제탑 주위에서 다비나를 감시하고 있던 수호단원들의 통신 장비로부터 나온 음성이었다. -전시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화로’ 계획을 진행한다. 수호단도 전투에 합류하라. ‘화로 계획?’ 통신을 훔쳐 들은 다비나의 눈에 의문이 깃들었다. ‘무슨 소리지?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수호단원이 다시 물었다. [혁명군 부단장은 어떻게 합니까?] -죽여라. 쿵! 수호단원이 즉시 다비나의 어깨를 짓눌러 넘어뜨리고는 검집에서 코랄 에너지가 일렁이는 검을 뽑아 들었다. 다른 수호단원들도 모두 마스크 너머의 살벌한 눈으로 다비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혁명군 부대장 다비나를 이 자리에서 처형한다.] 그녀를 넘어뜨린 수호단원이 검을 들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 가만히 수호단원을 바라보던 다비나가 갑자기 그의 손가락을 꽈악 깨물었다. 수호단이 인상을 쓰며 손을 놓았지만, 다비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똑바로 무릎을 꿇고, 베라면 베라는 듯 목을 편하게 늘어뜨린 채 밖의 경관을 바라보았다. 목숨 따위 아깝지 않다. 마지막으로 히에로미르의 군사를 물리치는 저 하얀 군사들의 모습을 시야에 담은 채 눈을 감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유언은 생략하지. 나쁘게 생각 마라.] 그렇게 말한 수호단이 다비나의 목을 향해 검을 내려쳤고. 촤앙! 그보다 빠르게 번쩍이는 한 줄기 섬광이 지나갔다. 수호단원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고 검을 내리그었으나, 다비나의 목은 멀쩡했다. [무슨!] 다시 보니 손에 든 검이 깔끔하게 잘려 있었다. 뒤이어 관제탑 위로, 난데없이 거대한 하얀 갑주의 성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냐!] 수호단원들이 일제히 검을 뽑고 달려들었지만, 번뜩하는 검광이 일어나는 동시에 그들이 피를 뿌리며 감지탑에서 떨어져 내렸다. 한 명 한 명이 장갑차보다 더 강한 전력이라는 수호단을 일격에 베어버리는 힘. 그 활약을 목도한 다비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신은……?” [내 이름은 시그문드 아한델.] 추락하는 수호단원들로부터 관제탑을 향한 폭격 요청이 전달되고, 즉각 관제탑 꼭대기를 향해 도시 곳곳에서 무수한 미사일들이 날아왔다. 그러나 시그문드는 태연했다. 빛의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갑자기 태양이 뜬 것처럼 밝아졌다. 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눈부신 빛에 손으로 눈을 가려야 했다. <성검기 – 디바인 카리타스> 그가 성검을 휘두르자 맹렬한 빛의 참격이 360도 방향으로 뻗어 나가며 쏟아지는 모든 미사일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제이지를 위해 싸우는 남자다!] ‘시그문드!’ 시그문드라면 시몬 일행 중 한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그를 구하러 갔던 아렌디아가 성공한 것 같았다. 퍽! 퍽! 그때 그 갑주의 어깨에 앉아 있는 아렌디아가 마구 발길질을 해대며 악을 질렀다. “거기서 나와! 열 뻗치니까 당장 내가 만든 갑옷에서 나와악!” [무, 물론 제이지뿐만 아니라 아렌디아를 위해서도 조금은……!] “나오라고! 내가 당신 같은 놈을 위해 몇 주나 아득바득 고생한 거 생각하면……! 아우!” 그다지 사이가 좋지는 않은 것 같았다. * * * 터엉! 아무튼 상황이 정리되고, 다비나도 시그문드의 반대쪽 어깨에 앉은 채 구출되었다. 시그문드가 물었다. [어디로 갈까?] “일단 혁명군 병력이 집결한 곳으로…….” 그렇게 말하던 다비나가 갑자기 입을 텁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찜찜해. 뭐지? 왜 이렇게 찜찜하지?’ 방금 처형당할 뻔한 것 때문에 머리가 하얘져서 잠시 생각이 멈췄다가, 이제야 두뇌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화로’ 계획을 진행한다. 수호단도 전투에 합류하라. 그랬다. 화로 계획. ‘어디서 봤더라. 어디었지?’ 다비나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러자 무의식의 수면 아래에 잠겨 있던 한 가지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분명히 1년 전 혁명가가 보낸 자료에 화로 계획이란 게 있었다. 그때의 혁명가는 아직 히에로미르에게 잡히기 전이니 자료의 신빙성은 확실했다. 히에로미르가 벌이려는 짓들 중에는 워낙 기상천외하거나, 상식과 인간성이 배제된 끔찍한 것들이 많아서 머리가 뒤죽박죽했지만, 그중에 화로 계획은 특히나 미친 짓이라서 기억났다. ‘화로, 화로…… 화로?’ 그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도시의 중앙에 위치한 화로의 탑. 더 시티에 온기를 부여하는 그것. 그리고. ‘!’ 마침 히에로미르가 그 화로의 탑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모든 기억이 파바밧 불똥을 튀기며 떠올랐다.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그녀가 손바닥으로 시그문드의 갑주를 마구 때렸다. “이봐 깡통! 빨리빨리빨리 움직여! 꺄아아아악!” [뭘 빨리? 어디로 가라고?] “지금 감히 내가 만든 걸작을 깡통이라 부른 건가요?” 아렌디아가 버럭 화를 냈지만 지금 다비나는 사과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가 앞을 가리켰다. “히에로미르가 화로의 탑으로 가는 걸 막아야 해! 네가 가서 시간을 끌어줘, 시그문드!” 그렇게 말한 그녀가 갑자기 어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여긴 지상으로부터 수백 미터 위 높이였다. 저 인간이 미쳤나? 시그문드와 아렌디아의 표정이 아연실색하게 변했다. “아렌디아는 날 따라와! 둘 다 서둘러!” 낙하하는 중에 다비나가 버럭 외쳤다. 아렌디아가 ‘아오!’ 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지? 아렌디아.] “저 사람, 이 세계에 관해서는 척척 알고 있는 현지인이에요! 이유 없이 저러지는 않을 테니까 일단 시키는 대로 하죠!” 아렌디아도 무릎을 굽히고 뛰어내린 뒤, 떨어지는 다비나를 붙잡고 신성을 일으켜 낙하 속도를 조절했다. 셀레스티얼 프로텍터를 입은 시그문드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가고 있는 거구의 남자를 응시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저 남자를 막으면 되는 거지?] 시그문드가 속도를 높여 히에로미르에게 나아갔다. * * * 시그문드는 히에로미르에게 보내고, 지상에 내려온 다비나와 아렌디아는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화로 계획? 구원자가 그 계획을 실행하는 걸 막으려 시그문드를 보낸 거라구요?” “맞아! 하지만 시그문드만으로는 역부족이야!” 상대는 그 히에로미르다. 시그문드 아한델이 수호단을 단칼에 무찌른 걸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에로미르를 쓰러뜨리기에는 부족하리라 생각했다. “시몬 폴렌티아! 아니면 레테 샤르데나! 둘 중 누구라도 찾아내야 해!” “그럼 잠깐 멈춰봐요! 시몬 폴렌티아가 어딨는진 잘 모르겠지만 레테 성녀님이라면……!” 아렌디아는 즉석에서 자신의 이능을 사용해 포대를 만들어냈다. 포문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신성 아공간에서 꺼낸 조명탄을 여러 발 쑤셔넣고는 하나를 발사했다. 피이이이이잉- 조명탄 하나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퍼엉! 신성 폭죽이 터졌다. 잠시 물끄러미 아렌디아를 지켜보던 다비나가 초조한 듯 발을 동동 굴렸다. “지금 더 시티 전체가 전투 중인데 그런 걸로 레테가 눈치채 줄까?” “아! 프리스트라면 알아챌 거라구요! 좀 느긋이 기다려 봐요!” 두 발. 세 발. 신성 폭죽이 연달아 하늘로 날아가 펑펑 터졌지만 좀처럼 반응이 없었다. 초조해진 다비나는 팔짱을 낀 채 신발로 바닥을 툭툭 두들기더니 결국 ‘악!’ 하고 소리치며 걸어갔다. “그냥 내가 알아서 찾아볼……!” “아!” 그때 네 번째 조명탄이 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별에 부딪혔다. 별은 조명탄을 부수고 내려오다가, 이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서서히 회전하더니 근방의 공장 지대 한쪽에 떨어졌다. “레테 성녀님이 응답했어요! 저쪽이에요!” “……이게 진짜 되네.” 두 사람은 바로 별이 떨어진 방향으로 달렸다. 별은 떨어지고도 하늘에 긴 꼬리를 오랫동안 남겼기에 쫓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 후. 파아아앙! 공장 지대 한복판에서 한 무리의 수호단원들과 싸우고 있는 레테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가 주먹을 휘두르자 별빛이 펑펑 터지며 수호단원들이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레테의 솜씨인 듯, 코랄 함선 세 척이 차곡차곡 쌓인 채 전소되고 있었다. “무슨 일임까. 바쁜데.” 마지막 수호단원을 주먹으로 쳐서 날려 보낸 레테가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다비나가 레테를 향해 달려오며 외쳤다. “큰일 났어! 레테!” “?” 드디어 다비나가 ‘화로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레테와 아렌디아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가, 이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진짜요? 히에로미르가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겠슴까?” “무조건 해!” 다비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전황이 불리해질 테니까 일단 벌이고 보는 거지! 히에로미르는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야! 당신도 화이트랜드의 비극을 봐왔으니 잘 알 거 아냐!” “……하아.” 부정할 수 없었다. 레테가 이를 갈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제가 직접 가보겠슴다. 두 사람은 오지 말고 비교적 먼 곳에 피해 계십쇼.” 레테가 발을 딛고 날아올랐다. 즉각 별 하나가 등 뒤에서 날아와 그녀를 떠안은 채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화로의 탑. 후욱! 허억! 시그문드는 기어이 히에로미르를 쫓아오는 데 성공했다. 히에르미르가 탑 밖에서 코랄 사격을 명령했지만 기어이 모조리 돌파하며 화로의 탑 심층부까지 추격하는 데 성공했다. 셀레스티얼 프로텍터를 입은 시그문드가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사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히에로미르가 태연한 얼굴로 그를 지켜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어째서 나를 막는 건가? 시그문드 아한델.] 히에로미르가 안타깝다는 투로 물었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진정시킨 시그문드가 다시 한번 성검을 고쳐 쥐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야 내 동료가 너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으니까.] [그들을 믿나?] 히에로미르가 저벅 저벅 옆으로 걸어가며 불쑥 물음을 던졌다. [너는 기억을 모두 잃었을 텐데, 그들이 선의를 가지고 네게 접근했다고 생각하나? 그들은 정말 네 아군인가? 그들의 뭘 믿고 신뢰하지? 단지 같은 세계 사람이라서? 오, 시그문드.] 히에로미르가 이죽거렸다. [내가 너를 가둔 건 그들로부터 너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헛소리 집어치워!] [네가 온 세계인 신성연방은 화이트랜드보다 더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다. 종교가 곧 법이며, 종교에 반하는 자들은 전부 처형당하지. 그곳의 상층부는 교리를 자신의 뜻대로 해석하여 주민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 내 정보에 따르면 기억을 잃기 전의 너는 그곳에 늘 회의감을 느꼈다. 심지어 목숨을 끊으려고까지 했다더군. 느껴지지 않나?] 히에로미르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기억에는 없지만, 네 마음에 남아 있는 ‘망설임’이.] 그 말을 들은 갑주 안 시그문드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를 악물고 외쳤다. [설령 그렇다고 한들 상관없어! 나는 제이지를 만나기 위해 어떤 대가도 치를 거다!] [오, 그래. 연인이 그쪽 세계에 있나.] 히에로미르가 두 팔을 벌렸다. [그렇다면 더더욱 그들을 내치고 나를 따라야 하지 않나? 나는 너를 데려온 것처럼, 다시 데려다주는 것도 가능하다. 나를 도와 저들을 물리치고 제이지를 만나러 가라. 그것이 네 목적이 아니더냐.] 시그문드는 눈을 한 차례 감고 심호흡을 한 뒤, 이내 눈을 뜨며 성검을 휘둘렀다. <성검기 - 디바인 카리타스> 쿠콰콰콰콰콰콰! 바닥을 타고 성검의 참격이 날아갔다. 히에로미르가 인상을 구기며 팔을 휘둘러 참격을 쳐냈다. [감히……!] [나는 기억을 잃었지만 장님이 아니야. 히에로미르.] 고오오오오오! 아까 참격을 날릴 때보다 더 많은 양의 신성이 검에 응집되기 시작했다.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절망을! 고개를 숙이고 걷는 걸음걸이를! 공포에 질린 얼굴을! 괴로워하는 영혼을!] 쿠콰콰콰콰콰콰콰! 지금까지의 시그문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방대한 신성이 뿜어져 나왔다. [네가 악인인 건 대면한 순간부터 느낄 수 있었다. 히에로미르!] […….] [나는 너 같은 악인을 보면 전신에 두드러기가 돋고 이가 갈려서 견딜 수가 없어.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저쪽 세계에서도 악인을 처단하는 일을 했겠지!] 히에로미르가 쯧 하고 혀를 차며 웃었다. [너도 다비나처럼 ‘악’ 어쩌고저쩌고를 나불거리나?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유치한 소리구나.] [나는 제이지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 시그문드의 신성이 폭발할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의 미소를 위해 싸우겠다!] <성검기 – 디바인 저스티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거대한 신성의 참격이 쏘아져 나왔다. 표정이 조금 굳어진 히에로미르가, 이번에는 몸으로 막지 않고 급히 공간을 열어 참격을 다른 방향으로 흘려 버렸다. 그러고는 통신 장비를 작동시키고 중얼거렸다. [주포 사격 전량 개시.] 투콰아악! 투콰아아악! 무려 다섯 방향에서 벽을 뚫고 들어온 굵직한 코랄 광선이 시그문드에게 부딪혔다. 그러나 시그문드는 성검을 앞세운 채 버텨냈다. 콰콰콰콰콰콰! 마침내 단신으로 함대의 주포 사격을 막아낸 시그문드가 함성과 함께 히에로미르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시그문드 아한델이다!] 믿음의 각성. 그의 몸에 코랄 광선을 방불케 하는 방대한 양의 신성이 폭발하듯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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