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28화 10시간 전. 전이기를 지키던 카르보스 장군의 군대를 무너뜨린 시몬은 바힐의 조력을 통해 전이기의 구성 요소를 낱낱이 분석했다. 바힐은 공간계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려주진 않았지만, 시몬이 본인의 이해를 바탕을 풀어나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시몬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원의 원리를 모두 분석하고 파악한 다음 짜 맞춰서 무사히 전이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전이기를 통해 대륙에서 이쪽으로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자이로스가 머물고 있는 프로스트 필드의 본진. 그곳을 더 시티 인근으로 옮기면 자이로스도 그 주위로는 문제없이 활동할 수 있었으며,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무수한 북신의 언데드들을 운용하는 게 가능해진다. -수고했습니다, 시몬 학생. 군대를 모두 붕괴시킨 뒤, 바힐이 직접 시몬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더 시티까지는 이걸 타고 가십시오. 바힐은 놀랍게도 코랄 전함 한 척을 탈취했다. 조종사에게도 저주를 걸어, 그들이 시몬을 카르보스 장군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시몬 일행을 무사히 더 시티로 태워다 줄 것이다. 시몬과 레테, 그리고 워턴이 즉각 전함에 탑승했다. -그럼 나도 가볼까요. 바힐도 은근슬쩍 전함에 올라타려 했으나, 뒤에서 그의 어깨를 붙잡는 한 사람이 있었다. -자네는 그쪽이 아닐 텐데. 까마귀 요원 중에서도 선임자로 손꼽히는 알레이스터였다. 바힐의 다음 순번으로 포탈을 타고 넘어 온 암흑연합의 일원이었다. 바힐이 혀를 찼다. -늙은이가 쓸데없이 빨리 오긴.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지 말게. 그보다 자네 임무는 그쪽이 아니야. 알레이스터가 대륙의 상황을 설명했다. 대륙의 합동 지휘부가 구원자 시엘을 궁지로 몰아넣어 포탈을 열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했고, 덕분에 이렇게 바힐과 알레이스터, 신성연방의 브로데릭 교수가 넘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시엘도 다시 옐로우랜드로 복귀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우리는 옐로우랜드로 가야 하네. 그곳에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삼각 구조물이 16개나 남아 있는 걸 확인한 이상, 그쪽도 이쪽 못지않게 위험해. 화이트랜드는 제7군단장에게 맡기게나. 그가 고개를 돌려 브로데릭을 보았다. -신성연방 측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오. -하하하! 그러지! 이번 계획의 핵심은 두 쌍둥이 구원자를 ‘모두’ 잡는 것. 둘 중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바힐과 브로데릭, 그리고 알레이스터터는 옐로우랜드로 향했고, 시몬 일행을 태운 함선은 더 시티로 출발했다. * * * 그렇게 현재. 콰콰콰콰콰콰콰콰! 7군단 소속 자이로스의 언데드 병력이 더 시티의 성벽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얼어 죽은 시체, 북방 돌연변이, 그리고 설귀를 비롯한 강추위에 더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는 언데드들이 검푸른 힘을 뿜어내며 달려들었다. “지금이다!” “드디어 시몬이 말한 지원군이 도착했다! 열어라!” 쿠구구구구구! 사기가 오른 혁명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끝까지 목숨을 걸고 사수하던 개폐 장치를 작동시키자 거대한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언데드들이 열린 성벽의 틈으로 몰려들었다. 이를 보고 있던 히에르미르가 코끝을 찌푸리더니 하늘을 보며 통신했다. [내가 말하는 좌표로 포격 개시.] 그가 좌표를 말했고, 전함에서 당황한 음성이 돌아왔다. -저, 정말로 그쪽으로 쏩니까? [개시.] 투콰아아악! 공중 전함들이 난데없이 더 시티의 빌딩 아래층을 향해 발포했다. 연달아 쏟아지는 포격에 빌딩들이 무너져 내렸다. [수호단, 다비나를 감시해라.] [예!] 다비나를 정예병들에게 맡긴 히에로미르가 직접 날아갔다. 그는 무너지고 있는 빌딩의 아래 부근에 공간을 열어 무너지는 빌딩의 잔해를 통째로 담은 뒤, 반대쪽 팔을 내뻗었다. 처억! 방금 혁명군이 열어젖힌 성문 위로 공간의 틈이 열렸고. 콰르르르르르르-! 무수한 건물 잔해들이 그대로 쏟아져 내려와 성문의 틈을 눈 깜짝할 사이에 메워 버렸다. 성문을 열고 있던 혁명군 일원들은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걸 이렇게……!” 모두가 목숨을 걸고 성문의 개폐 장치를 사수했건만 히에로미르가 너무나 쉽게 성문을 잔해로 막아버린 것이다.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할 생각인 듯, 히에로미르는 포격으로 근처의 산을 무너뜨리고 그 토사까지 위에서 붓고 있었다. 그러나. 저벅! 저벅! 저벅! 마치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북신의 군대를 이끄는 시몬과 자이로스는 아예 다른 방향의 성벽을 향해 걷고 있었다. [헛수고를 하는구나.] 잔해로 성문을 막는 모습을 본 자이로스가 비웃음을 터뜨리며 시몬을 보았다. [그렇지 않나? 요나 님의 아들이자 나의 주군이여.] “그렇네. 자이로스.” [이렇게 둘이서 군대를 거느리고 있으니 요나 님과 함께하던 나날이 떠오르는구나!] 잠시 자이로스의 눈에, 장난스럽고 유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요나의 모습이 시몬과 겹쳐졌다가 사라졌다. -저 멍청한 새끼들을 봐, 자이로스! 우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봐! 성벽 위의 적을 보며 배를 잡고 깔깔 웃어대는 요나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아 장성한 아들과 이렇게 함께 대군을 이끌고 적의 영지를 공격하게 되다니! 감격스럽고. 경탄스러웠다. 북신의 속삭임에 당하여, 2군단과 허송세월을 보낸 지난 시간들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지금의 모든 순간이 새롭게 느껴졌다. [거리의 제약으로 헤르세바라는 여자의 능력으로만 등장하는 게 퍽 아쉬웠다! 내가 머물던 프로스트 필드를 이곳으로 전이시킨 전략! 훌륭하다. 역시 요나 님의 아들이군!] “고, 고마워.” 시몬이 쓰게 웃었다. 여전히 자이로스의 광적인 충성심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나한테 맡기…….] 그때 자이로스의 말이 멈췄다. 시몬이 왜 그러냐고 물어보기 무섭게. [웃기는 소리!] 갑자기 자이로스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그의 내면에 깃든, ‘북신의 잔존 사념’이 일어난 것이다. [드디어 북부를 지키던 2군단과 북부대공에게서 벗어났다! 이곳을 우리의 새 세상으로 만들……!] 퍽! 자이로스는 자신의 얼굴에 주먹을 후려쳐 잔존 사념을 입 다물게 만든 뒤 ‘별일 아니다!’ 하고 외쳤다. 시몬이 쓰게 웃었다. ‘저건 참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니까.’ 처억. 자이로스가 성벽을 향해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쩌적. 쩍. 성벽의 한 부분을 중심으로 서리가 끼는 듯하더니, 그것이 성벽 전체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자이로스 오리지널 - 겨울 손아귀>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저적! 눈 깜짝할 사이에 성벽 한 구역 전체가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이어서 자이로스가 팔을 확 내리자, 얼어붙은 성벽이 유리창처럼 깨져 나갔다. 두꺼운 더 시티의 금속 성벽이 무너지고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전진! 전진하라!] 자이로스가 검을 세웠다. [적에겐 죽음을! 이 세계의 생존자들에게는 시몬 폴렌티아라는 위대한 이름을 각인시켜라! 우리는 7군단에서도 최강-] 그의 강렬한 외침이 소용돌이쳤다. [자이로스군이다!] -키에에에에에에에! -크워어어어어어! 히에로미르가 성문을 막은 보람도 없이, 자이로스의 군대가 검푸른 칠흑을 뿜어내며 무너진 성벽의 틈으로 진입했다. ‘그럼 나도 움직여 볼까.’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히에로미르를 잡아야 했다. 시몬도 성문을 지나 들어오고 있는데. “이런 저력을 얼마나 더 숨기고 있는 건지 궁금할 정도임다.” 성벽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레테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시몬이 씩 웃었다. “앞으로도 기대해 줘.” 북신군이 물밀듯이 쏟아지며,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던 혁명군과 주민들을 도와서 히에로미르의 군대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코랄 전함이었다. 저 포격만큼은 자이로스의 지상군 병력으로는 막을 수가 없었다. “우리 쪽 군단이 공격할 수 있도록 함선의 고도를 강제로 낮춰야겠어.”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가능할까, 레테?” “누구한테 하는 소림까.” 우우웅! 레테의 눈동자가 별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녀가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자, 밤하늘이 카펫처럼 펼쳐지고 그 위에서 무수한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레테의 오리지널인 <유성우>.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의 향연에, 공중 전함은 코랄 배리어를 펼치며 저항했다. “소용없어.” 레테가 화력을 올리자 별들이 그야말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고, 결국 전함들이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엄폐물이 있는 빌딩과 공장 쪽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내려가면 민간인 피해가 예상되기에 레테도 섣불리 별을 떨어뜨릴 수 없었지만. [들어가.] 시몬이 절대명령을 내렸다. 건물의 벽면을 타고 뛰어오른 백귀들과 자이로스의 언데드들이 냅다 전함에 올라탔다. 부스터 장치건 주포 입구건 전함의 틈이라면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며 내부에서 공세를 벌였다. 전함이 마비가 되어갔다. [철저하게.] 시몬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부숴 버려.] 전함 곳곳에서 시체폭발이 일어나며 함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 * * 더 시티, 중앙 광장. -크워어어어어! -캬르르륵! 좀비집사와 마코의 백귀부대가 가까스로 버티던 중앙 광장에도 자이로스의 병력들이 밀려들었다. 코랄 주포로 무장한 더 시티 장갑차는 막강했지만, 무한한 물량을 막지는 못하는 법. 몬스터들이 떼로 달라붙어 흔들어대니 버틸 리가 만무했다. 결국 장갑차들이 펑펑 터지거나 조종사들이 도망치는 등 난리가 났다. [집사님.] 그간의 전투로 몸 곳곳이 상처투성이인 마코가 고개를 돌렸다. 마찬가지로 부러진 안경에, 박살 난 밀대 걸레를 손에 든 채 벽에 기대어 있는 좀비집사가 웃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기대했던 것보다 7군단의 저력이 대단하네요. 집사님이 5군단에 있었을 때도 저런 자들을 상대했나요?] 좀비집사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북신군에 대해선 소문으로만 들었습니다. 펜타모니엄과 그늘성에서는 제한적으로 상대했지만, 만약 저들이 현장에 있었다면.] 좀비집사가 픽 웃었다. [5군단은 훨씬 더 간단히 패했겠죠.] 북신의 언데드들이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갔다. 에르제베트와 어린 라미아가 있는 주거지 쪽으로도 북신군 언데드들이 뛰어들어 왔다. 에르제베트는 이제 좀 쉬겠다는 듯 자리에 드러누웠고 북신군이 알아서 물량으로 압도했다. 송장거미 부대에게 악몽을 선사했던 화염방사기도 가스가 다 떨어지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 쥴이 지키던 지하 투기장에서도 북신군 언데드들이 몰려왔다. 로프를 타고 끊임없이 투기장으로 쏟아져 내려오던 수색꾼들이 이빨에 물어뜯기고 발톱에 할퀴어지며 쓰러졌다. “지원군이 왔다!” 더 시티의 인간들에게 ‘언데드’란 아주 말 잘 듣는 우리 편이고, 조금 겉모습이 징그러울 뿐이지 든든한 조력자였다. 처음 만난 게 통제불능의 언데드가 아니라 똑똑한 군단의 언데드였으니 그런 이미지가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 모두가 환호하며 언데드들을 반겼다. “고맙소! 아주 고맙소! 브라더!” 지하 투기장의 직원 한 명이 설귀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고 마구 악수하거나 포옹했다. -키! 키! 르뭔! “응?” “무슨 말을 하고 싶나 본데?” 설귀 언데드 한 마리가 일그러진 발음으로 말했다. -키! 키르뭔 풜! 레디야! “키으만 뭐? 뭐라고요?” 투기장 직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키르뭔 풜! 레디야! “키이만 불레다?” 설귀가 답답하다는 듯 다른 동료의 등에 꽂혀 있는 7군단의 깃발을 가리키며 키르뭔 풜 레디야를 외쳐댔다. 어느 쪽이건 대화가 안 되어 답답해하는 가운데. “시몬 폴렌티아라고 말하는 것 같소.” 넝마가 된 몸으로 주저앉아 있는 쥴이 그렇게 말했다. 다들 눈이 둥그레진 채 쥴을 돌아보았다가 다시 설귀 쪽을 보았다. “아! 시몬 폴렌티아! 그분이 여러분을 보냈다고?” “그러니까 형제들이 시몬 폴렌티아의 부하들이란 거지?” 언데드들이 고개를 휙휙 끄덕이더니 두 팔을 번쩍 들고 깃발을 휘두르며 외쳤다. -키르뭔 풜! 레디아! “그래! 그래! 시몬 폴렌티아!” 시몬 폴렌티아! 시몬 폴렌티아! 곳곳에서 시몬의 이름이 연호되었다. 비로소 북신의 언데드들은 만족해하며 찬양을 한 번 더 강요하고는 7군단의 깃발을 휘날리며 벽을 타고 올라갔다. 곳곳에 시끄럽게 시몬의 이름이 연호되는 가운데, 쥴이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언데드들에게 이상한 걸 가르쳤구려. 시몬.” 모든 건 자이로스의 독단이었지만. 쥴의 오해는 아주 나중에나 풀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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