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26화 워턴의 개입으로 결착은 났다. 카르보스 장군이 입은 갑옷은 결국 손상된 채 코랄의 출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했지만, 비상 탈출 시스템이 작동했는지 몸이 산산조각 나는 일만큼은 면했다. 그리고 졸지에 이번 일의 일등공신이 된 워턴. “워턴!” 레테가 하얀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와 쓰러져 있는 워턴을 와락 끌어았다. “우릴 도우려고 저들을 속이고 있던 검까? 연기 진짜 뭐예요! 깜빡 속았잖아요!” “그,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워턴이 덜덜 떨며 인사했다. 그녀의 안색이 파랗게 질린 걸 본 레테가 뒤늦게 ‘아’ 하고 떨어져서 허리 쪽에 피가 흐르는 걸 보았다. 엄연히 발라 모르티페르는 자해 기술이었다. 레테는 얼른 워턴을 똑바로 눕히고 그 앞에 꿇어앉아 두 손바닥을 상처 앞에 대고 치유마법을 걸어주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장군!” “일단 피하셔야 합니다!” 군의 총사령관이 쓰러졌다. 남아 있던 정예병들이 한쪽 팔만 남은 카르보스 장군을 데려갔다. 그들이 시몬의 눈치를 슥 보았지만 시몬은 뒤쫓지 않았다. 결사도 아니고, 목숨은 정보값이라 칠 셈이었다. 치료를 잘 받는다면 목숨은 건사하겠지만 군인으로서는 은퇴해야 할 터. 시몬이 다시금 시선을 움직여 반대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오오오오오오! 바힐이 새로운 저주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주목의 저주를 공포의 저주로 바꿔가고 있었다. 바힐이 본격적으로 공포를 저주를 이용해 대군의 전의를 떨어뜨렸고 또 어떻게 알았는지 총사령관의 패퇴 소식을 전 병력에 퍼뜨렸다. 전의는 꺾였고 계속 싸울 이유도 사라졌다. 저 많은 군대를 단번에 ‘패잔병’으로 바꾼 것이다. 병사들이 하나 둘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고, 탈영병의 이탈 흐름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다행이다.’ 진짜 단 세 명으로 군을 물리쳤다. 나중에 학교에 돌아가면 하루 종일 풀 수 있는 영웅담이 생겼다. 바힐이 군대의 주목을 끌어주는 사이, 시몬과 레테가 적진에 침투해 총사령관을 잡아내고, 바힐이 주목의 저주를 공포의 저주로 바꾸어 해산. 이상적이다 못해 완벽한 흐름이었다. ‘중간에 살짝 위험할 뻔했지만.’ 옆에서는 상처를 치유하던 레테가 기특하다는 듯 워턴의 머리를 쓰담쓰담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나름 신성연방 대표팀 리더라 정이 들었는지 부하를 챙기는 모습이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까지, 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적을 속여야 했습니다!” 워턴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연신 변명하듯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레테 성녀님과 조금이라도 대충 싸웠더라면 카르보스 장군은 제 목부터 쳤을 테니까요! 끈질기게 기다렸더니 결국 제가 기다리던 순간이 왔고! 정확히 카르보스 장군만을 무력화하는 데 성공……!” “그런데 워턴.” 시몬이 불쑥 말했다. “카르보스 장군이 저주 때문에 모르티페르의 효과가 먹힌 건 그렇다 쳐도, 내가 모르티페르가 통하지 않으리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쿵! 워턴은 마음의 바닥이 열리고 밑바닥 무저갱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지금, 워턴의 인생에서 두 번째로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그,그! 그으으- 거요! 아! 그게! 발라 모르티페르는 여러 백마법 중에서도 원리가 극도로 복잡한 퇴마형 기술입니다! 저는 그 기술의 창시자로서 상대를 처음 본 순간에 모르티페르가 통하는지 안 통하는지 분간이 가능하거든요! 그때 룬 리그에서 7군단장님을 봤을 때 아! 기술이 안 통하겠구나!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침을 튀기며 파바박 설명했다. “이해했어.” 시몬과 레테는 그렇구나 넘어가는 눈치였다. 워턴은 속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옷자락을 입에 물고 바들바들 떨었다. ‘오리지널 기술이라서 다행이다!’ 본인만 쓸 수 있는 기술이고 본인이 그렇다는데 뭐라고 할 수 없는 노릇. 하지만 시몬은 워턴보다 다른 쪽이 신경이 쓰였다. ‘위험한데.’ 일단은 상대 병력 한복판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수색꾼들이 주목의 저주에 이은 공포의 저주로 물러나고는 있었지만, 몇몇은 카르보스 장군의 폭발로 정신을 차렸는지 이쪽을 노려보며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시몬이 전이기 쪽을 보았다. ‘저들이 완전히 퇴각한 뒤에 전이기를 작동시켜야 하나? 더 지체할 수는 없는데.’ “시몬!” 레테가 소리를 높였다. “위를 봐요!” “!”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난데없이 거구의 남자가 쿵! 소리를 내며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내려왔다. 새로운 적이 출현했다고 생각한 시몬이 재빨리 전투 자세를 취하는데. “하하하하! 프루토 막무스! 차탓하이!”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요란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이상하면서도 정겨운 대륙어. 무엇보다 흙먼지 너머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역시. ‘신성?’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여기 계셨습니까! 레테 성녀님!” 흙먼지를 거두며 방대한 신성을 뿜어내는 떡 벌어진 어깨와 거구, 그리고 훈련된 근육질을 가진 중년 남자. 그는 다름 아닌 시몬이 하늘섬에 잠입했을 때 만난 에프넬의 수호학 교수였다. ‘브로데릭 교수님!’ 암흑연합 소속인 바힐에 이어, 처음으로 화이트랜드에 신성연방의 인물이 도착했다. 아마도 키젠의 포탈 모방 장치가 아니라, 바훔 복음을 해석 완료한 것으로 신성연방 독자적 차원 이동 기술을 사용했으리라. 그가 팔을 한번 붕 휘젓자, 견고한 성벽 모양의 신성 결계가 그들을 둘러쌌다. 그나마 시몬 일행을 공격하려던 수색꾼들도 공격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레테가 생긋 웃었다. “어서 오세요 교수님. 하늘섬의 첫 차원 이동 대상자가 되셨네요.” “음흐흐! 두 번 경험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워턴에게도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한 그가 고개를 돌려 시몬을 바라보았다. “음흐흐흐흐흐!” 적대감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그의 강렬한 눈빛을 받는 순간, 시몬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적대감이 없어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처음 뵙겠소! 라고 말해야 하나? 암흑연합의 제7군단장! 우리는 초면인데 마치 구면 같군!” 시몬이 어색하게 웃었다. “무슨 말을 하는…….” 콰드드드드드드! 갑자기 신성 요새가 변화하며 시몬과 브로데릭, 단둘만을 감싸는 작은 내성이 만들어졌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시몬이 얼른 피어의 투구로 얼굴을 가리려는데. 덥석! 브로데릭이 다가와 시몬의 손을 붙잡았다. “자네, 유클리드지?” 시몬의 동공이 격렬히 흔들렸다. 시몬이 하늘섬에서 레테를 도와 선발생으로 잠입했을 때 사용했던 가명이 유클리드였다. 시몬은 그의 손을 치우며 천천히 피어의 투구를 눌러썼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브로데릭이 우뚝 동작을 멈췄다. 그러다. “하하! 하하하하! 그래 그래! 이 몸이 잘못 봤을 수도 있겠지!” 몸을 비틀며 브로데릭이 쩌렁쩌렁하게 웃은 뒤 고개를 쭉 빼밀었다. “누구나 비밀이 있지 않겠나! 음! 네크로맨서가 신성을 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시몬은 심장이 쿵쿵 조여오는 걸 느꼈다. 바로 그 문제 때문에 브로데릭도 확신은 없을 터였다. “아! 그리고 대륙에 돌아가면 심판의 성녀 다나 님과 대면하는 걸 피하게!” [?] “아마 이 몸과 같은 질문을 할 것 같거든!” ……이건 유용한 정보였다. 그 여자와는 되도록 엮이기 싫었다. “실례했네!” 쿠구구구구구! 다시 신성으로 이루어진 내성이 걷히기 시작하며 밖에 있던 레테, 워턴과 만났다. 레테가 수상하단 눈빛으로 브로데릭을 보았다. “벽치고 둘이 무슨 이야기 하셨슴까.” “차탓아이! 사내 간의 뜨거운 승부욕을 확인했습니다! 사실 겨뤄보려고 했는데 제7군단장이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며 거절했지요! 다음 약속을 잡는 걸로 만족했습니다!” 레테가 정말이냐는 눈빛으로 시몬을 보았고, 시몬은 손끝으로 문제없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브로데릭이 이를 드러내며 시몬에게 엄지를 세워 들었다. “룬 리그 잘 봤네! 자네와 성녀님의 전투는 인상적이었지만, 내 경험에 따라 몇 가지 조언을 주고 싶은 게 있었지! 특히 상대와의 거리에 대한 부분인데!” 쿠르르르르르릉! 갑자기 하늘에서 버럭 소리 지르는 듯한 천둥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이내 하늘에서 시커먼 오물을 연상케 하는 저주 덩어리가 와르르 쏟아졌고, 시몬에게 뭔가 알려주려던 브로데릭이 급히 천장에 수호마법을 펼쳐 그것을 막아냈다. 워턴이 비명을 질러댔고, 레테도 놀랐는지 토끼눈이 되었다. “알았네! 알겠어! 아, 거참! 그만하면 될 것 아닌가!” 하늘을 향해 그렇게 외쳐댄 브로데릭이 껄껄 웃으며 시몬을 보았다. “자네 교수가 참 질투가 심하구만!” 시몬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수업을 포기한 브로데릭이 헛기침을 한 차례 한 뒤 말했다. “그럼 다음 임무는 무엇인가?” “시몬이 이 전이기를 작동할 때까지 우리가 지켜내야 해요, 교수님.” 레테가 대신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몬이 전이기로 대륙의 한 곳을 배니쉬할 거고, 그곳에서 온 지원 병력으로 화이트랜드를 구하는 게 작전의 골자예요.” “허어! 괜찮겠습니까? 대륙의 어디를 배니쉬할지 모르겠지만, 허락도 없이 우리가 멋대로 끌고 오면 차후에…….” [괜찮다.] 무형의 망토를 휘날리며 저벅 저벅 걸어간 시몬이 전이기를 향해 팔을 들어 올렸다. [내 영토의 일부를 가져올 생각이니.] 우우웅! 시몬이 전이기에 손을 대는 순간. 갑자기 주위의 배경이 바뀌었다. 주변 경관과 소리가 사라지고 주황색으로 일그러진 공간이 나타났다. 그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버튼과 다이얼들이 가득했다. 시몬이 놀라며 전이기에 손을 떼자, 다시 레테와 브로데릭이 보이는 밖으로 돌아왔다. “괜찮으심까?” 레테가 놀라며 다가왔다. [다시 해볼게.] 시몬이 후읍 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다시 손을 전이기에 얹었다. 주위의 경관이 바로 바뀌며 수많은 버튼과 다이얼들이 드러났다. ‘시선으로 조종하는 건가.’ 시몬이 한쪽 버튼을 가만히 응시하자 버튼이 눌리며 철컹 철컹 기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시간이 없어. 바로 시도해 보자.’ * * * 시몬은 바로 수많은 버튼과 다이얼들을 이용해 장비를 조작해 나갔다. 히에로미르가 남겨놓은 설정들, 규칙들을 이용해서 최대한 장비를 작동시키려 했지만. -쿠쿵! -키기기깅! 장비는 이상한 소리만 낸 채 작동이 멈추고, 주황색 공간이 일그러졌다가 수복되기만을 반복했다. ‘이거.’ 다비나의 정보가 틀렸다. 이 기술은 히에로미르와 시엘, 쌍둥이 구원자의 힘을 증폭시키는 결사의 장비 같은 게 아니었다. 가히 쌍둥이 구원자의 능력 그 자체. 사실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처럼, 쌍둥이 구원자의 능력을 시몬이 구사해야만 했다. ‘쉽지 않아. 내가 공간계 기술을 쓰는 원리와 전혀 달라.’ 시몬의 공간계 기술은 칠흑과 신성을 부딪히는 것, 혹은 대상을 간절하게 생각하며 초월적인 의지로 공간을 찢고 대상이 있는 지역으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쪽의 공간계는 그런 방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 방대한 통찰이 필요해.’ 시몬이 고민에 빠져 있는 그때. 샤아아아아아- 갑자기 시몬의 옆으로 바힐의 환영이 나타났다. 시몬이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바힐 교수님?” [아, 잠시 내 힘으로 시몬 학생의 생각에 개입했습니다. 조금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이군요.] 바힐은 저주를 유지하면서 이렇게 시몬의 머릿속에 환영으로 나타나 있었다. “교수님이라면 이 장치의 조작법을 알 수 있을까요?” [저로서도 알 방도가 없는 원리의 기술이군요. 하지만-] 바힐이 시몬을 보았다. [당신이라면 가능합니다.] “……아.” [그 전에 먼저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바힐이 제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과거의 일이지만, 나는 당신의 눈부신 천재성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선 콤펠로 상태에 진입하여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일종의 초월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죠.] “…….” [하지만 정작 학생 본인의 허락을 받지 않았으니 내 개인적인 탐욕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힐이 손바닥을 펼치자 새로운 저주 마법진. 조금 수식이 바뀐 ‘콤펠로니아’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대한 리스크와 ‘문’을 넘어설 확률을 줄인 리메이크 콤펠로니아 마법진을 준비했습니다.] “…….” [이 기술의 힘으로 콤펠로에 진입한다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시몬은 마법진을 받아들어서 가만히 살폈다. 그러다. “괜찮습니다.” 시몬이 빙그레 웃으며 마법진을 주먹 쥐어 흐트려 없앴다. “제가 이 난관을 또 콤펠로니아로 극복한다면 저는 계속 콤펠로니아에 매달리게 될 거예요.” 그 순간 바힐은 깨달았다. 룬 리그에서 시몬이 콤펠로 상태에 들어간 건 확실하지만, 결코 그건 콤펠로니아의 봉인을 풀고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저는 콤펠로니아 없이 이걸 풀겠습니다.” 시몬의 시선이 한쪽 다이얼을 눌렀다. 키이이이잉! 그러자 반대쪽 황색 공간이 일렁이며 변화가 일어났다. “콤펠로니아는 스승이 아니잖아요. 지식이 쌓이는 게 아니라 단편적인 뇌의 흐름을 이용하는 것. 그게 기억난다고 해도 그저 흉내 내는 것뿐. 스승은-” 시몬이 미소 지었다. “제 옆에 있는데 굳이 그것에 의존할 필요가 있을까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바힐은 다시 한번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 이 제자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교수에게도 한 단계 성장을 강요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바힐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인간의 힘으로, 같이 공간의 비밀을 풀어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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