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25화 시몬은 바닥에 파멸의 대검을 꽂아놓고 눈을 감은 채 두 팔을 허공에 걸치듯 벌렸다. 쏴아아아아아-! 그의 발밑의 그림자가 살아 있는 것처럼 일어나며 넘실거린다. 뱀처럼 지면을 타고 뻗어 나가다가 위로 솟구치기도 하는 등 위협적으로 움직인다. 우웅! 우우우우웅! 허공에는 검은 마법진들이 연달아 펼쳐진다. 하나같이 기이하고, 내부에 괴물이 입을 벌리고 있거나 눈알이 노려보고 있는 듯한 끔찍한 형태.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페이크.’ 고고고고고고고! 전부 칠흑의 흐름과 움직임으로 만든 연출일 뿐이다. 룬어를 삽입하지 않고 마법진의 모습과 회로의 배치로 시각적 위협감을 주는 데 집중했다. 시몬의 전투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자, 멀찍이 선 카르보스 장군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살핀다. 시몬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카르보스 장군은 일순 시몬의 등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더니, 갑주에서 보라색 부스터를 뿜어내며 기습적으로 돌진했다. 촤앙! 그러나 즉시 시몬의 앞에 가로막듯 펼쳐지는 마법진. 카르보스 장군이 흠칫하며 억지로 다리에 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섰고 시몬이 손끝을 뻗었다. 퍼버버버버버버벙! 손끝에서 연달아 칠흑이 발사되었다. 카르보스 장군이 온몸을 뒤틀며 공격을 피하거나 대검으로 쳐냈다. [크윽!] 카르보스 장군이 전력을 다해 막고 있었지만 이는 저주도 뭣도 아닌 단순한 칠흑 사출. 1학년 때 배우는 가장 기본적인 ‘칠흑 화살’도 칠흑을 굳히거나 날카롭게 만드는 등 무기로서의 가공을 갖추지만 이건 의미 없는 사출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게 상대에게 있어 미지(未知). 바힐이 사용한 저주의 힘을 톡톡히 목격한 상대는 경계할 수밖에 없다. 바힐이 이 세계에 넘어와 줘서 가능해진 연출을 시몬은 제대로 살리고 있었다. ‘이놈.’ 하지만 카르보스 장군도 백전노장이었다. ‘나를 능멸하고 있구나.’ 눈으로 보기에 너무나 검고 불길한 색상의 공격이고, 닿으면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지만 저 공격에는 살의가 들어가 있지 않다. 카르보스는 그것을 무인으로서 느끼고 있었다. ‘그 도발, 받아주지.’ 상대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착각하게 속이는 것 또한 심리전. 참는다. 카르보스 장군은 시몬의 모든 공격에 과하게 반응하며 도망쳤다. 검은 그림자가 쭉 다가오면 몸을 억지로 틀어 피했고, 모든 공격을 하나하나 일일이 쳐냈다. 체력을 소모하면서 빙빙 주위를 돌기만 하던 그가, 시몬의 반대편에 빈틈이 보이자 일순 속도를 확 높이며 치달았다. 당연히 그의 돌진을 막으려듯 마법진이 펼쳐졌고. ‘이번엔 피하지 않는다!’ 카르보스 장군은 그대로 마법진을 돌파해 시몬을 향해 들이닥쳤다. 역시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들어 올린 대검으로 시몬의 목을 치려고 했으나. ‘!!’ 몸이 느려졌다. 지렁이가 몸 전체에 기어다니는 기이한 감각이 치밀고, 진흙 속에 들어가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동작이 굼떠졌다. <바힐 리메이크 – 보그 트랩(Bog Trap)> 저주에 당해 느려진 카르보스 장군의 검을, 시몬은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가볍게 피해 버렸다. ‘설마 전부 진짜 공격이었나?’ 카르보스 장군이 혼란에 빠진 사이 시몬은 속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내 의도를 간파했다고 계획까지 간파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시몬은 모든 칠흑이 위협이 아니라는 사실을, 카르보스 장군이라면 알아내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니 제대로 타이밍을 잡아서 저주에 걸리든 말든 한 번은 과감하게 달려들 거라고 확신했다. 그게 바로 지금. 심리전의 압승이었다. 네크로맨서 간의 싸움은 기술 간 상성이 중요했고, 이 정도 심리전은 키젠 결투평가에서 질리도록 하는 수준이라 시몬은 단련되어 있었다. 반면 카르보스 장군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했는지 혼란에 빠져 있었다. [흐웁!] 시몬과의 거리를 벌린 그가 두 팔을 쩍 벌렸다. 갑주 곳곳이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코랄 섬광이 쏟아졌다. 아껴두었던 원거리 공격. 섬광이 폭발을 일으키며 시몬이 있던 곳에 자욱한 연기가 일어났다. 잠시 숨을 돌린 카르보스 장군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촤아아아아아! 그 자욱한 연기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날아들었다. 카르보스 장군이 급히 대검을 틀어 그것을 막아냈고. 후웅! 바람처럼 나타나 그의 측면을 잡은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휘둘렀다. 쩌어어어어어어엉! 늦지 않게 대검을 비틀어 불안정적인 자세로 공격을 막아낸 카르보스 장군이었지만 시몬은 무심한 표정으로 손끝 하나를 펼쳐 칠흑을 발사했다. 카르보스가 식겁하며 고개를 홱 돌리는 사이 균형이 무너졌고, 시몬이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며 상대의 대검을 치운 뒤 허벅지를 베며 지나갔다. 피슈욱! 카르보스 장군의 허벅지에 피 대신 액체 같은 게 뿜어져 나온다. 갑주에 든 코랄의 액체연료 같은 것인 모양. 하지만 시몬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밀어붙인다!’ 맹공이 시작되었다. 파멸의 대검을 연신 휘두르며, 손끝이나 등 뒤에 펼친 마법진 등으로 회피와 불안정한 방어 동작을 유도한다. <이그저스트> <말레디코> <위크니스> <페럴라이즈> 사용하는 저주는 모두 스택이 쌓였을 시 충돌하지 않는 저주다. 그 밖에 페럴라이즈를 비롯한 석화 저주는 일부로 바닥에 쏴서 저주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용도로 썼다. 까앙! 깡!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압도한다. 두 사람이 검을 부딪칠 때마다 카르보스 장군의 몸에 회복 불가능한 상처가 남겨지고, 저주가 걸린다. 저주는 술사의 감정도 중요하지만, 당하는 자의 감정 상태도 중요하다. 저주에 대한 위협과 경계심이 강하다면. ‘저주의 효과는 증폭된다!’ 까아아아아아앙! 시몬이 힘을 실어 파멸의 대검을 휘둘렀고, 그것을 받아낸 카르보스 장군이 두 다리로 바닥에 긴 자국을 그리며 밀려났다. ‘깔끔하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로구나.’ 결국 카르보스 장군이 갑옷 안에 손을 넣고 스위치 몇 개를 잡아당겼다. 갑옷 내부에 숨겨져 있는 각종 약물이 주사의 형태로 그의 몸에 들어갔다. 갑옷 중앙의 코랄 파츠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하며 갑옷 전체에 보랏빛이 더더욱 밝아졌다. <아웃버스트 1레벨 발동> 고오오오오오오! [나는 방금 전보다-!] 카르보스가 대검을 맞잡고 돌진 자세를 취했다. [50% 이상 강하다!] 그가 앞으로 쏘아지며 강화된 힘으로 대검을 내리그었고, 시몬도 거기에 파멸의 대검을 휘둘렀다. 까아아아아아아앙! 그런데. 역으로 시몬의 휘두른 대검의 힘을 견디지 못한 카르보스 장군이 뒤로 밀려나다 못해 바닥을 나뒹굴었다. [?!] “아닌 것 같은데.” 척. 파멸의 대검을 세워 든 시몬이 멋들어진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강해진 만큼, 약해진 것도 생각해야지.” 이것이야말로 저주의 진가. 카르보스 장군이 피를 토했다. * * * 한편 주목의 저주가 걸려 있는 더 시티의 대군은 여전히 바힐을 상대하고 있었다. 함선의 포격은 정체불명의 저주에 막혀서 스파게티 면이 되어버리고, 보병들은 바힐에게 가까이 가는 것도 역부족이었다. 온갖 저주에 휘말려 쓰러졌다. 후방에서는 명령 체계가 뒤엉키고, 갑자기 환각을 본 수색꾼들이 아군에게 포격을 날리거나 창을 휘두르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좀처럼 바힐 공략에 진전 없이 애를 먹고 있는 그때. 쿵! 갑자기 떡하니 서 있던 바힐이 지면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본 더 시티의 지휘관들이 쾌재를 불렀다. -드, 드디어 저자도 힘이 다했구나! -그래! 저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리 없다! 놈이 약해진 지금이 기회다! 쳐라! 그 말에 용기를 얻은 수색꾼들이 창을 앞세우며 바힐에게 달려들었으나. 커헉! 큭! 바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온갖 저주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 픽픽 쓰러져 갔다. 하반신 전체가 동상에 걸린 수색꾼이 통신으로 보고했다. -뭡니까! 전혀 약해지지 않았는데요? -부, 분명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는데! 더 시티의 군대가 또 한 번 혼란에 빠져 있는 그때. 흐흐흐흐흐. 바힐은 조용히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하하하하하하! 미친 사람처럼 끽끽거리며 웃던 그가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흥분감으로 팔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바로 그겁니다! 그거예요! 시몬 폴렌티아!” 바힐은 시몬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기쁘다 못해 황홀한 표정으로 제 뺨을 감쌌다. 저주를 이용해 적장을 가지고 노는 모습. 그것도 자신이 알려준 연출과 저주의 가르침을 즉시 습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활용하는 모습을 본 그는 온몸에 기쁨이 넘쳐흘렀다. “시몬 폴렌티아!” 과한 쾌락과 기쁨으로 그의 손바닥이 파들 파들 떨렸다. 가르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그에게 주입하고 싶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구성하는지 옆에서 관찰하고 조언하고 싶다. “교육자로서 얼마나 기쁜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시몬 폴렌티아는 가르침을 받기 위해 태어난 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제자. 그를 학생으로 둔 것은 황홀한 일이다. 바힐이 바들바들 떨며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걸 본 수색꾼들이 지금이 기회라며 다시 달려들었다가 저주에 휘말려 픽픽 쓰러지는 건 덤이었다. * * * 카르보스 장군의 패색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몸에 걸린 저주는 쉽게 효과가 떨어지지 않았고, 갑옷 곳곳이 부숴지고 기능이 정지하고 있었다. ‘이것이 대륙 출신의 힘인가.’ 이제는 카르보스 장군도 결단을 내려야 했다. 주군인 히에로미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시몬 폴렌티아를 여기서 억제해야 했다. 그가 갑옷의 틈 안으로 손을 넣어 최후의 장치를 작동시켰다. 아웃버스터 2, 3, 4를 모두 건너뛴 최종 아웃버스터. 죽음을 각오한 기술. 위이이이이이잉! 갑옷의 중심부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갑옷 전체가 보랏빛으로 물들며 그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웃버스트 5레벨 발동> 카르보스 장군의 몸이 갑옷에 타들어 가고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무슨 짓을.” 시몬이 인상을 썼다. 카르보스 장군이 검을 치켜세웠다. [가겠다.] 터어어어어어어어엉!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세와 속도로 달려든 카르보스 장군이 거의 보랏빛 덩어리가 된 대검을 휘둘렀다. 시몬도 파멸의 대검을 앞세웠다. 꽈드드드드드득! 시몬이 디딘 지면이 크레이터처럼 크게 내려앉았다. “크윽!” [내 목숨을 바치더라도 반드시 여기서 너를 잡겠다!] 카르보스 장군이 갑옷의 출력만으로 억눌렀다. 시몬의 몸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피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년! 이대로는 위험하다! 대처해야 한다!] 전투가 시작한 처음으로 시몬이 밀리고 있는 사이. 촤아아아! 카르보스 장군의 옆으로 워턴이 나타났다. 레테의 공격을 받은 건지 몸 곳곳이 너덜너덜해졌지만 그녀의 입가는 쭉 벌어져 있었다. “끝이다! 시몬 폴렌티아!” <워턴 오리지널 – 발라 모르티페르> 촤아아아아아아아! 그녀의 발밑에 커다란 마법진이 펼쳐졌다. 최대 넓이로 확장한 발라 모르티페르의 범위로 시몬, 워턴, 카르보스 장군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 카르보스 장군이 공격을 막는 중이니 시몬은 마법진의 범위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사이 워턴이 허리춤에 단검을 뽑았다. ‘네크로맨서에게 가장 취약한 부위.’ 발라 모르티페르라는 강력한 백마법을 완성한 뒤, 워턴은 이 기술의 사용법을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러다 주위에 치유사제나 수호사제가 없을 때를 대비해 자신은 치명상을 입지 않으면서 네크로맨서에게는 큰 피해를 주는 부위를 알아냈다. 그것이 바로 오른쪽 옆구리의 늑골. 바로 그쪽이 칠흑 코어로부터 칠흑이 지나가는 곳이다. 그곳을 공격하면 네크로맨서는 제대로 칠흑을 쓸 수 없게 되고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잘 가라!” 그녀가 단검으로 힘차게 자신의 옆구리 늑골 쪽을 쑤셨다. 푸욱! 단검이 살을 꿰뚫고 깊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푸화아아아아악! 반응은 바로 나타났다. 그런데 시몬 폴렌티아가 아니라. [크아아아아아아악!] 카르보스 장군이었다. 그의 옆구리가 터져 나가며 피가 거칠게 튀고, 그 터진 부위를 갑옷의 코랄이 불태우고 있었다. ‘왜애애애애?’ 워턴의 입이 떠어어어억 벌어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왜 칠흑도 없는 카르보스 장군이 피해를 입은 거지? 아니, 그 전에. 왜 네크로맨서인 시몬에게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거지? “?” 시몬을 보니, 그도 영문을 모르는 듯 순수하게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그리고. [꺼흑! 끄흐흐흑!] 방금이 그야말로 결정타. 시몬을 밀어붙이던 카르보스 장군이 입에 거품을 물며 눈동자를 뒤집었다. [처음부터 배신할 계획이었나! 워턴 슈프랭거!] 그가 울분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아니야.’ 바로 이때. 워턴은 찰나의 한순간,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빠르게 머리가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허리를 감싸듯 팔짱을 끼고, 턱을 치켜세우고, 두 눈은 휘고, 입꼬리는 힘껏 귀에 건 채 혓바닥을 쭉 내밀며 카르보스 장군을 보았다. “이제야 깨달았어?” 그녀가 쉰 목소리로 힘껏 외쳤다. “나는 처음부터 저쪽 편이었다!” 그때 갈라진 마스크 사이로 보여주는 카르보스 장군의 표정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네놈만큼으으으으은!] 그가 온몸의 힘을 폭발시키며 워턴에게 뛰어들어 그녀의 목을 향해 대검을 휘두르려 했으나. 쩌엉! 시몬이 먼저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대검을 든 카르보스 장군의 팔이 높이 떠오르고, 이어지는 검격이 그의 가슴에 한 차례 더 작렬했다. “끝이야. 카르보스 장군.”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내렸다. 이 군대의 총사령관, 카르보스 장군이 입은 갑주가 잘리는 것과 함께 폭발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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