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27화 더 시티는 지옥의 화마로 변해 있었다. 히에로미르의 명령으로 민간인 혁명군 가릴 것 없는 대규모 파괴 행위가 벌어졌다. 함대가 하늘에서 포격을 가하고, 무장한 수색꾼들이 거리에 돌아다니는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구원자의 정화. 지금 있는 기반을 싹 밀어버린 뒤, 남은 낱알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것. 구원자가 정복한 세계의 말로가 어떤 건지 지금 이 더 시티에 나타나고 있었다. [여기가 밀리면 도시 전체가 밀릴 겁니다.] 더 시티 중앙 광장. 무장한 더 시티군의 기갑 병력을 정면에서 틀어막는 건 좀비집사와 마코였다. 청소 도구로 무장한 백귀들도 광장에 열을 지어 서 있었다. 쿠구구구구! 쿠구구구! 그리고 수색꾼들이 조종하는 장갑차들이 광장에 들어왔다. 코랄 포격을 준비하는 듯 포대에서 보랏빛이 일렁이고 있다. 좀비집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인간 여러분은 물러나십시오.] “그럴 수 없소!” 조잡한 장비로 무장한 더 시티의 주민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무기를 붙잡았다. “더 시티의 운명을 아무 상관 없는 외부자들에게만 맡길 수 없소!” “우리도 싸우게 해주세요!” […….] 뭐라 말해도 말릴 수 없을 만큼 분위기가 뜨거웠다. 좀비집사는 부러진 외눈 안경을 치켜 올린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내 포격이 시작된다. 투콰앙! 투쾅! 선두에서 밀대 걸레를 든 마코와 백귀들이 날아오는 포탄을 튕겨내거나 방향을 비틀었다. 그사이 주민들은 파수꾼들로부터 빼앗은 박격포를 들고 보랏빛이 미약한 포탄을 날려냈다. “끝까지 싸워라!” “여기서 밀려선 안 돼!” 대광장에서 치열한 전면전이 벌어지는 사이, 지하 투기장 최하층에서도 전투가 한창이었다. “커헉. 큽!” 마검 사용자 쥴이 전신이 피칠갑을 한 채 피를 줄줄 흘리며 서 있었다. 지하 세계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지하 투기장에는 전함의 코랄 포격이 쏟아졌고, 이제 보병인 수색꾼들을 투입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로프를 걸고 내려오는 수색꾼들의 수는 무수히 많았지만, 쥴을 비롯해 전투 가능한 지하 투기장의 사람들은 수가 한참 적었다. “……역시 자네야말로 지하 챔피언이야.” 전 지하 투기장 챔피언인 샤크가 피를 토하며 말했다. 그의 복부에는 창이 떡하니 꽂혀 있었다. “자네가 우리 같은 쓰레기들을 이끌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네.” “일어나시오.” 비틀거리던 쥴이 숨을 헐떡이며 마검을 부여잡았다. “늘 말하던 것처럼 도전해서 챔피언 자리를 되찾아야 할 것 아니오.” “……하하!” “다음 공격이 옵니다!” 그들이 더 시티의 정규군에 지하 투기장을 내주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사이, 더 시티의 주거지역도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었다. [지치네요.] 며칠 내내 싸우고 있던 에르제베트가 털썩 등을 기대며 말했다. [군단의 전력이 온전했더라면, 아니, 병력만 더 충원하고 왔다면 저 정도는 별것 아닌데.] -삐유웅! 어린 라미아도 더 이상은 물벼락이 나오지 않는지 이마에서 물방울만 퐁퐁 튀어나왔다. -쀼웅……. 어린 라미아가 축 늘어지자 에르제베트가 위로하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그녀가 팔을 휙 치켜들자, 몇몇 비행 보드를 타고 오던 수색꾼들이 일제히 거미줄에 걸려 쓰러졌다. [흐응.]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건물과 건물의 좁은 틈, 셀 수 없이 많은 피난민들이 머리를 감싼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쿠쿵! 소리와 함께 전함 포격이 이어질 때마다 ‘히힉!’, ‘헉!’ 하는 소리가 가득하다. 그나마 에르제베트와 송장거미 부대가 지키고 있는 이곳은 나은 편이었다. 밖으로 나가면 학살이 이어진다. 옆에 있던 한 노인이 덜덜 떨며 말했다. “도, 도와줘서 고맙소. 존함을 알려주시면…….” [군단의 대장이라 알고 있으면 충분해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곳곳이 거미줄로 자욱하던 이곳에 열기가 느껴졌다. 화르르르륵! 화염방사기를 든 수색꾼들이 거미줄을 제거하며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오래 버티진 못하겠사와요.] 시몬이 남겨놓은 7군단이 저항하고 있었지만, 모든 전선이 최악의 상황. 무차별적인 코랄 포격이 이어지고 수색꾼들이 내부로 침투하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화마로 불타오르며 역한 연기가 풍겨 나왔다. 그리고 더 시티의 가장 높은 곳 중 하나. 관제탑 위. “…….” 혁명군 부대장 다비나는 더 시티가 불타는 광경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절그렁! 그녀의 목에 걸린 사슬이 당겨지자, 그녀가 ‘큭!’ 소리를 내며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봐라.] 다비나의 동공이 아래로 향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이 날아온 창에 맞아 쓰러지고 있었다. 또 하나의 커다란 건물이 무너지고, 그 아래에 위치한 판자촌이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더 시티가 불타오른다. 화로의 탑에서 연료를 태우지 않아도 더울 정도였다. 저벅 저벅! 사로잡힌 다비나의 옆으로 커다란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가 저 어리석은 것들을 선동하지 않았더라면 저들은 살아남았을 것이다.] 구원자 히에로미르. 그가 히죽 웃으며 음침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복종과 노동, 배식과 투표, 저들은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숨통은 붙어 있었을 것이다. 저들을 죽인 건 다름 아닌 너다. 다비나.] 다비나가 조용히 웃었다. “……그게 늘 네 방식이었지. 꼭대기에 서서 사람들을 교란하고 싸움을 부추기는 거 말야. 방아쇠를 당긴 사람이, 감히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거야?” 절컹! 히에로미르가 사슬을 잡아당겼다. 사로잡힌 다비나가 목이 잡아당겨지며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엎드린 채 힘겨운 숨을 헐떡이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나약한 몸뚱이에 깃든 그 고고한 정신력만큼은 존경하지, 다비나. 하지만 너처럼 저항하던 그 ‘혁명가’도 결국은 나에게 죽음이라는 자비를 애원했다.] 그가 사슬을 건 채 걸어가자 다비나가 ‘아윽!’ 소리를 내며 질질 끌려갔다. [나는 너를 끝까지 살려둘 것이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네 말을 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이 도시가 어떻게 끝장나는지 지켜보게 할 거다. 그리고 반드시 네가 이 생각을 하게 만들겠다.] 그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냥 가만히 있을걸.] 하하. 하. 하하하. 바닥에 얼굴을 박은 다비나가 어깨를 들썩이며 미약한 웃음을 흘렸다. “자유가 없는 세상은 차라리 끝나는 게 나아.” [그거야말로 네 개인적인 생각일 뿐, 과연 저기 도망치다가 창에 찔리게 된 사람들도 같은 생각일까?] “누가 뭐래? 누군가의 원망을 살 일을 벌일 것도 맞으니, 나는 아마 지옥에 떨어지겠지.” 그녀가 고개를 들며 웃었다. “하지만 그 지옥에 너도 같이 떨어진다면, 나는 흔쾌히 웃으면서 갈 거야.” 히에로미르가 질리지도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쯧 하고 혀를 찼다. [너는 이상주의자지만 주제는 알았지. 이렇게 헛바람이 든 건 시몬 폴렌티아를 만난 후인가.] “…….” [하지만 봐라. ‘악의 무리’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된 그 7군단도 강추위가 몰아닥치는 화이트랜드에서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그가 고개를 돌려 좀비집사가 후퇴하고, 에르제베트가 사람들을 대피시는 모습을 보았다. [네가 시몬 폴렌티아를 기다리는 건 알고 있다. 그를 전이기에 보낸 것도 이미 보고받았지. 하지만 전이기는 나와 시엘만 작동시킬 수 있다. 전이기가 단순히 장치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정보다. 네 정보 때문에 시몬 폴렌티아는 위기에 빠질 거다.] 그가 고개를 쭉 들이밀며 이를 드러냈다. [다비나, 너는 암덩어리다.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지. 이 주민도, 도시도, 시몬 폴렌티아도.] “네 그 언사와 수법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아.” 다비나가 눈에 힘을 주었다. “우리는 아직 지지 않았고, 시몬은 해낼 거야.” […….] 다비나가 아직도 꺾이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히에로미르가 통신 장치를 들어 올린 뒤 말했다. [나와라.] 휘오오오오오! 그 말을 하기 무섭게 더 시티의 남쪽에서 눈보라를 뚫고 코랄 주포를 장비한 공중 전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척 한 척이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전함. 그것도 하늘을 시커멓게 메울 정도로 압도적인 수였다. 무수한 함대가 더 시티의 상공을 뒤덮고 있었다. 다비나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직도 저 정도의 병력을 아껴두고 있었던 거야?’ 도시 곳곳에서 저항하던 주민들도 그 모습을 보고 절망했다. 현재 상공에 떠 있는 전함은 6척. 이것만 막아내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보이는 건 거의 서른 척이 넘는 수였다. 그 안에서 수많은 수색꾼 병력이 로프를 타고 도시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네 마음이 꺾이는 순간까지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히죽 웃은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주포 사격 개시.] 콰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몇몇 전함의 전면부가 열리더니 일제히 보랏빛 코랄 광선을 히에로미르를 향해 발사했다. 히에로미르가 전면에 공간을 열고 그 화력을 담았다. “안 돼애애애!” 다비나가 절규했지만, 히에로미르는 히죽 웃으며 손을 내렸다. 더 시티 곳곳에 공간이 새롭게 열리며 방금 발사된 코랄 주포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건물들이 무수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비명이 아비규환을 이룬다. [오, 그래. 저기 비명이 많이 들리는구나.] 히에로미르가 손끝을 휙 하고 세우자 섬광이 날아가 사람의 비명이 들린 곳에 꽂혔다. “그만하라고!” 다비나가 달려와 그의 다리를 붙잡고 마구 흔들었지만 히에로미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울분을 쏟아내듯 그의 옆구리를 꽈악 깨물었다. 입에 피가 흐르고 이가 상하다 못해 부러질 때까지 깨물어도 히에로미르의 피부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너는 나를 ‘악’으로 규정지으려는 것 같지만, 선과 악의 잣대는 비교 가능할 때나 의미가 있는 법. 나와 너희는 처음 태어난 순간부터 평등하지 않다!] 히에로미르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이 도시의 창조주다. 내가 만든 곳에 무엇을 하든, 어떤 짓을 하든, 모든 것이 내 자유다! 변절자들을 죽이고 라우라의 복수를 마친 뒤, 비로소 나는 카이 로에게 향할 것이다!] “당신이 창조주라는 걸 누가 인정할 것 같아? 당신은 단순한 범죄자일 뿐이야!” [설령 창조주가 아니라 하더라도.] 히에로미르가 섬뜩하게 웃었다. [너희는 약하고, 나와 나의 군대는 강하다.] 포격이 쏟아진다. 사람들에게 절망이 내려온다. -이, 이 병력 차는 이길 수 없어! -도망쳐! -성벽으로 전부 막혀서 나갈 수 없소! 애초에 밖에 나가면 다 얼어 죽을 거라고! 선두에 선 군단도 일제 포격에 무너져 내리고, 혁명군이나 지하 투기장 사람들도 속수무책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히에로미르가 두 팔을 펼쳐 들며 도시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뜨겁구나.] 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주 좋은 열기다.] 휘이이이이이이잉-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열기를 즐기던 그가 인상을 쓰며 눈을 떴다. [……북풍?] 그럴 리가. 화이트랜드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람이 분다.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올 리가 없다. 휘오오오오오오오오! 냉기가 점점 거세진다. 불타는 도시에 맹렬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화이트랜드 특유의 회색 눈이 아닌, 눈부실 만큼 새하얀 눈. 코랄의 열기로 눈이 녹아 비가 내리고 곳곳에 비가 흩뿌려진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도시에 비가 내리고, 한기가 일렁이며 불길이 하나 둘 잡힌다. 도망치던 사람들 모두 고개를 들어 비를 바라본다. 기후가 바뀌었다. 그리고. [목도하라.] 커다란 울림이 세상을 흔든다. 쿠웅-! 더 시티의 북쪽 산맥 끝자락. 그곳에 무언가가 나타나고 있었다. 쿠웅-! 쿠웅-! 쿠웅-! 무수한 눈사태와 함께 수천 수만, 아니, 끝도 보이지 않는 눈동자들이 북쪽의 산맥을 뒤덮은 채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전원 눈과 얼음에 특화된 언데드들이었다. 휘오오오오오오! 들어 올린 팔에 기후가 바뀌며 바람이 휘몰아친다. 압도적인 북풍이 세상을 뒤덮는다. [내가 움직이기 딱 좋은 세계로다. 이곳이라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겠구나.] 쿠웅! 마침내. 갑주로 몸을 감싼 에이션트 언데드가 몸을 드러냈다. 긴 주둥이와 턱을 가진, 마치 외계생물과도 같은 이질적인 형상의 존재가 검을 든 채 걸어 나오고 있었다. 히에로미르가 인상을 쓰며 손을 뻗어 통신 장비를 조작한 뒤 말했다. [너희는 누구냐. 어떻게 내 세계에 온 거지?] 히에로미르의 목소리가 전함을 통해 널리 울려 퍼진다. 그러자 눈보라로 인한 목소리가 널리 울려 퍼진다. [나는 북신 자이로스.] 에이션트 언데드가 주먹을 쥐었다. [요나의 후계자이자 프로스트 필드의 진정한 주인, 나의 주군 시몬 폴렌티아가 이끄는 7군단 최강의 존재이며 최강의 부대다.] 키에에에에에!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천지를 뒤흔들 듯한 울림이 주위를 휘몰아쳤다. 고작 함선 몇십 대 추가된 것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압도적인 북방 몬스터의 수. 이야기를 듣던 에르제베트가 픽 웃었다. [건방진 소리를, 그래도 타이밍 좋게 왔으니 넘어가 드리겠사와요.] -삐융! 그리고 북쪽 설산을 점령한 자이로스의 옆으로,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이 걸어 나왔다. 이 모든 존재를 이끄는 네크로맨서. 배니쉬를 조작해 북신이 주둔하던 프로스트필드 일부를 통째로 이곳으로 옮긴 장본인. 히에로미르의 표정이 허망하게 굳어졌다. [아직도 저 정도의 병력이 남아 있었나!] 프로스트필드의 모든 언데드가 고개를 기울이며 경배한다. 군단장이 도시에 돌아왔다. 처억! 척! 시몬과 자이로스가 등을 맞대고 동시에 파멸의 대검과, 얼음의 검을 들어 올렸다. [진군하라.] [진군하라.] 설산을 장악한 얼음의 군대가 더 시티를 향해 일제히 쏟아져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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